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마천루의 마법사 (5)
* * *
4구역. 스타트럼브의 한 주택.
오즈왈드는 집안에 들어서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망다니느라 피곤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던 탓이었다.
집행자 넘버 세븐. 마천루의 마법사.
거기다가 자신들을 뒤쫓던 치안대원들까지.
아무리 그라고 해도 피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벌써 시간이 다 되어버렸군요.”
피곤에 절여진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던 오즈왈드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몸에 맞지 않는 코트가 바닥에 질질 끌려나간다.
약간 멍해보이는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던 오즈왈드는, 어느새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온 채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연갈색 머리카락.
흐리멍텅한 밤색의 눈동자.
오즈왈드가 마주한 거울속에 비치고 있는 것은 앳된 얼굴의 소녀였다.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던 폴리모프 마법의 효과가 끝나버린 것이다.
신출귀몰. 모습을 쉽게 감추고, 어디에도 쉽게 나타나는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도와주던 것이 폴리모프와 인비지블, 두가지 마법이었다.
“이제 인비지블도 한번밖에 못쓰겠네요.”
하지만 그녀에게 인비지블 마법을 빌려주던 유령군단은 토벌되었다.
오즈왈드가 손을 썼다면 유령군단을 살려낼 수도 있었겠지만, 구태여 그런 방법을 선택하는 일은 없었다.
우선은 나서기가 귀찮았다.
사령관과는 서로 적극적으로 도와줄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령군단의 수괴는 더더욱 그러했다.
애초에 심각한 대인기피증을 앓는 그와는 친해지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오즈왈드가 장난을 칠때마다 따분한 반응을 내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넘버 세븐은…….”
넘버 세븐. 자신의 새로운 동료를 떠올린 오즈왈드가 코트를 벗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에는 그냥 순진한 사람인줄 알았다.
집행자같은 비밀조직에 있기에는 조금 멍청하고, 순진한 구석이 보이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냥 놀려먹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건 순진함같은게 아니었다.
그녀가 직접 실감한 넘버 세븐은 그냥 정신나간 인간이었던 것이다.
“에휴. 앞으로 어떻게 버틴답니까.”
후우. 다시 한차례 깊은 한숨을 내쉰 오즈왈드가 이제는 너무 길어진 와이셔츠의 소매를 정리했다.
이 도시에는 어두운 비밀을 가진 조직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다.
결사. 메이지 가드. 근위대.
마지막으로 그녀가 최근에 몸을 담은 집행자까지.
집행자는 오즈왈드가 알아낸 가장 기대되는 비밀조직이었다.
예비목숨을 보수로 주는 직장이 세상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계속해서 피곤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조직에서 빠져나가게 해줄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자그마치 대마법사를 수하로 부려먹는 조직이 아니던가.
그녀가 아는 한 메이지 가드도 대마법사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런데도 뭐, 치안대는 어셔 헤이즈랬나, 그 인간을 특급 경계대상으로 삼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겠네요.”
기껏해야 5서클 마법사가 치안대에 무슨 위협이 된다는 말인가.
유일하게 그를 절름발이와 같은 등급으로 분류해놓은 치안대의 모습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오즈왈드가 보기에 그보다 더 위험한 인물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치안대의 정점에 앉아있는 계승자라던가.
그게 아니면 집행자들을 지휘하고 있는 암흑상인전령이라던가.
“굳이 넣는다면 계승자나, 생명의 지배자… 확실히 그 마법이 위험하기는 하죠. 이제 씻어야겠네요.”
이제는 죽어버린 늙은 노괴의 모습을 떠올린 오즈왈드가 싱긋 웃었다.
죽음의 지배자가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지배자가 대신할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암흑상인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마법이 진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무릇 지성체라면 그 힘을 목전에 두고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경악할 것이다. 경외할 것이다.
마지막에는 경배할 것이다.
오즈왈드가 바라보는 ‘텔레파시’는 그만큼 위험한 마법이었다.
* * * * * *
3구역에 새롭게 이전한 사무실.
그곳에서 나는 혼란스러운 주변의 풍경을 마주해야만 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해하기에 앞서, 나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시넬과 비슷하게 생긴 그녀의 정체는 시넬이 아니었다.
스피넬 클로버블룸.
시넬의 가족이자 결사의 간부들 중 하나인 그녀가 내 사무실에 찾아온 것이다.
따로 스피넬을 이곳에 초대한 기억은 없다.
단지 스피넬이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찾아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뭐라고 했지?”
“바다 여행. 내가 지원해주겠다고.”
“아니, 그 말을 꺼내기 전에 말이다.”
“시체를 태우는 녀석들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던거?”
그래. 시작은 놀랍게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찾아온 스피넬은 다짜고짜 집행자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어디선가 그들에 대한 정보를 들었던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크로스 네트워크의 리만 캐버런트를 먼저 찾아갔지만, 그쪽에서도 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이야기의 전개가 비틀리며 기존에는 없던 단체와 움직임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기존 정보상들에 대한 스피넬의 불신이 극한까지 치닫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나에게 얹어지는 부담감은 과중되었지만 말이다.
“분명 그런 목적으로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네가 대답해줬잖아.”
나는 대답을 원하는 스피넬에게 집행자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흘려주었다.
정보라고 해도 자세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움직이는 수하들의 상세를 적에게 낱낱이 까발릴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스피넬이 나에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는만큼, 아예 대답하지 않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스피넬에게 일러둔 것은 내가 필립을 설득할 때 사용했던 설정들이었다.
물론 그것을 들은 스피넬은 감명깊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야기하고도 상당히 미안해지는 내용이었다.
“그게 어쩌다가 여행을 같이간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진거지?”
“나도 무료했으니까. 잠깐이라면 어울려줘도 괜찮아.”
다시, 바다여행으로 돌아가서.
당초에 나는 유령군단의 토벌이 끝나면 여행을 떠나기로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대화주제가 나오자, 시넬과 검성이 거기에 대한 설전을 나누었다.
시넬과 검성이 나누던 대화를 엿들은 스피넬이 그에 가세해 제안을 해온 것이 지금의 일이었다.
프라이빗 비치를 구해줄 수 있다는 것이 스피넬의 제안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반응은 격렬했다.
검성과 시넬이 지나친 호응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퍼시발! 이건 무조건 가야해!”
“잠깐…….”
“프라이빗 비치잖아! 거기에 여러 시설이랑 별장까지 있다고 했어!”
바다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검성의 기분은 묘하게 들떠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그보다 세배는 더해서, 평소보다도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라이빗 비치. 파라솔과 썬베드.
거기에 낭만적인 분위기의 별장까지.
여름이 아니라 봄이라는게 조금 흠이기는 하지만, 누가 보아도 괜찮아보이는 조건이기는 했다.
그것이 원인이 된 모양인지, 검성의 금빛 눈동자가 화려한 광채를 내보이며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유엘.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생각해봐라.”
“아니. 나는 별로 흥분하지 않았는걸.”
“……충분히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군.”
“아무튼. 이건 기회야. 무료로 프라이빗 비치를 빌려준다고 하잖아. 우리끼리 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보면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제법 있었다.
그러니 원래 계획은 모아놓은 돈이나 펑펑 쓰면서 럭셔리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피넬이 나타나면서 여행의 방향성이 많이 이상해졌다.
프라이빗 비치. 가만히 보면 의도야 좋았다.
그런데 거기에 가면 누가 요리를 할까.
누가 설거지를 하고, 누가 뒷정리를 하게 될까.
시넬? 검성? 저기에 있는 스피넬?
내가 볼때는 전부 다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잡일을 떠맡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직원들을 놔두고 내가 왜 일을 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런 생각으로 검성을 향해 대답을 돌려주었다.
“좋은 장소라면 얼마든지 있다. 돈을 좀 쓴다면…….”
“돈이 있으면 나한테 보너스나 좀 쥐어주고.”
“…….”
검성의 말에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검성은 검의 수리를 이유로 나와 장기간의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내가 계약을 명분으로 그녀에게 박봉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보너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딱히 할말이 없었다.
급하게 시선을 돌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스노클을 끌어안고 있는 시넬이었다.
“바다 고글…….”
시넬이 안고 있는 스노클은 스피넬이 선물한 것이었다.
바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조언이었다.
시넬은 선물받은 스노클을 소중하다는 듯이 꽉 껴안고 소파를 뒹구는 중이었다.
그런 시넬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 옆에 있던 스피넬이 말했다.
“시넬은 포기하는 편이 좋을걸.”
“……가는걸로 하지.”
참으로 훌륭한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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