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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68화 (68/156)

〈 68화 〉 결사 (6)

* * *

나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휴대전화를 귀에 가져다대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상대의 이름부터 불렀다.

“아벨 테르도스.”

“무슨 짓이지?”

“거래를 하자.”

아벨 테르도스.

그는 도시의 상임위원이면서 치안대장직을 겸하고 있다.

적어도 치안대에 대한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는, 계승자를 따라올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서 아벨에게 거래를 제안한 이유이기도 했다.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일갈하던 계승자였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에 침착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 “너는 누구지?”

“퍼시발 스미스. 암흑상인이다.”

­ “마천루의 마법사는 어떻게 했어?”

“지금 내 옆에 있다. 연락은 그녀를 통해 진행한거다.”

옆에 있던 스피넬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계승자와 대화하게 되더라도 적당히 하겠다는 약속을 어겼으니 조금은 양심의 가책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마탑에서 결사가 벌인 일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이 정도의 사고는 어떻게든 넘어가주겠지 싶었다.

­ “무사하면 됐어. 암흑상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정도 들어봤으니까.”

“거래에 대한건 어떻게 생각하지?”

­ “지금 나한테 꺼낸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서 하는 말이겠지?”

“물론. 어느정도 각오는 했다.”

결사의 계승자가 아벨 테르도스라는 사실.

그것은 이야기의 흐름을 뒤바꿀만한 큰 단서였다.

사실상 어느정도는 협박에 가까운 내용이기도 했다.

위대한 지성이 제거당한 가장 큰 원인은 계승자의 신변이 노출될 가능성 때문이다.

계승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상, 나 역시 결사에 의해 제거당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올려놓고 하는 도박말이다.

­ “원하는게 뭐야.”

“시넬 클로버블룸. 그녀를 치안대에서 풀어줘.”

­ “클로버블룸……. 스피넬의 동생이구나. 골치 아픈 일로 잡혀온 모양이야.”

스피넬과 같은 성을 가지고 있다.

둘이 자매라는 점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애시당초 스피넬에 대한 조사는 이미 끝난지 오래일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나는 계승자에게 그녀를 풀어주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물었다.

“해결은 가능한건가?”

­ “혐의 자체를 뭉개버리면 제법 귀찮아지겠네. 스피넬도 굳이 바라지는 않는 것 같고.”

“위대한 지성을 내가 정리했다고 해도?”

­ “그런 일을 너에게 부탁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물론 그녀의 편의정도는 봐줄 수 있어.”

아무렴 무료로 손을 써줄 리가 없었다.

휴대전화를 붙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결사의 일을 도운 것은 오로지 스피넬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였다.

책임도 상황정리도 전부 스피넬에게 맡기라는 이야기다.

계승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그의 흥미를 끌어낼만한 소재를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그러면 거래를 하지.”

­ “거래라. 재미있네. 무엇을 걸 생각이지?”

상대는 명문가 출신의 권력자다.

돈. 명예. 권력.

그에게는 무엇 하나 부족한 점이 없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귀한 물건이 필요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물건.

그리고 권력으로도 구할 수 없는 물건.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중에 그 가치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미스릴 탄환을 걸지.”

­ “……재미없는 농담이군.”

“이게 농담같은걸로 보이나?”

­ “너한테 그런 물건이 있다고?”

미스릴 탄환.

그 이야기를 들은 계승자의 반응이 변했다.

누구라도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특히 미스릴을 모으는 것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계승자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미스릴은 결사의 숙원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딱 하나뿐이지만.”

­ “그렇단 말이지. 생각보다 거물이었구나.”

협상카드로 사용한 미스릴 탄환은 위대한 지성이 가지고 있던 물건이다.

정확히는 위대한 지성의 이름으로, 창고지기라 불리는 마법사가 보관하고 있던 것이지만 말이다.

암호만 알고있다면 찾아가는 것은 위대한 지성 본인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위대한 지성이 살아있을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방법이지만, 그녀가 죽은 지금이라면 상황이 달랐다.

히든카드가 될 수도 있는 미스릴을 이런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깝긴 했지만, 외부에 공개하거나 판매하기 힘든 장물인만큼 결사에 넘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떻게 할거지? 거래를 받아들일건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탄환이 우리에게 쏘아질 염려는 없으리라는 점이었다.

계승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제국의 전복이다.

그런만큼 결사에서 모으는 모든 미스릴은 거짓된 황제를 죽이기 위해서 준비하는 물건이었다.

적어도 결사가 이 물건을 도시의 누군가에게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안심하고 계승자에게 미스릴 탄환을 넘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조건을 제시한 내가 계승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그는 살짝 고양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 “이봐. 암흑상인.”

“…….”

­ “물건의 가치가 더 크잖아. 물건만 확인한다면 거스름돈도 따로 챙겨주도록 하지.”

“의외의 대답이군.”

돌아온 것은 상상 이상의 답변이었다.

그는 단순히 거래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미스릴 탄환을 가져오면 추가적인 보상을 제시할 것을 약속했다.

예상외의 소득이었다.

­ “물건은 언제까지 준비가능하지?”

“빠르면 내일쯤.”

­ “물건이 준비되면 스피넬에게 건네둬. 그에 대한 보상은 물건을 확인한 후에 처리하도록 하지.”

툭.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계승자가 통화를 끊었다.

계승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보상이라는 것도 적은 액수는 아닐 것이다.

나는 통화가 끊긴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휴대전화의 화면을 끄고 스피넬에게 건넸다.

스피넬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하는거야……?”

“필요한 일이었다. 물건은 너에게 건네라고 하더군.”

“퍼시발 스미스…….”

스피넬이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약무인의 아가씨가 저런 눈을 하고 있으니, 뒷맛이 썩 개운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나름대로 조용하게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병실이 소란스러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 * *

“무슨 일로 거기에 갔지?”

3구역. 치안대에 위치한 취조실의 안.

2급 수사관인 윌턴 리거버드는 자신의 앞에 선 소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파일에 적힌 이름은 시넬 클로버블룸.

어제 있었던 마탑 테러사건에서 체포된 용의자였다.

이미 수차례 심문을 진행했지만, 아직까지도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한 윌턴이었다.

“마탑에 테러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래서. 왜 검귀한테 달려든거냐?”

“테러범을 잡으면 현상금을 많이 줄 것 같아서요.”

“헛소리 말고. 아, 진짜…….”

쾅! 윌턴은 들고 있던 파일을 책상에 내리쳤다.

눈앞의 용의자가 체포된 이후 몇차례 같은 문답이 오갔던가.

그럴 때마다 상대가 내뱉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테러범을 잡아서 현상금을 챙기려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결코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현장에 누가 나올줄 알고 현상범을 잡으러 간다는 말인가.

윌턴이 보기에는 범인이 대놓고 오리발을 내미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정말이에요.”

“아, 그러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

“네.”

“암흑상인에 대해 알고 있나?”

슬슬 담배가 그리워지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윌턴은 그녀의 신상에 대한 질문을 꺼냈다.

윌턴의 조사에 따르면 눈앞의 소녀는 퍼시발 스미스라는 정보상인의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퍼시발 스미스. 세간에서 부르기를 암흑상인.

거창한 별명을 달고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는 정보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넬 본인이 안된다면 그 주변을 조사해서라도 범인을 찾아내겠다는게 윌턴의 생각이었다.

“저희 사장님이에요.”

“그는 어떤 사람이지?”

“사장님은… 암흑상인이에요.”

“그리고.”

“암흑상인은… 대단한 정보상인이에요.”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 말고! 뭐, 직원만 알 것 같은 중요한 이야기가 있잖아!”

윌턴의 질문을 들은 시넬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제법 오랫동안 생각을 하는 모양새다.

혹시나 퍼시발이라는 남자에게서 수상한 정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윌턴은 기대감에 가득찬 눈으로 시넬의 답변을 기다렸다.

이윽고 한참동안 고민하던 시넬의 입이 열렸다.

“사장님은 사실…….”

“사장님은?”

“매일 밥을 사주고 있어요.”

“지금 나랑 장난하나? 그거 말고 다른거는?”

“잠도 무료로 재워주고 있어요.”

“와! 숙식! 기본 제공! 더럽게 좋은 직장에 다니시는군! 아오, 진짜……!”

쾅! 쾅! 쾅!

열이 뻗친 윌턴이 수차례 책상을 두드렸다.

모처럼 큰 사건이 자신에게 넘어왔다고 생각했건만, 취조하라고 있는 대상이 나사가 다섯 개는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나름대로 구슬려보려 노력해봐도 들으려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쾅! 손에 든 서류를 책상에 내팽개친 윌턴은 머리를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윌턴 수사관님. 1과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시넬을 내버려둔 윌턴이 숨을 돌리려는 찰나.

취조실의 문이 열리며 밖에서 그의 부하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윌턴의 귓가에 급하게 무언가를 속삭이며 말했다.

다른 과에서 사람이 찾아왔다는 내용이었다.

“뭐? 1과에서 나를 왜 찾아.”

“잠시 나와보시죠.”

후우. 서류를 쥔 윌턴이 한숨을 내쉬며 취조실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선 그의 앞에는 금발의 남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해링엄 스미스. 1급 수사관.

남자의 명찰을 본 윌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좋은 목적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반갑습니다. 윌턴 수사관. 나는 1과의 해링엄입니다.”

“윌턴입니다. 1과에서 무슨 일이신지…….”

“마탑 사건을 조사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언가 알아낸건 있습니까?”

“저희 일입니다. 따로 말씀드릴 내용은…….”

“별 소득은 없는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해링엄이 윌턴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펄럭.

종이를 받은 윌턴은 그것을 쭉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윌턴이라면 하지 않을 멍청한 짓이었다.

“이번 사건은 저희쪽에서 맡겠습니다.”

“…….”

“자료는 정리해서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적어도 윌턴 자신은 그런 일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것은 도시를 지키는 치안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2급 수사관 윌턴의 머릿속에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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