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Dear My Her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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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기적을 갈망하고는 한다.
때로는 눈앞의 작은 행운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을 바꿀 커다란 한방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이어틴 가문의 금지옥엽으로 자란 벨 바이어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세계에는 마법이라는 이름의 기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이유 없이 마법이 찾아온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혹은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렇기에 벨은 눈앞의 남자가 내뱉은 말에 다시 한 번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헤리오를 살릴 수 있다고?”
암흑상인. 그는 3구역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정보상인이다.
그 유명한 ‘천리안의 리만’이나 ‘주정뱅이 잭슨’에게 물어본다고 한들, 눈앞의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들 모두가 그가 얽힌 일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것들이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암흑상인이 벨에게 하나의 제안을 해온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그녀의 호위, 헤리오 나이트라인을 되살려주겠노라고.
“그래. 가능한 이야기다.”
“……믿을 수 없어.”
꿈만 같은 일이다.
그렇기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고작해야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조용한 곳에 불렀다고 생각하자, 벨은 허탈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는 분명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찾아왔다고 했다.
헤리오와 함께 전장에 섰던 눈앞의 남자라면, 헤리오와도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을 터다.
그 부분을 신경써서 따로 헤리오와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낸 벨이었다.
그런 남자가 자신을 상대로 사기나 치려고 하다니.
벨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뭐, 당연히 믿을 수 없겠지.”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내가 당신이랑 장난이나 하려고 이 자리에 왔을리가. 안그래도 아직 피곤한 몸인데 말이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야.”
죽은 사람을 되살려주겠다.
벨이 생각하기에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대 제국의 귀족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헤맸다.
마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을 되살리는 마법이라고 해봤자 전설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위대한 지성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벨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암흑상인은 뻔뻔하게도 자신의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믿기 힘들면 굳이 믿지말도록.”
“그래. 안믿을거야.”
“대신 네가 가진 돈과 권력을 믿어라.”
“뭐……?”
오히려 그 이상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벨을 설득해올 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을 믿어라.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제국의 12가문에 속한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속아봤자 큰 손해도 아닐텐데 뭐가 걱정이지?”
“그야, 큰 손해는 아니겠지만 나는 멍청한 짓에…….”
“문제가 생기면 권력으로 잡아들이면 되겠지. 치안대 쪽에도 인맥이 있지 않나?”
“그건 그런데…….”
“그리고 헤리오가 돌아오기를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건 당신일텐데.”
벨은 점점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사기꾼들도 다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벨 자신이 헤리오를 가장 원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헤리오를 되살리는데 필요하다면 자신이 가진 무엇이라도 바칠 자신이 있었다.
그럼에도 죽은 헤리오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사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 진짜…….”
“어려우면 그냥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았다고 생각해라.”
“그 이후가 더 문제잖아.”
“아니면 천사가 왔다고 생각해도 괜찮겠군.”
“이런 천사가 세상에 어딨어!”
벨이 보았던 어떤 이야기도 이렇게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 천사를 내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천사 치고는 좀, 돈을 많이 밝히는 면도 있었다.
물욕에 찌든 천사가 세상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물론 자세히 찾아본다면 어디 하나쯤은 걸릴지도 모르겠다만, 적어도 벨이 아는 한은 아니었다.
슬슬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 벨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바보같은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일단은 이것부터 물어볼게.”
“뭐가 궁금하지?”
“대체 뭘 원하고 이러는거야?”
벨의 질문을 들은 암흑상인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고민하더니, 이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펜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를 펜으로 톡톡 두드렸다.
둘이 마주보고 있는 테이블의 위에는 이미 종이 하나가 올려진 채였다.
“내가 원하는 건 계약이다.”
“계약?”
“그래. 상호간의 신뢰에 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는, 아무런 구속력도 갖지 못하는 계약말이다.”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헤리오 나이트라인은 죽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되살아나게 되겠지. 우리가 나눌 계약은 그 이후에 서로가 지켜야 할 내용에 대한 것이다.”
복잡하다. 그리고 상당히 진지하다.
슬슬 짓궂은 장난치고는 너무 멀리 나갔다는 생각이 든 벨이 눈빛을 바꾸었다.
지금 자신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니던가.
만약 이것이 사기라고 하더라도, 한번쯤 당해주는 것도 그리 손해는 아닐 것이다.
지금 나누는 계약이 선제적인 조건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알았어. 어떤 조건을 원하는건데.”
“헤리오는 내가 되살릴 생각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유령군단과의 싸움에서 죽은거다.”
“죽은 사람으로 해두자는 이야기야?”
“실제로도 죽었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
“굳이 그럴 이유가 있어?”
“나는 이 마법을 외부에 공표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헤리오가 비밀리에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사람을 살리는 마법.
그런게 있으면 누구라도 눈이 뒤집혀 달려들 것이다.
벨이 보기에도 마법을 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적적으로 헤리오를 구했다고 발표할 수도 있는 이야기임에도, 그는 헤리오의 신분을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헤리오가 더 이상 그녀의 호위로는 남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내 호위를 그만두라는 이야기겠네. 추가적으로 나이트테일 기사단도 그만둬야겠고.”
“헤리오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다만, 이 일이 끝난다면 그 뒤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다.”
“해야만 하는 일…….”
“물론 그런 날이 오더라도, 내 마법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해야 하겠지만 말이야.”
“그거야 상관없어. 네 말이 사실이라면 쭉 다물고 있을테니까.”
마법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비밀이 되어야만 한다.
둘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에서도 가장 중요한 조건일 것이다.
물론 두번째는 헤리오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다.
헤리오가 되살아난다고 해도 그녀가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 나름대로 슬픈 일이 될테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후원을 좀 받고 싶군.”
“후원?”
“헤리오와 연락정도는 자주 나누고 싶을텐데. 본인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직접 움직이지는 못하겠지만, 명목상의 후원자라면 연락정도야 상관없겠지.”
“뭘 위한 후원인건데?”
“도시의 가장 깊은 어둠을 제거하는 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후원 역시 익명으로 진행될거다.”
들으면 들을수록 위험하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리스크마저 감수하고 들어가야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그녀가 레서트의 지부장으로 군림해오며 배운 것이었다.
벨 바이어틴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뒤에는 레서트 인더스트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만의 기사, 헤리오 나이트라인이 있었다.
“전부 받아들일게. 네 비밀도, 앞으로의 이야기도.”
“굳이 문서로 남기지는 않겠다. 두 사람 모두 죽을때까지 가슴에 묻어놔야 하는 이야기니까.”
“알았어. 그러니까 헤리오를 되살려줘.”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는 살아숨쉬는 헤리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거친 뺨에 손을 대고 싶었다. 따스한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헤리오를 향해, 작별인사를 건네주고 싶었다.
더 이상 고독함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만의 기사를 마주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계약은 성립되었다.”
“응.”
“이제, 기적을 목도할 차례겠군.”
대화를 마친 암흑상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벨의 뒤에 있던 헤리오의 관을 향해 다가갔다.
벨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녀의 눈으로 직접 살펴볼 생각이었다.
방의 구석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나무관.
그 안에는 창백한 얼굴의 헤리오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헤리오…….”
“곧 건강한 얼굴을 보게될거다.”
“…….”
“그게 마법이니까.”
암흑상인은 조용히 헤리오의 앞에 다가섰다.
그의 거친 손바닥이 눈을 감은 헤리오의 이마에 올려졌다.
잠을 자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럼에도 숨은 쉬지 않고 있었다.
그런 헤리오의 입가에 숨을 불어넣듯이, 암흑상인의 손바닥이 선명한 빛을 내뿜었다.
“[리저렉션].”
눈부신 광채가 헤리오의 몸을 휘감았다.
시야를 가득 채운 빛은 숨결이 되고, 또 다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거센 고동이 되었다.
두근. 두근.
정적속에서 선명한 고동소리가 벨의 귓가에 들려왔다.
멈춰있던 헤리오의 가슴팍이 오르내리고, 완전히 잘려나갔던 팔은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다친 사람을 회복시키는 기적의 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굳게 닫혀있던 헤리오의 눈이 열린 순간.
“헤리오……!”
벨은 눈을 뜬 헤리오를 향해 뛰어들었다.
깜빡이는 헤리오의 눈이 벨의 모습을 담았다.
가녀린 벨의 손이 헤리오의 뺨을 쓰다듬었고, 손가락을 통해 느껴지는 체온에 전율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헤리오였다.
그녀를 위해서 검을 들었고, 그녀를 위해 최후까지 맞서싸웠던 기사였다.
“아…….”
“눈을 떴구나.”
두사람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했다.
짧은 침묵. 그 직후에 벨이 자신의 머리를 가까이 가져갔다.
맞닿은 이마를 통해 서로의 체온이 전해져왔다.
헤리오와 다시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기도 했고, 제대로 된 이별의 인사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가 다시 마주하게 되어버린 순간.
벨은 머릿속에 생각해두었던 인사를 전부 잊어버렸다.
“……아가씨.”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
벨은 자신의 입술로 헤리오의 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둘의 사이에 긴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입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벨은, 입안에 감도는 작별인사를 기꺼이 집어삼켰다.
“…….”
친애하는, 나의 기사에게.
안녕.
그리고 다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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