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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64화 (64/156)

〈 64화 〉 결사 (2)

* * *

사명을 들었다.

그리고 5서클이 되었다.

신비의 대행자의 말에 따르면, 내가 받는 시련은 통상적인 마법사보다 1단계 높게 적용된다.

그러니 사명을 받는 것으로 5서클이 된 것이다.

서클이 상승했으니 기뻐할만한 일이지만, 그러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이 있었다.

하나는 내가 받은 사명에 대한 것이다.

‘세계를 뒤흔들어라.’

대부분의 사명들이 그렇지만, 추상적이다 못해 지나치게 포괄적인 내용이었다.

사명은 예외없이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어진다.

그렇다면 이 사명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일까.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퍼시발 스미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몸에 들어있는 나 자신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쉽사리 결론이 내려질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슬슬 치안대가 오겠는걸. 이제 내려가자.”

­ “그렇게 하지.”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5서클이 되면서 진화한 마법의 효과를 이곳에서 일일히 확인할 시간은 없다.

스피넬의 말처럼 멀리서 찾아오는 치안대의 모습이 보였다.

텔레파시 마법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은 사무실에 귀환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나는 스피넬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약실을 열어 소모한 탄약을 다시 채워넣었다.

아래에서 전투가 발생할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준비는 됐어?”

­ “출발해도 상관없다.”

“그럼 뛰어.”

타다닥. 탁.

철근이 만들어낸 벽면의 구멍을 향해 스피넬이 뛰어내렸다.

세리나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마탑의 12층이다.

12층에서 안전장비 없이 자유낙하를 시도하다니,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스피넬이 뛰어내린 직후,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아래로 뛰어내렸다.

스피넬이 없었다면 다시는 하지 않을 정신나간 짓이었다.

휘이이이이잉.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이 정신을 일깨웠다.

지상을 향해 먼저 뛰어내린 스피넬이 조금 더 아래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로 작아진 자동차와 수많은 인파가 보였다.

순식간에 크기를 더해가는 지면의 모습이 가슴을 들뜨게 했다.

“[레비테이션]!”

양팔을 활짝 펼친 스피넬이 마법을 사용했다.

레비테이션. 물체를 부유시키는 스피넬의 마법이다.

마법이 펼쳐지며 지상으로 낙하하던 육체가 감속했다.

두둥실 떠오른 육체는 서서히 지면을 향해 내려가더니, 이내 아무런 충격 없이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탁. 부유마법에서 벗어난 발을 땅에 내딛었다.

나는 지면에 발이 닿는 것과 동시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 크르르르르!

쾅! 콰앙!

팔을 휘두르며 기물들을 부수는 트롤의 모습이 보였다.

지상에서는 아직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검귀와 변신술사가 벌이는 싸움이야 말할 것도 없으며, 주변에는 세컨더리 비트와 유령군단의 사상자가 수도 없이 늘어서있었다.

검귀와 변신술사의 전투에 휘말린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이들간에 전투가 벌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쪽이든 간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만은 분명했다.

나와 스피넬이 상공에서 내려왔기 때문일까.

트롤의 주먹을 빗겨내고 유령군단 하나를 베어가른 검귀가 잠시 마탑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당한건가.”

­ “너희는 실패했다. 무의미한 싸움을 이어가지 마라.”

검귀가 현장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위에서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한 검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안색이 어두워져가는 검귀를 내버려두고서, 근처에 있던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목표했던 것은 이미 모두 이루었다.

치안대도 가까이왔으니 이제 퇴각해야만 했다.

­ “작전은 끝났다. 이제 철수한다.”

“벌써 끝난건가요?”

­ “그래. 챙길거 다 챙겼으면 슬슬 물러서지.”

“그래도 아직 물러나서는 안될 것 같군요.”

그러나 사령관에게서 돌아온 것은 의외의 답변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무슨 소리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

설마 아직까지 금고를 확보하지 못한 것인가.

유령군단의 반응에 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작전에 나름 호응해주는가 싶었더니, 결국에는 엇나가려는 조짐을 보인 것이다.

어느덧 사방에서 다가오는 치안대의 모습이 보인다.

주변에는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이 가득하고, 치안대의 순찰차는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사실상 포위되기 직전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탈출은 유령군단의 도움이 필수불가결하다.

반드시 그를 설득해야만 했다.

­ “시간이 없다. 치안대의 녀석들도 다가오고 있어.”

“그건 저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 “……사령관.”

“알겠습니다. 그렇게 급하다면, 먼저 빠져나가시면 되겠군요.”

가면 너머의 이죽거림이 전해져오는 순간.

주변에 있던 모든 아군이 일제히 모습을 감추었다.

인비지블. 범위 내의 지정된 대상을 투명하게 만드는 유령군단의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스피넬. 변신술사. 사령관.

누구 할 것 없이 모습을 감추어버린 채였다.

오직 나만을 제외하고서, 이 자리에 있던 결사의 모두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너…….”

주변에 남아있는 것은 검귀와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

그리고 그 뒤에 하나씩 늘어서기 시작한 치안대의 요원들이었다.

적진 한가운데에 나 혼자만이 남아있다.

그래. 유령군단이 나에게 대놓고 엿을 먹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적들의 이목이 무조건 나에게 주목될 수밖에 없다.

세컨더리 비트의 정예들과 퇴로를 차단한 치안대원.

그들 모두를 상대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상황에 나는 되는대로 아무 소리나 지껄였다.

­ “투항하라.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일단 뭐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총알이 날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은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앞에서 검을 들고 있는 검귀마저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근거가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눈앞에 있던 결사의 녀석들이 모습을 감춘게 그 증거였다.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는거야?”

­ “사라진 녀석들이 어디로 갔을거라 생각하지? 이미 너희의 머리통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

“미친놈이구나. 포위해.”

아무렴 그렇지.

용병들이 저능아도 아니고 이게 먹힐 리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항복해야 하나.

항복한다면 어떤 말로 이들을 설득해야 하는걸까.

온갖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

그렇게 진지하게 항복을 고민하고 있던 찰나, 어둠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레비테이션].”

나긋한 스피넬의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퍼졌다.

그 직후 은색의 칼날들이 하늘에 흩날렸다.

촤악! 촤아악!

허공에 그려진 은빛의 궤적.

그리고 그 위로 다시 은빛의 궤적이 덧그려진다.

쉴새없이 번뜩이는 칼날들의 공격에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 하나둘씩 뒤로 물러섰다.

“크아악……!”

“기습이다! 주위를 경계해!”

누군가는 부상을 입고, 또 누군가는 목을 붙잡은 채 쓰러졌다.

인비지블의 효과로 숨어있는 스피넬의 지원이 이어진 것이다.

상층에서 쌓은 신뢰가 다행히 남아있던 것일까.

스피넬이 벌려놓은 약간의 틈을 타서, 나는 마탑의 안쪽을 향해 뛰어들었다.

방금 전 전투의 여파때문에 마탑의 1층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저 녀석을 쫓아!”

검귀를 필두로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변신술사나 유령군단이라면 세컨더리 비트를 상대로 시간을 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들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정면승부로 버틸 자신이 없었다.

고작해야 마탑 안으로 도망치면서 주변으로 소리를 흩뿌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여기에 있다.”

“이쪽인 것 같습니다!”

­ “여기에 있다.”

“나누어서 녀석을 쫓을거야. 너희는 저쪽, 너희는 저쪽.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텔레파시를 들은 세컨더리 비트가 주변으로 흩어져 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다만 검귀가 이끄는 무리만큼은 나를 향해 올곧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쫓아온다고 해서 1층보다 위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2층부터는 탈출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활로를 찾는 것은 어떻게든 1층 안에서만 진행해야 했다.

“하아, 하…….”

다행히 온갖 상징물들이 세워져 있는 마탑이기 때문일까.

숨을 곳은 생각보다 많이 존재했다.

나는 검귀 일행을 피해 복잡하게 늘어선 구조물들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타앙! 탕!

발걸음을 내딛는 동안 뒤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간신히 그것들을 피해 깊숙하게 들어가면, 곧바로 뒤를 쫓는 발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디로 간거지?”

쿵. 쿵. 쿵. 쿵.

검귀의 목소리를 들은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연이은 질주에 산소가 부족한 폐도 숨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숨을 참고서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 여기서 소리를 냈다가는 분명 검귀에게 들킬 것이다.

“…….”

들키면 죽는다.

세컨더리 비트는 치안대와는 다르다.

치안대라면 최소한의 조사를 거치고서 재판을 치르겠지만, 검귀가 나를 발견하면 그냥 죽일 것이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에도 검귀에게 잡히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터져나오려는 숨을 무리하게 눌러넣고서, 텔레파시를 사용해 발걸음 소리를 주변에 퍼트렸다.

­ 타닥, 타다다닥.

“아무래도… 저쪽으로 간 모양이야.”

소리를 들은 검귀가 다리를 움직였다.

터벅. 터벅. 터벅.

여유롭게 걸어오는 검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조금씩 커져나가던 발소리가 가장 크게 귓가에 울려퍼지던 직후.

검귀가 발을 멈추어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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