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나이트테일 (2)
* * *
치안대가 공표한 특급 수배범 No.7 유령군단.
스스로 군단이라 칭하는 이 집단의 표면적인 대표는 사령관이라 불리는 남자다.
렉스 오브라이언.
일평생 마법과는 일면식도 없던 남자는 얼떨결에 특급 수배범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오랜 친구가 렉스를 표면상의 수장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렉스는 유령군단의 사령관이 되었다.
오랜 시간을 사령관으로 군림하던 그는 어느덧 죽은 자와 죽을 자들로 이루어진 군단을 이끄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대부분의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씩 계승자라 부르는 그의 상관을 만나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번 실험체는 어떻습니까?”
16구역에 위치한 군단의 연구소.
표면상으로는 작은 기업의 화학공장이라 알려진 건물에 렉스가 부하를 이끌고 들어섰다.
두터운 가면을 쓴 그의 모습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령관이었다.
복도에 늘어선 백의의 연구자들을 둘러보던 사령관이 묻자, 그의 옆에 붙어있던 노회한 연구자가 말했다.
“아직까지는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성공할 것 같습니까?”
“아직까지 확답은 힘들지만… 지난번보다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령관은 자신의 옆에 있는 연구자를 바라보았다.
닥터 게헤드.
그는 현상수배가 걸려있는 미치광이 연구자였다.
치안대에 쫓기던 것을 그가 여흥삼아 구해주었더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
나름대로의 성과가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군단이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결과물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실패인 모양이군요.”
“그게 아니라…….”
“부족한게 대체 뭡니까. 표본이 더 필요한겁니까?”
사령관의 차가운 목소리에 닥터 게헤드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16구역의 빈민가에 한해서 제왕과도 같이 군림하는 사령관이다.
지금까지의 공이 있다고는 해도, 닥터 게헤드가 사령관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닥터 게헤드는 손에 든 자료들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이식받을 놈들은 이미 충분합니다. 하지만 반대쪽이 문제입니다.”
“마법사의 혈액?”
“가장 좋은건 역시 온전하게 보존된 마법사 그 자체겠습니다만…….”
“그걸 벌써 다 쓴겁니까?”
사령관이 게헤드를 보며 물었다.
연구소에서는 여러가지 연구를 진행하지만, 이 연구는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인위적으로 마법을 각성시키는 연구.
아직 아무런 마법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한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투자였다.
이미 그 결과물로 일정시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앰플이 만들어졌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지나치게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그마저도 몇 개 없어서 대부분이 긴급용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그러니 사령관으로서는 이 연구에 진척이 있지 않으면 무척이나 곤란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만, 앰플도 만들고 실험체에도 투약하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혈액은 현재 있는걸 아껴서 사용하십시오.”
“그건 좀…….”
“당분간 구하기 힘들겁니다. 나이트테일 측에서 어느정도 눈치 챈 모양이니까요.”
나이트테일 기사단에 있는 자신의 조력자를 떠올린 사령관이 입술을 곱씹었다.
레이거 블랙.
꽤나 젊은 나이에 나이트테일의 전속 의사 자리를 차지한 청년이다.
그를 설득하는 것에는 상당한 액수가 들었다.
나름 실력도 있고 기사단 내의 평판도 꽤 괜찮은 인물이었다.
그에게 목숨을 빚진 기사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지금 물량이 줄어들면 정말 힘듭니다.”
“그래도 진행하세요.”
“최악의 경우에는 앰플의 생산이 몇 달 가까이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
닥터 게헤드의 말에 사령관은 고민했다.
나이트테일에 있는 레이거는 당분간 혈액 수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일단은 협박에 가까운 통화를 한 번 해봐야 하겠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크게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번에 나온 앰플의 상당수는 이미 계승자에게 상납했다.
앰플을 받은 계승자 역시 크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와는 다르게 이번에 만들어낼 것은 비즈니스 목적을 위한 물량이었다.
중간에 물건의 공급이 끊겨서야 곤란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령관 자신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어보였다.
“마을에 남은 마법사는 없습니까?”
“이번 실험체가 마지막이라…….”
“새로 각성한 마법사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쯧. 닥터 게헤드의 대답을 들은 사령관이 혀를 찼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는 해도, 그가 보기에 빈민가는 역시 빈민가였다.
좁아터진 마을에서 마법사가 무더기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조금 짜증나는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 죄송합니다.”
“정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일단 추가로 수급처를 만드는 방안을 고려해보겠습니다.”
“추가로 말입니까?”
“필요하다면 어디가서 적당히 잡아오기라도 해야겠죠.”
더 넓은 영토. 그리고 더 많은 사람.
그것을 위해서는 역시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사령관 자신을 위해서도, 군단을 위해서도 여기서 성장이 멈춰서는 곤란했다.
거대한 군대라는 것은 돈을 잡아먹는 하마와 다름 없는 것이다.
유령군단의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 * * * * *
짹. 짹.
창문의 너머로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침의 햇살을 맞으며 멍하니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 시선을 옮겼다.
자신이 앉아있는 침대의 바로 옆자리.
그곳에서 잠옷차림의 시넬이 한쪽 팔을 끌어안은 채로 곤히 자고 있었다.
“으응…….”
평소와도 같은 풍경이다.
그래. 잃어버렸던 일상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허전했던 빈자리는 팔을 끌어안은 부하의 모습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잠을 자는 시넬을 바라보고 있자니, 뺨에 닿았던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맺어짐의 마법이에요.’
맺어짐의 마법.
뺨에 입을 맞춘 시넬은 분명 그렇게 이야기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할지도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시넬의 충동적인 입맞춤에 나는 올바른 대답을 돌려주지 못했다.
“…….”
그녀의 고백으로부터 도망가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야기를 완전히 끊어버린 것은 시넬 본인이었다.
그것도 스피넬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이다.
대체 두 자매의 사이에 어떤 약속이 오고갔던 것일까.
졸음에 젖은 눈으로 멍하니 시넬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떼어내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람이나 쐬어야하나.”
고민해야만 하는 것은 시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헤리오가 이야기하고 떠난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건도 꽤나 머리아픈 일이었다.
반쯤 자고 있는 머리로 생각할만한 내용들은 아니었다.
옥상에서 찬바람이라도 쐬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
사무실의 밖으로 나선 나는 곧장 옥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
끼이익.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 옥상에 들어서면, 난간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잿빛 머리카락을 가느다랗게 땋아내린 소녀가 하나.
최근에 자주 만나는 마천루의 마법사. 스피넬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옥상을 차지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왜 여기에 있지?”
“선물을 주러 왔으니까.”
“선물이라고?”
“그 분이랑 거래했잖아. 전달하라는 물건들이 있어서 가지고 왔어.”
단순한 물건배달 치고는 상당히 이른 시간인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늦잠을 잔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터벅. 터벅.
걸터앉아있는 스피넬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 난간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비어있는 한쪽 손을 스피넬에게 내밀었다.
“무슨 선물이지.”
“하나는 돈.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도 잘 모르겠네.”
스피넬은 나에게 두가지 물건을 내밀었다.
하나는 통장이었다.
그것도 도시에서 가장 큰 헤러넌츠 은행의 통장이다.
통장을 열어 잔고를 확인해보면 100만 크레딧이라 찍혀있는 금액이 눈에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액수군.”
액수보다는 헤러넌츠 은행의 통장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아무래도 테르도스 쪽에서 흘러나온 돈으로 보인다.
이런식으로 만들어진 자금은 어디에서나 유용하게 사용이 가능한 편이었다.
나쁘지 않은 소득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거. 나도 처음 보는 물건이야.”
나머지 하나는 탄환이었다.
계승자 측으로부터 넘어온 물건이지만, 스피넬은 이것에 대해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그럴만도 했다.
이 탄환은 작중에서도 후반부에서나 잠깐 등장하는 물건이니까 말이다.
계승자가 이르길 처형집행자.
탄두의 내부에 뼛가루를 넣어서 만든 해괴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내가 계승자에게 건넨 미스릴 탄환을 어느정도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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