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12화 (112/156)

〈 112화 〉 여름같은 봄(4)

* * *

식사를 마친 뒤에 찾아오는 것은, 대망의 물놀이 시간이었다.

대망이라고 하기에는 진작부터 물속에서 놀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식사가 끝난 직후, 모래사장에 늘어져있던 식사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시넬은 식사가 끝난 이후에도 무언가 아쉬운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더 이상 그녀에게 줄 음식은 남아있지 않았다.

화로 위를 가득 채우던 꼬치는 내용물이 비워진 채로 모래사장 위에 한가득 쌓여있었다.

처음부터 먹을 사람의 숫자에 맞춰서 준비했던만큼 꼬치를 남길만한 여력은 없었다.

“조금 아쉽네요.”

“맛은 괜찮았나?”

“맛있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꼬치를 먹었던 사람들 중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준비조차 도와주지 않고서 불만을 토로한다면 그것대로 양심없는 짓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오랜만에 준비한 요리의 맛이 괜찮았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늘어져있던 식기들을 전부 한구석으로 정리하고 나면, 어느새 바다에 들어선 검성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자! 바닷가에 왔으면 물놀이지!”

“벌써 들어갔네요.”

“퍼시발! 여기로 들어와!”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는 검성의 모습에,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돌려 선베드에 누운 스피넬을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식사를 끝마친 이후에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선베드를 차지하고 있는 채였다.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없나?

“뭐어,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그러지말고 빨리 오라구!”

나와 스피넬의 대화를 엿들은 것일까.

검성이 물장구를 치며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그렇게 말하는 검성의 주위에는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채였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검성의 뒤에서 거대한 파도가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파도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해변에 드리워졌다.

“지금 물놀이 하자고 마법을 쓴거야?”

누가봐도 마법을 사용해 해일을 일으킨 모습이었다.

선베드에 앉아있던 스피넬이 기겁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물론 스피넬을 향하는 해일의 경로에는 나 역시도 포함되어있는 채였다.

마법을 사용한 물놀이라니.

눈으로 보기에도 어마무시한 광경이었다.

내가 가진 마법으로 도망칠 수 있는 수단따위는 없어보였다.

“꼼짝없이 젖겠군.”

“[레비테이션]!”

“같이 가지.”

그리 쉽게 물에 젖어줄 생각은 없었던 것일까.

스피넬은 곧장 마법을 사용해 공중에 떠오르려고 시도했다.

그런 스피넬의 모습을 보자니, 나 역시 순순히 물에 젖어주기에는 아까웠다.

나는 스피넬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아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자, 잠깐! 어딜 만지는거야!”

“나만 젖을 수는 없지 않나.”

“무거우니까 빨리 떨어져!”

“이대로 놔줄 생각은… 커억!”

까앙!

멀리서부터 묵직한 통조림 하나가 날아와 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스피넬이 레비테이션을 이용해 깡통을 움직인 것이다.

그 충격으로 나는 스피넬을 잡고 있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지대를 잃어버린 몸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떨어져내리는 아래로 푹신한 모래사장과, 짙은 파도의 그림자가 보였다.

파도를 타며 움직이고 있는 튜브차림의 시넬은 덤이었다.

“검성류 파도검!”

“파도는 검이 아니지않… 부르르르르.”

한껏 벌린 입속에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

소리를 내뱉던 목은 완전히 틀어막혀 침묵했다.

검성이 휘두른 파도와 함께 내 몸이 이리저리 떠밀려나가기 시작했다.

물속에 갇힌 시야는 수차례 뒤집히고, 물에 잠긴 몸은 평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연달아 몰아치는 파도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물속에서 허우적 거릴때마다 공기방울이 조금씩 밖으로 퍼져나갔다.

“사장님.”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나는 수차례의 발버둥 끝에 간신히 수면위로 올라오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온 내 눈에 보인 것은 시넬이었다.

시넬은 튜브를 타고 둥둥 떠있는 채로, 헤엄 비스무리한 것을 반복중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넬.”

“네.”

튜브를 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가장 먼저 부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튜브에 매달릴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편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버티기도 고작인 내가 그녀에게 헤엄쳐서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시넬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를 구해라.”

“네. [헤이스트].”

시넬은 흔쾌히 내 구조요청을 받아들였다.

파닥. 파닥. 파닥.

시넬의 발이 튜브 뒤에서 파닥거릴 때마다 시넬의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래.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주로 뒤쪽으로.

“왜 멀어지는 기분이 들지?”

“착각이에요.”

“아니, 착각이 아닌 것 같은데.”

“원근법이에요.”

10초가 지나자 신비로운 원근법에 의해 나와 시넬의 거리는 두배가 되었다.

15초가 지나자 나는 시넬을 붙잡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30초가 지나자, 섬에 몰아쳤던 파도가 대부분 빠져나갔다.

물론 파도와 함께 시넬이 탄 튜브 역시 뒤쪽으로 쓸려나가는 중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참상을 일으킨 검성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검성 역시 파도의 궤적에 서있었지만, 무슨 수단을 사용한 것인지는 몰라도 하나도 젖지 않은 모습이었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서있는 검성의 위에는 스피넬이 공중에 떠있는 채였다.

“먼저 나를 물에 넣으려했다 이거지?”

부유하고 있는 스피넬의 앞에는 거대한 물의 구체 하나가 떠올라있었다.

크기만 보아서는 옆에 있는 별장만한 크기였다.

스피넬은 구체의 위치를 서서히 검성의 위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그건 좀 많이 무거워보이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못피하겠지.”

“아니, 피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아앗! 검성류 파도검!”

스피넬은 검성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의 구체를 떨어뜨렸다.

당연하지만 검성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다시 한차례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하고, 파도 위에 얹혀있던 시넬이 휩쓸려왔다.

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몰려오는 파도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의외로 물놀이에 재능이 없었구나, 하고 말이다.

* * * * * *

소란스러운 물놀이 시간이 한차례 지나가고, 오늘의 하루도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어느덧 날이 어둑해져가는 해질녘.

나는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모닥불을 태우고서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아무것도 깔지 않고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을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모래사장은 검성과 스피넬의 화려한 사투로 인해 축축하게 변한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밑준비를 어느정도 해두면, 아예 불을 키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타닥. 타다닥.

불꽃속에서 타들어가는 장작소리가 노을바다에 울려퍼졌다.

선명한 주황. 그리고 스며드는 노랑.

저마다의 색을 드러내며 타오르는 장작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위기있고 좋지 않아?”

맞은편에 앉아있던 검성이 눈앞의 장작더미를 보며 말했다.

여행지에서의 캠프파이어라.

이런식으로 우리끼리 조그맣게 즐기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경험이었다.

우리밖에 없는 섬. 그리고 우리밖에 없는 바다.

노을빛에 물든 바다와 함께 보는 불꽃은 상당히 낭만적인 풍경이지 않은가.

“확실히 그런걸. 잘도 이런 준비를 해왔네.”

“불을 붙이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군.”

“장작은 안젖어서 다행이야.”

스피넬 역시 캠프파이어에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며 그녀의 땋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였다.

아직 여름이 아니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녁은 생각보다 쌀쌀한 느낌이었다.

다들 얇은 수영복을 입고 있기 때문일까.

각자 조금씩 더 모닥불에 달라붙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평화로운 느낌이라 좋지 않나.”

“평화로운 느낌?”

“그래. 이곳에는 목숨을 건 사투도 없고, 긴장을 할만한 이유도 없으니까.”

“싸움이 나는 곳을 찾아다니는 암흑상인이 그런 말은 하니까 의외네.”

스피넬의 말에 나는 자그맣게 웃었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눈을 뜨게 된 이후, 나는 항상 크고 작은 사건에 얽매여왔다.

타의로 사건에 휩쓸린 것은 아니다.

그 사건들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들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사지에 발을 내딛어놓고, 그런 주제에 평화같은 말을 늘어놓고 있다니.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건들은 필연적이니까.”

“돈 때문에 움직였던건 아니었던 모양이야?”

“돈도 싫어하지는 않지. 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렇구나.”

처음에 왔을 때는 생존문제였다.

그때의 자신에게 돈이란 사람을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그 다음에는 여유의 문제였다.

책임져야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나는 그들을 지탱할만한 돈을 들고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과의 관계를 묶어두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지금의 내 주변에는 돈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산재해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평화를 사랑하는 착한 사람은 못되지만 말이야.”

“그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글쎄.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주저없이 고르겠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런 각오를 하고서 집행자들을 모으지 않았던가.

“…….”

“사람을 죽이는 것도, 누군가를 짓밟는 것도. 결국에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니까.”

결사의 ‘계승’은 일종의 저주다.

언젠가 이야기의 종막이 찾아왔을때, 누구 하나는 그 짐을 짊어져야만 했다.

모두가 결사의 계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운명을 누군가는 반드시 이어받지 않으면 안된다.

언젠가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때가 다가오면 나는 자신의 손으로 이야기의 올바른 결말을 골라야만 했다.

누가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미래의 자신이 선택할 일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