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무엇을 위해 강해졌는가 (5)
* * *
헤리오 나이트라인.
그가 아직 어린 아이였던 어느 날의 밤.
헤리오는 가족과 함께 식탁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의 도중,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헤리오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헤리오.”
“네. 아빠.”
“언젠가 너를 가로막는 시련이 나타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거냐.”
“맞서싸워야겠죠. 그게 기사니까!”
헤리오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는 기사를 동경했고, 그게 기사의 길이라 배웠으니까.
그가 읽었던 동화의 기사들은 언제나 그런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그의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아까와는 질문의 내용을 바꾸어 물어보았다.
“세상에는 강한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알고 있어요.”
“네가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모든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
“네. 그것도 알아요.”
“만약 네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너를 방해한다고 해도, 아까 말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겠냐?”
“그건…….”
이번에는 아버지의 질문에 헤리오가 고민할 차례였다.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워야만 할 때.
언젠가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고 한다면, 자신은 맞서싸울 수 있을 것인가.
헤리오가 소세지를 꽂은 포크를 흔들며 고민하고 있으면,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헤리오를 너무 곤란하게 만드는거 아니에요?”
“그래도 싸울거에요. 그게 기사도라고 배웠으니까.”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헤리오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이 바뀐다고 해도 그의 마음은 변치 않았다.
“그러니? 멋진 생각이구나.”
“헤헤…….”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을 기억하면서, 헤리오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강한 적을 마주해도 맞서싸운다.
역경이 찾아와도 뚫고 나아간다.
약자를 지키며, 악자를 처단한다.
그것이 그가 알고 있는 기사도였다.
언젠가 자신이 어른이 되더라도, 지금의 생각이 변치 않으리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타협하는 법도 알아야한다.”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아니, 내가 가르치려고 했는데……. 당신이 갑자기 끼어들었잖아.”
“당신 고집이나 꺾고서 말해요. 이 동네에서 가장 고집 센 사람이 당신이라고 소문났으니까.”
저녁 식탁에서 나오는 가족간의 화목한 대화.
그 모습을 보며 헤리오는 환하게 웃었다.
나중에 그가 훌륭한 기사가 된다면, 그때는 부모님의 미소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렇게 될거라고.
어린 날의 헤리오는 굳게 믿고 있었다.
* * * * * *
연구소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의 한구석.
그곳에서 나는 연구원의 입에 총구를 집어넣고 있었다.
별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경비가 삼엄한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연구원의 도움을 받고자 했을 뿐이다.
“므슨… 즈습으…….”
입에 총구가 물려져 있는 연구원은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이 남자도 꽤나 운이 없는 편이었다.
담배를 사러가기 위해 밖으로 빠져나온 연구원을 따라와, 그의 입에 다짜고짜 총구를 쳐박은 것이다.
이전에 총구를 물었던 청년의 흔적이 있을테니, 어떻게 보면 간접키스로 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조용히 하고, 고개만 움직였으면 좋겠군.”
끄덕. 끄덕.
입에 총구를 문 연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서야 입에 틀어박았던 총구를 살짝 밖으로 꺼내었다.
다행히도 아까 마주했던 청년처럼 이빨이 부러지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들고있는 권총으로 연구원의 입천장을 툭툭 치면서 물었다.
“당신. 연구소 안에서 영향력이 좀 있나?”
질문을 들은 연구원은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였던 모양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잘났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잘났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렇다고 대답이 너무 늦게 나오면 곤란하지만 말이다.
“어려운 모양이군. 쓸모가 없으면 죽일거다.”
끄덕. 끄덕. 끄덕.
내 말에 연구원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여왔다.
이제서야 쓸모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구원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쓸모가 있게 만들어줄 자신이야 있다.
나는 연구원의 입에 박아두었던 총구를 빼냈다.
그리고 그것을 연구원의 복부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연구소의 어디까지 접근 가능하지?”
“어, 어지간한 곳은 전부 가능해!”
“얼마전에 젊은 여자 하나가 납치되어왔다. 그것도 알고 있나?”
“아, 그 여자…….”
벨 바이어틴의 이야기를 꺼내자, 연구원이 아는 기색을 보였다.
벨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빨랐다.
눈앞의 연구원에게 안내를 받아 벨을 찾아가면 될 것이다.
나는 연구소의 입구를 향해 눈짓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안내해라.”
“하지만…….”
“권한이 없나? 죽이고 다시 찾아봐야겠군.”
“아니야! 가능은 할거야. 아마…….”
“그럼 잔말말고 움직여라.”
연구원을 앞장세우고서, 그의 등에 총구를 붙였다.
앞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총구가 보이지 않는 구도였다.
그런 내 뒤에서는 기타 케이스를 맨 검성이 따라오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수상한 일행 그 자체였다.
지금부터 그 의심을 권위의 힘으로 타파할 생각이었다.
“잠깐. 정지하도록.”
연구원을 데리고 연구소 정문까지 다가가자, 문앞을 지키던 경비병이 우리를 멈춰세웠다.
혼자 나갔던 연구원이 수상쩍은 일행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다.
경비를 서던 남자들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소총을 들고 있는 경비병이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마주하고 있던 연구원을 향해 물었다.
“동행한 인물들은 누구냐.”
꿈뻑. 꿈뻑.
연구원의 눈이 나와 경비병을 번갈아 보았다.
과연 경비병들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연구원의 등에 총구를 더욱 바싹 붙였다.
그럼에도 경비병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컸던 모양인지, 연구원이 경비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수상한 인물들이.”
“여기 계신 분들은 소장님의 손님들이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나는 텔레파시를 사용해 연구원의 소리를 묻어버리고서, 경비병들에게 준비해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연구원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들렸다.
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자신의 목소리로 흘러나온 상황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것이다.
경비병은 연구원의 목소리를 흉내낸 답변을 듣더니, 불신의 여지를 거두지 않고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소장님의 손님? 사전에 보고받은 말이 없는데.”
“아니, 나 지금 협박당하고.”
“소장님이 나한테 부탁했다고! 불만있으면 너희가 직접 소장님한테 확인하든가!”
“뭐……?”
“혹시라도 늦게 된다면 그땐 너희 책임이 될거다. 알았으면 빨리 문이나 열어!”
연구원의 표정에 맞추어 목소리를 재차 흘려보낸다.
내가 변조한 목소리를 들은 경비병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연구원 역시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연구원의 표정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인 것일까.
그는 아무런 반박조차 하지 못한 채로, 얌전히 우리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지나가라.”
연구원은 멍한 눈으로 경비병이 내어준 길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잘 해결된 모양이군. 지나가도록 하지.”
“……어? 어. 네.”
“빨리 좀 가봐. 소장님이 기다리시겠군.”
총구와 함께 떠밀린 연구원이 앞으로 발을 옮겼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은 매서운 눈으로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노려본다고 해서 본인들이 어떻게 하겠는가.
자그마치 연구소의 소장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데 말이다.
우리는 어설픈 걸음걸이를 내딛는 연구원을 따라 이동했다.
돌담 너머에 세워진 투박한 연구소의 건물들이 우리를 반겼다.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들의 모습이 슬슬 멀어지기 시작했을 즈음, 나는 연구원의 허리에 총구를 깊숙히 찌르며 말했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아, 아니 그게……. 잠시 미쳤나봐요.”
“처신 잘하는게 좋을거야. 인형놀이는 시체로도 할 수 있으니까.”
협박삼아 내뱉은 말에 연구원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이런 사람이 방금 전에는 무슨 용기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연구원의 말대로 그가 잠시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마 이번 협박은 진지하게 그의 뇌리에 틀어박혔던 모양일까.
고개를 끄덕인 연구원이 벌벌 떨며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방금 전은 마법입니까?”
“알아서 뭐하려고.”
너무 틀어박히다 못해 한바퀴 돌아버린 모양이다.
푹. 다시 한 번 총구를 찌르자 연구원이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을 조종하는 조종간이라도 하나 얻은 기분이었다.
나와 연구원의 짧은 대화에 검성이 차가운 눈으로 연구원을 바라보았다.
연구원은 뒤통수로 검성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소 안에 있던 건물들 중 가장 작은 건물이었다.
“어, 선배님.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그가 연구소 안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새하얀 연구가운. 그리고 피로에 찌든 커다란 다크서클.
말을 걸어온 것은 그와 같은 처지의 연구원이었다.
연구원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더니, 이내 무심하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나 많이 바쁘다.”
“아, 실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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