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뜻밖의 재회 (5)
* * *
“아무래도 일정이 너무 당겨지겠는데.”
검성이 퇴근하고 아무도 남지 않은 사무실.
나는 홀로 소파에 누워 별이 비치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시넬이 옆에 없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가져보는 혼자만의 밤이다.
언제나 소란스러웠던 사무실은 정적으로 가득 차있다.
이 넓은 사무실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유령군단이랑 너무 빨리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어.”
조용해진 사무실이 너무나 어색하다.
그 어색함을 날려버리려는 생각으로, 열심히 혼자서 중얼거려본다.
항상 이 시간이면 시넬이 까망이를 데리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소란스럽다. 당시에는 그런 생각만이 유난히 머리에 맴돌고는 했다.
내 몸을 간수하기도 힘든 마당에, 부하직원 밥까지 챙겨주면서 살아야 한다니.
내심 그녀가 독립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은 시넬이 그리웠다.
“…….”
밤이 되면 같이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함께 일어나고.
둘이서 머리를 맞대며 점심을 고민하고.
내 곱절은 먹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의 일상이었다.
꿈속에서 시험을 보던 어느 날.
나는 지금의 삶에 충실하겠노라 맹세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있는가.
“바보같네.”
피식.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이제는 당연하게 변해버린 것들이 있다.
자신에게 당연해진 것.
사람과의 관계. 쌓여가는 돈.
신뢰할 수 있는 부하. 개인의 명성.
무엇이든 간에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다.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자신의 것들을 지켜낸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이제 슬슬 보고싶어지는걸.”
자신의 실수마저도 덮어주는 부하는 흔하지 않다.
시넬이 돌아온다면 조금 더 잘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나쁘게 대우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더 잘해줘서 나쁠 것이 없지는 않은가.
지금 바로 돌아온다면 소원을 두 가지 정도는 들어줄 의향이 있을 정도였다.
이것도 밤의 분위기에 취해버린 지금에만 통용되는 이야기지만.
“보고싶었나요.”
혼자만의 상념에 젖어 허공에 중얼거리는 순간.
소파에 닿은 머리의 너머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오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거대한 고글. 찰랑거리는 잿빛 머리카락.
그리고 시선을 타고 내려와 마주하는 선명한 눈동자.
그렇게 마주한 눈동자를 보고서 상대의 정체를 깨닫는다.
시넬 클로버블룸.
자신의 충직한 부하가 쪼그려앉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진짜 시넬이냐?”
“네.”
“언제 왔지?”
“방금 들어왔어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맞닿은 손가락을 통해 전해져왔다.
눈앞에 보이는 시넬은 허상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무실에 들어와서, 팔걸이의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꿈인가 싶어 맞닿은 그녀의 뺨을 꼬집어보았다.
“아파요.”
“꿈은 아닌 모양이군.”
“네.”
“왜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몰랐던거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앉았다.
시넬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은 인기척을 느끼면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헤이스트를 썼어요.”
“…….”
“역시 엄청난 마법이에요.”
“……그래.”
시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헤이스트를 사용했다는 모양이다.
하기야. 헤이스트를 써서 조용히 걸어온다면 발소리를 듣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직 치안대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풀려난 직후 곧장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치안대는 어땠나.”
“힘들었어요.”
“그래.”
그야 힘들었겠지.
치안대장이 최대한 편의를 봐준다고는 해도, 화제가 되어버린 사건의 용의자를 배려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한동안 사무실에 귀가하지 못하지 않았나.
출근해야하는 사무실로 귀가한다는게 좀 우스운 말이기는 하다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안락한 공간은 있기 마련이다.
시넬이 힘들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넬은 내 앞에 쪼그려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칭찬해주세요.”
“그래. 고생 많았다.”
시넬 자신을 칭찬해달라니, 못할 것도 없다.
덕분에 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머리에 닿은 손가락에 푹신한 머리카락이 휘감겨왔다.
“너는 최고의 부하다.”
“그런가요. 잘 알고 계시네요.”
“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시넬이 눈을 감았다.
손을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입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마치 그녀의 입꼬리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컨트롤러같은 느낌이다.
몇분가량 시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서는, 나는 시넬을 쓰다듬던 손을 거두었다.
그제서야 눈을 뜬 시넬은 눈을 마주치고서 다른 요구를 해왔다.
“안아주세요.”
“그래.”
이번에는 본인을 안아달라는 요구였다.
평소와는 다른 부탁이다.
희한하기는 하지만 받아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다보면 비슷한 일도 부지기수다.
어차피 그녀가 온다면 소원을 두 가지 정도는 들어주기로 하지 않았던가.
어떤 방식으로 안아주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자신의 무릎에 시넬을 올렸다.
“불편하지 않나요.”
“이 정도는 상관없다.”
무릎에 앉은 시넬을 뒤에서 끌어안는다.
위에서 보니 시넬의 머리카락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커다란 고양이 한마리를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다.
푹신하다. 어찌보면 베개같은 느낌도 든다.
가끔씩은 그리울 것 같은 촉감이었다.
뒤에서부터 그녀를 끌어안고 있다보면, 품에 안겨진 시넬이 고개를 올리며 물었다.
“오늘은 친절하네요.”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다.”
“말하면 뭐든지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에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지.”
지금도 이렇게 소원을 들어주고 있지 않던가.
어떻게 보자면 소원보다는 일종의 어리광에 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오늘은 그녀의 눈에 친절한 사장님 모드로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친절하다.
그렇지 않다면 한끼에 배달음식을 5인분씩 주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윽. 시넬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살짝 스쳐지나갔다.
조금 낮은 체온이 손등을 통해 전해져왔다.
순식간에 지나간 손가락의 잔열속에서 시넬이 입을 열었다.
“좋아해주세요.”
“…….”
“이건 조금 어려운가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동안 할말을 잃어버렸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멍하니 있는 사이에 순식간에 다음의 질문이 찾아왔다.
고민하거나 망설일 시간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대답을 요구하는 시넬의 질문에 그나마 괜찮은 답변을 돌려주었다.
“아쉽게도 소원 두 가지가 전부 끝났다.”
“그런가요. 아쉽게 됐네요.”
“아쉽다면 생각을 고쳐보도록 하지.”
“괜찮아요. 어차피 스피넬의 허락을 받아야하니까.”
“……스피넬의 허락?”
산을 하나 넘으니 찾아오는 것은 또 다른 산이었다.
스피넬의 허락이라.
직전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다.
어떤 부분에 대한 허락인지는 대충 느낌이 온다.
물론 시넬이 꺼낸 말이니까 전혀 다른 의미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시넬에게 허락에 대한 내용을 되물으면, 시넬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옛날에 약속을 하나 했어요.”
“무슨 약속이지?”
“그건 비밀이에요.”
약속. 그녀가 말한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보다 자세한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다.
혹시 지금 바로 텔레파시를 사용한다면, 어떤 약속인지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동안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곧장 머리를 털며 그 상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확신도 없는데 굳이 비밀을 헤집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시넬이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을 확률이 더 높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비밀로 남겨두는 편이 더 즐거운 것도 있는 법이다.
“이제 됐어요.”
“뭘 말하는거지?”
“머리. 무거우니까 놔주세요.”
“……그래.”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법 오래 시넬을 끌어안고 있었다.
시넬도 슬슬 어느정도 만족한 것 같으니, 품에서 놓아줄 때가 된 것이다.
시넬의 요청대로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시넬은 잠시동안 무릎 위에 머무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나를 바라보는 시넬의 고글이 빛을 내며 깜빡이고 있었다.
“고글, 잘 보이고 있나요.”
“잘 보이고 있군.”
“조금 더 잘 보이게 할거에요.”
번쩍. 번쩍.
시넬의 고글이 최대출력으로 빛을 발했다.
눈앞에서 막대한 광량을 뿜어내는 고글의 모습은 지나치게 눈이 부셨다.
나는 시넬이 보여준 고글의 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무언가의 따스한 감촉이 뺨을 통해 전해져왔다.
“…….”
녹색 빛이 번진 시야속에서 시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채였다.
눈을 감기 직전과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그럼에도, 찰나의 시간동안 뺨에 닿았던 감촉만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뚱히 서있는 시넬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얼굴에 뭔가 닿았던 것 같은데.”
“마법이에요.”
“……무슨 마법이지?”
“맺어짐의 마법이에요.”
하.
마음속으로 들리지 않을 탄식을 내뱉는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의 아래.
머리를 흩날리는 잿빛의 마법사가 있다.
클로버 블룸.
만발하는 꽃밭속에서 찾아낸 네잎 클로버와 같은 인연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주 잠깐.
돌아가기 싫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