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Dear My Hero (2)
* * *
헤리오 나이트라인. 그가 죽었다.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이 세계에 와서 몇번이고 숱한 죽음을 보았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끝낸 이들만 해도, 이미 손으로 셀 수 없는 숫자가 된지 오래였다.
나는 헤리오와 그리 친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해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입안에 감도는 씁쓸함이 도저히 가시지 않아서, 서서히 쌓여가는 텁텁함을 어딘가에 토해내고 싶을 정도였다.
“……헤리오? 장난치는거지? 아직 살아있잖아.”
쓰러진 헤리오의 몸을 벨이 흔들었다.
창백한 얼굴의 헤리오는 벨의 행동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의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기사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헤리오 자신의 입으로 선언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섬광기사이면서, 벨 바이어틴의 기사라고 말이다.
“헤리오! 빨리 일어나란 말이야!”
나 역시도 이해하고 있다.
어차피 모두가 결말까지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리고 헤리오는 자신에게 남겨진 최선의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유령군단의 토벌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전쟁도시’의 어셔 헤이즈 역시 희생을 치뤄가며 자신의 손으로 유령군단을 쓰러뜨렸다.
일을 진행하지 않고 그들을 놓쳤더라면, 어떤 변수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헤리오가 죽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헤리오……!”
“…….”
하지만 사람의 죽음이라는게 손익으로만 따질 수 있는 일이던가.
하물며 영웅의 죽음은 더욱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섬광기사.
이제는 녹슬어버린 전설을 평생동안 뒤쫓아왔던 영웅.
이야기속에서 내가 존경하던 헤리오의 모습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은 아직 비루하게만 보이는 자신의 손바닥 뿐이었다.
“퍼시발.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다.”
“……얼굴은 그런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검성이 나를 걱정하며 말했다.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버린 입이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무래도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계속 여기에 있어봐야 머리가 아파올 뿐이다.
헤리오가 이곳에 온 이상, 그가 상대하던 유령군단의 잔당은 와해되거나 퇴각했을 터.
이곳의 일은 검성에게 맡겨두고서 따로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유엘.”
“응. 듣고 있어.”
“너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
“무슨 부탁인데?”
“저 여자가 정신을 차리면 지원을 요청하도록 이야기해라. 그리고, 가능하면 차가 있는 쪽으로 위치를 옮기는게 좋겠군.”
간단하게 말해서 헤리오와 벨을 부탁한다는 이야기였다.
흐음. 검을 붙잡은 검성이 살짝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편한 분위기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로 갈 생각인데?”
“시넬을 찾으러갈거다.”
“아……. 알았어. 여기는 내가 보고 있을게.”
“그럼 부탁하도록 하지.”
전투에 있어서는 굉장히 듬직한 검성이다.
이곳을 맡기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검성이 헤리오와 벨을 지키는 동안, 나는 먼저 움직인 시넬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잘 찾아서 데려와야해.”
“뭐, 별일이야 있겠나.”
시넬을 걱정하는 것보단 자신을 걱정하는게 빠를 것이다.
권총의 탄창을 갈아끼운 나는, 그것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발자국을 새기며 패여나갔다.
축축하게 젖은 흙바닥은 지나간 이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나는 틈틈이 숨어있는 진창을 피해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난잡하게 펼쳐진 발자국 속에서 익숙한 것을 찾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쪽으로 갔겠군.”
연막이 펼쳐져있던 전투의 도중, 헤리오는 시넬에게 주민의 대피를 지시했다.
연구소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주민들의 마을이 있는 것을 확인한 모양이다.
대피 자체는 그리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일까.
바깥쪽으로 빠져나오는 주민들의 행렬을 구경하기는 어려웠다.
바닥을 유심히 보며 움직이던 나는 이내 시넬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을 찾아냈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보이지?”
내가 생각해도 굉장히 대견한 일이었다.
남의 신발 발자국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아무래도 같이 살았던 기간이 길기는 길었던 모양이다.
이미 낡아떨어진 신발을 내가 바꿔주었던 물건이다.
자세히 살펴볼만한 기회는 제법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쪽으로 빠져나갔나.”
발자국을 알아보는 자신의 실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나는 시넬의 흔적을 더듬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중간마다 발자국이 끊겨 있는 장소가 보였지만, 금세 근처의 다른 발자국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을 쫓는 일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가.
점점 탐정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
바닥을 걷는 발소리가 바뀌어갈 무렵.
나는 더 이상 바닥을 내려다보는 것을 포기했다.
슬슬 마을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이전과 다르게 포장된 바닥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시넬의 발자국 역시 얼마 가지않아 끊긴 모습이었다.
이래서야 흔적에 의존해서 찾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끼고있던 이어셋의 버튼을 눌렀다.
“시넬. 듣고 있나?”
“사장님?”
이어셋에서 시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도 별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이어셋을 통해 시넬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래. 지금 어디에 있지?”
“우체국 앞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어요.”
“……그런 것 치고 대피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다들 말을 잘 안듣네요.”
시넬의 한탄도 이해는 간다.
외지인이 말하는데 쉽게 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유령군단의 보급과 병력충원이 이루어지던 곳이니, 주민들도 대부분 호의적인 상황이었다.
전투도 끝난 마당에 굳이 대피를 이어갈 필요는 없어보였다.
“그럼 그 자리에서 대기해라.”
“대기하나요.”
“내가 데리러 갈 생각이다.”
“네.”
통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철컥. 권총을 장전한 나는 무음영역을 펼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넓지는 않지만 지형이 복잡한 마을이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유령군단의 잔당은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을 증명해주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외지인? 정체를…….”
탕! 타앙!
가슴에 한 방. 그리고 머리에 한 방.
번갈아 내려꽂힌 탄환에 잔당이 침묵했다.
유령군단의 수괴를 저격했을 때도 그렇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묘하게 명중률이 좋은 몸이었다.
이게 태생적인 재능이라는 것일까.
가끔씩은 나 자신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스? 왜 거기서…….”
총성을 듣지 못해 뒤따라오던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총이 연달아 불을 뿜어내고, 뒤에 있던 남자 역시 최후를 맞이했다.
이곳의 주민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마을에 찾아온 잔당이 많은 느낌이다.
길을 가로막던 녀석들을 쓰러뜨린 나는 우체국을 찾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처음 마주하는 어색한 길목을 지나고, 마주하는 유령군단의 잔당들은 전부 쏴죽였다.
찌그러진 전신주. 바닥을 굴러다니는 깡통.
내 손에 쓰러진 다섯의 군단병.
낯설었던 마을의 분위기가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할 즈음, 나는 그토록 찾아헤매던 시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까망이냐?”
“냐아아아.”
적을 마주한 줄 알고 총구를 들어올렸던 대상이 익숙한 모습의 고양이었던 것이다.
까망이는 나를 보며 짧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람과 오래 살다보니 슬슬 사람처럼 되어가는 것인가.
그런 까망이의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며 뒤쫓아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으로 다가오는 시넬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시넬. 이런 곳에 있었나.”
“사장님.”
시넬의 잿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시넬은 까망이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반가움의 기색이 엿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시넬이 나를 반기고 있던 것도 잠시.
내 뒤편을 바라보던 시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암흑상인… 죽여버리겠다.”
그 순간, 나는 뒤에서 흘러나오는 살의를 느꼈다.
어둡고 끈적끈적하면서, 증오와 분노가 얽혀있는 감정.
앞에서 달려오던 시넬 역시 불안함을 느낀 것일까.
그녀는 자세를 낮추고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헤이스트].”
나 역시 위화감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빠져나온 길목으로부터 조금 뒤에 위치한 모퉁이의 옆.
그곳에는 가면이 망가진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는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 역시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였다.
철컥.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하…….”
“죽여버리겠다! [인페르노]!”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것은 일찍이 유령군단을 이끌었던 사령관의 목소리였다.
가면이 없는 모습은 처음 보기에 어색했지만, 아무래도 상대의 정체는 사령관인 모양이었다.
그런 사령관의 손에서는 자그마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꽃의 마법이다. 아마도 약물을 사용한 마법일 것이다.
마법을 사용하려는 사령관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나는 무언가의 위화감을 느끼고 가만히 멈춰섰다.
“……!”
딸깍. 공이가 비어있는 약실을 때리고는 되돌아갔다.
쥐고 있는 권총에서 격발음이 울려퍼지는 일은 없었다.
남아있는 탄환이 없었던 것이다.
딸깍. 딸깍.
몇차례 방아쇠를 당기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날아오기 시작한 사령관의 불꽃은 더욱 그 크기를 키워갔다.
“사장님!”
흔히,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시간이 느리게 보인다고 한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불길이 느리게 보이고, 헤이스트를 사용한 시넬은 그보다 더욱 느리게 보였다.
하지만 가장 느린 것은 자신의 몸뚱아리였다.
피하려고 해도 움직일 수 없고, 반응하려고 해도 속도가 맞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오직 시넬과 작열하는 불꽃 뿐이다.
왜곡된 시간속에서 날아오는 불꽃이 나와 충돌하려는 순간.
가까이 달려든 시넬이 나를 밀쳐냈다.
“아…….”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뒤로 밀려나기 시작한 육체.
그리고 시넬을 향해 날아드는 불꽃.
기울어지기 시작한 시선이 위기에 빠진 동료를 보여주었다.
이내 대기를 가르며 날아온 불꽃이 시넬과 충돌했다.
콰과광!
터져나오는 폭음. 그리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파편.
그 속에서 시넬이 벽면을 향해 날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