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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03화 (103/156)

〈 103화 〉 마천루의 마법사 (1)

* * *

치안대의 2급 수사관, 윌턴 리거버드.

그는 난감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보고서를 받아보는 그의 앞에는 직속부하인 네이 테르도스가 서있었다.

부하라고는 해도 윌턴이 마냥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네이는 치안대장인 아벨 테르도스의 동생이었다.

이미 그녀가 치안대에 찾아올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 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징계를 받을만한 일들도 윗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는지 대부분 조용히 넘어가고 있었다.

정작 그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시체만 태우는 녀석들이 있다고?”

물론 지금 윌턴에게 골치아픈 것은 눈앞의 낙하산보다는 손에 들고 있는 보고서였다.

윌턴의 손에 들려있는 보고서에는 최근 움직이기 시작한 수상한 인물에 대해 적혀있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8구역.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심각한 수준만 아니라면 치안대도 눈을 감고 넘어가는 편이다.

안그래도 인력난에 처한 치안대라, 예전의 치안대에 비해 맡고 있는 구역의 숫자들도 늘어난 편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8구역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역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움직임이 수상한 녀석들이거든요. 아무런 이유 없이 저런 짓을 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걸… 감시했으면 좋겠다? 다친 사람도 전혀 없고, 재산피해도 적은 수준인데?”

“저희는 치안대잖아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으면 예의주시하는게 맞겠죠.”

“아니, 뭐. 인력은 자네가 대주나? 불장난하는 녀석 잡자고 바쁜 사람 빼자고?”

앞에서 듣고 있던 네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는 윌턴 역시 기가 찼다.

분명 치안대의 현실을 마주하고서 혼자 실망하는 중일 것이다.

테르도스 가문의 아가씨만 아니었으면 뭐라도 말을 해봤을텐데, 꾸짖어봤자 자신만 귀찮아지는 입장이었다.

그토록 영웅놀이가 하고 싶었으면 치안대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할 것이지.

윌턴은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생각을 애써 참아냈다.

상대는 제국의 명망높은 귀족이 아니던가.

가능한 말을 아끼는 편이 자신의 신상에 이로웠다.

“불태운 시체가 살해당한 걸수도 있어요. 아무 이유없이 시체를 태우지는 않겠죠.”

“사람을 살해하고 그걸 은폐하려고 불태웠다?”

“일단은 상부에 요청해서 감식부터 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허허. 윌턴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감식요청이고 뭐고 결국에는 자신이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눈앞의 아가씨는 자신에게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야 누가 상사이고 누가 부하인지 모를 일이다.

테르도스. 치안대. 치안대장.

관련되어있는 인물들을 떠올리자 윌턴은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최근에 상부에 사건을 빼앗겼던 일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헛소리만 하던 여자 하나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풀려났다.

그것도 위대한 지성의 가장 유력한 살해 용의자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네가 다 해. 그려면 되겠어. 간단하네.”

무엇을 위해 치안대에서 일하고 있었나.

뭐가 정의고 뭐가 불의인가.

대체 치안대는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것인가.

수많은 상념에 사로잡힌 윌턴이 의자에 뻣뻣하게 드러누웠다.

젊은 시절 의욕에 넘쳐 시작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환멸이 올라올 것 같은 조직이었다.

절름발이와의 지옥같은 사투에서도 살아돌아온 윌턴이었다.

그런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지긋해져가는 나이와 귀족 아가씨의 뒷처리 뿐이었다.

“저희는 치안대입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알아.”

“네?”

“나도 안다고! 가뜩이나 축성가도 못잡아서 짜증나 죽겠는데, 별 이야기를 다 듣겠네.”

“…….”

“둘이 가서 조사하든지 잡든지 해! 잡범은 우리 관할이 아니니까 안죽였으면 그냥 돌아오고!”

쾅! 쾅!

책상을 두어번 강하게 내리친 윌턴이 네이를 향해 축객령을 내렸다.

네이는 멍하니 윌턴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윌턴은 그제서야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어서야, 마음대로 화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부터 이 치안대가 새장처럼 느껴지게 되었던가.

윌턴 리거버드의 인생에서 최대고비의 순간이었다.

“설마 별일 없겠지.”

윌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네이가 나간 방향으로 향했다.

고작 저런 일로 다치거나 하진 않겠지.

그런 무심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 * * * * *

“유령군단이 죽었다. 듣자하니 나이트테일의 별동대에게 당한 모양이다.”

4구역에 있는 어느 건물의 옥상.

그곳에서 변신술사가 자신의 옆에 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잿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녀의 이름은 스피넬 클로버블룸.

옛 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결사의 간부이면서, 마천루의 마법사라 불리는 대마법사였다.

변신술사의 이야기를 들은 스피넬은 무심하게 툭 대답을 돌려줄 뿐이었다.

“겁쟁이다운 최후네.”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군.”

“설마, 슬퍼해주길 바라는거야?”

“너한테 그런 것까지 바라기는 힘들겠지. 뭐, 어느정도는 예견된 결과 아니었나.”

나이트테일의 공습에 대한 이야기는 진작부터 흘러나온 정보였다.

물론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사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사라는 이름에 묶여있다고 해도, 사실상 서로간에 남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계승자의 명령이 없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계승자의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감안하면서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레서트의 지부장을 납치했을 때부터 글러먹었다 싶었어.”

스피넬은 혀를 차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유령군단은 나이트테일의 토벌을 저지하겠다며 레서트 인더스트리의 지부장을 납치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이트테일을 막아내는 것에는 실패했다.

사령관이 죽었기에 망정이지, 그가 살아있었다면 더욱 골치아픈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주인은 아직 움직일 생각이 없는 탓이었다.

“사령관 녀석은 항상 욕심이 많았지. 야망도 능력 못지않게 컸고.”

“그렇게 죽은 것도 결국 본인의 업보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나는 이번 일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스피넬이 고개를 돌려 변신술사를 바라보았다.

변신술사는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어 한모금 빨아들였다.

후우. 짙은 연기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연기를 스피넬이 손을 휘저어 흩어버렸다.

“석연치 않다는게 무슨 말이야?”

“나이트테일의 섬광기사가 녀석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리더군.”

“TV에 나오던거? 나도 잠깐 본 기억이 있어.”

“그걸 본 ‘그분’이 명령을 내리셨지. 섬광기사의 상태를 확인해보라고.”

비교적 상태가 멀쩡한 시신은 계승자가 언데드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하물며 섬광기사는 나이트테일 기사단 안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전력이었다.

그런 이를 수중에 넣을 수 있다면, 계승자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전력증강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이런 기회를 가만히 놔둘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위장을 특기로 삼는 변신술사에게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상태였는데?”

“관이 비어있었다.”

“……관이 비어있었다고?”

“그래. 내용물을 열어보니까 아무것도 없더군! 머리카락 한올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황당했던 기억을 떠올린 변신술사가 쓰라린 미소를 지었다.

계승자가 탐내는 시체가 남아있지 않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둘 중 하나였다.

누군가 섬광기사의 시체를 들고 도망갔거나, 아니면 섬광기사가 사실 살아있든가.

어느쪽이든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다만 그 이유가 전자라고 한다면, 커다란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마도 살아있을 것 같아?”

“그럴리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로챈거겠지.”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로챘다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마침 의심이 가는 녀석이 있더군. 특히 8구역쪽에 자주 출몰하는 모양이야.”

“무슨 근거라도 있는 모양이네.”

“방치된 시체들을 태우고 다닌다고 하더군. 벌써 장의사라는 이름으로 소문이 자자한 편이다.”

장의사. 그 이름을 들은 스피넬이 고민했다.

의도적으로 시체들을 훼손하고 있으며, 고위 마법사의 시체를 가로채는 이가 있다.

누군가 계승자의 능력을 알아채고서 움직이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사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위험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재미있네.”

“재미로 끝낼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이야기잖아? 나도 알고 있어.”

“직접 나설 생각이냐?”

변신술사의 질문에 스피넬이 난간에서 일어섰다.

위태롭게 난간에 발을 걸치고 있는 그녀의 주위로, 반짝이는 은빛의 칼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을 반사하는 칼날 아래에서 스피넬은 유유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어떤 녀석들인지 추궁해야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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