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마천루의 마법사 (2)
* * *
“그래서, 네가 내 후배라는거지?”
“그런 이야기죠, 네!”
오즈왈드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남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8구역의 외곽에 위치한 ‘집행자들의 요람’.
남자는 이곳에서 ‘넘버 세븐’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이곳에 들어오던 순간에는 한껏 기대를 했던 오즈왈드였다.
하지만 넘버 세븐을 마주한 이후로 오즈왈드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넘버 세븐에게서 범상치 않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탓이다.
혹시나 싶어 가지고 있는 마법을 살펴보았지만, 전혀 기대되지 않는 수준의 성취였다.
“그렇구나. 잘 부탁할게.”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그럼에도 오즈왈드가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도시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이름을 가진 그였지만, 지금은 집행자에서 ‘넘버 에이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지금 신출귀몰 오즈왈드를 표방하고 있었다면 몰라도, 현재의 그는 고작해야 넘버 에이트.
게다가 갓 들어온 신입인 이상에야 상하관계는 명확히 따지고 넘어가야만 했다.
마법이 별 볼 일 없다고는 해도 결국은 비밀조직의 일원이다.
무언가 다른 이들은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함이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좋아. 우리 후배 태도가 보기 좋구만.”
“그런데 선배. 혹시 ‘넘버 원’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까?”
“어… 넘버 원 말이야?”
“아쉽게도 제가 이곳을 소개해준 넘버 투, ‘전령’에 대해서밖에 잘 몰라서 말이죠.”
문득 넘버 원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오른 오즈왈드가 물었다.
넘버 원. 듣기만 해도 무언가 상징성이 있어보이는 이름이다.
하물며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던 암흑상인은 집행자들 중에서도 넘버 원이 아니라 넘버 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암흑상인을 뛰어넘는 인물, 혹은 이곳을 세운 설립자가 따로 있을 터였다.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감히 계승자에게 맞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니만큼, 넘버 원에 대해 오즈왈드가 기대를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즈왈드의 질문을 들은 넘버 세븐은 자신의 방독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넘버 원은… 나도 못봐서 모르겠네.”
“아, 선배도 잘 모릅니까?”
“그래도 굉장한 사람이겠지. 사실 전령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말이야.”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물어보았지만, 넘버 세븐은 꽝인 모양이었다.
넘버 원은 고사하고 전령의 정체조차도 간파하지 못했다니.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오즈왈드는 그를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자신이 후배라는 입장이라니, 얼마만에 보여주는 성실한 모습인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눈앞의 넘버 세븐은 장난치기 좋아보이는 상대였던 것이다.
“그렇군요. 흠흠. 저는 그래도 전령에 대해서 좀 알고 있습니다.”
“전령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물론이죠.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 도시에 어디 있겠습니까.”
가벼운 어조로 운을 띄우는 오즈왈드의 말에, 넘버 세븐은 흥분한 기색이 되어 물었다.
“정말? 그렇게 대단한 분이야?”
“엄청 대단한 분입니다.”
“집행자에 있다는 것부터 예상은 했지만…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구나.”
오즈왈드는 방독면 너머에서도 넘버 세븐의 들뜬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이 대단하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라도 의욕을 고취시켜줄만한 내용이었다.
이 어리숙한 선배에게 어떤식으로 바람을 넣어야 할까.
고민하던 오즈왈드가 넘버 세븐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아무렴요. 계승자와 비견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분입니다!”
“계승자… 결사의 리더 말이지.”
“맞습니다. 계승자는 이 도시의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인물이지만! 그런 인물과 유일하게 비교할 수 있는게 전령이거든요.”
자세한 내용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볍게 힌트를 주는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오즈왈드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내뱉는 말들 중에 거짓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계승자는 궁상맞은 절름발이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 계승자와 상극인 마법을 가진 것은, 그가 아는 한 암흑상인 하나밖에 없었다.
닥터 페로노프? 그 돌팔이 의사도 죽은 사람은 못살린다.
세상의 어느 누가 예비 목숨을 담보로 일을 시키겠는가.
해골바가지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야, 일찌감치 이곳에 줄을 서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계승자가 그렇게 강해?”
“음. 아마 절름발이보다 강할걸요?”
“절름발이…….”
“절름발이를 잘 알고 계신건가요?”
“아니, 어릴 때 생각이 나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하자, 오즈왈드가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재수없게도 꽝을 찍은 모양이다.
절름발이가 토막내고 다닌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이 도시에서 길가는 사람을 열명 정도 잡아 물어봐도, 그중에 한 사람은 피해사실을 고백할 수 있을터였다.
오즈왈드는 절름발이에 대한 이야기 대신, 벽면에 걸려있던 무기를 집어들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여기는 비밀기지 느낌이 나서 좋네요.”
“그야 비밀기지니까.”
“무기도 레서트제 무기잖아요? 아, 이거 주문제작이네. 이건 하나 챙겨야겠다.”
“별게 많이 있기는 하지. 역시 비밀조직이라면 이런게 있어야되잖아.”
“같은 비밀조직이라도 결사는 이렇지 않았단 말이죠.”
오즈왈드의 말을 들은 넘버 세븐이 방독면을 쓰다듬었다.
그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의 모습이었다.
그간의 대화를 통해 오즈왈드는 어렵지 않게 그의 분위기를 캐치할 수 있었다.
“결사에 가본적이 있어?”
“아, 그건 비밀입니다!”
쉿. 가면 위에 손가락을 가져간 오즈왈드가 말했다.
오즈왈드의 입장에서 별로 신경을 쓸만한 실수는 아니었다.
여태까지 오즈왈드의 태도를 보아왔기 때문일까.
넘버 세븐은 짧게 궁시렁거리며 지나칠 뿐이었다.
“수상쩍은 후배네. 그러니까 비밀조직인가.”
“그럼요. 그게 비밀조직의 매력이죠.”
어리숙하다. 그리고 지식이 부족하다.
오즈왈드의 눈에 비치는 넘버 세븐은 말단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조직으로 과연 결사에 대항할 수 있을까.
오즈왈드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요람의 문이 열리며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변장을 한 사람 하나가 새롭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아…….”
“…….”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남자였다.
넘버 세븐과 오즈왈드의 시선이 동시에 새로 들어온 인물에게로 향했다.
오즈왈드 자신에게 느껴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보아서는, 넘버 세븐과 서로 모르는 인물이 분명했다.
새로 들어온 인물을 주시하던 넘버 세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은 어눌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혹시… 집행자이신가요?”
“……집행자 넘버 식스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조금 어색하군.”
“선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집행자 넘버 세븐입니다.”
넘버 식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즈왈드가 뛰쳐나갔다.
“오… 넘버 식스!”
세븐보다 낮은 숫자다.
그리고 살짝 모자란 직속 선배보다는 분위기도 있어보였다.
탄탄해보이는 몸은 무투에도 조예가 깊어보인다.
그를 본 오즈왈드의 입가에 살짝 장난기가 돌았다.
약간이나마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넘버 식스에게 가까이 다가간 오즈왈드는 보이지 않게 스크롤 하나를 찢었다.
쇼크. 간단한 전기충격을 주는 1서클의 마법이었다.
“너는 누구지?”
“저는 넘버 에이트. 이번에 새로 온…….”
쇼크 마법이 활성화된 손을 넘버 식스에게 뻗으려는 순간.
오즈왈드는 압박감을 느끼고 자리에 멈춰섰다.
이상하게 호흡이 불안정하고, 몸이 평소보다 더디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이런 부류의 보이지 않는 압박은 처음 받아보는 것이 아니었다.
프레셔. 6서클의 대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전유물이었다.
“뭐하는 짓인지 궁금해지는군.”
넘버 식스의 차가운 추궁에 오즈왈드는 곧장 머리높이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런, 제가 대마법사를 못알아뵙고! 큰 무례를 범할뻔 했군요.”
“……대마법사? 6서클?”
대마법사라는 말을 들은 넘버 세븐이 경악했다.
하지만 지금 오즈왈드에게 얼빵한 선배의 반응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다.
오즈왈드의 눈앞에 버티고 있는 것은 야성을 숨기고 있는 맹수였으니까.
“나는 이런 장난질을 좋아하지 않는다.”
“깜짝 놀래키려고 했는데, 실패해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다음에 그랬다간 멀쩡하지 못할거다.”
“물론!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하죠.”
넘버 식스는 고개를 돌리고 오즈왈드에게서 멀어졌다.
오즈왈드는 그런 넘버 식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조직에는 대마법사가 있다.
그것도 넘버 식스라는, 비교적 낮아보이는 이름을 달고서.
넘버 세븐을 보고 잠시 실망했던 오즈왈드였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잠깐의 오판에 불과한 것이었다.
생명의 지배자. 그리고 정체를 숨긴 대마법사.
게다가 아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다른 집행자들까지.
오즈왈드가 생각하기에 이곳은 결사 못지않은 단체였다.
죽음의 지배자가 물러날 것이다.
오즈왈드는 그 간단한 예언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면서, 무심한듯 자리에 앉아있는 넘버 식스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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