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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74화 (74/156)

〈 74화 〉 나이트테일 (1)

* * *

도시의 수많은 쓰레기들은 대개 11구역으로 몰려온다.

그리고 그런 쓰레기를 처리하는 조직들 중 가장 커다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벨리언트라 불리는 곳이었다.

11구역에 위치한 벨리언트의 아지트.

그곳에 중절모를 눌러쓴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터벅. 턱. 터벅. 턱.

지팡이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번갈아 울려퍼진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던 중년인은 아지트의 입구를 지키는 남자들 앞에서 걸음을 멈춰세웠다.

“오늘은 날씨가 좋군. 그렇지 않나?”

벨리언트의 입구를 지키던 조직원 하나가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벨리언트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조직은 많이 있다.

하지만 중년인의 인사는 적에게 건네는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신사적인 것이었다.

이곳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중년인을 마주한 조직원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적당히 안내만 하면 험한 꼴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가장 정중한 수준의 대답을 중년인에게 돌려주었다.

“이봐, 영감. 여기가 어딘지 알고 찾아온거야.”

“여기가 11구역에서 가장 괜찮은 곳이라고 하던데. 혹시 그 말이 틀린건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는데, 다치기 싫으면 그냥 돌아가는게 좋을거야.”

“하하. 다쳐서는 안되겠지. 그런데… 자네 혹시 말이 너무 짧은거 아닌가?”

도시에는 수많은 범죄조직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투쟁과 착취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한다.

벨리언트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문앞을 지키고 있는 조직원 역시 수많은 피를 보고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총탄과 화약냄새 앞에서 존중과 예의가 어디에 있겠는가.

조직원은 고작 말투따위로 트집잡는 중년인의 행태를 봐줄 수가 없었다.

한차례 강하게 나가서 이곳의 실체를 알려줄 필요성을 느낀 것이었다.

“긴 말을 원하면 장례식장에 보내줄 수 있는데, 어때. 장례식을 주관하는 신부님이라면 말을 퍽 길게 해주겠어.”

“아쉽게도 내가 무시당하는건 못참아서 말이야.”

“빨리 꺼지는게 좋을거야. 아예 못걷고 싶은게 아니라면.”

“그래서, 안타깝지만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네.”

중년인이 웃으면서 그의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년인을 막고 있던 조직원 역시 중년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그가 서있는 곳에서 다섯 발자국 떨어진 옆.

거기에는 사람이었던 것의 형체가 남아있었다.

조직원은 그것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뒷걸음질쳤다.

“뭐, 뭐야……!”

“세상이 너무 각박하단 말이야. 서로 예의를 지키면 참 좋을텐데.”

“무슨 짓을…….”

“손을 좀 봐줬지. 어떤가.”

그와 같이 경계를 서던 동료가 분리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진 동료의 모습에 조직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참상에 그는 당황하며 총을 들어올렸다.

철컥. 그의 총구가 눈앞의 중년인을 목표로 삼았다.

“습격… 습격이다!”

“너무 위험한 물건은 치워두는게 좋을텐데.”

중년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직원이 들고 있던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툭. 두터운 금속의 충돌음과 함께 총구가 목표를 잃어버렸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총 뿐만이 아니었다.

총을 겨누고 있던 조직원의 손 역시 총에 붙어있는 채로 주인을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양손을 잃어버린 그가 비명을 질렀다.

“끄, 으아아아악……!”

“이제야 좀 낫군. 가벼워서 좋지 않은가?”

“내 손… 내 손이, 끄아아악!”

“목소리는 좀 줄이게. 너무 시끄러우면 목도 정리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쿵.

중년인이 바닥에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중년인의 협박에 조직원은 곧장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중년인이 심상치 않은 인물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억지로 비명을 참아내는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조직원이 비명을 억누르는데 성공하자, 중년인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팡이로 뒤를 가리켰다.

“이제야 말을 잘 듣는군.”

“…….”

“자, 안내 좀 부탁하지. 자네 보스에게 가야하니까 말이야.”

중년인. 그리고 뒤에 있는 아지트.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던 조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외부인을 함부로 아지트에 데려갔다가는 죽을 것이다.

자신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입구를 방어하는 것이었다.

결코 불청객을 보스에게 안내하는 역할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조직원들이 중년인을 제압한다고 쳐도, 그 후에 자신은 무조건 처형당할 것이었다.

“뭐야. 하기 싫나?”

“사, 살려주십시오!”

“그럼 가야지, 뭐하나. 안하면 어차피 죽을텐데.”

“그, 그건…….”

“셋을 세지. 하나. 둘.”

“가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손이 없는 조직원이 쩌렁쩌렁 외치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무기가 없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손도 없다.

이대로 앞장서봐야 그는 총알받이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기어이 앞장서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의 뒤에 있는 중년인이 벨리언트의 보스인 미스터 트릴로보다 강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좋아. 말을 잘 듣는군.”

“이쪽입니다!”

앞쪽으로 길을 안내하던 조직원은 두터운 철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아지트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굳게 닫혀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경비를 서는 조직원 둘이 더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업무를 내팽개치고 찾아온 그에게 총을 겨누며 물었다.

“갑자기 왜 여기로 온거지? 뒤에는 누구냐.”

“그, 그게…….”

“잠깐만… 너, 손이……!”

휘익. 쿵.

조직원의 뒤를 따라 걷던 중년인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짧은 충돌음. 그 뒤에 잠시 공간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공간이 되돌아온 후에는 문을 지키던 조직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위아래로 분리당한 벨리언트의 조직원들은 그것을 끝으로 조용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에게 단말마를 내지를 시간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꿀꺽.

중년인을 안내하던 조직원은 그 참상을 보며 침을 삼켰다.

자신이 지금 말도 안되는 괴물을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네. 안가나?”

“네? 네……!”

“하하, 문이 닫혀있었군.”

손이 없는 조직원과 굳게 닫힌 문.

그 두 가지를 차례대로 보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조직원은 그제서야 자신이 문을 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잠겨있는 문을 열 수 없는 것은 중년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알고있는 한, 저 문은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한 열어젖힐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중년인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는 듯이 문앞에 자리잡았다.

“자네. 집안에 숨어있는 아기돼지를 꺼내는 방법을 알고 있나?”

“……아기 돼지?”

“그래. 지금부터 그 방법을 보여주지.”

아기돼지. 집. 늑대.

옛 동화의 내용이 조직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가 알고있는 한, 늑대가 돼지를 꺼내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였다.

그것도 참으로 심플한 방법이었다.

바로 집을 완전히 부숴버리는 것이다.

“어, 어떻게…….”

“[매스 텔레포트].”

질문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선. 커다랗고 선명한 선 하나가 허공에 그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경계로 건물의 위아래가 나누어졌다.

그것은 거대한 균열이었다.

쿠구구구궁!

중년인이 만들어낸 직선을 중심으로 건물의 상부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사라진 건물의 위쪽은 다른 장소에 나타났다.

건물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대략 10미터쯤 뒤.

기둥과 아래쪽을 잃어버린 건물의 반쪽이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아…….”

“참으로 간단한 방법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자네가 좋아하니 나도 마음에 드는군.”

큰 소리를 내며 웃은 중년인이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딛였다.

중년인의 뒤를 따르는 조직원이 보기에, 남아있는 아지트의 반쪽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정확히 반으로 그어진 선 위쪽에 있던 것은 모조리 잘려나갔다.

기둥. 시계. 샹들리에. 에어컨.

중년인이 그었던 경계는 그 무엇에도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건물 안에 서있던 벨리언트는 전부 반으로 양단되었다.

직전의 일격으로부터 무사했던 것은 오직 하나.

홀로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던 미스터 트릴로 뿐이었다.

“……누구냐.”

미스터 트릴로가 의자에 앉은 채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뒤쪽에서 걷던 조직원은 미스터 트릴로의 말에 움찔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상관없이, 지금 자신은 미스터 트릴로의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가책을 느끼는 것도 합당한 일이었다.

터벅. 턱. 터벅. 턱.

사태를 일으킨 중년인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미스터 트릴로의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의 맞은편에 있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반갑군. 생각보다 침착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광경을 보니 놀랄 생각도 안드는군. 어차피 죽은 목숨처럼 보여서 말이야.”

“미스터 트릴로. 그렇게 불린다고 들었네만.”

“그러는 당신은 대체 누구지?”

지팡이에 기댄 중년인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중년인의 얼굴은 미스터 트릴로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거리에서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브루노 리트리어. 알고 있나?”

“……절름발이.”

“아직까지는 제법 유명한 모양이군.”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지금껏 살아있었다고?”

“그게 세상의 묘미지. 오늘 살거라 생각했던 자네가 죽는 것처럼 말이야.”

후우. 미스터 트릴로의 입에서 담배연기가 흘러나왔다.

착잡한 표정을 짓는 미스터 트릴로의 담배연기는 나름대로의 한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허공에서 흩어지는 연기를 보던 미스터 트릴로가 물었다.

“짐작도 안가는군. 대체 무슨 이유로 절름발이가 나를 찾아온거지?”

“우리의 주인이 주시하던 물건이 있지. 그걸 자네들이 잘못 처리했어.”

“……먹으면 안되는걸 쳐먹었다가 탈이 났군.”

“그런 셈이지. 남기고 싶은 유언은 있나?”

“나는…….”

쿵. 바닥을 내려찍는 지팡이 소리.

담배를 들고 있던 미스터 트릴로가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가 쓰러진 자리에 남은 것은 고요한 정적뿐이었다.

5분 50초.

브루노 리트리어가 움직이고 벨리언트가 전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브루노는 눈을 뜬 채 쓰러진 미스터 트릴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그를 따라왔던 조직원이 있었다.

“자네 하나만 남았군. 이제 어쩔거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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