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절름발이 브루노 (1)
* * *
16구역의 연구소.
유령군단의 사령관, 렉스 오브라이언은 경직된 얼굴로 눈앞의 문서를 읽어보았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문서는 크로스 네트워크의 한 정보상인에게서 수신한 것이었다.
주정뱅이 잭슨. 사령관이 아는 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상인들 중 하나였다.
잭슨의 전보를 받은 사령관은 혀를 차면서 회전의자를 뒤로 돌렸다.
다리를 꼬아 앉은 그의 시야에 16구역의 풍경이 들어오고 있었다.
“쓸모 있는 녀석이라 생각했더니, 결국은 돈만 낭비하고 끝나버렸군요.”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십니까?”
“나이트테일 기사단에서 군단을 토벌하기 위한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나이트테일이……?”
사령관의 시선이 부관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창밖으로 되돌아갔다.
잭슨이 보낸 문서의 내용은 유령군단에게 있어 악재와 다름 없는 것이었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이 대규모 토벌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도 16구역의 유령군단을 잡기 위해서.
나이트테일 기사단은 도시 안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전투병력들이다.
아무리 특급 수배범으로 이름을 떨친 유령군단이라 하더라도, 나이트테일의 공세를 전면에서 받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16구역에 있는 기반 전체를 내버려두고 떠나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여자는 왜 끼어들어서……!”
사령관의 시선이 문서의 하단에 적혀있는 이름으로 향했다.
벨 바이어틴.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도시 지부를 이끄는 지부장이었다.
그녀는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사장인 빅스 바이어틴의 딸이면서, 제국을 이끄는 12가문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와 레서트 인더스트리가 나이트테일의 토벌에 지원을 약속했다.
토벌에 들어가는 물자와 장비. 양쪽에서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지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안그래도 정예밖에 없는 나이트테일 기사단이 최고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찾아오는 것이었다.
당장 군단이 갖추고 있는 무장이라고 해봤자, 블랙마켓에서 구색만 갖춘 장비들이 대부분이다.
이 상태에서 두 세력이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토벌대에게 어느정도 타격을 입힐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게 사령관의 생각이었다.
“쯧…….”
나이트테일 기사단.
그리고 레서트 인더스트리.
어떻게 해야 두 세력과 마찰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사령관은 고민에 잠긴 채로 창문을 노려보았다.
공장. 밭. 물류창고. 판자촌.
군단이 일구어낸 모든 것들이 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렉스 오브라이언이 사령관의 이름으로 움직인 이래, 이 마을은 항상 그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는 아직 이곳을 버리고 떠날 자신이 없었다.
“좋아요, 결정했습니다. 톰.”
“네, 사령관님.”
“잭슨을 통해 벨 바이어틴의 일정을 알아오세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결론을 내린 사령관이 레서트의 지부장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다.
이쪽에서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나이트테일 기사단 전체의 발을 묶는다.
그것이 사령관의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의 골자였다.
“알겠습니다.”
“섬광기사… 이 작전을 계획한 녀석에게 잊지못할 한방을 먹여야겠죠.”
그가 아는 한 이번 작전을 지시한 것은 나이트테일의 섬광기사, 헤리오 나이트라인이었다.
토벌작전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헤리오가 무조건 나이트테일의 본부를 찾아갈 수밖에 없을 터.
사령관은 그 틈을 노려 일을 저지를 생각이었다.
보이지 않는 검과 움직일 수 없는 방패.
둘 중 어느쪽이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사령관은 미소를 지으며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분명 후회하게 될겁니다.”
바깥 풍경을 비추는 두터운 유리창의 너머.
건물로부터 수백미터 떨어진 밭을 지나가던 소년이 자리에 멈춰섰다.
소년은 자리에 선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사령관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창밖을 내다보던 사령관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 * * * * *
블랙마켓에서의 용건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가는 길.
닭꼬치를 든 시넬을 데리고 계단을 올라가는 내 손에는 통화가 연결된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통화를 하는 상대는 브라이언 레일.
리만의 사무실로부터 독립한 조수 중 하나면서, 지금까지 내 정보창구가 되어주고 있는 소규모 정보상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평소대로라면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용건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통화는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브라이언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는 점이다.
그는 급하게 전할 소식이 있다면서 방금 전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물론 통화의 내용 역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벨리언트가 전멸했어.”
“벨리언트가 전멸했다고?”
벨리언트가 전멸했다.
믿기 어려운 사실에 나는 브라이언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벨리언트는 13구역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는 범죄조직이다.
그 규모도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 벨리언트가 갑자기 전멸했다니.
한 번 듣고서 납득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확실한 정보야. 검증을 위해 현장까지 와서 확인했으니까.”
“그 현장이 어디지? 조직간의 항쟁이라도 있었나?”
“벨리언트의 아지트.”
벨리언트를 해체의 위기에서 구해낸 것은 나다.
살인청부를 받은 ‘철갑’을 직접 잡아내고서, 미스터 트릴로를 죽음의 운명에서 빗겨나게 만들었다.
이제와서 듣기에는 굉장히 황당한 소식이었다.
애시당초 누가 그런 짓을 벌인단 말인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브라이언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스터 트릴로를 포함해 전원이 죽었어.”
“누가 벌인 짓인지는 알고 있나?”
“밝혀진 바는 없어. 절단면이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사실만이 그나마 단서로 남아있을 뿐이지.”
“절단면이 깔끔하다고?”
“심지어는 건물마저도 깔끔하게 베여있던데.”
“……하.”
느낌이 별로 좋지 않다.
지나치게 깔끔한 절단면은 공간계열의 마법들이 가지는 특징이다.
그리고 전쟁도시 안에서 공간계열 마법으로 유명한 사람은 딱 둘뿐이었다.
하나는 치안대의 인간도살자 어셔 헤이즈.
다른 하나는 절름발이 브루노.
지금 당장 절단면을 가지고 추론할 수 있는 용의자는 이 둘이 전부였다.
“상상하기 싫은 최악의 상황이 왔군.”
끼익.
휴대전화를 들지 않은 손으로 사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검성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인지, 사무실 안은 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설마 이 단서가 도움이 된건가?”
“그래.”
어셔가 네이와 붙어다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셔가 벨리언트 전체를 도륙해버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가 움직였다는 소리가 되는데, 문제는 그 하나가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점이었다.
이 세계에서 대마법사라 불리는 6서클의 너머에도 마법의 경지는 존재한다.
7서클. 도시에서 그 경지에 다다른 마법사는 단 둘 뿐이다.
결사의 계승자 아벨 테르도스.
그리고 절름발이 브루노 리트리어.
당연히 범인은 후자일 것이다.
후자인 절름발이는 편법을 사용한 계승자와는 다르게 자신의 힘으로 7서클에 오른 인물이었다.
“짐작가는 바가 있는거야?”
“조사는 그쯤이면 됐다. 위험하니까 물러서라.”
“무슨 일인데 그래?”
“더 파고들었다간 귀찮아질거다. 그러니까…….”
브루노 리트리어는 정신나간 인간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위험한 인간이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결사 전체와, 그게 불가능하다면 절름발이 브루노와는 최대한 거리를 두는게 좋았다.
게다가 브라이언에게는 절름발이를 감당할만한 전력이 없는 상태였다.
그 위험성을 알고 있는 내가 브라이언에게 경고해주려는 순간, 낯선 목소리가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기가 암흑상인이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는 곳인가?”
사무실 안에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를 내는 대상을 바라보았다.
머리위에 눌러 쓴 낡은 중절모.
몸을 지탱하고 있는 앤틱풍의 지팡이.
마지막으로 어색하게 움직이는 걸음걸이.
분명 처음으로 마주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특징만은 지나치게 익숙한 모습이었다.
사무실에 찾아온 중년인을 발견한 시넬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손님이 왔어요.”
“…….”
“사장님?”
상대의 정체를 짐작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대마법사의 프레셔와는 격이 다른 무언가.
본능. 그것은 생물의 생존본능을 자극하는 극한의 공포였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한 육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절름발이 브루노를 마주한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압박을 보내고 있는 브루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모양이군.”
“사장님과 아는 사람인가요.”
“당연히 알고 있지. 내가 저 친구에게 쓸만한 장물아비를 소개시켜줬으니까 말이야.”
벌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젖혔다.
후. 한숨과도 같은 소리가 새어나온다.
자신의 신체임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그 어색한 움직임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최대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전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바로 하지않으면 안되는 말이 있었으니까.
“시넬.”
“네, 사장님.”
“도망쳐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