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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09화 (109/156)

〈 109화 〉 여름같은 봄 (1)

* * *

여름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

그건 분명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푸른 빛으로 물들어있는 하늘.

그와 더불어 새파란 바닷물이 쏟아져오는 여름의 해수욕장일 것이다.

여름의 바닷가란 누구라도 한번쯤 놀러가는 것을 고려해볼만한 장소였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지금은 여름이 아니라 화사한 꽃이 피어나는 봄이었다.

여름의 낭만따위는 찾아보기 이른 시기라는 이야기였다.

“……드디어 도착인가.”

제국의 동쪽에 위치한 군도.

우리가 찾아온 곳은 그런 군도에 위치해있는 자그마한 섬이었다.

물론 스피넬이 프라이빗을 주장하는 곳이니만큼, 평범한 교통수단으로는 이곳에 올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섬에 들어오기 위해서, 항구에서 보트 한대를 빌려와야만 했다.

보트를 통해 우리를 섬에 데려다준 직원은 이틀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하고서는 되돌아갔다.

직원이 돌아간다고 해도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스피넬이 마법으로 구해줄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항구에서 1시간 가량을 추가로 이동해 찾아온 결과물이 지금의 검성이었다.

“우욱…….”

배멀미를 하는 사람이 있을거라는 생각이야 어느정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커다란 배라도 배멀미를 하는 사람이 종종 나오고는 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타고오는 것이 작은 배라고 한다면, 그 여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검성은 이곳에 오는 동안 뱃멀미를 심하게 앓은 모양인지, 육지에 내려서자 모래사장에 곧바로 주저앉았다.

목을 붙잡은 채로 헛구역질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배멀미가 심한 모양이네.”

“나약하네요.”

시넬은 바닥에 주저앉은 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꺼낼 말은 아니었다.

언제나 주변의 분위기와 따로노는 시넬이 아니라면 생각지도 못할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검성은 반발하며 시넬을 노려보았다.

“너… 그런 말을, 우웨엑…….”

안타깝게도 검성의 반발이 시넬에게 끝까지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말을 하려는 순간 구역질이 올라온 것일까.

검성은 다시 바닥을 향해 머리를 쳐박았다.

나는 검성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조금이라도 속이 편해지도록 도와주기 위한 응급조치였다.

툭. 툭.

검성의 등을 두드리면서 시넬에게 한마디 거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넬. 이상한 소리는 거기까지만 하고, 가까이 와서 등이나 좀 두드려보도록.”

“살, 살려줘… 퍼시발…… 우욱.”

“네. [헤이스트].”

고개를 끄덕인 시넬이 검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마법을 사용해 손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툭툭툭툭툭툭툭툭.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여 검성의 등을 거세게 두드렸다.

속도가 느리면 등을 토닥이는 것이겠지만, 속도가 빨라지면 누가 보더라도 벌칙이다.

그에 대한 반응이 어땠는지는 누구라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우웨에에에에엑.”

고통에 울부짖던 검성의 머리가 모래사장에 파고들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넬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뒤에서 바라보던 스피넬이 한숨을 내쉬는 것은 덤이었다.

공중에 떠올라있던 스피넬은 시넬과 검성을 번갈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시작부터 제법 소란스러운걸.”

“여행이니까 조금 소란스러워도 나쁠 건 없겠지.”

“골치아픈 동생을 둔 내 잘못이네.”

“멀미는 괜찮나? 시넬은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던데.”

적어도 내 두눈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보이는 스피넬이었다.

스피넬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넬과 더불어 유전적인 문제인가 싶어 수긍하고 넘어가려하면, 스피넬이 한마디를 짧게 덧붙였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닥에서 조금 떠올라서 왔으니까.”

“…….”

보트의 바닥에서 조금 떠올라서 왔다라.

그러면 흔들림의 영향도 확실히 덜 받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상한 고민이 뒤에 따라오는 것은 덤이었다.

이동하는 보트 위에서 스피넬이 허공에 떠있다고 한다면, 보트는 스피넬을 제자리에 놓아두고 움직이는게 맞을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스피넬이 공중에 떠오른 채, 보트와 함께 이동하는 것이 맞을 것인가.

이에 대해 논의하자면 가장 먼저 레비테이션 마법의 기준점부터 잡아야만 할 것이다.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지만 참으로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어찌되었든 결국은 스피넬이 마법으로 알아서 움직이지 않겠는가.

나는 고개를 저어보이고선 검성을 향해 다가갔다.

기운이 빠진 검성이 나를 올려다보며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퍼시발…….”

“이제 좀 괜찮아졌나?”

“나 정말 죽을 것 같아.”

“……별장까지는 데려다주마.”

쓰러져있는 검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런 상태라면 별장까지 이동하는 것만 하더라도 한참은 걸릴 것이다.

검성은 힘겹게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당겼다.

푸욱. 모래사장에 박혀있던 검성의 몸이 끌려올라왔다.

검을 차고있는 검성이지만 생각보다는 가볍게 느껴지는 무게였다.

놀러가는 동안에는 검을 놓아두고 갈만도 하건만, 검성은 검을 내려놓는 것이 무인에겐 죽음이나 다름없다며 칼같이 거절했다.

“조금은… 살 것 같네.”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보이는데, 그냥 내 등에 업혀서 가도록.”

“그럴까. 잠깐만 신세 좀 질게.”

고개를 끄덕인 검성이 등에 기대어왔다.

등에 기댄 검성은 팔로 내 목을 휘감아 단단히 자신을 고정시켰다.

검성이 잘 매달렸는지 확인한 나는 일행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절그럭. 절그럭.

앞을 향해 걸어갈 때마다 검성의 검이 흔들리며 마찰음이 울려퍼졌다.

“조금만 더 가면 별장이 나올거다.”

검성을 데리고 걷기 시작한지 1분정도 지났을까.

나를 따라서 별장을 향해 걷고 있던 시넬이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검성을 업고서 걸어가는 내 모습이 신경쓰였던 모양이었다.

내 옆에 바짝 붙어선 시넬은 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내가 업고 있는 검성은 등에 무거워보이는 검을 매달고 있는 채였다.

분명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힘들어보일 것이다.

시넬이 나를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내 체력자체는 굉장히 준수한 편이었기에,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걱정하지마라. 별로 힘들지는 않으니까.”

“다행이에요.”

“……?”

“저도 업어주세요.”

하지만 시넬에게서 돌아온 것은 예상밖의 요구였다.

그렇게 나는 시넬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끌어안고서, 검성을 등에 업은 채로 걷게되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

묵직한 갑옷을 껴입은 기분이었다.

한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모래바닥이 푹푹 파여나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스피넬이 한마디 거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차력쇼 하는거야?”

* * * * * *

섬의 중앙에 있는 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섬이라고는 해도 그리 넓지는 않은 크기였다.

어디에 있어도 야자수를 옆에 세워놓은 별장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래사장을 헤치고 나가 별장의 바로 앞까지 도착하자, 검성이 손가락으로 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우리가 찾던 별장이구나.”

섬 한가운데에 우뚝 선 야자수.

그리고 그 옆에 자그맣게 세워져있는, 정갈하게 쌓인 나무모양의 2층 건물이 하나.

그런 건물의 아래에 배경처럼 깔려있는 모래사장.

게다가 그 주변을 장식하는 푸른 빛의 바다까지.

마치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별장을 마주한 검성이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건물은 오랜만에 봐! 바다랑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네.”

“내가 작정하고 고른 곳이니까. 마음에 드는게 당연한거지.”

“으음.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잘 고른 것 같아.”

검성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스피넬이 어깨를 으쓱하며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확실히 그녀가 자신을 가질만한 곳이었다.

이런 장소에 우리만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한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유명 관광지에서나 가끔씩 마주할만한 모습이다.

이런 곳을 독점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기분이 약간 들뜨는 것을 느꼈다.

벌써 내가 이런 수준까지 올라와버린 것인가.

그동안은 암흑상인이라는 말을 들으며 찜찜했었는데, 이대로라면 정말 전설적인 정보상인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생했다. 스피넬.”

“가끔씩은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잖아. 뭐어… 예전 일에 대한 사과도 조금 겸하고 말이야.”

“그때 일이라면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면 다행이네.”

마탑에서의 일이라면 애초부터 스피넬에게 따질 생각은 없었다.

유령군단이 제멋대로 엇나가는 것을 어떻게 스피넬에게 책임을 묻겠는가.

게다가 사건의 원흉이었던 유령군단도 이미 내 손으로 끝내버렸으니 말이다.

그녀가 결사의 일을 이유로 우리와 척을 질 생각이 아니라면야, 내가 굳이 그녀에게 적의를 품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끄덕. 끄덕.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스피넬이 공중을 날아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럼 이제 짐정리는 너희가 하는거지?”

투두둑.

스피넬의 뒤에 떠올라있던 가방들이 일제히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커다란 짐가방. 그리고 옷이 담겨있는 여행가방.

나는 그제서야 짐들을 누가 운반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짐을 전부 가져왔다면, 당연히 우리가 짐을 정리하는게 맞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우리. 나는 그런 단어를 꺼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짐정리를 함께할 직원들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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