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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82화 (82/156)

〈 82화 〉 절름발이 브루노 (3)

* * *

“검성류 일섬.”

나와 브루노가 마주하던 골목의 사이.

바람이 불어오며 한줄기의 선이 생겨났다.

넘어서면 안되는 경계와도 같이, 우리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새겨진 선명한 선.

그것은 검성의 일격이었다.

“……누구 짓이지?”

자신을 방해하는 일격에 브루노가 고개를 들었다.

살기가 어려있는 금색 눈동자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브루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면, 건물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금빛의 눈동자가 있었다.

검성. 그녀는 검을 붙잡은 채로 브루노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다행이네.”

“…….”

검성을 마주한 브루노의 얼굴이 굳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검성 유엘은 브루노 리트리어의 혈육이다.

일찍이 검성의 검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녀와 절름발이 브루노의 관계를 확인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은 단지 그것 뿐.

두 사람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혹시나 검성과 브루노의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닐까 싶어 지켜보고 있으면, 손잡이를 붙잡은 검성이 브루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야 내 손으로 당신을 죽일 수 있을테니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었다.

자신의 부친인 브루노 리트리어에 대한 선전포고.

그가 7서클의 마법사라는 사실과 악명이 자자하다는 것은 제쳐두더라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싸움을 거는 모습이 아무래도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둘의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달려들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검성이었다.

브루노는 그런 검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엘. 아직도 검성을 자처하고 있는건가?”

검성이 어째서 검성의 이름을 자처하고 있는가.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성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브루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응. 그거야말로 당신에 대한 확실한 복수잖아?”

“그런 일은 복수라고 볼 수 없겠지. 망자의 흉내를 내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거냐.”

“의미는 내가 정해.”

브루노의 시선이 유엘을 떠났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고요한 시선.

의지를 잃은 눈동자가 수차례 움직였다.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 너머를 응시했다.

무언가의 의미가 있는 눈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주변에 있는 것들을 순차적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 “역시… 아직은 잘 모르겠군.”

한참을 방황하던 브루노의 시선은 다시 검성에게로 향했다.

무언가의 결심을 마친 것일까.

그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강하게 쥔 채, 자신을 내려다보던 검성에게 이야기했다.

“흥이 식었군.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말을 마친 브루노가 들고 있던 중절모를 눌러썼다.

툭. 브루노의 지팡이가 바닥을 내려찍었다.

다행히도 마무리를 지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검성은 그런 브루노를 얌전히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인지, 격앙된 목소리로 그에게 따져들었다.

“멈춰. 어딜 가겠다는거야?”

“하나만 말해두자면, 아직은 나를 죽이기에 이르다.”

말을 마친 브루노가 모습을 감추었다.

재빨리 뛰어가거나 어딘가에 숨은 것이 아니었다.

브루노는 말 그대로 한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의 마법인 텔레포트를 사용한 이동이었다.

“멈추라고 했잖아!”

아래를 향해 뛰어내린 검성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거센 바람이 사방으로 몰아치면서, 검성은 아무런 상처 없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바닥에 착지한 검성의 눈에 브루노의 모습은 비추어지지 않았다.

공간계통 마법은 이동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래서야 뒤를 쫓을 수도 없을 것이다.

쫓아가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겠지만 말이다.

“포기해라. 지금 쫓아가더라도 의미는 없다.”

지금의 우리는 결코 절름발이 브루노에게 이길 수 없다.

아직은 싸울 때가 아니었다.

검성이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고 있다고 하더라도, 때와 장소를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내 말 한마디로는 검성의 고집을 꺾을 수 없던 것일까.

그녀는 분에 가득 찬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나는 검성이야!”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 책무를 다해야만 한다고!”

“검성의 책무가 절름발이 브루노를 죽이는건가?”

검성이란 무엇인가.

그녀가 아무리 그에 대해 주장한다고 한들, 나는 그것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녀가 바라고 있는 것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사이에 복잡한 관계가 숨어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전대 검성. 그리고 브루노 리트리어.

둘의 사이에 맺어진 악연이야말로 그녀가 그토록 쫓고있던 검성의 진면목일 것이다.

“맞아. 그러니까…….”

내가 읽던 소설, 전쟁도시는 등장인물의 모든 면을 비추어주지 않는다.

아는 것은 단지 읽은 것일뿐.

모르는 것은 여전히 모르는 내용에 불과했다.

“그러면 지금은 묻어둬라.”

“뭐라고……?”

“묻어두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고서.”

그럼에도,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화가 나있는 검성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격앙된 눈동자. 그리고 떨리기 시작한 손바닥.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퍼시발?”

“그런건 나도 모른다.”

그렇기에 검성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머리를 내 가슴팍에 묻어버리고서, 붉어진 눈시울이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었다.

나는 검성이 아니다. 그리고 유엘도 아니다.

갑작스럽게 끓어오른 그녀의 감정에 공감할 수도 없다.

다만 우는 얼굴만은 보이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숨겨둔 이야기가 많겠지. 이해하고 있다.”

“알면 왜 그러는건데!”

희미한 울음소리가 뒤섞인 일갈.

스며나오기 시작한 감정이 분위기를 뒤흔들었다.

어느새 묵직해진 공기가 전신을 무겁게 짓눌렀다.

단순한 착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마법은 바람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었으니까.

“우리의 계약은 1년짜리다.”

“그게, 어쨌다는거야.”

“계약이 지속되는 동안 너는 내거라는 이야기다.”

“…….”

노예계약도 아니고 그런 기능은 없다.

게다가 나 역시 사무실을 부숴놓은 브루노를 당장이라도 족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건 단지 변명에 불과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검성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그녀에게 한마디를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 나는 너를 잃고 싶은 생각이 없다.”

“너…….”

진심에서 우러나온 한마디.

내 말을 들은 검성이 한순간 말을 잃어버렸다.

소란스러운 도시속에서 두사람만의 정적이 찾아왔다.

전하는 것은 서로의 감정뿐이다.

두근. 두근.

맞닿은 피부를 통해 심장의 고동이 퍼져나갔다.

소리가 밀려오고, 그 뒤에 감정의 파도가 따라왔다.

정적속에서 감정을 이어주는 마법이 자신을 드러내었다.

“브루노 리트리어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잡을 수 있다.”

“……응.”

“내가 너를 진정한 검성으로 만들어주마.”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거칠어졌던 숨결이 잦아들고, 가슴팍에 울려퍼지던 신음소리도 고요해졌다.

이제야 조금 진정이 된 것일까.

검성은 나를 살짝 밀어내고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조금 부어오른 황금빛의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입고 있던 옷이 검성의 눈물에 젖어버린 이후였지만, 그래도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이야기인걸.”

“상관없다. 어차피 미쳐버린 도시인데, 조금 미쳐버린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그런거야?”

“그런거다.”

바보같은 문답이 한차례 지나간 이후, 검성이 소매를 움직여 눈가를 닦았다.

그런 그녀의 입가는 미약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화를 내더니, 어느새 눈물을 터뜨리고는, 이내 다시 미소를 짓고 있다.

울다가 웃으면 안된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모습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검성은 젖어버린 내 가슴팍을 보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장님한테 추한 모습을 보여버렸네.”

“괜찮다. 세탁비는 월급에서 깎으면 되니까.”

“…….”

“농담이다. 신경쓰지 말도록.”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았는지, 잠시동안 검성의 얼굴이 굳어있었다.

수리비 명목으로 월급을 적게 줘서 그런가.

돈에 있어서는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검성이었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서는 나를 향해 물었다.

“퍼시발은 내가 죽을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절름발이와 싸우는게 전제라면.”

“그렇구나.”

“너무 낙담하지 마라. 언젠가는 기회가 올거다.”

“응.”

“그러고보니 시넬은 어디 간거지?”

검성의 어깨를 두드린 나는 고개를 돌려 시넬을 찾아보았다.

내가 검성을 진정시키는 사이.

시넬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던 자리는 아니지만,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은 것만은 틀림없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라진 시넬을 찾고 있으면, 검성이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있잖아.”

나는 검성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너머.

널찍이 떨어진 위치에서 시넬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시넬의 모습은 아까와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까망이를 머리에 얹은 시넬의 품에 금속상자가 들려있던 것이다.

“……그게 뭐지?”

나는 시넬의 품에 안겨있는 상자를 보며 말했다.

상자는 은백색의 광택을 품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것인지, 시넬이 들고 있던 상자를 나에게 내밀어왔다.

“사장님 금고에요.”

“잘했다.”

뭔가 했더니 금고를 뒷면이 보이게 안고 있던 모양이다.

잘한건 잘한거지.

나는 시넬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었다.

검성도 중요했지만 역시 벌어놓은 돈도 중요한 법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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