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60화 (60/156)

〈 60화 〉 사명 (5)

* * *

함성과 비명이 난무하는 마탑의 입구.

그곳에서는 온갖 종류의 세력이 뒤섞여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육중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트롤이 하나.

망가진 장비를 입고 나와 싸우는 용병이 한 팀.

화려한 마법을 난사하며 화력을 지원하는 마법사가 여럿.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사격하는 가면의 괴한들까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푸른 빛의 검을 휘두르는 남자였다.

“세컨더리 비트의 검귀네.”

­ “한껏 날뛰는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피넬의 말에 나는 조용히 수긍했다.

검귀 데런 벨츠.

그는 세컨더리 비트의 최고 전력으로 꼽히는 남자다.

검귀라는 이명에 걸맞게 검을 주무기로 사용하며, 마법이 깃든 그의 검은 베어내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데런에 대한 소문이 완전히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일까.

날카로운 빛이 서린 데런의 검이 트롤로 변한 변신술사의 한쪽 팔을 잘라내었다.

“큭……!”

고통에 젖어 신음을 내지르는 트롤이 뒤로 물러서고,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령군단의 포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탄이 검귀에게 유효한 피해를 입히는 일은 없었다.

카앙! 캉!

날렵하게 휘둘러지는 검귀의 칼날이 상당한 양의 총탄을 막아내었다.

간혹 검귀의 검막을 뚫고 들어오는 공격이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검귀에게 닿지는 못했다.

일순간 검귀의 몸을 뒤덮은 푸른 빛이 총격을 막아선 것이다.

“……저 마법, 너무 사기 아니야?”

­ “그만큼 소모가 큰 마법이다.”

“아, 그러셔?”

상대적으로 강력한 물리력, 혹은 마법적 현상을 동반하는 마법은 범위가 좁고 마력의 소모가 많은 편이다.

어셔가 사용하는 블링크나 검귀의 마법같은 경우가 그렇다.

반면 내가 사용하는 텔레파시의 경우에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더러, 소모값이 크지 않아 마력 걱정이 적었다.

강력한 마법이라고 해서 무한정 남발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대부분은 마법에 대해 나름의 운용방법을 정해놓아 마력을 절약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물론 유령군단이나 폭주전차같은 일부 예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 “농담이 아니다. 저 마법은 피격당할수록 마력소모가 크다.”

“그렇단 말이지.”

­ “때마침 변신술사가 전투에 복귀했군. 우리도 슬슬 준비하도록 하지.”

어느덧 잘려나간 팔이 재생된 트롤이 다시 달려들었다.

힘과 재생력. 양쪽을 모두 갖추고 있는 트롤이다.

유령군단이 그의 백업을 하고 있는 이상, 1층이 크게 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란스러워진 입구를 피해서 위대한 지성이 있는 12층에 침입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끄덕. 고개를 움직인 스피넬이 내 등을 살짝 두드렸다.

후드 아래에 숨어있던 스피넬의 입가에 슬며시 옅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잠깐 참아.”

­ “무엇을 참으란거지?”

“많이 어지러울거야.”

스피넬의 말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순간.

나는 눈에 보이고 있던 풍경이 순식간에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휘릭. 짧은 시간동안의 암전.

그 직후 끊겨나갔던 의식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모든 것이 뒤섞이고, 뒤집히고, 뒤흔들리는 가운데, 나는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 “……제정신이 아니군.”

“이게 마력이 가장 적게 들어.”

옆자리에서 유유히 날고 있는 스피넬이 답했다.

마법을 지속적으로 이용해 나를 들어올리는 대신, 단발성으로 강하게 사용해 허공에 냅다 집어던진 것이다.

이후에야 조금 조종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효율적이라는 그녀의 이야기가 완전히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부작용을 온전히 자신이 부담해야만 한다는게 문제였다.

내용물이 뒤섞여버린 위장에서 메스꺼움이 올라온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참아낸 후에, 어그러진 시야를 다잡고 목표물을 바라보았다.

후. 짧은 한숨을 내쉬며 부서진 12층의 창문 너머에 발을 내딛는다.

강렬한 비행의 여파인지 걸음걸이가 조금 어긋나는 것 같았다.

­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었다.”

“내려갈 때는 괜찮을거야.”

­ “그나저나… 생각보다 처참한 모습이로군.”

세리나의 사무실이 위치한 마탑의 12층.

처음으로 마주한 그곳은 난장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층계를 뚫고 아래로 내려꽂힌 철근에, 집기를 부수고 스쳐지나가 헤집어진 사무실까지.

잔해와 사상자가 난무하는 사무실은 지옥도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풍경이었다.

“살아있는 녀석들이 있네. 마무리할까.”

12층에 있던 마탑의 직원들 중 일부는 잔해에 깔린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창가쪽에 위치해 비교적 커다란 피해를 본 이들이었다.

상태를 보건데 놔두더라도 오래 버틸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스피넬이 나서 처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장 불필요하게 살상을 벌일 이유가 없기도 하고 말이다.

­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가능한 마력을 아껴두도록.”

“왜? 너도 확실한게 좋지 않아?”

­ “상대는 위대한 지성이다. 가능한 최상의 상태로 돌입하는게 좋을거다.”

“알았어.”

빈말은 아니었다.

건물 전체를 덮을만한 규모의 결계를 만든 그녀다.

이 앞에서 세리나가 어떤 위험한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주변에 있던 중상자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계속 걸어나갔다.

부상자들 역시 우리를 신경쓸 겨를은 없던 모양인지, 처절한 신음을 내지를 뿐이었다.

간혹가다 누군가 무기를 들어올리는 광경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부 내가 만들어낸 총성과 함께 쓰러졌다.

“듣다보니 귀가 아픈걸.”

­ “네가 만든 모습이지않나.”

“그건 그렇지만 말이야.”

사람과 잔해가 뒤섞인 지옥도를 벗어나자, 일자로 늘어선 복도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길이가 긴 복도는 벽의 일부분이 무너져있는 채였다.

앞으로 걸어나가며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너머에 어떤 시설들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나는 빼곡한 서류로 가득차있는 방.

다른 하나는 세련된 설비가 존재하는 방.

또 다른 하나는 망가진 공구들이 모여있는 방.

저마다의 방을 지나면 지날수록 복도의 끝이 가까워왔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방들 중 하나의 모습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 “역겹군.”

말라 비틀어진 상태의 사람들이 가득 쌓여있다.

체격으로 보건데 기껏해야 어린 아이정도로 보였다.

이런 아이들만 마탑에서 모아둔 것이 아니라면, 분명 무언가의 수작에 의해 이렇게 변했을 것이다.

그 범인은 아마도 12층에 살고 있는 마탑의 지도자일 것이다.

짧은 글귀나마 읽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위대한 지성이 삶을 연명해가는 방식에 대해서.

“……끔찍한 모습인걸.”

퍼시발의 이름으로 살아간 이래, 유혈사태라면 숱하게 마주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썩 봐줄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도시의 현자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니.

그녀를 추종하던 이들이 퍽 우스울 따름이었다.

­ “너희가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이 있나?”

“적어도 나는 깔끔하게 보내주는 편이야.”

­ “참 자비로우시군.”

“알면 잘 모시는게 좋을걸.”

뭐, 자신이나 스피넬이 누군가를 비난할 처지는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도덕과 타협한 이들이 아닌가.

그냥 끔찍한 광경에 대해 서로 감상이나 한마디씩 내뱉었을 뿐이다.

누가 감히 위대한 현자에게 훈계를 하겠는가.

피식. 스피넬의 농담에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앞으로 계속 걸어나갔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서 다시 발걸음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적이다!”

“쏴라!”

탕. 탕. 탕. 타앙!

연달아 총성이 울리며 총격이 바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모퉁이 너머에 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는 경호원들이 있었다.

위대한 지성을 지킬 목적으로 배치된 경호병력으로 보였다.

나는 사격을 피해 벽에 완전히 달라붙었다.

­ “대기하는 녀석들이 있었나.”

“그래도 얼마 안남았다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네.”

­ “일단은 정리하고 가는게 좋겠군.”

저 많은 인원을 나 혼자 상대할 수는 없다.

당연히 그것은 스피넬의 몫이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당연하다는듯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

스피넬은 여기서부터 자신이 나설 생각이었는지, 케이스에서 칼날을 꺼내 허공에 흩뿌렸다.

그녀의 손을 떠난 칼날들은 하나같이 중력을 무시하고 공중에 떠올랐다.

“[레비테이션].”

마법에 의해 체공하고 있는 칼날들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을 공전하는 칼날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손을 휘저어 그것들을 내보냈다.

칼날들은 스피넬의 지휘에 맞추어 일사분란하게 적진으로 쏘아져 나갔다.

한차례 칼날의 폭풍이 움직인 직후, 스피넬은 여유롭게 모퉁이 너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헉!”

“끅, 끄륵……!”

“으으윽……!”

샤샥, 샤샤샥.

비산하던 칼날들이 일제히 경호원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이어진 단말마들과 함께 집단 하나가 침묵했다.

칼날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복도는 피로 흥건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혹한 광경속을 거니는 스피넬의 발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였다.

고고하게 홀로 공중을 거니는 그녀에게는 핏자국을 밟을 일이 없었다.

마천루의 마법사, 스피넬 클로버블룸.

이것이 결사의 일각인 대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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