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Dear My Hero (1)
* * *
“으응…….”
포화. 그리고 격전.
굉음으로 뒤덮힌 전장속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벨 바이어틴.
해독제를 맞은 그녀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
“정신이 드는 모양이군.”
나는 멍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는 벨을 바라보았다.
깜빡. 깜빡.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눈동자가 나를 마주했다.
그녀는 잠시동안 굳어있더니, 이내 어눌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는… 어디?”
“16구역. 유령군단의 본거지다.”
“유, 령군…단?”
“그래. 헤리오와의 계약으로 너를 구출했다.”
유령군단. 그리고 헤리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벨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서야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일까.
벨은 헤리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윽…….”
하지만 이내 비틀거리며 다시 주저앉았다.
아직까지 약기운이 어느정도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벨이 이런 상태라면 당분간은 내가 그녀를 업고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저격총이 들어있는 가방을 내팽개치고서, 벨에게 다가가 무릎을 낮췄다.
깜빡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업혀라.”
“나, 혼자서도…….”
“갈길이 멀다. 빨리 업혀라.”
“……알았어.”
벨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나는 한손으로 그녀를 업어들고서, 다른 한손으로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동하는동안 계속해서 전투가 이어질 것이다.
양손으로 그녀의 편의까지 봐주고 있기는 힘들었다.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가 되자, 나는 미묘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검성을 향해 말했다.
“유엘. 아래로 내려가겠다.”
“지금 바로?”
“그래. 뛰어내릴거다. 보조해라.”
“알았어. 뛰기 전에 신호해.”
적들이 포진해있는 건물을 뚫고 1층까지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곳에 올라오던 시점부터 뛰어서 옥상에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걸 위해서 검성을 동반하기도 했고 말이다.
권총을 든 내가 그녀에게 신호를 주면,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난간에 다가섰다.
5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지면의 모습이 보였다.
건물의 높이치고는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라지만, 5층에서 보는 아래의 풍경은 생각보다 아찔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아래를 본다.
셋. 둘.
마지막으로 하나. 나는 아래쪽으로 뛰어내리며 검성을 향해 외쳤다.
“지금이다!”
“.”
아래쪽으로 뛰어내린 우리의 몸을 바람이 감쌌다.
윈드 커터. 검성의 마법이 재빠르게 터져나온 것이다.
바람은 지면과 충돌하려는 우리의 몸을 강하게 밀어내고서, 낙하속도의 대부분을 감속시켰다.
바람의 영향을 받은 우리는 아무런 부상 없이 바닥에 내려앉을 수 있었다.
지면에 다리가 닿은 직후, 살랑이는 바람이 뺨을 스쳐지나갔다.
“수고했다.”
“퍼시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은 이 근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직후 지원을 요청한다.”
“지원?”
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검성이었다.
암흑상인의 사무실에는 나와 시넬, 그리고 검성뿐이다.
우리에게 그럴만한 세력이 없다는 것은 검성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의문을 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와 나이트테일 기사단에 지원을 요청할 생각이다. 물론 연락은 이 여자가 할거다.”
고갯짓으로 벨을 가리키자, 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보았다.
잡담은 이제 여기까지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근처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당장 우리의 앞쪽만 하더라도, 난전에서 이탈한 병력들이 무기를 들고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앞을 향해 권총을 겨누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엘. 도망치는동안 쫓아오는 적을 처리할거다. 최대한 거들어라.”
“응.”
“돌파한다.”
이어셋을 통해 엿들은 헤리오의 대화에 따르면, 시넬은 이미 후방으로 빠져나갔다.
시넬과 합류하는 것은 이곳을 빠져나간 이후로도 괜찮았다.
적들의 움직임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상대할 적의 숫자를 배분했다.
“정면에 셋. 왼쪽에 하나.”
“어느쪽을 맡아?”
“정면을 맡아라. 탄창을 별로 가져오지 못했다.”
정면과 측면. 골목의 양쪽에서 적이 쏟아져나왔다.
나는 좌측의 적이 모습을 보이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앙!
머리와 가슴. 시간차로 적중한 탄환이 적을 침묵시켰다.
모습을 드러낸 적은 짧은 단말마를 내고서 쓰러졌다.
이는 앞에서 찾아오는 적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성류 오연섬격.”
“커억……!”
촤아아악!
한계까지 압축된 바람이 정면의 적을 베어갈랐다.
총을 든 적들이 방아쇠를 당길 시간따위는 없었다.
털썩. 가면을 쓴 남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깔끔한 교전이었다.
순식간에 적들을 쓰러뜨린 우리의 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으로 간다.”
“길은 기억하는거야?”
“그래. 기억하고 있다.”
예전부터 기억력은 좋은 편이었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움직여야 하는 경로는 대강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왼쪽. 오른쪽. 정면. 그리고 다시 왼쪽.
순차적으로 갈림길에 들어선 나는 올바른 길을 찾아 움직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숫자의 적을 마주했다.
대부분은 검성이 처리하고, 급한 경우에는 얼마 남지않은 탄환을 사용했다.
최초의 교전으로부터 어느덧 십분 가량이 흐르자, 부지런히 걸어 움직인 우리는 연구소에서 제법 멀어진 위치까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기만 지나가면 숨을 돌려도 될거다.”
“거의 다 온거야?”
“차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겠지만 말이야.”
어느덧 끝이 보이기 시작한 길목.
그 너머에 보이는 밀밭의 모습에 안심하고 있으면, 나는 다시 한차례 정면에서 튀어나오는 적을 맞닥뜨렸다.
이전처럼 가면을 쓴 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들고 있던 총기를 급하게 겨누는 모습을 보건데, 안에 있는 녀석들과 한통속인 것만은 확실했다.
녀석은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며 말했다.
“거기 멈춰라! 움직이면…….”
“시끄럽다.”
탕! 타앙!
권총의 탄환이 녀석의 머리를 꿰뚫었다.
쓰러진 녀석을 피해 길목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면, 우리는 그토록 고대하던 밀밭을 마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텔레파시에 잡히는 인기척은 없었다.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권총을 품에 집어넣었다.
“후……. 이제 내려놓을거다.”
업고서 움직이던 벨 역시 바닥에 내려주었다.
슬슬 어느정도 회복이 되기 시작한 것일까.
벨은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바닥에 착지하더니, 이내 자신의 다리로 바닥에 앉았다.
쪼그려 앉은 벨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바닥에 앉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녀가 움직여줄 차례였다.
“벨 바이어틴.”
“응.”
“레서트나 나이트테일에 지원을 요청해라. 한시가 급한 일이다.”
나는 내 휴대전화를 벨의 손에 쥐어주었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번호였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를 보며 한참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있잖아. 질문 하나 해도 돼?”
“뭐가 궁금하지?”
잠깐정도는 숨을 돌릴 여유가 있을거다.
하물며 벨은 납치당한 직후에 구출된 상황이 아니던가.
간단한 질문이라면 받아주지 못할 이유도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채 벨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녀는 손에 쥔 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헤리오는 어디로 갔어?”
“…….”
“모르는거야?”
헤리오는 그녀를 위해 싸우러갔다.
아마도 멀쩡하게 빠져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지금 그녀에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자신의 안에서 여러가지 고민이 피어올랐다.
침묵속에서 착잡한 시선으로 벨을 바라보고 있으면, 근처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가 오는군.”
쿵. 쿵. 쿵. 쿵.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 같은 묵직한 소리.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길목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상념에 잠겨있을 시간은 없었다.
총구의 끝이 건물의 그림자속에서 움직이는 거구의 남자를 쫓았다.
시넬인가. 혹은 적인가.
움직이는 적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정체를 밝혀라. 멈춰서지 않으면 쏘겠다.”
가까이 다가와야 전투가 가능한 마법도 있다.
타앙!
그가 걸어오고 있는 바닥에 위협사격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날아오는 탄환을 무시한 채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걸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무언가에 의해 뭉개진 괴성.
한계에 다다른 목이 쉬어버리고, 이물감이 섞여 불쾌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그것을 듣자마자 총구를 내렸다.
이질적이지만 익숙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알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심하게 망가진다면, 그때는 이런 소리가 될지도 몰랐다.
“설마.”
“나는…….”
그는 여전히 입을 열며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졌던 형체가 태양 아래 서서히 드러났다.
피와 흙이 뒤섞여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갑옷.
그 속에서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상대의 정체를 깨달은 벨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엉성한 발걸음으로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헤리오!”
비틀거리며 찾아온 헤리오는 하나뿐인 손을 뻗었다.
피에 젖은 손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고, 쇠약해진 몸뚱아리는 가느다란 숨을 내뱉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헤리오를 마주하는 벨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벨은 헤리오의 피묻은 손을 붙잡고서 그에게 물었다.
“헤리오, 괜찮아?”
“나는…….”
“상처가 심해, 헤리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섬광기사… 헤리오 나이트라인……!”
깨져버린 갑옷. 망가진 문장. 부서져가는 육체.
그럼에도 번뜩이는 눈동자가 소녀를 맹렬하게 바라보았다.
전력으로 내뱉는 그것이 마지막 단말마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일까.
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단지 눈앞에 있는 헤리오를 마주볼 뿐이었다.
“…….”
“당신의… 기사다…….”
찰나의 전장을 살아가던 숭고한 기사가, 기사도의 마지막을 고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