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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87화 (87/156)

〈 87화 〉 무엇을 위해 강해졌는가 (1)

* * *

헤리오 나이트라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사를 동경해왔다.

동경. 선망. 그리고 경외.

그가 기사라는 옛날 이야기의 존재들에게 환상을 갖게된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나이트라인. 그의 이름에 기사를 상징하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벼운 이유만으로도 헤리오는 기사를 좋아했다.

어린 아이의 마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가벼운 이유로 움직이는 법이었으니까.

헤리오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에, 헤리오의 부모는 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책의 제목은 ‘나이트테일’.

위대한 옛 기사들의 영웅담을 묶은 동화였다.

제국의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읽어봤을만큼 유명한 동화이기도 했다.

원래부터 기사를 좋아하던 헤리오에게 나이트테일은 가장 가슴에 남는 서적이 되었다.

그때부터 헤리오는 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의 또래 아이들도 책을 보고 한번정도는 가져보는 생각이었지만, 헤리오의 열정은 또래보다도 조금 더 컸다.

그래서 헤리오는 기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섰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기사라는 것은 이미 낡은 직업이었으니까.

제국을 지배하던 인간의 황제가 쫓겨나고,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정령이 황제를 자칭하기 시작한 이래.

제국의 명예를 드높였던 긍지 높은 기사들은 전부 모습을 감추어버린지 오래였다.

용맹한 기사들이 랜스를 들고 헤집던 전장은 이미 전차와 총탄들의 무대가 되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기사는 이제 오래된 환상속에서 밖에 찾아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헤리오는 기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하나씩 나이를 먹기 시작하고, 어린 아이에서 소년의 모습이 되었을 때도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읽었던 이야기의 구절만이 그의 뇌리속에 남아, 평생을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헤리오의 아버지는 제국의 군인이었다.

군인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계급은 못되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애국자였다.

그는 제국을 사랑했고, 그가 사는 도시를 사랑했으며, 그의 가족들을 사랑했다.

그는 언제나 헤리오에게 나라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을 사랑하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제국의 명령에 복종하며, 제국과 국민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가르쳤다.

헤리오는 그런 아버지의 말에 대부분 수긍했다.

기사와 군인은 비슷한 점이 있구나 느낀 것이 헤리오의 생각이었다.

기사가 되지 못한다면 군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헤리오의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것은 헤리오가 14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충직한 군인이었다.

하지만 불의를 발견하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상관의 부패를 발견한 그가 입을 열었고, 결국 그는 그토록 증오하던 부패의 사슬에 얽매여 들어갔다.

헤리오는 제국군에게 맥없이 연행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헤리오가 군인이 되는 것을 포기한 것은 그때였다.

그 대신 기사가 되기 위한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강해지는 것을 선택했다.

실패하더라도 괜찮았다.

남들이 비웃더라도 상관없었다.

온갖 역경을 뚫고 자신을 관철하는 것이 헤리오가 읽어왔던 영웅담의 기사들이었다.

헤리오가 아는 기사는 명예로운 존재였다.

약자를 구하고, 악자를 처단하며, 비틀어진 것을 바로세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했다.

어떤 부조리를 보아도 깨부술 수 있도록.

어떤 불합리를 보아도 넘어설 수 있도록.

어떤 불의를 보아도 응징할 수 있도록.

헤리오 자신이 강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사니까.

눈앞에서 보았던 가족의 비극을 대신하려는 듯이, 그는 계속해서 정의를 부르짖었다.

달이 지나고, 연도가 바뀌며, 미숙한 소년이 어른이 될 때까지.

헤리오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누구보다 강해지기 위해서.

누구보다 정의롭기 위해서.

마치 그것만이 그의 사명인 것 마냥, 멈추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헤리오의 나이는 이십대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헤리오 나이트라인.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젊은 간부.

세상은 이제 그를 섬광기사라고 부른다.

* * * * * *

사무실에 들어선 헤리오는 한참동안 이번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외부인에게 사무실을 자랑할 생각에 조금 설레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기분을 내세울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상황이 급박한 편이었다.

벨 바이어틴.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지부장.

그녀가 유령군단에게 납치를 당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레서트의 아가씨가 납치를 당했다고?”

“그래. 한시라도 빨리 구출할 필요가 있다.”

다급해하는 모습의 헤리오를 내버려두고서, 나는 조용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설 ‘전쟁도시’의 내용중에 벨 바이어틴이 납치를 당하는 내용은 없다.

단지 어셔 헤이즈와 유령군단이 맞붙는 장면이 나올 뿐이다.

원작의 내용과 다소 차이가 생겼다.

사건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것에는, 아마 내가 헤리오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바람을 넣는 것으로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토벌이 결정되으니 말이다.

유령군단이 벨 바이어틴을 납치한 것도 나이트테일의 토벌대를 견제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어려운 문제군.”

내가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책임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가 문제였다.

특급 수배범의 토벌에는 상당한 인력과 준비가 수반된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가더라도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토벌대를 내버려두고 우리끼리 구출작전에 나선다?

누가 봐도 자살이나 다름 없는 행위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하겠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게다가 구출에 성공한다고 쳐도, 이런식으로 적진 한복판을 헤집고 빠져나오는 것은 좋지 못한 방법이었다.

우리가 구출에 성공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근거지에 타격을 입은 유령군단이 모습을 감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유령군단을 확실하게 사살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문제였다.

유령군단은 결사 내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적이다.

유령군단의 마법에 영향을 받는 것은 마법사 본인뿐만이 아니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죽일 수 있을 때 죽여놓는 것이 좋았다.

“안전도 보장하도록 하지. 혹시나 위험한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목숨을 걸고 내보내주겠다.”

“……유령군단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원한을 사고서 살려보내면 다음은 보장하기 어려울텐데.”

“녀석도 내가 죽이겠다. 그저 아가씨가 무사히 구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바랄 뿐이다.”

헤리오의 상태를 봐서는 내가 거절하면 혼자서라도 쳐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면 유령군단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어떻게 생각해도 곤란한 상황이다.

슬슬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목숨을 걸고 모험에 도전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안전을 도모하고 기회를 잃을 것인가.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다.

“헤리오. 헤리오 나이트라인.”

“듣고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라.”

“난 이미 충분히 이성적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작전의 목표부터 바꾸는게 좋겠군.”

고민하던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를 따라 작전에 나선다.

대신, 이번 작전의 핵심목표는 벨 바이어틴의 구출이 아닌 유령군단의 사살이다.

벨의 구출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구할 수 있다면 구한다.

그리고 불가능하다면 도망친다.

그것이 내가 리스크를 감수하는 조건이었다.

“작전의 목표를 바꾼다고?”

“그래. 구출작전이 아니라 토벌작전이다.”

“그건…….”

“각자 다른 임무를 맡게 될 것이고, 그 지휘는 전부 내가 맡겠다. 여기에 동의하나?”

내 이야기를 들은 헤리오의 눈빛이 변했다.

헤리오도 슬슬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를 나름대로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는 그 고결한 섬광기사다.

무모한 선택지를 자신에게 가져오더라도, 나는 쉽사리 그를 내칠 수가 없었다.

“…….”

“어려운 질문은 아닐텐데.”

나 자신은 그만큼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의 안녕을 위해 누군가를 상처입힌 적도 있고, 때로는 누군가의 불행을 안주거리로 삼은 적도 많다.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기사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양심의 가책인가. 혹은 모험가의 호승심인가.

어느쪽이든 곱게 죽기는 글러먹은 성격이었다.

“……암흑상인.”

“왜 그러지?”

“감사를 표하지.”

헤리오는 승낙의 의사를 대신해 감사인사를 전해왔다.

짧은 인사.

그 속에서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사람의 말은 모든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마법사의 텔레파시는 그보다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감정의 격류. 사상의 흐름.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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