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69화 (69/156)

〈 69화 〉 뜻밖의 재회 (1)

* * *

아벨 테르도스.

제국의 위대한 12가문의 일원이자, 도시의 상임위원직을 맡고 있는 남자.

그리고 제국의 전복을 노리는 비밀결사에서 계승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

그는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자신의 옆에 있던 와인잔을 들어올렸다.

용의 눈물. 푸른 빛을 띄는 와인의 이름이다.

제국에서도 최고가로 유명한 와인이 아벨의 와인잔 안에서 찰랑거렸다.

아벨은 들고 있던 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암흑상인이라. 재미있는 일을 벌였어.”

“……마천루의 마법사가 주시하고 있다던 남자군.”

아벨의 옆에 있던 중년인이 거친 목소리로 답했다.

중절모를 눌러쓰고 있는 중년인의 얼굴은 세월의 풍파와 더불어 거친 흉터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아벨은 무표정한 중년인을 보며 와인을 한모금 마시고는, 이내 남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의자를 슬며시 두드렸다.

톡. 톡.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입에서 맴도는 달콤한 향과 함께, 아벨의 머릿속에 거래를 제안받았던 물건이 떠오른다.

미스릴제의 탄환이라.

아벨 자신이 직접 움직이더라도 쉽게 손에 넣기는 힘든 물건이었다.

“미스릴이라니,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었어.”

“오랜만에 손에 넣은 미스릴이군.”

“그렇지. 녀석의 마력회로를 부수려면 이걸로는 부족하지만 말이야.”

“그는 어떻게 미스릴을 손에 넣은 거지?”

“글쎄. 정보상인이라는 모양이니 무언가 정보가 들어왔던 모양이지?”

어제만 하더라도 아벨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가 미스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한다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살짝만 떠보아도 알고 있는 정보의 질이 남다르다.

암흑상인은 계승자만이 아니라 결사에 대해서도 제법 이해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암흑상인은 크로스 네트워크의 리만같은 인물과는 궤가 다른 사람이었다.

오늘은 결사에 이득을 쥐여주었지만, 언젠가는 결사에 대한 정보를 넘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마디로 양날의 검에 가까운 존재였다.

제대로 쥐지 않는다면 분명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것이다.

“그러고보니 녀석에게 정체를 들켰다고 들었는데.”

“나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스피넬도 모르는 내용이었는데 말이야.”

“죽이지는 않을건가?”

그를 죽인다.

어찌보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지다.

아벨의 시선이 중년인을 훑고 지나갔다.

“왜. 직접 움직이기라도 할 모양이지?”

“그걸 원한다면.”

눈앞의 인물이 직접 움직인다면, 암흑상인은 그대로 삶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중년인은 아벨 자신이 인정한 몇 안되는 마법사였다.

그리고 제국 전체로 놓고 보아도 분명 손에 꼽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아벨 자신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그를 수거해왔던 것이지만 말이다.

암흑상인의 처우에 대해 잠시동안 고민하던 아벨은 결국 피식 웃으며 다시 와인을 음미했다.

“됐어. 당신이 나설 자리는 없어.”

“그거 아쉽게 됐군.”

“얌전히 있는게 지루한가봐?”

“처음에야 그랬다만, 생각보다는 적응할만하더군.”

툭. 내용물이 비어버린 잔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그를 데려오고 벌써 몇년이 지났던가.

아벨은 자신이 중년인을 데려온 날짜를 세어보았다.

당시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도시에서도 유명한 범죄자를 자신의 손에 넣었으니까.

이후로는 제법 일이 꼬이기 시작했지만, 도시에서도 수위에 꼽는 전력을 손에 넣은 것은 굉장한 행운이었다.

“그러고보니 딸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제멋대로인 아이라서. 지금쯤이면 검객 놀이라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검객 놀이?”

“그 아이는 내 아버지를 동경했으니까. ”

중년인의 말을 들은 아벨은 흥미에 젖은 얼굴이 되었다.

한창 때의 남자아이들이 칼싸움을 흉내내는 것이야 숱하게 보았던 그였다.

아벨 본인만 하더라도 간단히 검술을 익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검객의 흉내를 내는 딸이라.

머릿속에 쉽사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아벨이었다.

“독특한 취향이네.”

“아니. 취향보다는 저주같은거다.”

“저주?”

“계승자가 얽매여있는 그것과 비슷한거지.”

“마법적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지?”

중년인의 눈이 타오르고 있는 난로를 바라보았다.

“가장 고결한 검객이 그 아이를 지키다가 최후를 맞이했으니까.”

“이런. 안쓰러운 일이군.”

“결국에는 그 죽음마저 비난받았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야. 절름발이를 아들로 두다니 말이야.”

불꽃을 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그와 반대로 차가운 채였다.

저벅. 저벅.

브루노가 구부정한 자세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발걸음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

“그래서?”

“일평생 검성의 이름을 증명하며 살아가는게, 그 아이에게 주어진 저주인 셈이지.”

* * * * * *

5구역에 위치한 번화가.

밀려오는 인파 사이를 걷고 있으면, 시넬을 대신해 호위에 나선 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결국 시넬은 어디간거야?”

물건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창고지기에게 가야만 한다.

시넬은 지금 당장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나는 검성에게 오늘의 호위를 부탁했다.

이전에도 내 호위를 맡았던 경험이 있던 검성이다.

그녀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그녀와 동행하는 것에 단점이 있다면, 최대한 정보를 숨긴 채로 시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치안대에 잡혀갔다.”

“……치안대?”

“그래.”

치안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검성의 얼굴이 굳었다.

검성은 잠시동안 눈동자를 굴리며 내 표정을 살펴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치안대에 가게 됐구나.”

“짐작하는 일이라도 있나?”

“언젠가 한 번 크게 사고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

그녀는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혼자만의 결론을 내렸다.

도대체 검성의 머릿속에서 시넬은 어떤 이미지였던 것일까.

대놓고 이해한다는 모습을 보이자, 오히려 변명을 준비하던 내가 당황스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시넬은 언제 나오는데?”

“얼마 안걸릴거다. 늦어봐야 다음주겠지.”

“생각보다 빨리 나오네.”

“빨리 나오는게 좋지 않나?”

흐으음.

검성이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했다.

동료가 갇혀있다는데 도대체 왜 고민하는건가.

이게 도시 사람의 정인가 고민하고 있으면, 검성이 금방 대답을 돌려주었다.

“사실은 호위 일이 더 편한 것 같기도 하거든.”

“경호쪽이 취향에 맞는건가.”

“수배범을 잡으려면 내가 직접 뛰어야하는데, 이건 퍼시발만 따라다니면 되는 일이잖아.”

“적어도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는 이야기군.”

대충 정리하면 움직이기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같이 있으면 시넬쪽이 돋보여서 그렇지, 어찌보면 검성쪽도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나 싶다.

사무실에 몇퍼센트씩 부족한 사람만 모이는 기분이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얼마나 되겠냐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셈이야.”

“안타깝게 됐군. 시넬이 나오면 다 함께 1급 수배범을 잡을 생각이다.”

“1급 수배범?”

“그래. 특급을 잡기 전까지 최대한 팀워크를 맞춰보려고 한다.”

결사의 간부들은 가능한 수를 줄여놓아야만 한다.

그래야 결전의 순간이 왔을 때, 조금이나마 우리쪽의 승산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결사중에서도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목표는 유령군단이었다.

유령군단에게는 마탑에서의 빚이 있기도 하지만, 굳이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유령군단의 마법은 집단전에서 굉장히 성가신 편이었다.

가능하다면 먼저 쓰러뜨리는 편이 좋았다.

물론 우리가 지금 당장 그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녀석을 잡기 위해서는 상황과 장소가 맞아야만 했으니까.

1급 수배범의 토벌은 그를 위한 사전준비인 셈이다.

“특급은 수지타산이 안맞아서 잘 안가는걸로 아는데.”

“그래도 해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이유가 있어?”

“그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이니까.”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는 해야만 한다.

그걸 위해 만들어진 팀이니까.

정직하게 이유를 이야기 해주면, 어째서인지 검성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 그렇구나.”

“문제라도 있나.”

“아니!”

“그렇다면 됐군. 이쪽으로 들어가겠다.”

끼익.

문을 열고 근처에 있던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걸어나가며 하나씩 층을 올라가면, 황량한 건물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번화가의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유독 인기척이 적다.

마치 우리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분위기가 으스스하네.”

“사무실이랑 비교하면 어떻지?”

“……퍼시발도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나는 검성의 일침을 애써 무시했다.

이쪽이야 돈을 아끼려고 그런 곳을 고른것이다.

그렇게 아낀 돈에서 시넬과 검성의 월급이 나오는게 아니겠는가.

번화가에 있는 이 건물과는 사정이 달랐다.

“다 도착했군.”

어느덧 최상층에 도착한 내가 문을 열었다.

덜컹.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쳐지나갔다.

수많은 화분들로 가득차있는 번잡한 옥상.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텃밭에 사람 하나가 서있었다.

“처음 보는 손님이네. 물건을 맡기려고 왔어?”

창고지기 리처드.

금발의 청년이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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