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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61화 (61/156)

〈 61화 〉 사명 (6)

* * *

칼날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복도는 피로 흥건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혹한 광경속을 거니는 스피넬의 발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였다.

고고하게 홀로 공중을 거니는 그녀에게는 핏자국을 밟을 일이 없었다.

스피넬 클로버블룸.

이것이 결사의 일각인 대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통로를 정리한 스피넬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외로 숫자가 제법 많았건만, 그녀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대마법사란 하나같이 그런 존재들이었다.

혼자서도 수많은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전투병기말이다.

그들이 어떤 마법을 배웠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단순히 6서클에 다다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그렇기에 모든 마법사들이 꿈꾸는 경지인 것이다.

­ “조심해라. 위대한 지성이 근처에 있을거다.”

그리고 우리의 상대인 위대한 지성 역시 그런 대마법사중 하나였다.

인스턴트 메이지가 아닌 마법사이면서, 대마법사에 다다르는 것을 허락받은 유일한 존재.

그것이 세리나 에델비트다.

그녀가 초장부터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모르는 이상, 일단은 경계하고 있는 편이 좋았다.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잖아.”

­ “자신이 넘치는군.”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또 그렇게 살아남았고.”

상당히 편해보이는 사고방식이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녀가 빛나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피넬과 자신으로 가득찬 대화를 나누고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던 통로를 넘어섰다.

어둠으로 가득찬 복도의 끝자락.

나는 문의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적을 경계하며, 화약냄새와 피냄새가 진동하는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 “…….”

끼이익.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복도와 마찬가지로 불이 꺼져있는 사무실이 우리를 맞이했다.

약한 숨소리. 아릿한 피의 냄새.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옅은 신음.

칠흑과도 같은 어둠속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미약한 인기척이 존재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굉장히, 소란스럽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조금이나마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흐릿하게 형체가 보여오는 시야에, 나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눈을 움직였다.

좁은 사무실에서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여기에 있었군.”

“어떤… 녀석인게냐…….”

거기에는 피를 흘리며 절뚝거리는 노파의 모습이 보였다.

만인이 이르기를, 가장 위대한 마법사.

수많은 마법사들이 추종하고 있던 위대한 지성.

도시 최후의 정통마법사가 누구보다도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그게 중요한가?”

“…….”

­ “곧 죽을텐데 말이야.”

끌끌.

바람빠진 그녀의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가득채웠다.

섬뜩하면서도 불쾌하다.

그럼에도 힘이 빠져보이는 목소리는 그녀의 상태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썩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젊은 청년이… 예의가, 없구만. 그 아가씨가 알면… 슬퍼할게야.”

이어진 세리나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나는 분명 이전에 위대한 지성과 마주친 기억이 있다.

잠시 스쳐지나간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도 그녀의 설명이 자세했던 것이다.

­ “……나를 알고 있나?”

“그래. 나이를 먹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계속, 계속 보이게 되는 법이지.”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세리나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도 얼굴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특별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계승자가 그녀를 죽이고 싶어할만한 능력이었다.

나는 품에 있던 권총을 꺼내 세리나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 “너무 많은 나이를 먹었군.”

“틀린 말은 아니구만. 이제, 너무 많이 먹어버린게야…….”

목소리가 떨려오고 있었다.

철근과 그 부산물에 피해를 입은 탓인지는 몰라도, 세리나의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싱겁게 싸움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나 살고 싶었나?”

“살고 싶냐고… 물었나? 나는 살고 싶은게 아니야.”

­ “그럼 왜 그런짓을 벌였지?”

“이미 전부, 봐버린 모양이구나.”

복도에 늘어져있던 사람의 흔적들.

위대한 지성은 아이들을 제물로 바쳐 생을 연명하고 있다.

백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

누구보다도 기나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른 생명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내 질문을 들었음에도 부정의 의견을 표하지 않았다.

­ “그래. 봐줄만한 꼴은 아니더군. 대체 얼마나 많이 잡아먹은거냐?”

“그런건 나도, 이제 모르는 일인게야.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게지.”

­ “다시 묻지. 그렇게까지 살고 싶었나?”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가.

그에 대한 위대한 지성의 대답은 간단했다.

“제국. 제국의 어둠에는… 결사라 불리는 이들이 있지. 지금 자네들이, 나한테 온 것처럼 말이야.”

­ “그게 어쨌다는거지?”

“나에겐 그런 제국의 어둠을, 몰아내야 하는 그런 역할이 있는게야. 그것도 가장 깊은 어둠을…….”

계승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세리나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고민했다.

만약 위대한 지성이 온전하게 준비를 갖춘다면 계승자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애초부터 타임 리미트가 존재하는 싸움이다.

그리고 위대한 지성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 “어리석은 짓이다. 너로써는 계승자를 이길 수 없다.”

“끌끌. 언젠가, 커다란 예언이 하나 있었지.”

­ “예언?”

“죽음의 지배자가…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지배자가 대신할 것이다.”

위대한 지성은 수준급의 예언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전하는 예언이라는 것들은 허투루 넘길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의 지배자. 그리고 생명의 지배자.

아마도 죽음의 지배자는 결사의 계승자를 나타내는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가 사용하는 마법은 비슷한 효과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후자는 누구일까.

어셔 헤이즈? 그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적어도 그 대상이 눈앞의 다죽어가는 노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 “적어도 예언의 주인공이 너는 아닌 것 같군.”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겐가?”

­ “그래.”

“마법사. 나는 마법사인게야.”

­ “그게 어쨌다는거냐.”

“마법사는 마법을 쓰고, 마법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내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리나의 기색이 뒤바뀌었다.

어눌하던 발음은 멀쩡하게 돌아왔다.

흐리멍텅한 노파의 시선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회광반조라고 하던가.

마지막을 앞둔 최후의 발악처럼,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건장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대마법사는 누구나 사명을 부여받는다.”

­ “갑자기… 무언가 달라졌군.”

주변을 감싸던 공기가 뒤바뀌었다.

심상치 않은 기색에 스피넬이 손을 휘저었다.

흩어져있던 스피넬의 칼날이 일사분란하게 응집하기 시작했다.

“모든 마법사들이 내면의 진리라고 부르는 것.”

“가장 어두운 곳에 숨어있는 진정한 자신은, 나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었다.”

어디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 생각은 없다.

겨누고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구가 불을 뿜으며 탄환이 그녀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쏘아낸 탄환은 그 목적을 이루는데 실패했다.

물리적인 공격을 방어하는 배리어 마법이 펄쳐졌다.

반투명한 마법의 장벽이 생겨나 세리나와 우리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다.

“마법이란 기적같은게 아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에 대한 힌트는 그녀가 내뱉은 말속에 들어있었다.

세리나 에델비트. 그녀는 6서클의 대마법사다.

대마법사는 누구나 저마다의 사명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인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목표에 전력으로 임하는 것이다.

이것은 순리대로 학문을 쌓아올린 정통마법사라고 하더라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벌어지는 기적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사명이란 대개 마법사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는 의지만이 세계에게 인정받은 채, 인생을 걸어나가는 이정표로써 자리잡는다.

그러나 가끔씩은 그것이 족쇄가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눈앞의 노파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인생을 위한 목표인가. 혹은 목표를 위한 인생인가.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니 무엇을 희생하든지 간에, 백년이건 천년이건 끝까지 살아남아주겠다."

철컥.

다음발의 탄환을 장전하며 세리나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소설속에서 읽었던 그녀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사명.

눈앞의 노파가 부여받았던 사명에 대한 이야기였다.

"……녀석을 쓰러뜨릴 때까지."

끝까지 살아남아라.

그것이 위대한 지성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녀를 붙들고 있는 오래된 망령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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