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결사 (5)
* * *
“내가, 당신을 지켜.”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잿빛 머리카락.
소리가 없음에도 머릿속으로 전해져오는 강한 의지.
거기에 있는 것은 고글을 끼고 있는 소녀였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였다.
“……왜.”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왔다.
그렇게 시넬에게 목숨을 구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이 상황을 기쁘게 반길 수가 없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다.
시넬은 아무런 변장 없이 마탑에 찾아왔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나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간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일이 어떻게 풀리든 간에 상관없이, 결국에는 치안대에 잡혀갈 것이 분명했다.
“왜 온거지? 시넬, 여기는 위험한 곳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앞에 서있는 상대가 문제였다.
제아무리 시넬이라고 하더라도, 검귀를 상대로 오래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
전투에 있어 둘의 격차는 명확했다.
세컨더리 비트를 PMC의 선두로 올려놓은 검귀다.
무수한 전장에서 살아돌아온 검귀에게는 그만한 능력과 경험이 남아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친 사람을 괴롭히는걸 보니, 아마 나쁜 사람이겠네요.”
싱긋.
옅은 미소를 지은 시넬이 뒤로 물러서며 단검을 뽑아들었다.
나를 보며 굳이 아는척은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가벼운 실수였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스펠 오버로드의 효과가 끝나버린 것인지, 검귀의 검을 뒤덮고 있던 오러 역시 사그라들었다.
검귀는 열기가 빠져나간 자신의 검을 보며 허탈하게 말했다.
“너, 지금 뭐하자는 수작이야?”
“현상금 사냥.”
“뭐?”
“아직 빚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현상금을 많이 받아야해요.”
시넬의 단검이 검귀를 겨누었다.
대놓고 검귀와 한차례 겨루어보자는 모양새였다.
한창 짜증으로 가득차있던 검귀의 얼굴은 어느새 황당함에 물들어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봐도 말이 안되는 변명이었으니까.
휘릭. 검귀가 검을 휘둘러 묻어있던 피를 털어내었다.
걸어오는 싸움을 굳이 거절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변명이라고 하는 건 아닐테고… 설마 저 녀석의 동료인거냐?”
“현상금이 목적이에요.”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어보이네.”
“…….”
서로가 무기를 든 시점에서 싸움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느덧 혼자 결론을 내린 검귀가 검을 들어올렸다.
빈틈이 많이 보이는 단순한 내려베기의 동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넬은 검귀를 향해 파고들지 않았다.
빈틈이면서 빈틈이 아니다.
방금 전에 내가 마주했던 압박감을 시넬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검귀의 공격이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오러].”
푸른 빛이 서린 검이 시넬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휘익. 직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내려꽂히는 일격.
마법으로 구현한 검귀의 오러는 방어를 상당부분 무시한다.
막을 수 없으니 피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시넬은 아슬아슬한 차이를 두고서, 검귀의 공격을 간신히 피해내었다.
헤이스트를 사용한 시넬이기에 가능한 회피였다.
“움직이는 템포가 빠르네. 마법이라도 쓰는건가.”
“……공격이 매섭네요.”
“뭐, 됐어. 속도가 빠른 적을 상대하는게 처음도 아니니까.”
검을 휘두르는 속도도 속도지만, 검귀의 공격이 무서운 점은 의식의 틈새를 파고든다는 점이었다.
처음의 공격에 내가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다행히 시넬의 헤이스트는 검귀를 상대하는데 있어 제법 상성이 잘맞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검을 되돌린 검귀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날카로운 검이 달빛을 반사하며 아름답게 빛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다시 한 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사히 빠져나갔으면 좋겠네요.”
시넬의 눈이 잠시 이쪽을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 그 정적인 눈동자를 마주한 나는 그녀의 의도를 이해했다.
시넬 클로버블룸. 그녀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찾아왔는가.
그녀는 처음부터 치안대에 잡힐 생각으로 끼어든 것이다.
오직 나 하나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뒷일같은 것은 미래의 나에게 전부 맡겨버린 채, 지금 이 순간의 투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이다.
“시넬. 나는…….”
“믿고 있어요.”
5서클이 된 텔레파시를 통해 시넬의 마음이 흘러들어왔다.
따뜻하다. 그리고 부드럽다.
이 마음에 어떤 대답을 돌려주어야 할까.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쉽사리 정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갔다.
“이쪽 방향이다!”
“마탑의 2번 출입구쪽으로 이동한다!”
정적에 휩싸였던 공간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다.
검귀와 벌였던 사투가 상당히 시끄러웠기 때문일까.
근처에 있던 치안대원들이 현행범을 잡기 위해 하나둘씩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 역시 치안대를 쫓아 이곳으로 다가왔다.
몰려든 인파가 검귀의 뒤에 늘어서며 또 다른 목격자가 되었다.
“……시간을 너무 끌었나.”
까득. 우리를 바라보던 검귀가 이를 갈았다.
세컨더리 비트는 철저하게 양지에 발을 걸친 기업이다.
하물며 검귀는 어셔와 같은 중범죄자가 아니었다.
치안대가 그의 뒤에 들어서기 시작한 이상, 마음대로 상대를 죽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물론 소란을 듣고 찾아온 것은 치안대와 세컨더리 비트만이 아니었다.
검귀를 둘러싼 인파중에는 나름 아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스펠 오버로드 : 레비테이션].”
마천루의 마법사, 스피넬 클로버블룸.
그녀의 손에서 대마법사의 전유물이 펼쳐졌다.
극한까지 강화된 부유마법은 근처의 중력을 끊어버렸고, 이내 그녀가 서있던 근처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발을 디딜 수 없는 공간. 그 속에서 모든 인파가 뒤섞였다.
저마다가 소리를 지르며 근처에 있던 사람을 붙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몸이, 잘 안움직여……!”
“마법이다! 모두 경계해라!”
언제나 자신을 붙들어주던 거대한 힘이 사라졌다.
그들이 유일하게 안심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무언가를 붙잡는 것 뿐이었다.
사람들의 팔이 얽히고 얽혀 거대한 연결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이 흡사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물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자신을 붙잡는 손길을 느끼고서 위를 올려보았다.
“구하러왔어. 가자.”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스피넬이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이전의 지원사격으로 짐작했지만, 역시 스피넬은 자신을 버릴 생각이 없던 모양이었다.
서서히 부유하기 시작하는 몸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면, 하늘에서 허우적거리는 시넬의 모습이 보였다.
“스피넬.”
“잔소리는 나중에 들을거야. [레비테이션].”
어차피 당장 여기서 그녀를 구할 수는 없다.
어리석은 미련이다.
머리로는 명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가슴은 그것을 이해하려들지 않는다.
미처 버리지 못한 아집이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 * * * * *
도시 안에서도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8구역.
그곳에는 무허가로 운영되는 자그마한 개인병원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무법자들이 찾아오는 그곳에서, 나는 링거를 꽂은 채로 병상에 누워있었다.
검귀의 검에 의해 만들어졌던 상처는 이미 흉터하나 없이 아물어버린지 오래다.
제법 많은 액수를 지불하고 이곳의 긴급치유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닥터 페로노프. 이 병원을 운영하는 돌팔이 의사는 ‘리커버리’라 불리는 치유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치유마법은 결손을 제외한 외상을 순식간에 회복시킨다.
게다가 이 병원은 환자의 진료기록 따위는 일체 남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빠른 회복을 원하는 무법자들은 가끔씩 닥터 페로노프를 찾아오고는 했다.
“몸은 좀 괜찮아?”
스피넬이 병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내 치료비용은 전부 스피넬이 대신 지불했다.
애시당초 유령군단의 배신으로 인해 생긴 부상이었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그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마탑에서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스피넬이었다.
스피넬이 단순히 유령군단의 마법에 휘말렸을 뿐이라면, 이번 사건의 책임을 전부 그녀에게 묻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
“비싼 마법이거든. 효과가 없으면 곤란해.”
“이미 다 나았다. 이런건 필요없을 정도로.”
나는 팔뚝에 꽂혀 있던 링거를 뽑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리커버리를 사용한 몸에는 그만큼의 열량 소모가 따른다.
그를 보충하기 위해 꽂아놓은 모양이지만, 지금은 이런 링거따위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툭. 환자를 잃은 바늘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바늘이 빠져나온 팔뚝에서는 피가 조금 스며나왔다.
“아직도 화가 난거야?”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시넬을 걱정하고 있는거구나.”
“…….”
시넬은 치안대에 잡혀갔다.
브라이언을 통해 확인한 정보였다.
얼굴을 드러내고 전투를 치른 순간부터, 그녀가 치안대에 불려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걱정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시넬이 어떤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녀에게 실형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전투에 끼어든 시넬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습격자와 같은 패거리처럼 보일테니까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마. 별일 없을테니까.”
“벌써 손을 쓴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편의는 봐줄테니까, 1년이나 2년정도 있다가 나오면 시넬도 얌전해지겠지.”
혹시나 스피넬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나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구금되어 있는 것을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
치안대에 있으면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적을뿐더러, 결사의 계획대로라면 결국 그녀는 해방될거라는 계산이었다.
계획. 그 빌어먹을 계획이 문제였다.
도시를 붕괴시킨다는 결사의 허무맹랑한 계획말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직전까지 나를 지켜줄 전력이다.
이미 이야기가 끝나버린 후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나를 보며 슬퍼해주는 동료가 아니란 말이다.
“시넬이 걱정되지 않나?”
“다른 곳도 아니고 치안대잖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머리가 아파오는군.”
“너무 걱정하지마. 그 아이라면 거기서도 잘 지낼테니까.”
골치아픈 이해관계다.
이게 사고뭉치 여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의 애정인가.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것도 같지만, 앞으로 조력자가 되어줄 그녀에게 너무 매몰차게 대할 수도 없다.
결국에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스피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화.”
“응?”
“계승자와 연락하고 싶다.”
스피넬의 눈동자가 내 손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에게 전할 말이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어지간한 이야기는 내가 꺼내볼테니까…….”
“아니. 지금 당장 해야만하는 이야기다.”
나는 단호하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스피넬을 거쳐서는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재촉하듯이 비어있는 손을 그녀에게 더욱 가까이 내밀었다.
스피넬은 잠시동안 내 손을 보며 망설이더니, 이내 두눈을 질끈 감고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알았어. 너무 무례한 소리는 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이전의 작전에서 벌어졌던 일에 책임을 느꼈던 것일까.
마지못하고 내 부탁을 받아들인 스피넬이었다.
삐익. 삑.
비밀번호를 누르듯이 스피넬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연결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휴대전화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보고라면 아까 했을텐데.”
스피커 너머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피넬이 무언가 수작을 부린게 아니라면,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것은 분명 계승자의 목소리였다.
상대는 결사의 지배자이자 마법사들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이른 접촉이었다.
시넬의 건이 아니라면 이런식으로 연락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다대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상대의 이름부터 불렀다.
“아벨 테르도스.”
“무슨 짓이지?”
“거래를 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