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70화 (70/156)

〈 70화 〉 뜻밖의 재회 (2)

* * *

어느덧 최상층에 도착한 내가 문을 열었다.

덜컹.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쳐지나갔다.

수많은 화분들로 가득차있는 번잡한 옥상.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텃밭에 사람 하나가 서있었다.

“처음 보는 손님이네. 물건을 맡기려고 왔어?”

창고지기 리처드.

금발의 청년이 우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리처드가 마주했던 손님들의 얼굴을 하나씩 전부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저런 질문을 던져오는 것은, 검성의 옷차림이 그만큼 인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리처드의 물음에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니. 물건을 찾으러 왔다.”

“찾으러 왔다고?”

“상속을 받았다. 그러니 물건을 확인할 생각이다.”

“그렇단 말이지. 규칙은 알고 있어?”

5구역의 창고지기는 일일히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다.

본인에게 맡겨진 내용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당사자가 원하는 아공간을 직접 열어줄 뿐이었다.

누가 와서 그를 협박한다고 하더라도, 리처드 임의로 모든 아공간을 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지 그를 죽이는 것으로 보관된 물건들을 영영 사용할 수 없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런 목적을 가지고서 리처드에게 찾아왔던 습격자들도 여럿 있었다.

당연하지만 전부 리처드의 손에 죽었다.

일단은 창고지기 본인의 무력부터가 출중했다.

그의 역할은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지기다.

충분한 보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에게 물건을 맡기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일단 그의 규칙을 지키는 편이 좋았다.

“좋아. 요즘 오는 손님들은 준비가 잘 되어있군.”

“요즘 오는 손님들?”

“최근 들어 잦은 편이거든. 상속받았다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말이야.”

척. 리처드가 손바닥을 펴 나에게 내밀었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리처드가 재촉하듯이 손바닥을 움직였다.

“규칙은 알고 있다며. 알려줘야 열어주지.”

“……좌표를 달라는거였군.”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는 메모 프로그램을 열어 손가락으로 기억속의 숫자를 써갈긴다.

창고지기는 주어진 좌표의 아공간을 열 수 있다.

그러니 그에게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임의의 좌표를 지정해 알려주어야만 한다.

이것은 물건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숫자를 적은 휴대전화의 화면을 리처드에게 보여주자,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인했어. 뒤로 물러나.”

“그렇게 하지.”

그 이외에 다른 절차는 없었다.

좌표의 자릿수부터가 긴 편인데다가, 하루에 창고지기를 찾는 손님의 숫자도 수십이다.

좌표의 주인이 누구인지 일일히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좌표 역시 마찬가지다.

물건을 보관하는데 사용한 좌표를 창고지기는 결코 기록해두지 않는다.

좌표를 기억하거나 적어놓는 것은 전부 물건을 맡겨놓은 고객의 몫이었다.

“[포켓 플레인].”

나는 창고지기의 지시에 따라 뒤로 물러났다.

바로 앞에 있던 우리가 물러나자, 창고지기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지이이이잉.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벌어졌다.

심연과도 같은 어둠의 너머.

고급스러운 느낌의 자그마한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랑 봉투가 있네.”

옆에서 아공간을 들여다보던 검성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상자 옆에는 봉투 하나가 놓여있었다.

전쟁도시에서 읽었던 내용에 따르면 상자의 내용물은 미스릴 탄환이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대량의 크레딧이 들어있는 봉투다.

다행히 아공간 안의 내용물이 크지 않았던 탓에, 주머니에 물건을 넣는데 큰 지장은 없어보였다.

수납되어있던 물건을 전부 꺼낸 나는 창고지기를 향해 눈짓을 했다.

“물건은 전부 찾은거야?”

“더 이상 볼일은 없다.”

위대한 지성의 창고에 수납되어 있는 것은 이것들이 전부다.

부피가 큰 물건은 마탑의 금고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미스릴 탄환을 창고지기에게 맡겨놓았던 것도, 어지간하면 다시 찾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크레딧은 어떤 생각으로 넣은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머니 속에서 묵직한 크레딧의 감각이 전해져왔다.

부수입에 더해 목표로 했던 미스릴 탄환까지 회수했으니,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볼일은 없었다.

“용건이 빠르네.”

“이만 돌아가보지. 고생해라.”

“좋은 하루 보내길 빌도록 할게.”

리처드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손을 휘저었다.

허공에 열려있던 공간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다시 원래의 풍경이 돌아왔다.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 마법이다.

일상생활에서의 범용성도 그렇지만, 전투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사용이 가능한 마법이었다.

집단전에서도 나름대로의 메리트가 있어보였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퍼시발, 벌써 돌아가는거야?”

뒤따라오던 검성이 물었다.

하기야, 5구역에 이동한 직후 곧바로 이곳에 찾아왔다.

벌써라는 말이 나올만도 했다.

“돌아가자. 오늘은 좀 한가하겠군.”

“시넬에게 줄 선물이라도 사는건 어때?”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시넬이 치안대에 끌려간 이유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던가.

선물을 하나 준비해두는 것도 괜찮아보였다.

마침 5구역에는 유명한 가게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검성과 함께 근처를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였다.

* * * * * *

위대한 지성. 그녀가 남긴 봉투에 들어있던 크레딧은 제법 액수가 컸다.

전부 합쳐 100만 크레딧.

유명한 현상범을 수십명은 잡아들여야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어두어도 될 것 같았다.

주머니에 든 크레딧의 액수에 놀라서 고민하고 있으면, 앞쪽에서 선물을 고르던 검성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는 어때?”

“……헤드셋?”

5구역에 위치한 백화점.

그곳에서 선물을 살펴보던 검성이 나에게 내민 것은 헤드셋이었다.

나는 검성이 내민 헤드셋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디자인의 헤드셋처럼 보인다.

다만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려보면, 평범하던 외형이 고급스럽게 보일만한 요소가 눈에 들어왔다.

“가격이 비싸군.”

“여기는 믿을만한 회사라서 그래.”

“……?”

“스쿼리스는 음향장비계의 레서트같은 회사야. 그리고 이 제품은 가격도 중간가격대라 금액적인 면에서 크게 부담되지 않아서 입문자에게 추천할만한 제품이거든. 뒤에 금색 마크도 있어.”

들고 있던 헤드셋과 검성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다가 문득 검성의 목에 걸려있는 헤드셋에 시선이 갔다.

시중에서 팔만한 디자인처럼 보이지는 않고, 검성 나름대로의 튜닝이 가미된 것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검성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헤드셋을 좋아하는건가?”

“좋아하는건 아니야. 그냥 관심이 조금 있을 뿐이지.”

“그렇… 군…….”

“혹시 다른건 궁금한거 없어?”

“없다. 다른 물건이나 보러가지.”

“아, 잠깐! 조금만 더 보고가!”

아무래도 검성에게 선물을 맡기는건 잘못된 선택같았다.

그야, 검성 본인부터 취향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동안 보았던 검성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되감아본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검을 닦는 검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게 이번에 새로 산 천이거든. 금색은 한정판이라 구하기 힘들었어.’

무인의 생명은 병장기라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닦는다.

막상 실전에서는 검을 제대로 뽑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새로 구매한 천을 어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역시, 그녀에게 맡기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보인다.

“일단은 둘러보면서 고민하는 편이 좋겠군.”

터벅, 터벅.

검성과 함께 걸으면서 주변의 상품들을 구경했다.

방금 전까지 보던 헤드셋 매대의 근처에 있어서일까.

대부분은 전자제품과 관련된 품목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내 이목을 끌만한 물건들도 여럿 있었다.

“퍼시발, 저건 신형 휴대전화야.”

“…….”

“신형 소재를 사용해서 32번까지 접을 수 있어. 게다가 뒷면 컬러도 금색이야.”

“……대단하군.”

그렇다고 내가 사고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누구라도 저절로 시선이 갈만한 물건이었을 뿐이다.

검성의 경우에는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저건 금색으로 반짝이는 강아지귀 머리띠야.”

“신기하군.”

“시넬도 저런걸 좋아하지 않을까?”

“흠…….”

잠시동안 고민해봤지만 역시 결론은 똑같았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초콜릿 세트를 선물하는 편이 시넬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전자제품보다는 오히려 먹을 것 쪽에 관심이 많아보이는 시넬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누가 이 선물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깨달았으니, 영 수확이 없는건 아니었다.

나는 검성이 말한 머리띠를 집어들었다.

“선물이다.”

“……어?”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는 그것을 검성에게 내밀었다.

검성의 손에 들린 강아지귀 머리띠가 화려하게 반짝였다.

머리띠를 바라보는 검성의 눈 역시 반짝거렸다.

검성은 잠시동안 침묵한 채로 머리띠를 바라보더니, 이내 침을 꿀꺽 삼키고선 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선물이야……?”

“그래. 마음에 들지 않는건가?”

“……어쩔 수 없네. 미래의 천하제일검에게 주는 뇌물인건 알지만… 특별히 받아주는 수밖에.”

“기왕 받은거, 한 번 써보는게 좋겠군.”

“아, 알았어.”

끄덕. 끄덕.

검성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머리띠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머리핀을 뽑아낸 자신의 머리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렇게 반짝이는 머리띠를 검성이 착용하려는 순간.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번잡한 백화점의 안. 매대 하나를 사이에 둔 건너편.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의 남자를 발견한 것이다.

­ “힘이, 필요한가?”

지금으로부터 수개월 전.

지나가는 행인에게 보냈던 텔레파시의 내용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백화점 매대의 반대편에 보이는 남자의 정체.

그것은 나에게 금괴 5kg을 안겨주었던 첫 고객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