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84화 (84/156)

〈 84화 〉 절름발이 브루노 (5)

* * *

잠자리에 대한 상황정리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전부 다 같이 침대에서 자는 것으로 금세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거실에서 잠을 자기 위해 침대를 내버려둔다는 것은 누가봐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던가.

모두가 같이 침대에서 자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인 해결방안이었다.

잠자리에 대한 결론을 내린 이후.

각자 몸을 씻거나 양치를 하는 등, 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저마다의 할일을 끝내고 모두가 침대에 모인 것은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조금 좁지 않아?”

세명이 나란히 누워있는 침대.

내 오른쪽에 잠옷차림으로 누운 검성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검성의 잠옷차림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녀와 같이 잠에 들 일이 없었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검성의 옷차림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의 복장이었으니 말이다.

처음보는 검성의 옷차림에 신선함을 느끼고 있으면, 반대쪽에 있던 시넬이 팔에 달라붙으며 말했다.

“제가 희생할게요.”

“……그거 희생 맞아?”

“네.”

“사리사욕을 채우는건 아니고?”

“아니에요.”

왼쪽에 있던 시넬 역시 검성의 잠옷을 빌려입은 것인지, 처음 보는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다만 검성과는 평소 입는 옷의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일까.

자세히 보고있자면 입고 있는 옷이 조금 작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확실히 비좁기는 하군.”

“그렇지?”

확실히 침대에 세명이나 누워있으니 좁은 느낌이 들기는 했다.

일단은 거리부터가 가까운 편이다.

셋이서 떠들다보면 검성과 시넬의 숨결이 자꾸만 닿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잠버릇에 누구 하나를 발로 차서 침대 밖으로 날려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아침이 될때까지 내 아래에 깔려있던가 말이다.

“불편한 것 같으니 내가 거실로…….”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

“맞아요.”

불편함을 느낀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두 사람이 한사코 만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불편함쯤은 감수해야 훌륭한 사장님이 될 수 있는건가.

반쯤 들어올렸던 상체를 다시 내렸다.

푹신푹신한 침대의 반탄력이 머리에서 전해져왔다.

“그러냐.”

“응. 해결됐으면 이제 자자.”

내가 다시 침대에 드러눕자, 검성이 움직여 침실의 불을 껐다.

그리고는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누웠다.

나는 누구 하나 실수로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양옆에 있던 시넬과 검성을 팔로 감싸안았다.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안녕히 주무세요.”

툭. 불이 꺼지자 인사를 마친 시넬이 안대를 내려썼다.

어둠이 내려앉은 침실이 고요해진다.

순식간에 찾아온 정적.

그 속에서 사람의 숨소리만이 귀에 들려왔다.

새근. 새근.

왼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시넬의 것이었다.

“…….”

안대를 쓴 시넬은 금세 잠에 빠졌다.

브루노를 상대로 한참동안 도망다녔더니 상당한 피로가 쌓였던 모양이다.

나 역시도 몸이 제법 노곤한 상태였다.

괴물을 상대로 죽음의 위기를 넘겼다.

긴장에서 풀려난 반동이 뒤늦게 찾아오더라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다.

“있잖아, 퍼시발.”

“……무슨 일이지.”

밀려오는 졸음에 잠을 취하려고 하면, 오른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눈을 뜨고 있는 검성의 목소리다.

톡. 톡.

검성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손을 짧게 두드렸다.

“아직 안자고 있지?”

“그래.”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 말이야.”

“브루노의 일 말인가?”

검성의 말에 나는 곧장 고개를 움직였다.

고개를 돌린 바로 앞.

검성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있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닿을 것 같은 위치.

그곳에서 별을 담은 것 같이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응.”

“유엘, 오늘 일은…….”

검성의 말에 답하려고 하는 도중.

검성이 돌연 내 귓가에 자신의 입을 가져갔다.

짧은 거리. 귓가에 닿는 숨결.

그와 함께 자그마한 속삭임이 울려퍼졌다.

“고마웠어.”

* * * * * *

나이트테일 기사단.

도시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민간군사기업에는 ‘원탁 회의’라고 부르는 의사기관이 존재한다.

원탁에 소속된 기사들은 모두 여덟.

허나 원탁의 기사 중 4석에 위치한 염열기사는 현재 직무가 정지된 채 원탁에서 징계를 심의중인 상태다.

따라서 새롭게 열린 원탁 회의에는 나머지 일곱명의 기사만이 모여있는 상태였다.

그런 원탁의 기사들 중 하나인 섬광기사 헤리오는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회의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헤리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절대 허락 못해.”

원탁의 기사 5석. 유성기사 윌리엄.

갈색 머리의 남자가 헤리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현재 염열기사가 가지고 있던 기사단의 소집권한을 임시로 대행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윌리엄이 생각하기에 자신과 헤리오의 사이는 썩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까지의 이야기일 뿐.

오늘부터는 사이가 갈라져도 단단히 갈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윌리엄의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뭐가 문제인거지? 유령군단의 토벌은 이미 원탁회의에서 확정된 사안일텐데.”

“아직 토벌대 구성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야. 지금 당장 토벌작전을 감행했다간 큰 피해를 입을거라고.”

“그 토벌작전을 지원해주던 곳이 레서트 인더스트리 아닌가. 지금 당장 움직이는게 좋을거다.”

윌리엄은 한숨을 내쉬며 헤리오를 바라보았다.

윌리엄의 눈에 비치는 헤리오의 얼굴은 차오르는 분노에 젖어있는 채였다.

그야 그럴만도 했다.

헤리오가 진심으로 섬기던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아가씨가 납치됐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납치를 벌인 상대가 토벌을 계획하던 유령군단이 아니던가.

헤리오에게 있어서는 일분 일초가 아까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보일터였다.

“그것도 중요하지. 그거야 나도 알고 있어.”

“그럼 지금 당장 토벌을 준비해라.”

“그래도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준비없이 특급 수배범의 토벌에 나설 수는 없어.”

납치당한 인물은 제국의 열두가문 중 하나인 바이어틴 가문의 아가씨였다.

그녀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다간 바이어틴이 나이트테일에 어떤식으로든 책임을 물을 것이다.

윌리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윌리엄은 이번 작전을 허락할 수 없었다.

“왜 안된다는거지?”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경호인력을 뚫고 아가씨가 납치당한거야. 어설픈 준비로는 유령군단의 토벌에 성공할 수 없어.”

바로 그 위기상황 자체가 문제였다.

나이트테일에서 파견된 헤리오를 제외하고도,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경비들은 일류수준이다.

그런 경비를 뚫고 유령군단이 벨 바이어틴을 납치해갔다.

어중간한 상태로 토벌에 돌입했다간 도리어 이쪽이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 윌리엄은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하게 토벌가능한 수준으로 토벌대를 조직할 생각이었다.

토벌이 실패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견습 기사들이다.

윌리엄은 아직 젊은 인재들이 허무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내 말이 농담처럼 들리나? 윌리엄. 이건 나이트테일의 존폐여부가 달린 문제다.”

“나도 진심이야. 정말이라고.”

“벨 바이어틴은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최우선 경호대상이다.”

“그래. 알고 있어.”

“만약 그녀에게 무언가 변고가 생겼을 경우에는… 모든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될거다.”

“…….”

그걸 알면서도 넘어가야만 할 때가 있다.

윌리엄이 살아왔던 세상이란 그런 것이었다.

보다 적은 희생으로 더욱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희생하는 것은 단 두 사람만으로 충분했다.

안타깝게도 특급 수배범에게 납치당한 바이어틴 가문의 아가씨.

그리고 이번 작전의 책임자인 윌리엄 자신.

이렇게 둘만 포기한다면 인질범에게 휘둘리지 않고서 토벌작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나의 목숨보다 더 많은 가치를.

그것이 유성기사 윌리엄이 가진 신념이었다.

“빨리 결정해라. 윌리엄.”

“……헤리오.”

“당신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나 혼자서라도 찾아가겠다.”

그렇기에 윌리엄은 헤리오의 제안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헤리오로부터 전해진 마지막 통보.

윌리엄이 거기에 돌려줄 수 있는 대답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포기하라고는 말하지 않아.”

“포기할 생각따위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구출해올 계획이다.”

“무운을 빌지.”

“그게 당신의 대답이군.”

윌리엄의 대답을 들은 헤리오는 결국 허탈한 마음을 다잡았다.

원탁으로부터 토벌대 편성에 대한 결론을 들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사라진 헤리오였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떠날 준비를 하는 헤리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의 옆에 있던 윌리엄이 말했다.

“바로 떠날 생각이야?”

“……가능한 조용히 진행하겠다. 서로간에 방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말을 마친 헤리오는 뒤를 돌아 출구를 향해 걸어나갔다.

터벅. 터벅.

출구를 향하는 헤리오의 발걸음 소리가 고요한 회의장에 울려퍼졌다.

윌리엄은 입술을 깨물며 헤리오의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한순간, 그의 눈에 비친 헤리오의 뒷모습이 누군가와 겹쳐보였다.

“예전에는… 저랬던 때가 있었지.”

나이트테일.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의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린 윌리엄이 쓴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그도 고결한 기사를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는 어른이 되었다.

윌리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옛날 이야기의 기사는 이미 가슴속에서 죽어버린지 오래였다.

이제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사그라든 열정을 대신해 담배를 태우는 아저씨 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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