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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78화 (78/156)

〈 78화 〉 나이트테일 (5)

* * *

전자식 갑주.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헤리오의 맞춤형 무기였다.

굉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한 가방의 모습에, 헤리오의 앞에 서있던 주치의가 입을 열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나가라고 했다.”

“아, 알겠습니다.”

당황한 주치의가 헤리오에게 다시 되물었지만, 헤리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한 주치의는 자신의 짐을 챙겨 휴게실을 나섰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주치의까지 나간 마당에 간부의 명령을 거절할 용기있는 의료진은 남아있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의료진 역시 주치의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결국은 헤리오와 레이거 둘만이 휴게실에 남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한바탕 인파가 지나간 후 한산해진 휴게실에서 레이거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까지 당황한 기색이 남아있는 채였다.

지잉.

장착을 끝마친 헤리오의 갑주가 한차례 진동했다.

헤리오는 레이거가 상황파악을 했는지의 여부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그에게 검을 겨누고 추궁을 시작할 뿐이었다.

“레이거 블랙. 최근에 우리 단원들에게 대규모로 빈혈증상이 일어난 사건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너에게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더군.”

“전투로 인한 출혈이 문제였죠. 최근에 들어서 출동이 너무 잦았으니까요.”

헤리오의 시선이 답변을 늘어놓는 레이거를 훑었다.

전투중에 생긴 상처. 그리고 최근 들어 잦아진 출동.

두 가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현 상황이 만들어졌다는게 레이거의 지론이었다.

레이거는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 반해, 사건에 대한 답변만은 침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미심쩍은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가 막힌 우연이 다 있군.”

“저에게 그러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치료만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만큼의 부상자가 나올정도면 원탁에서 비상소집을 했을 법도 한데, 비상소집은 그동안 단 한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부분은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군요. 적들의 규모가 적은 편이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의료진이 기사들의 동향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도 이상한 일이다.

레이거는 그 부분을 경계하고 있는 모양인지, 자신의 업무와 관계없는 부분에는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헤리오에게는 이미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상당히 모인 상태였다.

정황을 추론하는데 부족했던 한조각의 퍼즐은 그가 찾아갔던 암흑상인이 맞춰주었다.

이제와서 레이거가 결백을 주장한다고 해도, 헤리오가 그것을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출동쪽은 적염기사 리트러스가 담당하고 있다. 녀석도 최근들어 수상한 모습을 많이 보이더군.”

“지금 리트러스님도 의심하는겁니까?”

“네가 말했던대로 최근 들어 이상하리만큼 출동이 잦았다. 내가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럼 왜 저한테 찾아오신겁니까.”

“그리고 나는 너와 리트러스의 사이에 모종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맹세컨데, 저는 그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겠죠.”

끄덕.

레이거의 말에 헤리오가 고개를 움직였다.

그 모습에 레이거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려는 찰나.

헤리오가 손에 쥐어져있던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레이거에게 겨누며 이야기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이다.”

“……네?”

“네가 결백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겠지.”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혹시 결백하지 않은건가?”

레이거의 얼굴이 마침내 경악으로 물들었다.

상식을 벗어난 대화에 레이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말을 하는 헤리오 역시 방금 전의 말이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동감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레이거와 시덥잖은 논쟁따위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확신이 있는 이상 지금의 대화는 그냥 형식상의 의례에 불과했다.

감언을 늘어놓는 간사한 혓바닥을 언제까지고 놓아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 헤리오님, 혹시 미쳐버린겁니까? 지금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이해하지 말도록.”

“진짜 이야기하다 나까지 돌아버리겠네.”

“그래서 자신은 있나? 자네의 이력서를 보니 마법사는 아닌 것 같더군.”

“좀 닥쳐봐. 일이 꼬여서 짜증나 죽겠으니까.”

극한까지 몰린 레이거는 결국 본성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은 결코 상사와의 갈등에 폭발한 부하직원의 모습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레이거의 상태에 헤리오가 흥미를 보였다.

“변명하는 것은 이제 그만둔건가?”

“어차피 당신 성격이면 원탁까지 사건을 가져갈거 아니야.”

“잘 알고 있군.”

“사건이 원탁까지 올라가면 어차피 이쪽이 불리하잖아? 그럴바에는 아무도 없을 때 널 죽이고 가는게 낫겠지.”

그가 아는 한 레이거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지금 그의 복장에서 나올 수 있는 무기도 아무리 노력해야 권총정도가 한계였다.

전투가 벌어지면 권총으로는 헤리오의 갑옷에 흠집조차 낼 수 없을 터.

헤리오로서는 그가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과 맞서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준비한게 있다면 보여보도록.”

“기사 나으리답게 아주 자신감이 넘치시네. 보자마자 죽이지도 않고.”

“안타깝게도 기습하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다.”

“그래. 그러시겠지. 고결해서 아주 좋으시겠어.”

헤리오를 향해 비아냥거리던 레이거가 자신의 가운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동안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레이거가 꺼낸 것은 자그마한 앰플이었다.

레이거는 반투명한 노란빛 액체로 가득차있던 앰플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것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대었다.

푸욱.

살을 파고드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앰플속의 액체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끄으윽.”

레이거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았다.

주사를 놓은 목 부근에서 레이거의 혈관이 도드라졌다.

앰플속에 들어있던 정체모를 액체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액체를 전부 투여한 레이거는 목에 박혀있던 앰플을 뽑아내었다.

그리고는 텅 비어버린 앰플을 바닥에 내던졌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져나간 빈 앰플을 헤리오의 시선이 쫓았다.

“준비는 전부 끝난건가?”

“하하… 혹시 이중회로라고 알고 있어?”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실험 말이군. 결국 꿈을 쫓는 마법사들의 허황된 망상이다.”

“고지식한 양반답게 시대에 뒤떨어졌네. 잘 봐. 이제부터 내가 역사적인 순간을 보여줄테니까.”

약물을 투여한 레이거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주위에 넘실거리기 시작한 마력에 헤리오는 레이거의 움직임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헤리오를 마주한 레이거는 양쪽 손을 들어올렸다.

이윽고 레이거의 붉은 눈동자가 왼쪽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파이어 애로우].”

화르륵.

붉은 불꽃이 레이거의 손바닥에 피어올랐다.

레이거의 손바닥에 피어오른 불꽃은 한곳으로 서서히 응집되더니, 이내 화살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화염계통 마법. 파이어 애로우.

나이트테일의 적염기사, 리트러스의 마법이 레이거의 손바닥에서 펼쳐진 것이다.

“[아이스 애로우].”

레이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반대쪽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던 레이거의 손바닥에 한기가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한기는 얼음의 결정을 이루고는, 한발 더 나아가 날카로운 화살의 모습이 되었다.

얼음계통 마법. 아이스 애로우.

불의 화살과 상극이 되는 얼음의 화살이 레이거의 손에서 형태를 이루었다.

파이어 애로우와 아이스 애로우.

두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 레이거의 모습에 헤리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아까 그 약물이…….”

“현대 기술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지.”

“일시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약물이라. 확실히 놀라운 물건이군.”

“이제 나는 두 개의 마법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거다.”

이중회로 기술은 민간에서 오랜 세월 연구되어왔다.

그럼에도 헤리오가 아는 한에는, 아직까지 그것을 성공시킨 기관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위세가 대단하던 마탑조차도 이중회로에 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할 정도였다.

그런 과제를 일시적이나마 구현해내다니.

비윤리적인 연구의 결과물이라고는 하지만, 헤리오의 입장에서 보아도 놀라운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걸로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하지만 그걸 이용해 전투를 치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불의 화살과 얼음의 화살.

어느쪽도 헤리오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앰플을 투여한 레이거의 생각은 헤리오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레이거는 손에 든 화염의 화살을 헤리오에게 겨누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갑옷을 입었어도 열기까지 막아내진 못하겠지.”

“…….”

“그 갑옷채로 불살라주마.”

피식.

머리를 감싼 투구속에서 헤리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최고급 방열소재와 최첨단 냉각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특제 전자식 갑주.

오늘은 그 성능을 직접 테스트해볼 생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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