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Dear My Hero (3)
* * *
뒤로 밀려나기 시작한 육체.
그리고 시넬을 향해 날아드는 불꽃.
기울어지기 시작한 시선이 위기에 빠진 동료를 보여주었다.
이내 대기를 가르며 날아온 불꽃이 시넬과 충돌했다.
콰과광!
터져나오는 폭음. 그리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파편.
그 속에서 시넬이 벽면을 향해 날아갔다.
“시넬……!”
쿵. 벽에 부딪힌 시넬이 바닥에 쓰러졌다.
시넬과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기울어지던 몸을 벽에 기대어 멈춰세운 후, 곧장 시넬을 향해 다가갔다.
상처가 크다. 화상을 입은 시넬의 피부가 처참한 몰골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그녀의 숨이 붙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상태를 보는 것은 일단 여기까지다.
지금은 시넬의 몸을 살피기에 앞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전부… 전부 너희 때문이야!”
“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사령관을 바라본다.
그는 아직까지도 나에 대한 원망을 토해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득.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가 갈렸다.
저 녀석을 죽여야한다.
헤리오가 죽었다. 그리고 시넬이 다쳤다.
전부 녀석과 유령군단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쪽을 바라보던 사령관이 다시 한차례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인페르노]!”
피익.
녀석의 손에서 나오던 불꽃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마법의 시간이 완전히 끝난 것이다.
사령관은 마법사가 아니다.
어떤 마법에도 선택받지 못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약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쓰러진 시넬과 사령관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시넬의 단검을 주워들었다.
“…….”
시넬이 새로 구입했다며 나에게 자랑하던 물건이었다.
이 단검이 있다면 문제없이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나와 유령군단의 악연을 완전히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나는 시넬의 단검을 들고서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인페르노]! [인페르노]! 왜, 왜 안나오는거야!”
“……죽어.”
단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분노로 가득찬 몸이 제멋대로 녀석을 향해 뛰쳐나갔다.
격한 호흡이 입에서 터져나온다.
거칠게 뛰기 시작한 고동에 전신의 혈류가 내달렸다.
짧은 한걸음. 그리고 또 다시 한걸음.
둘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이, 인페르노……!”
“닥쳐!”
콰악! 내지른 단검이 녀석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근육의 저항감이 손을 통해 전해져온다.
그러나 분노에 젖은 지금은 종잇장같이 연약했다.
나는 녀석의 몸에 깊숙히 틀어박힌 단검을 비틀었다.
콰득! 콰드득!
뼈와 근육이 엇나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끄, 끄아아아악……!”
“마법을 쓰는 동안은 좋았겠지!”
“끄으윽… 그, 그마안……!”
“부하도 많아서 아주 좋았겠어! 왕이 된 기분이었나?”
어깨에서 뽑아낸 단검을 다시 복부에 내려찍었다.
푸욱. 다시 파고든 단검에 사령관이 비명을 토했다.
복부를 꿰뚫린 녀석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었다.
비명을 내지르는 얼굴의 혈관 역시 도드라졌다.
“아아아악! 사… 살려…….”
“살려줄 이유가 없지!”
단검을 다시 뽑아내, 이번에는 녀석의 가슴팍에 꽂아넣었다.
사령관의 입에서 바람빠진 소리가 새어나왔다.
쿨럭.
기침과 함께 녀석의 입에서 피가 흐른다.
버둥거리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생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단말마와도 같이, 사령관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 나는… 아직 죽을 수…….”
“아니. 지금이 네가 죽을 때다.”
“…….”
“네 무덤은 이제 여기다.”
마무리를 짓듯이, 손에 들린 단검을 강하게 내려꽂았다.
날카로운 단검이 사령관을 꿰뚫고, 이내 사령관이 완전히 절명했다.
죽음을 맞이한 그가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이것으로 헤리오의 원수는 갚은 것이다.
후.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단검을 뽑아들었다.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시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시넬.”
상처를 입은 시넬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넬의 상처를 살펴야만 했다.
나는 빠르게 뛰어 시넬을 향해 다가갔다.
여기서 시넬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다.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그것을 취하고, 가능한 빠르게 시넬을 병원에 데려가야만 했다.
“으…….”
“시넬, 정신차려라.”
시넬을 바르게 눕히고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시넬이 위를 올려보았다.
초점이 어긋나있는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맴돌았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상처가 지나치게 크다.
치유계통을 마법을 받으면 살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있던 찰나, 시넬이 옅은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파요.”
“조금만 기다리도록. 금방 병원에 데려가줄테니.”
“병원…….”
터져나온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출혈이 계속되면 틀림없이 죽고 말거다.
나는 시넬을 지혈할 수단을 찾다가, 지금 입고 있는 코트에 시선이 갔다.
마침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는 상태였다.
“일단은 응급조치부터…….”
“아무래도 금방 죽을 것 같아요.”
들고 있는 단검을 이용해 코트를 자르려는 찰나, 시넬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하게 다치더라도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시넬은 아직까지 살아있다.
내가 죽기 전까지, 그녀를 죽게 만들 생각은 없다.
나는 애써 그녀의 이야기를 부정했다.
“죽을 일 없다. 걱정마라.”
“그런가요? 앞이 안보이는데요.”
“잠깐 몸에 무리가 갔을 뿐이다.”
지익.
단검을 움직여 두터운 코트를 잘라내었다.
세로로 잘라내자 상처를 압박하기에는 충분한 길이가 되었다.
상처의 크기가 컸던 탓에, 몇 개 더 잘라낼 필요가 있어보였다.
내가 코트를 잘라내는 사이, 시넬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거짓말이네요.”
코트를 잘라내는 것에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피가 흘러나오는 부분을 강하게 압박한 후, 나는 시넬을 자신의 등에 묶어맸다.
혹시나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그녀와 나를 강하게 동여맸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녀가 나에게 뭐라고 말하더라도 말이다.
“아직은 죽을 생각 하지마라. 나는.”
“좋아해요.”
“…….”
등에 기댄 시넬의 내 귓가에 귓속말을 늘어놓았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심하게 다치더라도 그 성격만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시넬은 내가 뭐라고 하던지 아랑곳하지 않고서, 꿋꿋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같이 있으면 즐거웠어요.”
“고백은 나중에 해라. 지금은 체력을 아낄 때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할 것 같아요.”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포기도 그만하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사장님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탄환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뿐이다. 좀 아프기야 하겠지만, 돌아가면 고칠 수 있다.”
“많이 심각한 모양이네요. 그러니까 지금 할래요.”
역시, 자신의 몸 상태는 시넬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런 일념 하나로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다만 시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었다.
“…….”
“같이 있으면 즐거웠어요.”
“……시넬.”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밖을 걷고.”
“…….”
“같이 TV도 보고, 같이 쇼핑도 다니고.”
“…….”
“같은 샴푸를 쓰고,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뜨고.”
“…….”
“생각해보면 매일매일이 데이트였네요.”
대부분은 사소한 이야기였다.
흔히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너무나도 단조롭게 반복되지만, 그렇기에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모든 것들이 시넬이 남아있지 않다면 성립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삶 깊숙히 쐐기를 박고 있었다.
“웃는 얼굴을 보면 두근거리고,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소중해지고.”
“…….”
“홀로 내버려두고 움직일 때마다 서운해지고.”
“…….”
“분명,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는거겠죠.”
“……그런가.”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난잡한 길목의 모퉁이를 넘고, 바닥에 쓰러진 잔당의 시체를 피해서 걸어간다.
길목을 넘어가면 또 다른 길목이 나오고, 그것을 지나면 쓰러져있는 다른 잔당이 나왔다.
잃어버린 길을 향하는 이정표처럼 전투의 흔적들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니까 좋아해요.”
“말을 아껴라. 고백도 데이트도,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하면 그만이다.”
“싫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해요.”
시넬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장렬하게 타오르던 불꽃들이 사그라드는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줄어드는 목소리에 서서히 가슴이 옥죄어왔다.
손에 쥐고 있는 행복을 영영 놓쳐버릴 것만 같아서, 불안감이 가슴속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슬슬 졸리네요. 잠을 잘 것 같아요.”
“정신 차려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대답해주면 노력해볼게요.”
“…….”
완고한 태도를 보이는 시넬의 모습에, 나는 마음속으로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고 답변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가 지금이라도 듣고 싶어한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그녀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 대답을 들려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들려주지 않을래요. 마지막 대답.”
“마지막이 아니다.”
“그래도 좋아요. 그러니까 들려주세요.”
짧은 숨을 집어삼키고서, 마음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시넬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예전부터 정해져있었다.
이곳에서의 삶에 익숙해져버린 내가,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게 될까봐 보류하고 있던 한마디.
나는 억누르고 있던 내 마음을 입밖으로 풀어놓았다.
“나는…….”
새하얀 눈과 같이 순수하고,
꽃잎과 같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때로는 하늘에 박힌 별들처럼 반짝이고,
때로는 달을 머금고 있는 호수처럼 고요하다.
이야기는 그런 마법사에게 하나의 이름을 붙였다.
“나는, 너를…….”
시넬 클로버블룸.
거무칙칙한 도시속에서 찾아낸, 하나뿐인 나의 네잎클로버.
그렇기에,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