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메이지 가드 (2)
* * *
“그래서, 우리와 한배를 타고 싶다고?”
패러노트 리어. 메이지 가드를 이끄는 우두머리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검은 코트를 입은 채, 안대를 쓰고 있는 외눈의 남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패러노트의 앞에 자리잡은 남자의 이름은 니콜라스.
세간으로부터는 축성가 니콜라스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패러노트의 물음에 니콜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말 그대로. 너희와 함께 하고싶다.”
“예전에는 뭐, 갑옷입은 친구와 콤비를 짰다고 들었는데?”
“캘빈? 그 녀석은 죽은지 오래다.”
“아, 이거야 원. 내가 민감한 내용을 물어봤구만!”
“오래된 일이니까 신경쓰지마라.”
파삭. 패러노트가 입에 문 과자를 깨물었다.
과자를 무는 소리에 니콜라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패러노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입에 들어간 과자를 전부 먹어치웠다.
책상위에 놓여있던 커피 한 잔까지 완전히 비워버리고 나서야 패러노트의 행동은 끝을 맺었다.
커피를 전부 비운 패러노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들어오려는 건데?”
“나를 쫓아다니던 녀석들로부터 숨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쫓겨다녔다고? 누구한테?”
“유령군단. 특급 수배범이면서… 수상쩍은 집단에 몸을 담고 있던 녀석이지.”
“특급? 그거 별거 아니구만. 나도 특급 수배범인데 말이야.”
패러노트는 아무렇지 않다는 기색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니콜라스는 한쪽으로 고개를 돌려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침묵. 그 직후 니콜라스가 담배 하나를 품에서 빼어들었다.
담배를 꺼내든 니콜라스는 하나 남은 눈으로 패러노트를 힐끗거리며 물었다.
“상관없나?”
“아, 괜찮아! 연기야 나도 많이 마시는 편인데 뭘.”
“…….”
패러노트의 방독면을 본 니콜라스는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불을 붙였다.
독연과 담배연기라.
그가 생각해도 퍽 우스운 고민이었다.
“독가스랑 비교하면 담배회사에 좀 미안해지는데.”
가벼운 농담을 늘어놓은 니콜라스가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였다.
패러노트의 검은 안개는 8구역에서 제법 유명한 편이었다.
살상력도 훌륭하고, 대인 제압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무엇보다 도시에 산재해있는 인스턴트 메이지들 중에서도, 패러노트만큼 광범위한 마법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패러노트에게 지금같은 악명이 생긴 것이지만 말이다.
“괜찮아. 몸에 나쁘다는거야 비슷하잖아?”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지.”
“그런데 우리 지원자님은 무슨 이유로 마법사 인권운동에 뜻을 두셨나?”
마법사 인권 운동.
그 말을 들은 니콜라스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도시에서 벌이는 무차별 테러를 그런식으로 고상하게 포장하는 방법이 있다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니콜라스는 자제심을 발휘해 웃음을 참아냈다.
그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인물은 검은 안개였다.
도시에서도 손에 꼽는 미치광이를 자극해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치안대 녀석들에게는 치가 떨리거든.”
“오호. 치안대가 싫다?”
“그리고 갚아줘야 할 빚도 많이 남아있지.”
“그거야 나름 납득이 가는 이유네. 치안대 녀석들이 마법사들을 워낙 괴롭혀야지.”
고개를 끄덕인 패러노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선 패러노트의 손에는 바닥이 드러난 종이컵이 들려있었다.
패러노트는 종이컵을 들고 정수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비어있는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채워넣으며 말했다.
“나도 축성가의 소문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들었단 말이지.”
“…….”
“그런 인재를 아무곳에나 굴리기는 아깝잖아. 그러니까 묻는건데, 지금도 본인이 쓸만하다고 생각해?”
패러노트의 시선이 니콜라스의 왼팔을 훑었다.
원래대로라면 손이 있어야 할 자리를 큼직한 갈고리 하나가 대신하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갈고리가 달려있는 팔을 들어올렸다.
들어올린 팔에서 묵직한 무게가 전해져왔다.
치안대에게 입었던 뼈아픈 상처의 흔적이었다.
“예전에 듣던 소문보다는 나을거다.”
“소문보다는 낫다? 서클이라도 하나 올라간 모양이야?”
“그런 일이 있었지.”
“흐하하! 생각보다 더 유능한 인재였구만.”
패러노트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새로 따른 커피를 바닥에 내던졌다.
커피가 쏟아지면서 패러노트의 커피잔이 바닥을 뒹굴었다.
니콜라스의 시선이 패러노트와 커피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패러노트는 니콜라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말했다.
“합격이야.”
“……그거 다행이군.”
그런데 마시지도 않을 커피잔은 왜 집어던진 것일까.
니콜라스는 곧장 튀어나오려는 의문을 집어삼켰다.
다행히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자리로 되돌아온 패러노트가 방독면을 집어들고서 그에게 물었던 것이다.
“환영회 좋아하지? 그럼 바로 나가자.”
“어디로 가자는거지?”
“은행 털러.”
* * * * * *
8구역에 위치한 집행자들의 요람.
새부리 가면을 뒤집어 쓴 내가 거창한 이름이 붙은 아지트에 들어서면, 여우가면을 착용한 검성이 나를 뒤따라왔다.
처음에는 가면을 쓴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던 검성이었다.
하지만 이내 집행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태도를 바꿔먹었다.
정체를 숨긴 집행자들.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
검성을 설득하는데에는 이런 부류의 이야기가 가장 확실했던 것이다.
비밀기지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설레었던 모양인지, 그녀는 나를 따라오는 내내 평소보다 들뜬 기분이 되어있었다.
“전령. 오랜만에 돌아오셨군요.”
“넘버 세븐인가. 오랜만이군.”
“한동안 요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걱정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는 넘버 세븐 필립이었다.
이곳에 있는 집행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인물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어느정도 집행자에 적응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처음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가면을 쓰고 있는 오즈왈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즈왈드는 간단한 손가락 인사를 보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넘버 에이트. 일은 잘 배우고 있나?”
“물론입니다! 저는 이런 일에 전문이니까 말이죠.”
“그거 다행이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집행자의 품격을 헤치는 일은 없을겁니다. 아무쪼록 믿고 맡겨주시길.”
집행자의 품격이라.
생긴지 얼마 안된 조직에 품격이랄게 있나 싶다.
그러나 오즈왈드의 옆에 있던 필립은 상당히 감명받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데려올 때부터 느낀거지만, 분위기에 상당히 잘 적응하는 녀석이었다.
물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은 필립뿐만이 아니었다.
꿀꺽. 뒤에 있던 검성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비밀요원에 대한 로망을 떠올린 모양이다.
“넘버 식스. 그동안 별 이상은 없었나?”
“눈에 띄는 결사의 동향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자중하고 있는 모양이군. 알겠다.”
다음은 넘버 식스를 맡은 헤리오와의 대화였다.
그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라는, 변장치고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생활과 통화에 나름대로 편의를 봐준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전처럼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헤리오였다.
벨로부터의 전언에 따르면, 헤리오와는 자주 연락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이트테일의 사람들과 연락하지 못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헤리오와의 짧은 문답을 마치고 나면, 필립이 내 뒤의 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동안 아지트에 상주하던 것은 여기 있는 세 사람뿐이다.
검성을 처음 보는 필립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다행히 검성에 대한 소개라면 미리 준비해놓은 것이 있었다.
나는 손으로 검성을 가리키며 필립에게 소개했다.
“넘버 파이브다. 전투쪽에 특화된 인원이지.”
“넘버 파이브…….”
“그녀는 외부활동에 주력하는 부류다. 아마 요람에 찾아오는 일은 드물거다.”
“잘 보이지 않던 이유가 있었군요. 넘버 세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개를 들은 필립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인사했다.
까마득한 선배를 대하는 신입의 태도였다.
검성은 당황한 모양인지 잠시동안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서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목소리야 어차피 변조되어 나가기에 의미없는 짓이었지만 말이다.
“……그래.”
“감사합니다!”
한바탕 신고식을 본 헤리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헤리오의 한숨소리를 들은 넘버 세븐은 잠깐 몸을 떨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숨을 내쉰 헤리오는 곧바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지?”
“오늘은 지시할 내용이 있어 찾아왔다.”
“지시할 내용?”
“당분간 주목해야만 하는 인물이 생겼다.”
내가 오늘 이곳에 찾아온 이유.
그것은 메이지 가드의 준동으로 움직일 다른 녀석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결사의 움직임을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패러노트의 움직임을 쫓으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번에 추적하려는 인물은 그보다도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
“주목해야하는 인물이 누구지?”
“레닐 바이츠.”
제 4 근위대장, 레닐 바이츠.
그는 도시에 잠입한 근위대원들을 이끄는 6서클의 대마법사였다.
그리고 어셔 헤이즈에게 도시의 진실을 말해줄 인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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