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절름발이 브루노 (2)
* * *
“시넬.”
“네, 사장님.”
“도망쳐라.”
“……?”
본능적으로 흘러나온 한마디.
그를 이해하지 못한 시넬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순간, 브루노가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크고 호탕하다.
점잖음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광기어린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마음껏 웃어넘긴 브루노는 이내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거야 원, 재미있는 친구였군.”
눈을 마주치는 순간부터 직감할 수 있었다.
눈앞의 남자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감정.
그것은 살의였다.
“빨리 도망쳐라! 시간이 없어!”
쿠구구궁.
커다란 소리를 내며 건물의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청각을 뒤흔드는 어마무시한 굉음.
무너지는 건물 전체에 막대한 진동이 전해져왔다.
“아무래도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야.”
멀쩡하던 건물이 갑자기 내려앉을 이유는 하나다.
눈앞의 절름발이가 무언가의 수작을 부렸다.
아마도 건물의 기둥 일부를 어긋나게 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짓에 있어서 도가 튼 사람이었으니까.
건물을 이렇게 만든 방법이 무엇이던간에 상관없이 지금 당장 이 장소를 벗어나야만 했다.
“[헤이스트].”
그제서야 심각성을 느낀 모양인지, 시넬이 마법을 사용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나지 못한 사이에 서클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일까.
헤이스트를 활성화한 시넬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훨씬 빨라져 있었다.
쿵. 묵직한 충돌의 여파가 복부를 통해 전해져왔다.
일어서있던 내 몸에 그대로 들이박은 시넬이 앞으로 빠르게 돌진했다.
그녀가 무엇을 위해 움직였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창문 밖으로 나갈거에요.”
충돌에 밀려나간 몸이 뒤에 있던 유리창과 충돌한다.
콰앙! 맞부딪힌 등에서 통증이 엄습한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틈새도 없이, 맞닿은 유리창에 균열이 일어나며 무너져내렸다.
비어있던 창문을 싸구려 유리로 교체한 물건이다.
전력으로 충돌해온 두 사람의 무게를 버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파편화된 유리가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지지대를 잃어버린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 직후 이어지는 짧은 낙하의 순간.
나는 자신과 맞붙은 시넬을 강하게 끌어안은 채로 1층에 있던 수풀에 안착했다.
“으윽…….”
흔들리는 풀잎들이 수풀에 파묻힌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와 함께 둔탁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한바탕 두드려 맞은 느낌이다.
등으로부터 전해진 통증 탓에 신음이 터져나왔다.
다행히 떨어져내린 장소가 2층이었기 때문일까.
낙하의 충격을 등으로 전부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거동하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문 채로 우리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사장님.”
“…….”
품에 안겨있던 시넬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무너지는 건물의 풍경이 보였다.
2층과 3층의 경계를 중심으로, 잘려나간 건물이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기울어진 건물의 상부가 옆에 있던 건물과 충돌했다.
쿠우웅!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충돌음이 울려퍼졌다.
한차례 강한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을 휩쓸듯이 지나가는 강한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자욱한 먼지만이 시야를 가렸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풍경.
폐를 타고 들어간 먼지에 자연스럽게 기침이 터져나왔다.
“콜록, 콜록…….”
“사장님? 괜찮으신가요.”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특급 수배범들은 모조리 규격외의 존재다.
그리고 저 절름발이 브루노는 그중에서도 궤를 달리하는 존재였다.
혼자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날라버렸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괴물이다.
되살아나기 전에도 그러했지만, 되살아난 이후부터는 정신자체가 불안정했다.
이쪽을 쫓아오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하아……. 이 틈에, 움직여야만 한다.”
“알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시넬이 부축했다.
가능하다면 마법을 사용한 채 나를 업고 달리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시넬의 마법이 바꾸는 것은 오로지 시간뿐이니까.
나머지는 전부 자신의 몸으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타닥. 타다다닥.
시야를 가린 먼지를 뚫고 앞으로 달려갔다.
앞을 향해 달려가는 오른손에는 시넬의 손을 맞잡고 있는 채였다.
“오른쪽.”
몇번이고 오고다닌 길목이다.
주변의 길이라면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최대한의 기력을 짜내어 앞으로 달려갔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골목을 돌고, 가능한 빠른 속도로 발을 옮겼다.
그렇게 몇차례나 골목을 돌았을 즈음.
나는 강한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더 빠르게 가지 그랬나.”
먼지를 뚫고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얼굴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절름발이 브루노였다.
건물을 무너뜨린 그가 우리를 추격해온 것이다.
시야가 가려진 탓에 쉽게 쫓아오진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브루노는 지팡이를 짚고 어색한 걸음걸이로 우리 앞에 멈춰섰다.
“잘도 앞이 보이는 모양이군.”
“경치 좋은 곳에서 보면 잘 보이더군. 자네도 경치구경을 좀 해보겠나? 머리만 빌딩 위로 보내줄 수 있는데.”
“……아쉽게도 벌써 죽기에는 젊은 나이여서 말이야.”
“그거 안됐군. 저쪽은 제법 경치가 좋았거든.”
저 느릿한 걸음걸이로 뒤를 쫓아왔을 리는 없다.
분명 텔레포트를 사용해 고공에서 위치를 확인한 것이 틀림없었다.
브루노의 매스 텔레포트는 아무런 전조없이 발동한다.
눈을 깜짝하는 사이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될 수 있다.
오직 마력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어셔 헤이즈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장님. 먼저 들어갈게요.”
시넬이 품속에 있는 단검을 어루만지며 시선을 보냈다.
브루노를 상대로 덤벼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급하게 그녀를 말렸다.
절름발이와 맞서싸우는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자극하지마라.”
“……사장님?”
“틈을 봐서 신호를 할거다. 뒤로 도망갈 경로를 봐놓도록.”
이 비틀린 도시 전역에 절름발이 브루노에 대한 공포가 만연한 이유.
그건 그가 그만큼 말도 안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이르러 치안대의 기능이 대부분 마비되어 있는 것도 전부 절름발이 브루노 때문이었다.
브루노 리트리어를 사살하기 위해 작전에 나섰던 치안대원의 4할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이들 중 3할이 재기불가능한 부상을 입었다.
작전 하나에서만 미스릴 탄환 여덟 발이 사용되었다.
당시의 치안대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범죄자를 이용하는 제7특별기동대를 조직했다.
절름발이 브루노는 이 도시의 악몽 그 자체였다.
“자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군.”
브루노가 웃으며 한걸음을 더 내딛었다.
그의 체중을 지지하는 지팡이의 끝이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이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독심술이라도 써볼 생각인가?”
“독심술은 자네가 쓰는 것 같고. 이건 단지 연륜이라 부르는거지.”
“그래서 그 연륜으로 보기에는 어떻지?”
브루노의 시선이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건물. 길. 시넬. 그리고 나.
순차적으로 무언가를 비추던 눈동자가 한곳에 멈춰섰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뒤에 있는 건물들이었다.
결론을 내린 브루노는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도망갈 것 같군.”
“…….”
“[스펠 오버로드 : 매스 텔레포트].”
브루노의 손이 허공을 스윽 훑고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곧장 시넬을 잡아당기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의 손이 만들어낸 궤적이 공간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지이잉.
고밀도의 마력이 휘몰아치며 귓가에 노이즈가 파고들었다.
난생 처음으로 듣는 그것은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였다.
허공에 그어진 선은 거대한 면적의 면이 되었고, 그 직후 다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브루노의 마법이 한차례 훑고 지나간 직후 주변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으아아아악!!”
“건물이, 무너지고 있어……?”
“……저, 저게 뭐야.”
사방에 비명소리가 휘몰아쳤다.
잘려나간 건물안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퇴로가 될 수 있던 길은 건물의 상부가 무너져 가로막혔고, 남은 것은 두텁게 쌓인 건물의 무덤뿐이었다.
브루노가 직접 나서 도망갈 길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도망갈 수는 없다.
얌전히 여기서 끝을 맞이하던가, 브루노와 직접 맞서싸우던가.
주어진 선택지는 이 둘밖에 없었다.
“……많이 과격하군.”
“한번에 강하게 터져나가야 시원하지 않나?”
“글쎄. 나야 그런 능력이 없어서 잘 모르는 일인데.”
주머니 안에 있는 탄환을 어루만졌다.
처형집행자. 계승자로부터 받은 특별한 탄환이다.
이걸 사용한다면 눈앞의 절름발이를 잡을 수 있을까.
잠시동안 그러한 망설임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금세 그런 생각을 접어버리고서, 처형집행자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 탄환은 결사를 상대로 사용할 수 없다.
애초에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상대에게 맞을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어리석은 일이었다.
절름발이와 맞서싸우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져야만 했다.
“시넬.”
“네.”
“내가 선두에 서겠다.”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품속에 있던 총을 꺼내들기 위해 손을 집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소란스러운 격전지의 한복판.
그속에서도 선명하게 귀에 꽂히는 목소리가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나긋한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졌다.
“검성류 일섬.”
나와 브루노가 마주하던 골목의 사이.
바람이 불어오며 한줄기의 선이 생겨났다.
넘어서면 안되는 경계와도 같이, 우리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새겨진 선명한 선.
그것은 검성의 일격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