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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90화 (90/156)

〈 90화 〉 무엇을 위해 강해졌는가 (4)

* * *

“소리가 너무 시끄럽군. 고개만 움직이도록.”

끄덕. 끄덕.

내 말을 들은 청년이 고개를 움직여 수긍했다.

이제서야 대화를 위한 준비가 모두 갖추어진 것 같다.

지금까지의 행동은 모두 전초작업에 불과했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청년을 마주한 나는 그제서야 청년에게 우리의 용건을 말했다.

“최근에 사람을 하나 본적이 있나? 곱상하게 생긴 아가씨다. 이런곳에서 자주 보일만한 얼굴은 아니지.”

유령군단이라고 항상 투명화 상태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모든 인력을 데리고 다니지도 않을 터.

납치한 벨을 옮기는 장면이라면 지나가던 누군가가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입에 총구를 물려놓은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겁을 먹은 표정이기는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총구를 더욱 치켜올리며 청년에게 물었다.

“사진을 보여주지. 이런 사람을 최근에 본적이 있나?”

주머니에 들어있던 벨 바이어틴의 사진을 꺼내어 청년의 눈에 가까이 들이밀었다.

청년은 조용히 시선을 움직여 벨의 사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긍정의 대답이었다.

벨이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고 있다고 한다면, 생각보다 계획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청년의 입에 틀어박혀있던 총구를 빼냈다.

“콜록, 콜록…….”

“어디로 갔지?”

“제, 제 2연구소쪽으로 끌려갔어요. 똑똑히 봤어요.”

“그렇군. 자네는 생각보다 쓸모있는 사람이었어.”

펄럭.

두툼한 지폐뭉치 하나를 청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청년이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입에 총구를 박아넣고 있던 사람이다.

갑자기 자신에게 돈을 쥐어준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이건…….”

“치료비다. 이빨을 망가뜨린건 사과하도록 하지.”

“아… 알겠습니다.”

손에 쥐어진 돈뭉치를 본 청년이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이빨을 새로 박아넣고도 한참 남을 금액이다.

청년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아쉬운 액수는 아닐 것이다.

나는 돈을 쥔 청년의 손을 꽉 붙잡은 채, 그에게 한가지 더 간단한 부탁을 했다.

그에게는 무척 간단하지만, 외지인에게는 제법 난이도가 있는 부탁이었다.

“괜찮으면 제 2연구소까지 동행해줬으면 하는데.”

“제, 제가 연구소까지요?”

“그래. 문제라도 있나?”

“저는 연구소에 출입권한이 없는데…….”

“굳이 안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지. 그 앞까지만 안내해줘도 충분한 일이다.”

농사를 짓는 청년에게 연구소의 출입권한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위치나 알아보자 하는 심산이었다.

청년의 손에 쥐어진 돈뭉치 덕분인지, 아니면 그의 입에 쳐박았던 총구 덕분인지.

청년은 흔쾌히 안내를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지금 출발하지. 말이 잘통해서 좋군.”

돈과 총탄.

효과적인 협상수단을 두가지나 사용했다.

청년이 말을 듣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청년에게 앞으로 가라고 고갯짓을 했고,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헤리오는 그런 청년의 뒤를 따라가며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끈한 방법이군.”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탓하려는건 아니다.”

“그래야지. 탓하면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

헤리오의 성격에 어울리는 일은 아니다.

손을 더럽히는 것은 나 하나로 충분했다.

애초에 그런 일까지 바라고서 헤리오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조용히 있어서 다행이군.”

피식.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헤리오가 황금빛의 밀밭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런 헤리오에게서 눈을 돌려 길안내를 해주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중간에 허튼 짓을 벌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딱봐도 수상해보이는 건물로 데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잘 안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총탄만으로 해결을 보지 않아 다행이었다.

“슬슬 가까이 보입니다.”

“저기가 제 2연구소인가.”

빌딩으로 가득찬 골목에 들어선지 10분 가량이 되었을까.

청년은 두터운 돌담으로 가로막혀있는 건물 앞에서 멈춰섰다.

연구소의 앞에는 무장을 하고 있는 인력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감시카메라를 포함해 여러가지 보안 장비들의 모습이 보였다.

경비가 삼엄한 모습을 보건데, 아무래도 우리가 찾던 연구소가 맞는 것 같았다.

연구소와 살짝 거리를 둔 위치에 선 청년은 손가락으로 연구소 건물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까지만 안내하면 되는겁니까?”

“수고했다. 이만 돌아가도록.”

청년은 기대이상으로 안내를 잘 해주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뭉치 하나를 더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청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상을 느끼면 곧바로 유령군단의 병력이 찾아올테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는 편이 나았다.

이전과 똑같은 액수의 돈뭉치를 받은 청년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큰 오해는 안했으면 좋겠군. 나는 소장님과 큰 거래를 하기 위해 찾아온거라 말이야.”

“소장님과요?”

“그래. 거물들끼리의 대화라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기는 곤란하군.”

“그, 그렇군요…….”

막대한 돈. 그리고 연구소 소장과의 친분.

이야기를 들은 청년이 수긍하기에는 충분한 근거였을 것이다.

안그래도 수상한 녀석들이 판치는 마을이다.

더군다나 청년은 자세한 이야기를 알기에는 어려운 신분이지 않은가.

청년은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돈을 받아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거듭해서 청년에게 경고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나와 소장님 사이의 일이니까.”

“아… 알겠습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청년이 빠르게 이곳을 지나갔다.

이제는 연구소 안으로 잠입할 방법을 고민해볼 차례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방금처럼 연구원을 회유하는 방법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일단 연구원과 접촉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터.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내가 골목 밖으로 걸어가려는 찰나, 손을 뻗은 헤리오가 내 어깨를 붙잡아 멈춰세웠다.

“……무슨 일이지?”

“슬슬 숨어있는 적들이 제법 느껴지는군.”

“그것도 확인할 수 있나?”

“그래. 대강이나마 적의 규모를 알아낼 수 있다.”

나 역시 표면적인 사고를 읽어낸다면 적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상대의 숫자를 알아내려고 한다면 소리가 뒤섞여 혼란해질 뿐이었다.

그러니 적의 규모를 알아냈다는 헤리오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 알아낸거지?”

“미약하게 퍼트린 전파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그야말로 인간 레이더군.”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눈치채이지 않을 정도로 마법을 사용해, 그에 대한 반응을 해석한 모양이었다.

유령군단과의 전투에 있어서 상당한 이점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헤리오 자신은 내 칭찬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녀석들이 지나가면 신호를 보내라.”

“그렇게 하겠다.”

유령군단의 병사들이 지나가고 있다면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모습을 눈치채이지 않도록 골목의 깊숙히 몸을 숨겼다.

우리 모두가 숨을 죽인 채로 군단의 병력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일분. 이분. 오분. 그리고 십분.

슬슬 연구소 앞을 지켜보던 시간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을 즈음, 헤리오가 다시 한 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됐다. 지나가도 될거다.”

헤리오로부터의 통과 신호였다.

적들이 지나가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제서야 허락을 받아낸 나는 세워두었던 가방을 다시 맨 채, 헤리오를 향해 물었다.

“적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계속 가능한 방법인가?”

“오늘이 지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을거다.”

“그럼 작전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사전에 예고했던대로 인원을 나눌거다.”

“그렇게 하겠다.”

“그리고 기존의 계획에서 하나를 추가할 생각이다.”

유령군단의 토벌을 위해 16구역에 찾아오기 전, 나는 일행을 모아두고 계획을 알려주었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유령군단의 사살이다.

그리고 유령군단의 사살을 위해서는 잠시나마 대치상황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인원을 두가지 역할로 나누었다.

하나는 적들을 맞상대하며 지속적으로 교란시키는 역할.

이 역할에 배정한 것이 시넬과 헤리오였다.

그리고 나와 검성은 벨 바이어틴을 구출하고 저격포인트를 확보하는 역할이었다.

다만 이 작전에서는 시넬과 헤리오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게 된다.

헤리오가 적들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하나의 조건을 더 덧붙일 생각이었다.

“어떤 내용이지?”

“적들의 규모가 상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차례 신호를 보내고 물러서라.”

“우리를 걱정하고 있나?”

“상황에 따라 계획을 조정할 생각이다.”

헤리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맞받아칠 수 있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이곳은 적의 본진이 아니던가.

전투를 강행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다면, 일단 퇴각을 명령하고서 뒤로 빠질 생각이었다.

상황에 맞춰서 머리를 굴려본다면 어떻게든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넬도 헤리오도 이곳에서 잃을 수는 없는 이들이었다.

“비효율적인 작전이군. 사살이 최우선 목표라고 하지 않았나?”

“목표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순서가 바뀔 뿐이지.”

“……그런가.”

설명을 들은 헤리오가 쓴웃음을 지었다.

미소를 지은 얼굴 너머에서 미묘한 감정이 전해져왔다.

“헤리오. 작전에 불만이 있나?”

“아니, 그럴리가. 명령대로 하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됐군.”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헤리오는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갑옷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어올렸고, 나는 그런 헤리오에게 이어셋 하나를 건넸다.

툭. 자그마한 이어셋이 헤리오의 손바닥 위에 놓여졌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제의 무선 통신장치.

헤리오에게 있어서도 꽤나 익숙한 물건일 것이다.

“무전이다. 지시사항은 따로 전달하도록 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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