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Dear My Hero (6)
* * *
사건의 뒤처리는 벨이 부른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인력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차량과 헬기가 동원되어 도착한 인원들은 잔당들을 소탕하며 현장을 정리했다.
유령군단의 잔당들은 대부분 사방으로 흩어졌다.
방황하는 언데드를 제외하고는 연고가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따로 벨에게 기록의 삭제를 부탁했고, 현장의 CCTV 기록 역시 완전히 파기되었다.
계승자에게 우리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책임자는 헤리오의 부고를 들은 직후 사퇴했다.
바이어틴 가문은 그에게 경호실패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겠다고 통보했다.
당연하게도 도시의 신문들은 12가문의 일원이 이례적인 분노를 표한 것을 대서특필했다.
최대 후원자였던 레서트가 나이트테일에 조직개편의 압박을 넣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헤리오의 장례는 나이트테일 기사단 동료들의 주관하에 치뤄지게 되었다.
헤리오의 가족들에게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이었다.
“그 여자 문제로 시끄럽네요.”
TV에서 나오는 뉴스들을 보던 시넬이 입을 열었다.
벨 바이어틴. 이제는 시넬에게도 그리 거리감 있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일들을 계기로 더욱 복잡하게 엮일지도 모르는 문제였다.
나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얹은 채,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시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니까.”
“제국의 귀족이라고 했나요.”
“그래. 제국의 12귀족. 하나같이 우습게 볼 수 있는 가문들이 아니지.”
검성은 맞은편에서 선물받은 물건들을 개봉해보는 중이었다.
레서트 인더스트리에서 우리 사무실에 별도의 감사선물을 보낸 것이다.
헤리오의 희생이 뒤따랐다고는 해도, 벨 바이어틴의 구출에 우리가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CCTV 기록을 지워달라는 내 부탁을 의식한 것인지, 레서트의 선물은 비밀리에 전달되었다.
대부분은 레서트에서 구상중인 장비들의 프로토타입이었다.
“여기 안에 고글도 들어있네.”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장비들은 전장을 떠도는 용병들에게 있어서 명품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검성은 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레서트의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고글이라는 말을 들은 시넬이 검성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보았다.
“빛도 낼 수 있나요?”
“고글이 왜 빛나야 하는건데…….”
“많이 부족한 물건이네요.”
언제부터 고글로 눈이 부시게 만드는 것이 용병들의 기본소양이 되었던가.
벨이 들으면 굉장히 억울해할만한 이야기였다.
이해할 수 없는 개선사항에 시넬을 바라보고 있으면, 검성이 직접 나서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레서트제 장비라면 어디에 가도 최고로 치는 물건이야. 굳이 그런 기능 없이도 좋은 것들이라구.”
“그런가요.”
“그런거야.”
확연하게 다른 둘의 반응을 보고있으면, 이게 내가 그토록 바라던 평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서 골치아픈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결사의 녀석들에게 배신당해 세컨더리 비트의 검귀에게 쫓기고,
돈을 뜯어냈던 피해자와도 난데없이 마주친데다가,
네이 테르도스와는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켰으며,
절름발이 브루노가 찾아와 사무실이 통째로 날아가고,
거기에 최근에는 유령군단 토벌에 나섰다가 시넬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이만큼 혼란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도 없겠지 싶었다.
어셔 헤이즈는 논외로 해두고서 말이다.
“메세지가 왔네요.”
평온함을 즐기며 사무실의 풍경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넬이 내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이잉.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전화가 한차례 짧게 진동했다.
시넬의 말대로 메세지가 온 모양이었다.
“시넬. 일어서라.”
휴대전화를 확인하려면 일단은 무릎에 있는 시넬부터 치워야만 했다.
엎드려있는 시넬을 바라보자, 시넬의 시선이 나와 휴대전화를 번갈아보았다.
흐음. 시넬에게서 짧은 고민의 기색이 전해져왔다.
잠시동안 고민하던 시넬은 나를 바라보며 한가지 제안을 꺼냈다.
“제가 가져올게요.”
“그럼 부탁하지.”
“[헤이스트].”
순식간에 헤이스트 마법이 펼쳐졌다.
타다닥.
재빠르게 모습을 감춘 시넬이 되돌아왔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책상에서 가져온 휴대전화가 들려있는 채였다.
“여기 있어요.”
“…….”
내 무릎위로 다시 뛰어든 시넬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이런곳에까지 마법을 쓰는 시넬의 모습이 참으로 대견했다.
하기야, 검성은 자신의 마법으로 선풍기를 대신하지 않았던가.
나는 시넬이 건넨 휴대전화를 받아들고서 메세지를 확인해보았다.
“수고했다.”
“네.”
메세지를 보내온 것은 모르는 번호였다.
다만 메세지의 내용만은 상당히 익숙한 것이었다.
헤리오 나이트라인.
그의 장례식에 대한 내용이 메세지에 적혀있던 것이다.
“……도무지 쉴틈이 없군.”
나는 허탈한 기분이 되어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슬슬 움직일 때가 되기는 했다.
언제까지고 영웅을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는 그를 맞이하러 가야만 했다.
게다가 벨 바이어틴과의 협상도 아직 남아있었다.
이제는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 * *
3구역에 위치한 성당.
헤리오의 장례식은 그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성당의 입구에는 나이트테일 기사단의 차량과 함께,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견습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더불어 성당의 곳곳에 그를 기리기 위한 장식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섬광기사의 이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실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나는 그런 장소에 시넬을 호위로 대동해 찾아온 것이다.
“사람이 많네요.”
“이 도시에 이만한 사람은 흔치 않지.”
어느정도 격식을 맞출 생각이었기에, 나는 급하게 구입한 정장을 입은 채였다.
시넬 역시 최대한 구색을 갖춘 모습이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교회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살아날거라는 생각을 하니 입가가 비틀릴 것 같았지만, 억지로 그것을 참아내었다.
나와 시넬이 성당의 입구에 다다르자, 입구를 지키던 견습기사 하나가 우리를 제지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견습기사는 나와 시넬의 모습을 훑으며 말했다.
그 대단한 섬광기사의 장례식이다.
참가하려는 사람의 숫자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미사가 열리는 장소에는 벨 바이어틴이 자리잡고 있지 않던가.
최근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만큼, 아무나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분명해보였다.
“……지부장의 초대를 받아서 왔다.”
“초대장을 확인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나는 레서트의 사람을 통해 전달받은 초대장을 내밀었다.
견습기사는 초대장을 잠시 살펴보더니, 이내 다른 기사에게로 이동해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온 것은 1분가량의 시간의 흐른 이후였다.
그는 나에게 초대장을 돌려주면서 입장허가를 알렸다.
“오래걸려서 죄송합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본분에 충실해서 나쁠 건 없지.”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기사들과 다르게 예의가 바른 인물이었다.
내가 만난 나이트테일의 기사들은 대부분 반응이 날카로운 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당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터벅. 터벅.
성당에 들어서자 인파가 북적이는 복도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람은 많지만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하나뿐이었다.
어디에서 미사가 이루어지는지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항상 어려운 사람을 도왔습니다.”
신부의 목소리와 함께 묵직한 분위기가 주변에서 전해져왔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무거운 얼굴로 신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오열하는 기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헤리오의 인망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성당에 감도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자니, 나 역시 울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기사를 꿈꾸었고, 그를 위해 항상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남은 삶의 전부를 자신의 주군에게 바쳤습니다.”
나는 고개를 움직이며 벨의 모습을 찾았다.
여러줄로 늘어선 의자들 사이에서, 정장을 입은 채 자리에 앉아있는 벨이 보였다.
가장 앞줄에 있었다면 대화를 나누기도 어색했을테니, 나름대로 적당한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벨은 퀭한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동안 잠을 설치기라도 했던 것일까.
어떻게 보아도 멀쩡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책무를 다한 그를 기사라고 할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구를 기사라고 불러야 합니까?”
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는 벨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에 앉아있던 이들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시 앞으로 시선을 향했다.
고요하다. 그녀의 옆에 앉아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 시넬뿐이었다.
짧은 정적속에서 벨의 멍한 눈동자가 나를 비추었다.
“잘 지냈는지 모르겠군.”
“……암흑상인?”
“얼굴을 보니 아닌 것 같지만 말이야.”
“무슨 용건이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다.”
말은 이렇듯 거창하게 했지만, 내용물은 그보다도 훨씬 더 거창한 협상이었다.
마지막 인사라는 말에 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붙들고 있던 로자리오를 어루만지는 중이었다.
그녀가 쥐고 있는 로자리오에는 헤리오의 이니셜이 음각되어 있었다.
“마지막 인사?”
“그래. 끝나고 잠깐 시간 좀 내줬으면 하는군.”
“알았어.”
“기왕이면 섬광기사도 함께 말이야.”
가장 중요한 내용을 덧붙인 나는 신부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신부는 여전히 가슴아픈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도 여기서 울어야만 하나.
그런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