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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66화 (66/156)

〈 66화 〉 결사 (4)

* * *

마법을 거두어들이기 무섭게, 근처를 지나가던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달리지 않은 이유였다.

너무 오랫동안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현재의 상태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 상태에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더라도 말이다.

다만 처음이라면 이렇게 자신의 문제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아직 현상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니 짧은 시간동안만 사용하되, 틈이 날 때마다 끊어쓰는 편이 최선인 것이다.

“뭐야. 별거 아니었잖아. 빨리 가자고.”

“알았어. 가자.”

이명을 의심하던 용병은 얼마 지나지않아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 상황을 심각하게 여겨봤자 이번 일이 끝나고 병원에 가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움직이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용병들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은 채 홀을 빠져나갔고, 나는 그 틈을 타 홀을 거쳐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

터벅. 터벅.

복도에 울려퍼지는 소리를 텔레파시가 집어삼킨다.

무음영역을 전개한 나는 용병들이 있던 홀을 지나쳐 외벽쪽 복도를 걸었다.

마탑의 가장 바깥쪽. 문으로 가득찬 외벽 복도.

그곳에 들어서자 문이 굳게 닫혀있는 방들이 여럿 보였다.

가장 외곽에 위치한 통로이니만큼, 이 안에 있는 방들은 바깥이 보이는 유리벽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여기에 있는 방들 중 하나에 들어가야만 할 터.

나는 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하나씩 손잡이를 확인해가며 문이 잠겨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후우…….”

철컥. 철컥.

처음으로 잡은 손잡이는 덜컹거리기만 했을 뿐, 그 이외에 다른 조작이 일체 불가능했다.

첫번째 방의 문은 열 수 없었다.

내 수준으로는 도어 스니칭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야 진작에 확인했다.

방법이라고는 나머지 방을 살펴보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순차적으로 다른 방들을 확인해본다.

첫번째.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순서대로 손잡이를 붙잡아 상태를 살펴보던 나는 이윽고 어느 방 앞에서 멈춰섰다.

‘……문이 열려있군.’

철컥. 끼이익.

안쪽에서 세어 다섯번째에 위치한 방.

그곳에는 아무런 잠금장치도 걸려 있지 않았던 모양인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쉽게 문이 열렸다.

모든 방이 다 잠겨있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열려있는 방을 찾는데 오래걸리지는 않았다.

이 안쪽에는 반투명한 유리벽이 설치되어 있을 터.

그것만 깨부순다면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가 보기 전에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직후, 곧장 잠금장치를 돌려 문을 잠궈놓았다.

“팀장님, 저기……!”

그렇게 안심하고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유리벽을 바라보고선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이들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뭐야?”

“저기 수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얇게 드리워진 유리벽의 너머.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 순찰차들이 보였다.

그 옆에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치안대원들의 모습이 있었다.

쯧. 그 광경에 나는 반사적으로 혀를 찼다.

하필이면 나가려고 들어왔던 창가에 치안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상 이쪽 방향으로 나가는 길은 전부 봉쇄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수상한 녀석이다! 다들 저 녀석을 쫓아라!”

확성기를 들고 있던 치안대원 하나가 나를 보며 외쳤다.

복장이나 위치를 보건데 다른 치안대원을 지휘하는 역할로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치안대원들의 총원을 확인하던 나는 재빨리 마력을 끌어올렸다.

고작해야 얇은 유리벽 하나다.

뚫고 들어오면 얼마든지 나를 포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 “취소한다! 당장 퇴각한다!”

“뭣……?”

­ “다시 한 번 전달한다. 퇴각하라!”

치안대원의 목소리로 치안대 전체에 명령을 내렸다.

그에 확성기를 들고 지휘를 맡던 치안대원이 당황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이 나돌고 있으니, 누구라도 당황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헛소리다! 당장 녀석을 쫓아라!”

­ “닥쳐! 당장 퇴각하라!”

“이게 뭔 헛소리야?”

­ “내 안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와있다. 당장 도망쳐!”

“아니, 아니다! 다들 당장……!”

­ “당장 도망쳐! 녀석이 깨어나기 전에!”

흡사 1인 2역의 연기를 보는 듯한 모습에 치안대 전체가 당황했다.

일시적이나마 지휘계통을 마비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확성기를 들고 있던 치안대원은 주변으로부터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되었다.

그들의 총구가 나와 치안대원에게 나뉘는 순간이었다.

추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어느정도 지연시키는데에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치안대의 발을 묶어놓은 나는 텔레파시를 흩뿌리며 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 “빨리 도망쳐! 내 안에 숨어있는 존재가 깨어나게 되면 우리는 전부 다 죽을거다!”

“아니야아아악!”

순식간에 스릴러 영화를 한 편 만들어놓은 후에, 무음영역을 펼쳐 다급히 복도를 빠져나갔다.

머지않아 저곳에 있던 치안대가 나를 쫓아올 것이다.

재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반대쪽 방향을 공략하던가, 아니면 홀을 뚫고 나가던가.

그도 아니라면 스피넬을 믿고서 위층에서 뛰어내리던가.

최선의 선택지라고는 어느것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을 너무 지체한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있다.

앞으로 가도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 뒤로 가도 치안대의 치안대원들이 나를 쫓아올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이들 전부를 죽이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시당초 그럴 능력이 됐다면 호위명목으로 시넬을 데리고다닐 이유도 없을테지만 말이다.

슬슬 도주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쥐새끼가 여기에 있었군.”

통로의 중앙에 위치한 홀을 넘어 반대편 복도로 들어가려는 때,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호랑이를 부르면 제발로 찾아온다고 하던가.

슬슬 도망치는 것도 한계일거라 생각하기 무섭게, 그토록 도망쳐야만 했던 원인이 근처에 나타났다.

데런 벨츠.

세컨더리 비트의 검귀가 검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건 뭐지?”

“아마도 네 동료겠지. 사이는 좀 안좋은 것 같다만.”

검을 든 검귀의 반대편 손에는 피를 흘리는 사람 하나가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툭. 검귀가 끌고 온 사람을 자신의 앞에 던져놓았다.

가면을 쓴 괴한의 모습이 보였다.

유령군단의 일원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를 지나쳐 움직였던 검귀가 금고를 털던 유령군단의 조직원을 붙잡아온 모양이었다.

­ “너무 욕심을 부렸나보군.”

“말단인 것 같아서 그냥 죽였어. 어차피 네쪽이 더 중요한 사람일테니까.”

­ “요새는 중요한 사람도 버리고 도망가나보지?”

“글쎄. 다투기라도 한 모양이야. 어차피 너도 죽일거지만.”

휘릭.

들고 있던 검을 크게 털어넘긴 검귀가 그것을 들어올렸다.

푸른 광택을 띄는 검은 세컨더리 비트의 고급품이었다.

이 도시에 냉병기를 사용하는 마법사들은 많이 있지만, 검귀는 그중에서도 정점에 다다른 인물이다.

분명 내 총알이 그에게 닿기도 전에, 검귀의 검이 나를 노리고 휘둘러질 것이다.

­ “허튼 수작 부리지말고 물러서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검귀와 싸우지 않고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권총을 꺼내들고서 그에게 블러핑을 시도했다.

“싸움에 자신이라도 있는건가?”

­ “마탑 전체에 폭탄을 설치해두었다. 가까이 다가온다면 기폭장치를 사용하겠다.”

“그랬다간 너도 죽을텐데?”

­ “나 하나 죽이자고 용병들을 전부…….”

분명 눈앞을 지켜보고 있었을 터였다.

호흡과 호흡간의 짧은 사이.

들이마셨던 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시야에서 사라졌던 검귀가 자신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검귀의 검이 번뜩였다.

죽는다. 그것을 직감한 내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푸욱!

내 목을 노리고 찔러들어오던 검이 어깨죽지를 꿰뚫었다.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큭……!”

눈깜짝할 사이에 가까이 다가온 검귀가 나에게 검을 내지른 것이다.

검에 꿰뚫린 어깨죽지에서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전해져왔다.

터져나올 것 같은 신음을 억지로 억누른 채, 나는 검귀의 검이 빠져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의 공격을 위해 검귀가 검을 뽑아내는 순간.

빠르게 다리를 움직여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발에서 전해져오는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걷어차인 검귀가 뒤로 약간 물러났다.

“……발길질이 좀 매서운걸.”

검귀의 비아냥에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어깨에서 전해져오는 통증때문에 의식이 분산되었다.

안그래도 불리한 싸움인데, 부상까지 얻어버리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고 있으면, 눈앞에 있던 검귀가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받은 건 돌려줘야겠지.”

검귀가 시야에 들어오기 무섭게, 나는 곧장 그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지근거리에 있어 피하기도 어려운 위치였다.

탕! 총성이 울리며 탄환이 검귀를 노리고 쏘아져나갔다.

그러나 이내 그를 뒤덮은 푸른 장벽에 휩쓸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전의 싸움에서도 느꼈던 사실이지만, 상대하자니 정말로 성가신 마법이었다.

퍼억!

검귀를 놓친 내 복부에 검귀의 무릎이 꽂혔다.

돌려주겠다는게 방금 전에 맞은 공격에 대한 복수였던 모양이었다.

“커헉……!”

콰앙! 쩌저적.

검귀의 공격에 밀린 신체가 마탑의 유리벽에 충돌하더니, 이내 금이 가며 무너져내렸다.

순식간에 건물의 바깥으로 밀려난 몸이 한바퀴 뒹굴었다.

어깨와 복부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통증.

죽이려고 때려박은 공격은 아니었는지 간신히 버틸 수는 있었지만, 가까스로 일으킨 몸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신음을 집어삼킨 입에서는 신맛이 나는 것 같았다.

“도망칠 수 있을거라 생각해?”

“하…….”

“마음같아서는 고문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쪽도 체면이 있어서 말이야. 안타깝지만 죽어줘야겠어.”

검을 고쳐 쥔 검귀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직 치안대는 마탑의 반대편을 수색하는 중이다.

검귀는 치안대가 오기 전에 상황을 정리할 생각인지, 피가 묻은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하늘을 향해 겨누어진 검귀의 검에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스펠 오버로드 : 오러].”

6서클의 마법사에게만 허용되는 스펠 오버로드가 눈앞에 펼쳐졌다.

10미터에 가까운 길이까지 치솟은 푸른 아지랑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다.

도망가려고 해도 벗어나기 전에 베일 것이다.

검귀가 작정하고 뽑아낸 오러는 반드시 이번 공격으로 끝내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잘 가라. 사회의 쓰레기.”

­ “내가 혼자… 죽을 것 같나?”

“죽어야지. 그럼.”

치이익.

불꽃과도 같이 타오르는 오러에 검에 묻어있던 피가 증발했다.

모든 것을 분쇄해버릴 것 같은 강렬한 기세로, 검귀의 검이 찬란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막을 수 없다. 피할 수도 없다.

이제는 얌전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검을 쥔 검귀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나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너는 뭐냐?”

“…….”

하지만 눈을 감은지 10초가 넘게 지났음에도, 죽음의 순간은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당황한 검귀의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면서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벽에 기대어 있는 자신의 바로 앞.

검귀가 오러를 휘두르고 있는 그 앞에, 익숙한 얼굴이 검귀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 “내가, 당신을 지켜.”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잿빛 머리카락.

소리가 없음에도 머릿속으로 전해져오는 강한 의지.

거기에 있는 것은 고글을 끼고 있는 소녀였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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