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절름발이 브루노 (4)
* * *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됐군. 암흑상인.”
그것이 다시 만난 어셔에게서 들은 첫마디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네이의 너머에 있는 어셔를 바라보았다.
치안대에 위치한 자그마한 방.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그 방에서, 나는 네이 일행과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치안대에 동행해 이 방에 끌려온 이유는 하나.
누군가는 사무실 일대의 건물들이 박살난 이유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인생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이지.”
“제법 철학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군.”
“오늘 늘어놓을 이야기도 예상치 못한 부류라서.”
어셔가 이야기한대로 생각보다 이른 재회였다.
아벨 테르도스와의 거래를 눈치챈 네이가 으름장을 놓고 갔던 것이 얼마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런식으로 금방 다시 만나게 되다니.
서로가 서로에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네이 본인의 경우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통이라면 얼굴을 마주하기도 껄끄러운 법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만나야만 했다.
그게 수사관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주어진 일이었으니 말이다.
“누군지 몰라도 화려하게 벌려놨더군. 간단한 이야기는 아닐테지.”
“그렇기에 따로 조용히 대화할 수 있도록 부탁한거다.”
“이쪽도 이해하고 있다. 네이도 네 편의를 들어주지 않았나.”
“그런데… 정작 수사관님은 오늘따라 유달리 조용하군.”
치안대의 수사관은 어셔 헤이즈가 아니라 네이 테르도스다.
어셔는 단지 그녀의 보조에 불과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 네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반쯤 멍한 모습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딱히 말을 꺼내기도 곤란해보이는 모습이었다.
분명히 민망하겠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난리를 치고 떠났으니 말이다.
“……듣고 있어.”
“듣고 있다면 다행이군.”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답을 돌려주었다.
네이는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책상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놀려먹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짜증날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지금의 네이는 귀족가의 아가씨가 아니라, 치안대에 소속된 수사관이었으니까.
치안대원의 권한을 남용하려고 해도 자신의 위에 있을 아벨이 신경쓰일 것이다.
결국 체념해버린 그녀가 나에게 사건에 대한 내용을 캐물었다.
“후…….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어?”
“절름발이가 나타났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절름발이. 그 이름을 들은 네이의 얼굴이 굳었다.
놀란 것은 네이뿐만이 아니었다.
네이의 뒤에 기립하고 있던 어셔의 안색 역시 어두워졌다.
네이는 내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인지, 다시 한차례 사실을 확인해왔다.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절름발이 브루노가 돌아왔다.”
“절름발이… 브루노.”
“그래.”
절름발이 브루노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행적 자체가 도시의 역사를 그려내며, 존재만으로 도시의 어두운 면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당장 치안대의 영향력이 축소된 것만 하더라도 브루노 토벌 작전의 여파가 아니던가.
도시에 속한 사람이라면 그 이름에 학을 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듣는 이가 치안대원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내가 전한 진실이 믿기 어려웠던 것일까.
네이의 뒤에 있던 어셔가 내 이야기에 의문을 표해왔다.
“녀석은 분명히 죽었을텐데.”
“아니, 살아있어.”
“네이?”
어셔에게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네이는 고개를 저으며 어셔의 말을 부정했다.
치안대 내에서 절름발이의 부활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줄이야.
다소 의외인 이야기였다.
전쟁도시의 어셔는 절름발이와의 전투가 있기 전까지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 말이다.
“절름발이 브루노는 살아있어. 토벌작전 이후에도 몇차례 그의 행적이 발견됐거든.”
“그런데 왜 다들 모르고 있지?”
“토벌작전 이후의 활동은 치안대가 기밀로 다루어왔던 내용이니까.”
“……기밀인가. 그렇다면 모를만도 하군.”
치안대에서도 기밀로 취급되는 정보라고 하면, 어셔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치안대에 속해있다고는 해도 그는 흉악범이다.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들이 사냥개인 어셔에게 쉽사리 전달될 리가 없었다.
오늘의 일이 없었다면 어셔가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훗날의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작품에 개입해 사건을 비틀어버린게 되어버린 셈이었다.
“그럼 일대의 피해도 전부 녀석이 만든거야?”
“그래. 모조리 녀석의 손에 박살났다. 11구역의 벨리언트 역시 절름발이의 손에 당했다는 모양이다.”
“벨리언트… 그렇구나. 생각보다 화려하게 일을 벌여놨네. 토벌작전 이후에는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이려는 걸로 보였는데.”
“치안대는 어떻게 할거지? 절름발이를 잡으러 가나?”
이전의 토벌로 인해 치안대의 규모가 토막났다.
다시 토벌에 나설 여력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도시 안에서도 절름발이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어셔정도가 유일했다.
어셔를 중심으로 하는 토벌대가 구성되기 전까지 절름발이를 막을 수 있는 상대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이 아닌 보다 나중의 일이었다.
네이는 서류 한장을 붙잡고서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진지한 눈빛이 되어서는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네가 정보상인이라는 사실이야 알고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당분간 함구해줘야겠어.”
“……원하다면 그러겠다만, 이유가 있나?”
“오늘 일은 도굴꾼 테디어스의 짓으로 공표할거야.”
“도굴꾼 테디어스? 설마…….”
“절름발이가 살아있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 그랬다간 세상에 혼란이 올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만든 가명이야.”
2급 수배범, 도굴꾼 테디어스.
그 이름을 들은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익숙한 이름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주할 뻔했던 이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야, 철저히 함구하도록 하지.”
잘못하면 진작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과거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기로 했다.
운이 좋은 날이었다. 나름대로는.
* * * * * *
“다른 사람을 들이는 일은 오랜만이네.”
7구역에 위치한 검성의 집.
사무실이 무너진 나와 시넬은 임시로 하룻밤을 검성에게 신세지기로 했다.
검성이 흔쾌히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넬은 블랙마켓에서 새롭게 구한 아지트를 임시거처로 제안했지만, 그곳은 그런식으로 사용할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챙겨온 짐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이 제법 넓어보이는군. 혼자 사는건가?”
“옛날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래. 일단은 물려받은 집이니까 말이야.”
검성의 집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넓었다.
검성 혼자 살기에는 큰 편이었다.
하지만 물려받은 집이라면 이런 크기인 것도 납득이 가는 일이었다.
검성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절름발이 브루노에게 돈이 없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브루노가 구매한 집을 검성이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크기였다.
“짐은 거실에 놓으면 되나?”
“내일 나갈거라면서. 그래도 상관없어.”
“그러면 오늘은 신세를 지도록 하지.”
“있는 동안은 자기 집처럼 지내도 괜찮아.”
“네. 자기 집처럼 지낼게요.”
나와 검성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넬에게 돌아갔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럴싸한 대답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그러나 시넬은 우리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까망이를 붙잡고 놀고 있었다.
시넬의 손에 들린 까망이를 본 나는 검성에게 물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들어와도 상관없는건가?”
“괜찮아. 옛날에는 강아지를 길렀거든.”
강아지를 길러봤다라.
검성과 꽤나 어울리는 동물처럼 보이기는 한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을 보면 중간에 무슨 변고가 생긴 모양이지만 말이다.
“강아지라. 나이를 많이 먹어서 죽은 모양이군.”
“아니. 5년전에 집을 나가서 안돌아오고 있어.”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것 치고는 태연한 모습이다.
생각보다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없던 것일까.
하기야, 부친인 브루노가 집을 나갔는데 강아지가 눈에 들어오기는 하겠냐만 말이다.
이번에는 강아지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았다.
“……찾으려는 노력은 안해봤나?”
“강아지 탐정이 의뢰금만 받고 도망갔어.”
“아.”
“그 뒤로는 그냥 잊은 채 살아가고 있어. 분명 어디선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겠지.”
지나치게 검성다운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듣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비극뿐인 내용이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마음속으로 탄식을 내뱉은 나는 들고 있던 짐정리를 전부 끝냈다.
가져온 짐이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정리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져서 조금 불편하겠군.”
“그렇지도 않아. 이 정도면 딱 좋은걸.”
“배려에 감사하지. 더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나는 거실에서 자도록 하겠다.”
가족이 살던 공간이기 때문인지, 거실은 테이블을 포함하고도 생각보다 넓은 편이었다.
게다가 거실에 놓여있는 소파도 푹신해보였다.
분명 사무실의 간이침대보다는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거실에서 밤을 보내겠다고 선언하면, 시넬 역시 나를 따라 거실파에 합류했다.
“저도 거실에서 잘게요.”
“어… 그럼 나도 거실에서 잘게.”
“……?”
그럼 침대는 누가 쓰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