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결사 (3)
* * *
소리를 들은 검귀가 다리를 움직였다.
터벅. 터벅. 터벅.
여유롭게 걸어오는 검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조금씩 커져나가던 발소리가 가장 크게 귓가에 울려퍼지던 직후.
검귀가 발을 멈추어섰다.
“…….”
그렇게 만들어진 잠깐의 정적.
침묵속에서 가만히 서있던 검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귀를 뒤따르던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 역시 자리에 멈춰섰다.
어둠속에서 구조물 하나를 두고 기묘한 대치상황이 이어진다.
검귀를 지켜보는 내 심장은 불규칙한 박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팀장님, 수상한 점이라도 찾은겁니까?”
일촉즉발의 상황.
검귀의 눈동자가 주위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그는 잠시동안 제자리에 서서 고민하더니, 이내 뒤따르던 용병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닌 모양이야. 다시 가자.”
자신의 앞에 멈추어있던 검귀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숨을 참고 있었다.
그로부터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한껏 억눌러놓았던 숨결이 결국 밖으로 터져나왔다.
검귀 일행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는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부족한 산소를 갈구하듯이 터져나온 숨이 거칠어졌다.
“푸하… 하아, 하…….”
검귀가 쫓아오는 동안은 정말 죽는줄로만 알았다.
숱하게 죽음의 위기를 넘겨왔던 나였지만, 이런 식의 추격전은 생전 처음으로 겪는 것이었다.
긴장한 몸에서 전해져오는 긴박한 고동이 몸을 뒤흔들었다.
나는 숨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늘어선 여러가지 상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를 전시하기 위한 전시실이거나, 혹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장소로 보인다.
복잡한 구조물이 있다고는 해도,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장소는 결국 한정되어있기 마련이다.
나를 쫓아 움직이던 검귀 일행도 머지않아 수상함을 느끼고서 다시 되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후우…….”
바쁘게 움직이던 폐가 조금 진정한 것 같다.
거칠어져있던 숨도 어느새 상당히 고르게 변해있었다.
이 정도로 호흡이 가라앉았다면 여기서 이동하더라도 크게 티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1층에는 아직까지 많은 기척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다시 움직여야만 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적에게 발각되고 말 것이다.
‘어느쪽으로 움직여야 하지?’
어디로 빠져나가야 하는가.
여태껏 지나쳐온 1층의 구조를 머릿속에서 되살려본다.
출동한 치안대가 지척까지 도달해있다.
정문에는 이미 포위망이 생겨난지 오래일 것이다.
따라서 정문보다는 예측불가능한 방식의 출구를 이용해 빠져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이라면 마탑은 외벽 대부분이 유리로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밖에서 안쪽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겠지만, 안에서도 가급적 조용한 출구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일단은 검귀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검귀가 움직였던 방향의 반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녀석은 어디로 갔지?”
1분. 혹은 그보다 짧은 시간이 지났을까.
통로를 지나가는 도중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들려온 것은 굵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시야에 보이지 않을 벽에 바싹 달라붙어서는, 지나가는 용병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곳으로 향하는 용병들의 숫자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데런 팀장님이 지금 녀석을 쫓는 중입니다.”
“치안대가 도착했다. 추격하던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복귀시켜.”
“알겠습니다.”
대화의 내용으로 보건데 마탑의 인원은 아닌 것 같다.
데런 팀장. 그리고 치안대.
모퉁이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은 분명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었다.
숫자는 둘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숨어있는 통로의 구조상 지나가던 녀석들과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권총을 들어올려 용병들이 나타날 모퉁이에 겨누었다.
“그리고, 이번에 쳐들어왔던 녀석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결사? 그런 이름이었던것 같습니다.”
내 경우에는 대인전투에 그다지 능숙한 편이 아니다.
이쪽이 기습의 우위를 가지고 있을 때, 상대를 단번에 끝내두지 않으면 위험했다.
텔레파시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릴 준비를 한다.
총탄이 날아가는 순간 이쪽의 존재를 들킬테니, 조금이라도 방향을 혼동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마법을 발동시키고 총을 발사하려는 순간.
나는 무언가의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언제나 텔레파시를 사용하기에 앞서, 나는 하나의 절차를 거치고는 했다.
반향. 텔레파시의 발동에 앞서 상대방에게 발신할 소리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그렇게 되돌아오는 텔레파시는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사용한 소리가 다시 되돌아오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텔레파시를 받아들인 자신의 귀가 어떠한 소리도 인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무음의 영역이었다.
…….
…….
내가 발산하는 무음은 끊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되돌아왔다.
짐작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위대한 지성과의 싸움에서 나는 그녀를 쓰러뜨리고 5서클에 도달했다.
5서클이 되면서 텔레파시도 무언가의 성장을 거쳤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한 5서클의 텔레파시를 최대출력으로 내보내게 되면,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결국은 녀석도 팀장님에게… 듣고 계십니까?”
마법의 출력을 줄이자 사라졌던 소리가 되돌아왔다.
5서클이 되면서 얻어낸 변화는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범위 내의 청각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기능.
이것은 전투에 있어서 상당한 메리트를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인간은 시각만으로 주변을 완벽하게 인지할 수 없다.
다시말해 사각에서의 공격에 더욱 취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잠깐. 뭔가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아까부터 소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다.
그것을 확신한 순간 나는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무음영역이 전개되며 주변의 소리를 완전히 잠식해나간다.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도, 발을 움직이는 소리도 저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이 영역안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모퉁이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적을 발견하고, 바로 목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
“아……!”
…….
타앙!
총성이 울려퍼지며 용병을 노린 총알이 발사되었다.
결과는 당연히 적중이었다.
탄환에 머리를 꿰뚫린 용병 하나가 짧은 단말마를 흘렸다.
그 옆에 있던 용병은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다, 이내 눈으로 상황을 확인하고서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털썩. 총에 맞은 용병의 몸이 옆으로 쓰러진다.
그 직후 장전을 마친 권총의 총구가 남은 하나의 적을 겨누었다.
“이런……!”
‘대체… 내가 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지?’
총성을 듣고서 상황을 인식하는 것과, 눈으로 보고 상황을 인식하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정신을 차린 다른 용병이 무기를 겨누기도 전부터 내 총구는 그를 겨누고 있었다.
타앙!
다시 한차례 총구가 불을 뿜었다.
용병은 무기를 들고 있던 채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직전에 쓰러졌던 그의 동료와 같은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순식간에 두 명의 용병을 쓰러뜨린 나는 손에 들린 권총을 바라보았다.
“하…….”
권총을 보는 나의 감회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드디어 전투에 써먹을만한 능력을 얻었다.
물론 상대방의 방어력이 생각보다 약했고, 기습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전투능력은 전투능력이었다.
어느정도 전력으로 기용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탈출하는데 이것을 써먹을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은가.
그것도 이런식으로 말이다.
‘[텔레파시].’
복도를 빠르게 통과하면 발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얻은 기능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텔레파시 마법을 사용한 나는 곧장 무음영역을 전개하고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정수준의 여유를 둔, 숨이 가쁘지 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
…….
…….
탁, 탁, 탁, 탁.
복도를 내달리는 내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럼에도 발소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귀뿐이었다.
주변에 울려퍼질 내 발소리는 지금 펼쳐져있는 침묵의 마법이 전부 집어삼키고 있었다.
짧은 달리기를 시작하고서 10여초.
정적속에서 눈을 움직여 사람의 위치를 확인했다.
근처에 있던 구조물에 숨어든 나는 숨을 고르면서 무음영역을 거두어들였다.
“방금 뭐가 이상하지 않았어?”
“뭐가?”
“아니, 이명이 들린 모양이야.”
마법을 거두어들이기 무섭게, 근처를 지나가던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달리지 않은 이유였다.
너무 오랫동안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현재의 상태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 상태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처음이라면 이렇게 자신의 문제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아직 현상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니 짧은 시간동안만 사용하되, 틈이 날 때마다 끊어쓰는 편이 최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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