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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06화 (106/156)

〈 106화 〉 마천루의 마법사 (4)

* * *

채앵.

청명한 쇳소리와 함께 주머니에서 은색의 칼날들이 빠져나왔다.

달빛을 머금은 칼날들은 궤도를 그리며 스피넬의 주위를 맴돌았다.

허공에 부유하는 무수한 숫자의 칼날.

그것을 본 넘버 세븐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

그제서야 다물어지는 넘버 세븐의 입에 오즈왈드는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고싶은 말은 다 해놓고서, 이제서야 조용히 한다고 무슨 해결이 되겠는가.

하물며 마천루의 마법사는 이미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곱게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오즈왈드는 잠시 시선을 돌려 뒤쪽을 보았다.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오즈왈드 일행을 따라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왜 갑자기 조용해졌어?”

정적이 자리한 골목속에서 스피넬이 말했다.

자신만만하던 상대가 갑자기 다물고 있으면 더 이상해보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넘버 세븐은 안절부절 못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진작에 사태를 키워놓고서는, 이제와서 조용히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즈왈드는 다시 한 번 넘버 세븐에게 귓속말을 했다.

“선배. 가서 아무 말이나 떠들어보십쇼.”

“어, 음…….”

“저한테 대답은 하지 마시고요.”

툭. 툭.

넘버 세븐을 앞으로 밀어낸 오즈왈드가 주머니에서 스크롤 몇장을 꺼내들었다.

넘버 세븐 역시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모습이었다.

물론 대마법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아까와는 태도가 좀 차이났지만 말이다.

그래도 완전히 자신감을 잃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스피넬을 향해 다가간 넘버 세븐은 그녀를 바라보며 커다랗게 외쳤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 둘이긴 하네.”

“굳이 내가 싸울 이유도 없지. 여기서부터는 내 동료가 너를 상대할거다.”

켁. 오즈왈드는 목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아서 떠들라고 말하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왜 자신에게 바톤을 떠넘긴단 말인가.

가면 너머에 비치는 넘버 세븐의 모습이 이제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이 놀려먹으려는 것을 깨닫고 역으로 골탕을 먹이는 것인가.

그것도 이런 상황에?

눈치없어 보이던 모습도 어쩌면 전부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집행자 치고는 그동안 너무 얼빵해보이기는 했다.

“나랑은 싸울 가치도 없다는거야?”

“싸울 이유가 없지. 내가 나서면 죽을테니까.”

거만한 태도로 손을 까딱거리는 넘버 세븐.

그와 반대로 그의 입에서는 스스로가 맞이할 운명에 대한 자기고백이 충실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마법사와 정면에서 싸운다면 분명 넘버 세븐은 죽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인정할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말투가 문제였다.

스피넬은 그런 넘버 세븐을 불만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넘버 세븐이 저런 말을 꺼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즈왈드는 여전히 자신이 해야하는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직접 나서면 내가 죽는다고?”

“아니, 나는…….”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런 말을 하는지. 그 잘난 실력을 좀 견식해봐야겠어.”

휘릭.

허공을 맴돌던 칼날들이 일제히 정렬되었다.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는 뻔했다.

스피넬의 칼날들은 하나같이 넘버 세븐을 겨누고 있었다.

칼날들이 쏘아지는 순간, 넘버 세븐은 갈갈이 찢겨나가 사라질 것이다.

첫 임무에서 동행했던 동료를 잃어버린다면, 전령으로부터 무슨 소리를 듣게될까.

그는 분명 오즈왈드의 무능함을 질책할 것이었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죽은 넘버 세븐을 부활이라도 시켜서 데려가야만 했다.

아니면 그 부활마법조차도 필요하지 않게 그를 지켜내던가 말이다.

“그런 짓은 그만둬라.”

“아니. 그만두지 않아. 나는 당신이랑 싸울 생각이니까.”

“후회하…….”

“후회하지도 않아.”

후회하는 넘버 세븐의 모습이 무색하게도, 스피넬은 칼날들을 전방에 쏘아냈다.

따악.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칼날들이 넘버 세븐을 향해 쇄도했다.

오즈왈드가 움직여야 하는 순간은 지금이었다.

“[플레어].”

오즈왈드는 곧장 넘버 세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스크롤 하나를 찢어버렸다.

들고 있던 것은 플레어 마법 스크롤.

화염을 일으키는 간단한 마법이었다.

오즈왈드가 스크롤을 찢어버린 직후, 1서클의 불꽃이 화려하게 허공에 피어올랐다.

퍼엉.

폭발음과 함께 다가오던 칼날들의 궤도가 빗겨나갔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불길은 적들의 시야를 가리는 역할로도 충분했다.

확산하는 불꽃의 장막 아래에서, 오즈왈드는 스크롤 하나를 더 꺼내들었다.

“[인비지블].”

스크롤을 들고 있던 손이 투명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오즈왈드의 손에 맞닿아있던 넘버 세븐 역시 마찬가지였다.

넘버 세븐을 안아들고 움직인 오즈왈드는 그를 데리고서 벽에 달라붙었다.

잿빛으로 변해가는 시야속에서, 그들을 미행하던 적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쉿. 큰소리를 내면 들킬겁니다.”

커다란 폭발 이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적.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분명 주변에 숨어있는 적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진작부터 그들을 미행하고 있는 세력이 하나 더 있었으니까.

칼날을 거두어들인 스피넬의 시선이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목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직전까지 오즈왈드 일행을 쫓아오던 이들이 숨어있었다.

“부하라고 하더니, 쥐새끼들이 더 숨어있었네.”

“쥐새끼라니 너무하는군. 이렇게 티가 안나게 숨기도 힘든 법인데.”

터벅. 터벅.

어두운 골목에서 나온 것은 두 사람의 그림자였다.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장신의 남자가 하나.

그리고 권총을 들고 있는 금발의 여자가 하나.

그들의 모습을 본 오즈왈드는 그제서야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의 신분으로는 전력을 다할 수 없다.

물론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스피넬을 이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오즈왈드에게 있어서는 이 둘을 싸움붙여놓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어셔……. 누가 티를 냈다는거야.”

“당연히 우리 현명한 수사관님이겠지. 설마하니 내가 그랬을 리가 없지 않나.”

“내가 봤을 때는 네 담배냄새때문에 들킨거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군…….”

우스꽝스러운 문답을 나누고 있는 남녀를 본 오즈왈드는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남자는 동행하고 있던 여자에게 수사관이라고 말했다.

치안대에서 파견된 인력임이 틀림없었다.

누가 그들을 미행하나 싶었더니, 치안대에서 집행자들의 뒤를 쫓고 있던 것이다.

치안대가 직접 미행을 할 정도라면, 분명 예사로운 목적은 아닐 터.

치안대에서 이미 집행자들을 요주의 경계대상에 올려놓았던 말이 된다.

‘체면이 말이 아니군요.’

설마하니 치안대에서도 알고 있는 정보였을줄이야.

게다가 스피넬조차도 집행자들을 경계해 직접 찾아오지 않았던가.

어느쪽도 경계하고 있는 세력을 오즈왈드 혼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결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공개망신을 당할 뻔했던 것이다.

“수사관? 치안대 녀석들이야?”

오즈왈드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두 세력간의 대화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수사관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스피넬이 그들을 향해 날을 세웠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거기에 치안대의 수사관까지 마주하니 짜증이 치솟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경계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치안대에 잡힐 일이라도 하고 다닌 모양이군.”

“치안대와는 사이가 영 좋지 않거든.”

“그거야 나도 동감인 이야기다.”

“그래도 조금은 의외인걸. 치안대와도 엮여있는 녀석들인지는 몰랐는데.”

이야기는 진작에 궤도를 이탈한지 오래였다.

스피넬의 칼날은 치안대원들을 겨누고 있다.

그리고 그녀와 마주한 치안대원들도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속에서, 치안대에 속한 남자 하나가 이쪽을 흘겨보고 있었다.

숨어있는 방향을 간파당한 것이다.

오즈왈드는 슬슬 행동을 결정해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스피넬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고서 칼날을 날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선배.”

“어, 어…….”

“지금 이동하죠. 시간을 더 쓰다가는 분명 들킬겁니다.”

“여기서 움직이자고?”

넘버 세븐은 여전히 멍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기도 아까운 기분이 든 오즈왈드였다.

“놔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고 할텐데, 우리가 뭐하러 끼어듭니까.”

“어… 그러네.”

“가시죠, 빨리. 시간 없습니다.”

오즈왈드는 넘버 세븐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의 재촉에 이기지 못한 넘버 세븐은 어정쩡한 자세로 걸음걸이를 옮겼다.

이동하는 도중에도 오즈왈드의 시선은 계속해서 그들을 지켜보는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달빛이 환하게 드리워진 어느 도시의 밤.

두 사람의 집행자는 위험한 비밀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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