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뜻밖의 재회 (3)
* * *
“힘이, 필요한가?”
지금으로부터 수개월 전.
지나가는 행인에게 보냈던 텔레파시의 내용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백화점 매대의 반대편에 보이는 남자의 정체.
그것은 나에게 금괴 5kg을 안겨주었던 첫 고객이었다.
“필립. 또 휴대전화를 보고 있냐.”
반대편에서 휴대전화를 고르고 있던 남자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남자의 이름이 필립이었던 모양이다.
과거의 기억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져본다.
어느새 입가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래서 사람이 죄를 짓고 살면 안되는 모양이다.
“퍼시발. 왜 그래?”
검성은 그런 내 모습이 걱정되었던 것인지, 황금 강아지귀를 착용한 채로 나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이건 누군가에게 꺼낼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옆을 바라보았다.
“…….”
“퍼시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검성이 나를 재촉하는 사이, 옆자리의 대화가 이어졌다.
검성의 목소리 때문에 상대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입을 막을 요량으로, 검성을 가까이 끌어안아 그녀의 얼굴을 내 가슴팍에 묻었다.
읍읍. 놓아줄 것을 토로하는 검성의 발버둥이 전해져왔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필립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이클. 무슨 일이야?”
“그냥 근처를 돌아보다 네가 보여서 왔지.”
“그러냐. 뭐, 신상이 나와서 살펴본것 뿐이야.”
머리를 억누른 가슴팍에서 검성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검성의 반응을 애써 무시한 채로, 옆자리의 대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설마 아직까지 나를 쫓고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러고보니 너, 최근에 마법사가 됐다면서?”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퍼져버렸구나.”
“혼자서 ‘어둠의 계약자’라고 부르고 다닌다고 유명하던데. 너희 아버지가 너 정신병원에 넣어버리겠다고 하더라.”
“어쩌겠어. 나는 정말로 금단의 계약을 해버렸는데 말이야.”
푸웁. 이야기를 듣던 도중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일촉즉발의 상황.
마탑의 일을 떠올리며 터지기 직전의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으면, 마이클이라 불리던 친구가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이클은 필립을 향해 푸념을 늘어놓고선 그에게 물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그래서 무슨 마법인데.”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지.”
“어둠과의 거래로 내가 배운 마법은…….”
필립의 뒷이야기를 기다리는 순간.
오른쪽 허벅지에서 강렬한 격통이 전해져왔다.
시선을 내려 통증의 원인을 찾아보면, 내 가슴팍에 파묻어진 검성이 허벅지를 꼬집고 있었다.
나는 허벅지의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놓아주었다.
“……윽.”
“푸하아……. 정말, 뭐하는건데.”
구속에서 풀려난 검성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노려보았다.
얼굴을 억누른 탓에 산소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검성의 얼굴은 이전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사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필립의 이야기를 듣겠다며 검성을 억누른 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곧장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
“미안하다. 사정이 있어서.”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아직은 할게 많은 몸이라서 곤란해.”
“욕심이 과했군. 조심하도록 하지.”
확실히 이 자리에서 필립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들으려는 것은 욕심이었다.
브라이언을 통해 정보를 얻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괜히 정보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고 검성을 억누르고 있던 것도, 동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욕심……. 응, 그건 욕심이 맞지.”
“다행히 어느정도 수확은 있었군. 아까의 실수는 다시 한 번 사과하도록 하지.”
필립이 마법을 각성했다.
이번의 대화를 통해 그에 대해 얻어낸 정보였다.
나름대로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도시에는 언제 어느 상황에 튀어나올지 모르는 변수들이 무수히 산재해있다.
가능하다면 대비할 수 있을 때 변수들을 조율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수확이… 있었어?”
“그래.”
“어, 그럼 다행… 이네?”
“그런 셈이다. 조금만 더 둘러보고 돌아가도록 하지.”
“으응.”
나는 살짝 이상한 검성과의 대화를 끝마치고서, 다시 다음 코너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의 계약자라.
우스꽝스러운 별명이었다.
마법을 각성했다니 우려하던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사무실에 돌아간다면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서 그에 대해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 * * * *
5구역을 찾았던 다음 날.
사람이 하나 비어 조용해진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시넬은 아니었다.
시넬보다 먼저 사무실에 찾아온 것은 치안대쪽 사람이었다.
“오랜만이야. 암흑상인.”
네이 테르도스.
치안대의 특수감시관이자 3급 수사관인 그녀가 찾아왔다.
그것도 그녀의 파트너인 어셔 헤이즈를 데리고 말이다.
맞은편에 있던 소파에 네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녀의 뒤에 기립한 어셔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나는 그런 어셔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면서, 네이에게 찾아온 용건을 물어보았다.
“치안대에서 무슨 일이지?”
“너라면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네이가 차갑게 웃으며 대답을 들려주었다.
찔리는 일이야 많이 있는 편이다.
선을 넘은 경험도 어느정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심이 될만한 일을 꼽자면, 역시 시넬이 치안대에 붙잡힌 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벨의 힘을 끌어다 쓰지 않았던가.
지금의 질문은 아마도 떠보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내 부하가 잡혀있다고 들었는데. 뭔가 알려줄 정보가 있는 모양이군.”
“장난치지마. 암흑상인.”
“뭐가 장난이라는거지?”
주먹을 쥔 손바닥에 땀이 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가능하다면 상대의 생각이라도 읽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네이를 상대로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의 뒤를 지키고 서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마력의 흐름에 민감한 어셔 헤이즈가 아니던가.
내가 텔레파시를 사용하려는 순간, 어셔의 손과 내 머리가 순식간에 합쳐질 것이다.
“시넬 클로버블룸. 네 부하들 중 하나가 마탑 테러 현장에 있었어.”
“그 이야기는 이미 전해들었다.”
“그렇겠지. 그리고 그녀는 현장에 있던 테러범을 감싸다가 치안대에 붙잡혔어.”
그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다.
다름아닌 내가 현장에 있었으니까 말이다.
네이나 어셔 역시 가스마스크를 착용한 남자의 정체는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당장 나를 체포하지 못하는 것은, 심증만 있고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굳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하나였다.
이번 사건에 아벨 테르도스가 개입했으니까.
네이 테르도스가 가장 경계하며 증오해 마지않고 있는, 아벨 테르도스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오해가 있군.”
“오해? 무슨 오해가 있는데?”
정황상으로는 내가 확실히 범인처럼 보인다.
실제로 내가 범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실대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대가 인간도살자로 유명한 살인마에, 낙하산으로 소문난 아가씨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들은 치안대라는 본분 자체에는 어느정도 충실한 이들이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와 차이가 있다. 나는 시넬이 현상금 사냥을 위해 현장에 갔다고 들었으니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우리 사무소는 주기적으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현상금 사냥을 나서고 있다. 그건 너희도 알고 있을텐데.”
“현상금이 걸리지 않은 현상범을 잡으러 갔다고? 누가 들어도 모순적인 이야기잖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철컥.
홀스터에서 꺼내진 네이의 권총이 나를 겨누었다.
맞은편에서 나를 지켜보는 총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어두운 얼굴이 되어버린 네이가 참지 못하고 총을 꺼내든 것이다.
“대화를 하려고 들었던 내가 바보였지.”
“이게 무슨 짓이지?”
“시끄러워. 너, 아벨이랑 무슨 거래를 했어.”
“…….”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 인간에 대해서!”
처음 네이 일행과 마주했던 당시, 나는 아벨 테르도스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꺼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대화의 주제부터가 네이의 역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툭. 험악해진 분위기에 검성이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대치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유엘.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손을 들어 검성을 제지했다.
네이의 말에는 아직 뒷이야기가 남아있을 것이다.
아직은 어느정도의 여지가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어셔 일행과 사이가 너무 틀어져서는 곤란했다.
“하지만, 퍼시발…….”
“이 문제는 나와 치안대가 해결할 일이다. 이런 분쟁에 네가 끼어들어서 이득볼게 없다는 이야기다.”
“……알았어.”
검성이 손잡이에 가져갔던 손을 거두었다.
검성의 움직임을 경계해 목도리에 손을 가져갔던 어셔 역시 손을 내렸다.
나를 겨누고 있던 네이의 총구는 내려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당장의 충돌만은 막아내었다.
불쾌한 분위기가 사무실 안을 완전히 잠식했다.
“치안대 안에는 아벨의 사조직이 존재하고 있어.”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네이가 여전히 총을 겨눈 채로 입을 열었다.
아벨 테르도스.
도시의 상임위원이자 치안대의 치안대장에 대한 이야기다.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치안대의 속사정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치안대 내부의 기강을 흔들고, 일부 범죄자들과 관련된 사건을 일부러 묻어나가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그리고 이번 사건에도 아벨이 관여했어.”
방아쇠에 걸쳐진 네이의 손가락이 떨린다.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가슴이 떨리는 일이었다.
물론 총을 들고 있는 네이의 입장에서도 치가 떨리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나는 네가 아벨의 부하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제는 널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소리야.”
증오. 체념. 한탄. 혹은 그 이상이 섞인 무언가.
여러가지의 감정이 누더기처럼 기워져 새어나온다.
그것은 얕게 쌓아올려진 신뢰에 대한 반향이면서도, 아군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도시는 넓다. 그리고 무척이나 어둡다.
혼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곳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가장 원하고 있을 말을 돌려주었다.
“믿지 마라.”
“무슨 소리야?”
“믿지 말고 이용해라. 우리는 애초부터 그런 관계가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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