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88화 (88/156)

〈 88화 〉 무엇을 위해 강해졌는가 (2)

* * *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다.

때로는 끝맺음을 맺지 못한 이야기들도 존재하지만, 그런 이야기들마저도 마지막 순간은 존재한다.

대단원. 흔히 말하는 피날레의 순간.

그 순간이 찾아오면 절정에 달했던 이야기는 끝을 맞이하고, 등장인물의 시간은 거기에서 멈추게 된다.

내가 읽었던 소설 ‘전쟁도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갈등과 오해. 그리고 원한.

그러한 것들이 끝없이 쌓여버린 끝에 비극적인 결말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동료를 죽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다.

끝내 허무한 복수를 마치고서도 저주를 받아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

그게 주인공인 어셔 헤이즈에게 허락된 삶이었다.

“고민이 있나요?”

분명 변해버린 이야기에도 결말이 찾아올 것이다.

유령군단을 자신의 손으로 쓰러뜨린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수배범이, 그게 아니라면 결사의 간부가 나올 것이다.

그들을 전부 쓰러뜨린 후에 이야기의 결말을 맞이했을 때.

과연 나 자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 남아있게 되는 것일까.

혹시나 여기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때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고민이 들었다.

“아무 일도 아니다.”

“거짓말이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감이에요.”

사색에 잠겨 불이 꺼진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옆자리에 누워있던 시넬이 손가락으로 내 뺨을 찔렀다.

푹. 살짝 파고든 손가락이 이불 안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손가락을 치운 시넬은 머리까지 자신의 이불을 끌어올렸다.

시넬의 입가는 이불에 완전히 가려진 채로, 눈만이 빼꼼 나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몇달이나 가까이 나와 붙어 살아온 시넬이다.

내가 돌아가게 된다면 시넬은 어떻게 할까.

스피넬과 사이가 좋지는 않은 모양이니, 스피넬에게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시넬.”

“네.”

“이런 일을 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고민은 해본적이 없나?”

“고민이야 늘 하고 있어요.”

아무런 생각없이 시넬에게 질문을 던지면, 예상외로 고민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제나 무사태평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시넬이다.

그런 시넬이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니.

어쩐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항상 고민하고 있었나.”

“그런거에요.”

“그런데 왜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있는거지? 죽는게 걱정되지는 않나?”

“같이 있으면 즐거우니까요.”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 즐겁다.

간단한 대답이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고는 했다.

목숨을 걸고 위험한 순간에 직면하기는 하지만, 막상 그것을 헤쳐나가면 더욱 커다란 보상이 따라온다.

위험한 사건이 끝나면 동료들과 마주하고 파티를 벌인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시켜놓고 같이 먹거나.

벌어놓은 돈을 사용하기 위해 쇼핑에 가거나.

때로는 휴가를 보내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거나.

가끔씩은 이런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가.”

“사장님은 어떤가요.”

“좋아하고 있다. 너도, 검성도.”

“셋은 조금 힘들지 않나요.”

“……?”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대화를 넘기고서 눈을 감았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너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다.

오늘따라 그 피로가 더욱 진하게 전해져오는 기분이었다.

살아남는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목표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말이 조금 더 값져보이지 않은가.

이번 일이 끝나면 다같이 어딘가에 놀러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넬.”

“네, 사장님.”

“이번 일이 끝나면 다같이 바다에 가자.”

“……바다인가요.”

“그래.”

슬슬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은 이르지만, 함께 바다에 가는 것도 좋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갑작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시넬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입가를 가리던 이불을 살짝 내리며 대답을 돌려주었다.

“좋아요.”

* * * * * *

렉스 오브라이언.

유령군단의 사령관이라 불리는 그는 언짢은 얼굴을 하고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가면을 벗은 채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너무나도 심기에 거슬렸던 탓이었다.

“아이고… 아무튼 또 찾아왔어요.”

깃을 바짝 세운 코트차림의 남자가 성글성글한 미소를 지으며 사령관에게 말했다.

신출귀몰 오즈왈드.

결사의 간부들 중 하나이면서, 유일하게 대마법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간부자리를 꿰찬 인물이었다.

다른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특급 수배범 명단에 올라와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오즈왈드가 간부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특급 수배범으로 분류되는 기준은 피해규모와 수배범의 도주기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신출귀몰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의 인물이다.

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령관이라도 그의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오늘은 많이 힘들겁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슬슬 다 떨어질 것 같은데.”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저라도 그런 날에는 만남을 주선하기 힘듭니다.”

“흐음…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다른 분들이라면 몰라도 여러분이라면 흔쾌히 해줄거라 생각했는데.”

오즈왈드는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로, 사령관에게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사령관은 그의 말을 듣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오즈왈드가 오늘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타인의 마법을 저장해서 스크롤을 작성해내는 그의 마법 때문이었다.

그에게 신출귀몰이라는 이름이 붙은데에는 ‘인비지블’ 스크롤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터.

이전에 비축해두었던 스크롤이 떨어질 상황이 되자, 비축을 위해 군단의 본거지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저희도 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게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더군요.”

“아직도 그 친구를 제어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건가요?”

“제어라니요. 서로 믿고 의지하는 동료입니다.”

“엿듣는걸 제법 두려워하고 있군요. 괜찮아요. 그 친구는 여기에 없을테니까.”

사령관은 자신도 모르게 주위에 시선을 향했다.

사령관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힘과 권위는 어디까지나 타인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가 이 근처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을 조심해야만 했다.

혹시나 부하 하나가 이 앞을 지나다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서로간의 신뢰가 깨져버리면 이 시답잖은 역할극도 그날로 끝나는 셈이었다.

“너무 무례하군요, 오즈왈드. 우리 사이에는 기본적인 예의라는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당신에게는 상식적인 대화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거야 원. 순식간에 다른 녀석들과 똑같은 취급을 당할 뻔 한거네요.”

사령관은 자신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오즈왈드의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오즈왈드와 자신은 거래관계다.

거래에 대한 대가도 괜찮게 지불해준다.

하지만 거기까지의 이야기다.

오즈왈드는 자신에게 그 이상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자금이 필요해도 그것을 빌려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 처하고 있는 상황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었다.

“알았으면 됐습니다. 그럼 오즈왈드, 뭐 재미있는 이야기는 알고 있는거 없습니까?”

“재미있는 이야기라.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거죠?”

“기왕이면 뭐, 나이트테일 기사단과 관련된 이야기면 좋겠군요.”

“아, 아쉽게도 제가 그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슬며시 운을 띄운 사령관이었지만, 오즈왈드는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거절했다.

쯧. 밖으로 나오지 못한 소리가 사령관의 입안에 맴돌았다.

‘약삭빠른 녀석.’

사령관은 애써 웃으면서 오즈왈드를 바라보았다.

돈이 급할때는 빨리 봤으면 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때에는 정반대였다.

열받는다. 신경쓰인다.

그럼에도 잘라낼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오즈왈드는 또 보란듯이 관심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번에 ‘처형집행자’가 하나 반출됐다고 하네요?”

처형집행자.

오즈왈드의 이야기를 들은 사령관의 눈빛이 변했다.

계승자가 직접 만들어낸 악명높은 탄환에 대해서는 사령관도 익히 들은바가 있었다.

효용만큼은 미스릴 탄환에 필적한다고 불리는 그것.

도시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던 절름발이 브루노조차 미스릴 탄환의 포화에 맥없이 무너졌다.

처형집행자가 있다면 원탁의 기사를 피해없이 하나쯤 무력화시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사령관은 그 행방에 대해 오즈왈드에게 물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글쎄요?”

“알고 있군요.”

“그건 뭐, 비밀로 해두면 좋겠네요.”

오즈왈드는 끝내 처형집행자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령관의 마음속에 기대심이 피어올랐다.

비밀. 그것은 오즈왈드가 장난을 치러다닐 때에 자주 꺼내는 단어였다.

어쩌면 계승자가 자신을 지원하기 위해 처형집행자를 하나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에 군단이 보낸 물건들을 받아들고서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던 계승자였다.

머지않아 마천루의 마법사를 통해 처형집행자가 전달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사령관은 그런 생각을 하며 벗고 있던 자신의 가면을 어루만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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