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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72화 (72/156)

〈 72화 〉 뜻밖의 재회 (4)

* * *

도시는 넓다. 그리고 무척이나 어둡다.

혼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도 두려운 곳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가장 원하고 있을 말을 돌려주었다.

“믿지 마라.”

“무슨 소리야?”

“믿지 말고 이용해라. 우리는 애초부터 그런 관계가 아니었나?”

나를 바라보는 네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분노가 터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네이가 쥐고 있던 권총 역시 이전보다 크게 떨리고 있었다.

“너…….”

“불만이 있으면 방아쇠를 당기면 그만이다.”

“내가 못당길 것 같아?”

“내가 없어도 결사를 상대할 자신이 있다면.”

솔직히 말하자면 나따위는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아무래도 좋은 존재였다.

굳이 전개에 끼어들어 단물만 빨아먹는 기생충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네이는 나를 쏘지 않을 것이다.

근거는 없다. 단지 맞으면 내가 죽을까봐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상식이 있다면 치안대가 여기서 총을 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물론 네이가 홧김에 쏘아버릴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만해라. 네이.”

다행히도 네이의 총이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마침 뒤에 있던 어셔가 손을 뻗어 네이의 권총을 붙잡은 것이다.

어셔가 붙잡은 총구가 나를 대신해 사무실의 천장을 겨누었다.

후.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셔, 하지만……!”

“이 이상은 그만두는게 좋을거다.”

“저 녀석이 아벨이랑 손을 잡았다고!”

“손님이 보고있다.”

“……손님?”

손님. 그 한마디에 네이의 얼굴이 굳었다.

네이는 고개를 돌려 사무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전부 사무실의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재미있는 광경이군.”

사무실의 문 앞.

거기에는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이고 있었다.

도시의 사람들이 그를 이르기를 섬광기사.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간부인 헤리오 나이트라인이 문앞을 지키고 서있던 것이었다.

“너는…….”

“또 보는군. 테르도스 가의 아가씨.”

입구에 서있던 헤리오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정중하게 네이를 비꼬는 인삿말이다.

그의 말을 들은 네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3급 수사관. 똑바로 부르는게 좋을거야.”

“그렇게 하지. 3급 수사관 나으리.”

터벅. 터벅.

정장을 걸친 헤리오가 안쪽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는 어셔가 서있던 바로 옆자리에 등을 기대었다.

안으로 들어온 그의 손에는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인장이 찍힌 가방 하나가 들려있었다.

“용건이 있나? 그러면 좀 나중에 올 생각인데.”

헤리오의 시선이 어셔와 네이를 번갈아보았다.

네이는 레서트의 사장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이전의 길잡이 토벌에서도 마주했던 만큼, 이들은 여러차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였다.

물론 대부분은 비즈니스적인 용무일테지만 말이다.

그런 헤리오의 질문에 대답을 꺼낸 것은 어셔였다.

“아니. 용건은 끝났다.”

“어셔!”

“우리의 적은 정보상인이 아니다. 차라리 지금 할 수 있는걸 하는게 나을거다.”

말을 마친 어셔가 뒤를 돌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네이는 한숨을 내쉬며 어셔와 권총을 번갈아보다가, 이내 권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셔를 따라 이곳을 빠져나갈 모양이었다.

네이는 사무실 밖으로 걸어나가면서도, 나에게 경고를 늘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음은 없을거야.”

“아. 명심하지.”

네이 역시 사무실을 나섰다.

순식간에 사람이 빠져나간 사무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상대가 치안대라는 점도 있지만, 어셔의 일이 꼬였다가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대인 것이다.

“이거, 누가 감시관인지 모르겠군.”

네이가 빠져나간 소파에 앉은 헤리오가 말했다.

허. 가벼운 웃음소리가 헤리오의 입가에서 터져나왔다.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들고 있던 가방을 자신의 옆에 내려놓은 헤리오는, 이내 아쉬워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여기에 커피 있나?”

“무슨 용건이지?”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겠군. 일단은 정보상인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찾아왔으니 말이다.”

헤리오는 레서트 지부장의 호위를 맡고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벨 바이어틴의 곁에서 지내는 그의 루틴을 생각해보면, 이런 곳에 혼자서 찾아온 것은 다소 의외인 일이었다.

그가 이곳에 찾아올만한 이유가 있던가.

가만히 고민하던 나는 헤리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캔커피만 남아있는데. 그거라도 괜찮다면 주지.”

“상관없어. 단순 입가심 용도다.”

“유엘. 커피 두 개만 좀 부탁하지.”

“어, 응.”

부탁을 받은 검성이 냉장고를 향해 움직였다.

어찌보면 헤리오가 찾아온 덕분에 네이가 빨리 물러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커피 하나쯤은 대접해줄 의향이 있었다.

냉장고에 갔던 검성이 캔커피 두 캔을 나에게 가져오면, 나는 그 중 하나를 헤리오에게 건넸다.

“고맙게 마시도록 하겠다.”

“싸구려로 생색을 낼 생각은 없어.”

“뭐, 가격이 중요하겠나. 저마다가 가지는 의미가 중요한거다.”

“그래서, 사무실에는 무슨 일이지?”

헤리오 나이트라인은 부도덕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경계선에 걸쳐있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정보상을 찾아올 정도의 일이라니.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딸깍. 캔 커피를 한모금 마신 헤리오가 테이블에 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입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에 조금 복잡한 일이 생겼다.”

* * * * * *

9구역. 모던버리츠 11번지.

그곳에는 혼자서 고물상을 지키고 있는 노인이 있다.

환전상 제임스. 도시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장물아비는 외알안경을 쓴 채 오늘도 고물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노란색의 금화 하나.

그를 찾아왔던 손님이 고대국가의 유물이라며 맡겼던 물건이었다.

“…….”

끼이익.

제임스가 물건을 보고있는 사이, 누군가 고물상의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찾아온 손님은 중절모를 쓰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제임스는 고개를 들어 지팡이를 짚은 손님의 모습을 간단히 확인하고선, 자신의 손에 있던 금화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소.”

“오랜만이군. 제임스.”

“이 목소리는, 설마…….”

금화를 살펴보던 제임스에게 중년인이 인사를 건네왔다.

언뜻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제임스의 손이 멈추었다.

그는 잠시동안 금화를 든 채 멍하니 서있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다시 한 번 손님을 바라보았다.

조금 삐뚤어진 낡은 중절모.

그 아래에 있는 것은 그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다. 브루노 리트리어.”

“이, 이럴수가…….”

절름발이 브루노.

상대의 이름을 들은 제임스가 놀라며 들고 있던 금화를 책상 위에 떨어뜨렸다.

브루노의 모습을 알아본 제임스는 금화를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안경을 고쳐썼다.

그러자 한층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안경 너머의 풍경.

그곳에는 그가 일찍이 신문에서 몇번이고 보았던 브루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나?”

“분명 죽었다고 들었소. 그런데 어떻게…….”

“여러 일이 있었지. 물론 쉽게 늘어놓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절름발이의 죽음은 당시 도시 전역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최대의 이슈 중 하나였다.

분명 토벌을 진행했던 치안대에서 시체까지 확인했던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눈앞에 멀쩡히 살아있다니.

제임스는 눈에 비치는 브루노의 모습을 보고서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은 쫓기는 몸일텐데, 이곳에는 무슨 일이오.”

“부탁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혹시 물건 좀 봐줄 수 있나?”

“당신의 부탁이라면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소.”

“그거 다행이군. 믿을만한 사람이 자네밖에 없었거든.”

툭. 브루노는 상자 하나를 제임스의 앞에 올려놓았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검은색 상자였다.

제임스는 자신의 앞에 놓인 상자를 집어들고서 브루노에게 물었다.

“무슨 물건이오?”

“미스릴로 만들어진 탄환이다. 확인 좀 부탁하지.”

“미스릴…….”

흠. 미스릴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제임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미스릴. 그것은 제국의 모든 광물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물건이었다.

민간에는 제대로 유통조차 되지 않으며, 조그마한 양이라도 항상 어마무시한 가격표가 뒤따라오고는 했다.

그것은 마력에 저항하는 미스릴의 성질에 기인했다.

그런 미스릴을 가지고 탄환을 만들다니.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는 몰라도, 탄환 한 발에 수백만 크레딧은 호가할만한 물건이었다.

“이런걸 맡길 사람은 자네밖에 없거든.”

“도시에도 이런 물건을 다루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오.”

“그러니 자네에게 감정을 맡기는거 아니겠나.”

“알겠소. 은인의 부탁이니 흔쾌히 받아들이리다.”

상자를 연 제임스는 장갑을 낀 손으로 은백색의 탄환을 집어들었다.

마법사가 이런 물건을 만졌다가는 불쾌감에 몸서리 치겠지만, 다행히도 제임스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는 돋보기를 들고서 손에 쥔 탄환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매끄럽다. 재질에 비해 외형은 투박하다.

남의 몸에 박아넣고 나면 외관상의 차이는 없을 물건이기에 그러려니 하는 부분이었다.

“기능상의 문제는 없는 것 같소.”

그렇게 말한 제임스가 돋보기를 내려놓았다.

그 다음 자신의 옆에 있던 금속막대를 가져와 미스릴에 가져다 대었다.

삑. 삑.

미스릴에 닿은 금속막대가 신호음을 울렸다.

방향을 바꾸어가며 수차례 검사를 마친 제임스는 다시 막대를 내려놓았다.

물건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끝난 것이었다.

“물건은 진품이오.”

부탁한 물건에 대한 결과가 나왔다.

브루노가 가져온 것은 진짜 미스릴로 만든 탄환이었다.

제임스는 들고 있던 탄환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뚜껑을 닫아 물건을 브루노에게 건넸다.

브루노는 제임스가 건넨 상자를 받아들고는, 그것을 품에 넣으며 제임스에게 말했다.

“감사를 표하지. 시간이 별로 없는게 아쉬울 따름이군.”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눈앞의 범죄자는 자신의 은인이었다.

이런 가벼운 부탁이야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물건을 집어넣은 브루노는 미소를 지으며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요새 재밌는 이야기라도 있나? 그럴싸한 소문같은거 말이지.”

“재밌는 이야기라…….”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면 소문에 둔할 것이다.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할지 고민이 되는 제임스였다.

그는 잠시동안 꺼낼만한 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이곳에 찾아왔던 청년을 떠올렸다.

분명 브루노의 소개를 받고 이곳에 찾아왔다고 말했던 청년이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당신의 소개로 찾아왔다는 청년이 하나 있었소.”

“……그거 재밌는 이야기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제임스를 보는 브루노의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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