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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79화 (79/156)

〈 79화 〉 나이트테일 (6)

* * *

“갑옷을 입었어도 열기까지 막아내진 못하겠지.”

“…….”

“그 갑옷채로 불살라주마.”

피식.

머리를 감싼 투구속에서 헤리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최고급 방열소재와 최첨단 냉각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특제 전자식 갑주.

오늘은 그 성능을 직접 테스트해볼 생각이었다.

“갑옷까지 태워버리겠다니, 재미있는 계획이군.”

“네 명성은 옛날부터 들어왔단 말이지. 언제까지 여유가 넘칠 수 있는지 볼까.”

화르르륵.

레이거는 손바닥에서 타오르던 불꽃의 화살을 헤리오에게 겨누었다.

찰나의 정적. 그 이후에 번져나가기 시작한 작열.

불꽃으로 이루어진 화살의 끝이 흔들리더니, 이내 선명한 직선을 그리며 헤리오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화살을 쏘아낸 레이거의 손에는 미약한 잔열이 남아있는 채였다.

‘확실히… 리트러스의 불꽃보다 약하군.’

헤리오의 시선이 불꽃의 화살을 쫓았다.

공기를 태우며 빠르게 날아온 레이거의 마법은 그대로 헤리오의 갑옷에 틀어박혔다.

콰아앙! 쾅!

폭음과 함께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갑옷과 충돌한 화살이 커다란 불꽃을 피워내며 폭발한 것이다.

“……콜록, 콜록.”

폭발로 인해 퍼져나간 연기는 일시적이나마 시야를 완전히 가릴 수준이었다.

레이거의 눈이 연기속의 헤리오를 훑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일격에 숯더미로 만들어버렸을 일격이었다.

그럼에도 레이거는 다음의 마법을 준비하며 연기속을 예의주시했다.

섬광기사의 이름에는 그럴만한 무게가 있었다.

“……[파이어 애로우].”

터벅. 터벅.

레이거의 짐작을 현실로 바꾸어주듯이, 시야를 가린 연기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흐릿해지기 시작한 연기의 너머.

레이거를 향해 걸어가는 헤리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앞으로 걸어나가는 헤리오의 주변에는 반투명한 푸른색의 방어벽이 펼쳐져있는 채였다.

“전투보조시스템. 방어모드 기동.”

“……저게 레서트의 첨단 기술이야?”

“전력소모가 막대해서 상용화는 힘든 물건이다.”

“그러시겠지. 나도 처음보는건데.”

레이거의 눈이 주변을 훑었다.

휴게실의 구조. 테이블과 의자의 위치.

그리고 헤리오와 레이거 사이의 거리.

주변 정보를 눈에 담은 레이거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아무리 대단한 방어벽이라고 하더라도 내구적인 한계는 있을 터.

불꽃의 마법이 가지고 있는 화력으로 헤리오의 방어벽을 깨부술 생각이었다.

“[아이스 애로우]!”

피이잉!

레이거의 오른손에서 얼음의 화살이 사출되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았음에도 헤리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헤리오를 향해 날아가던 화살은 점점 높이를 낮추더니, 이내 헤리오의 발 앞에 있던 바닥과 충돌했다.

쩌저저적. 화살을 맞은 주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어느새 발앞에 생겨나있는 장애물에 헤리오의 발이 멈추었다.

“발을 묶을 생각인 모양이군.”

“[파이어 애로우]!”

다시 한차례 불꽃의 화살이 쏘아졌다.

레이거의 손에서 쏘아진 타오르는 화살은 이전보다 더 크고 강렬한 모습이었다.

콰앙!

불꽃과 충돌한 헤리오의 방어벽이 흔들렸다.

미처 상쇄하지 못한 불길은 주변으로 번져나가며 휴게실의 바닥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레이거의 공격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

아까보다 작은 화살이 두 발.

빠르게 피워낸 불꽃의 화살을 레이거가 다시 쏘아냈다.

쾅! 콰앙!

작은 불꽃이 피어난 직후, 뒤를 이어서 커다란 불꽃이 생겨났다.

불꽃은 또 다른 불꽃을 집어삼키며 폭발했다.

이전보다 더 커다랗게 퍼져나가는 연쇄폭발에 헤리오의 방어벽이 크게 흔들렸다.

흔들리는 방어벽을 본 레이거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랑하던 방어력도 곧 무용지물이 되겠어?”

“이러다간 평생 기다려도 흠집 하나 안나겠군.”

“……뭐라고?”

그러나 헤리오는 덤덤하게 레이거의 말을 받아칠 뿐이었다.

레이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헤리오를 바라보았다.

레이거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헤리오의 투구뿐이었다.

투구 너머의 눈동자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방어벽은 계속 재생한다. 내 마법이 유지되는 한.”

“그, 그런게 어딨어……. 사기잖아!”

“열기로 인한 충격도 받지 않는다.”

“더러운 레서트의 개가, 돈만 덕지덕지 쳐발라놨네!”

“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가진 자는 그렇지 못한 자의 위에 군림한다.”

철컥. 헤리오가 착용하고 있던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레이거를 향해 검 끝을 겨누었다.

새하얀 전류가 흐르며 헤리오의 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을 가리고 있는 바이저의 너머.

헤리오의 눈동자가 선명한 푸른색을 띄었다.

“그렇기에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이들을 보호해야만 하는 것이다.”

“개소리 집어치워!”

“나는 그걸 기사도라고 배웠다. 남의 피나 빨아먹는 쓰레기 녀석.”

설교를 마친 헤리오가 검에 붙은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아앙!

한줄기의 짙푸른 섬광이 굉음을 내며 뻗어나갔다.

뇌격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그을린 자국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뻗어나간 헤리오의 뇌격은 자신을 노려보던 레이거를 꿰뚫고 지나갔다.

“커허어어억……!”

파직. 일격을 날린 헤리오의 검에 스파크가 튀었다.

헤리오는 들고 있던 검을 내린 채, 자신의 공격을 받은 레이거를 바라보았다.

그가 선 자리로부터 열 걸음 앞.

눈을 까뒤집은 레이거가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 위력을 조정한 일격이었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레이거의 숨이 붙어있는 채였다.

“뒷처리가 더 걱정이군.”

헤리오의 눈이 망가진 휴게실을 훑었다.

불꽃과 그을음.

그 위로 스프링클러가 물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 * * * * *

“돌아왔어, 헤리오?”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최상층.

레서트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벨 바이어틴은 활짝 열린 사무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열려있는 문의 너머로 그녀의 충실한 부하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무실의 안으로 들어온 헤리오는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며 벨에게 인사를 전했다.

“다녀왔습니다, 아가씨.”

“일은 잘 해결된거야?”

“연루된 녀석을 하나 처리하고 왔습니다.”

헤리오의 말에 벨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아는 한, 헤리오 나이트라인은 맡은 일을 철저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저런 식으로 애매하게 대답한다는 것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벨은 살짝 들뜬 목소리로 헤리오에게 물었다.

“아직 전부 해결되지는 않았나봐?”

“적염기사 리트러스를 이 사건과 함께 원탁회의에 회부했습니다.”

“적염기사… 원탁의 일원 아니야?”

“의사 하나와 손을 잡고 단원들의 혈액을 빼돌렸습니다. 배후에는 특급 수배범이 있던 모양입니다.”

한쪽 팔로 턱을 괸 벨이 헤리오의 모습을 살폈다.

땀을 약간 흘린 모양인지 머리가 망가졌을 뿐, 그 이외에는 달라진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투로 인한 상처같은 것은 일절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구나. 아직 적염기사랑은 한판 붙지 않은 모양이네?”

“아가씨의 말씀을 듣다보면 어쩐지 기대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대하고 있는 것 맞아.”

끄덕.

묵직한 수긍에 헤리오가 눈을 크게 떴다.

“저와 적염기사가 싸우는걸 말입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그거. 온갖 최첨단 기술이 다 들어간거잖아?”

벨의 손가락이 헤리오의 가방을 가리켰다.

전자식 갑주. 윌슨 엘데어가 설계한 레서트의 역작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섬광기사 헤리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물건이기도 했다.

헤리오는 자신의 가방을 들어올리며 벨의 말에 항변했다.

“처음 완성되었을 때에는 분명 불만을 잔뜩 표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건 디자인이랑 지명도 문제였어. 윌슨이 그런 사람인지 몰랐으니까.”

센스가 없네.

벨은 한마디 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후우. 가벼운 한숨을 내쉰 헤리오가 벨에게 말했다.

“윌슨은… 솔직히 말해서 아직까지 그 위치에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나도 알고 있어. 그 녀석이 대단하다는 것쯤은 말이야.”

“그런데 왜 계속 놔두시는겁니까?”

“본인이 원했거든. 그게 더 자유롭잖아.”

“승진하고 싶은 욕망은 없다고 합니까?”

“이미 연봉은 충분히 올려줬어. 그리고 지금처럼 있는게 내가 제도로 돌아갈 때 데려가기 편하기도 하고.”

벨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헤리오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바이어틴 가문의 사람들에게 벨의 유능함을 인정받으려면 그만한 실적이 필요했다.

헤리오가 생각하기에 윌슨 엘데어는 그것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

그의 주인인 벨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후계자 자리였으니까.

“그렇습니까.”

“어쨌든 처음으로 넘어가서, 특급 수배자가 얽혀있단건 무슨 일이야?”

“유령군단이 단원들을 일부 매수했습니다.”

“유령군단이라면 그 투명해지는 사람? 7번인가 그렇지 않았어?”

“암흑상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건 이번에 붙잡은 배신자를 심문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헤리오의 이야기를 들은 벨이 고민했다.

특급 수배범.

치안대가 막대한 현상금을 내건 이들은 하나같이 까다로운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를 붙잡는데에도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붙잡았을 때의 수지타산은 맞지 않는다.

한동안 그들이 방치상태에 가깝에 놓여있던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존재하고 있었다.

“헤리오.”

“네, 아가씨.”

“너, 토벌에 나갈 생각이지?”

“……토벌 일정이 잡히면 한동안 자리를 비우게 될 것 같습니다.”

벨이 아는 헤리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손해를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나서는 사람.

사건이 나이트테일 전체를 흔드는 일이 되어버린 이상, 기사단 차원에서도 그에 따른 응징을 준비하지 않을 수는 없다.

흐음. 조그마한 소리를 내며 잠시동안 고민하던 벨이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눈앞의 충성스러운 기사를 바라보았다.

“좋아. 레서트에서도 지원해줄게.”

“……네?”

“이번 토벌. 레서트에서도 지원해준다고.”

“아가씨.”

“그 대신, 다치지 말고 돌아와야해.”

레서트 인더스트리는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후원사들 중 하나다.

명목상으로도 토벌을 지원하는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레서트가 관여하는 일이라면, 벨 자신도 조용히 끼어들 수 있었다.

최전선에서 헤리오가 싸우는 건 어떤 모습일까.

벨은 갑옷을 입은 헤리오의 모습을 상상하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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