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메이지 가드 (3)
* * *
‘전쟁도시’의 이야기가 파국을 맞이하는 것은, 레닐이 어셔에게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수년전에 일어났던 사건의 진실을 듣고 폭주한 어셔는 네이에게 받은 총으로 상임위원인 아벨 테르도스를 살해한다.
그리고 도시는 그 날을 기점으로 붕괴하게 된다.
당연하게도 네이와 어셔의 관계 역시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평생을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던 어셔다.
여동생을 살해한 범인을 알아낸 어셔를 멈출 방법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채였다.
예외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치안대의 제7특별기동대에서 묵묵히 활동했던 것도, 오로지 여동생의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닐 바이츠가 누구지?”
“제 4 근위대장. 6서클의 대마법사다.”
“근위대… 녀석들이 이 도시에서도 활동하고 있던 모양이군.”
근위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헤리오가 말했다.
근위대의 악명은 제국 전역에 유명한 편이었다.
도시라고해서 근위대를 모르는 이들은 드물었다.
특히나 유명한 이들을 싸움붙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기도 했다.
근위대의 이야기를 들은 오즈왈드 역시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위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아마… 결사에서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겠군요.”
“결사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결사가 이미 움직이고 있단 말입니까?”
“이미 절름발이의 손에 근위대원 하나가 죽었다.”
원작의 흐름에 따르면 슬슬 그럴 시기였다.
결사의 뒤를 캐던 근위대원 하나가 죽고, 계승자가 그녀를 통해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 상황을 저지할만한 기회가 없었다.
일단은 그녀가 있는 장소를 모른다.
원작에서도 둘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고만 적혀있지, 자세한 장소가 나와있는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그 유명한 절름발이였다.
절름발이 브루노. 그의 앞에 서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다.
이미 사무실을 습격당하던 당시에 그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때 당시야 브루노가 운좋게 물러나줬기에 망정이지, 지금 다시 마주한다면 곱게 물러나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가능하다면 브루노와는 마주치지 않는게 상책이었다.
“이미 결사의 움직임까지 파악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있는 걸까요.”
브루노에 대한 안좋은 추억을 떠올리고 있으면, 머릿속에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귀에 익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검성을 바라보았다.
검성은 나와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무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잘못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몇차례 더 의문을 표하는 검성이었지만, 나는 애써 그 반응을 무시하며 헤리오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래서, 그 레닐 바이츠라는 작자는 어떻게 찾지?”
“7구역에 ‘제임스 드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을거다. 키가 나보다 조금 더 큰, 갈색 머리를 가진 사람이지.”
“그게 정체를 숨긴 근위대장인가.”
“그래. 내가 알려준 단서를 이용하면 어렵지않게 그를 찾을 수 있을거다.”
“그를 찾아서 어떻게하면 되지?”
내가 레닐 바이츠를 찾으라고 한 이유는, 결코 그와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쪽의 움직임을 녀석에게 들키면 곤란했다.
치안대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어떤식으로든 레닐이 움직임을 보여올 터.
집행자들이 해주는 역할은 녀석의 감시만으로도 충분했다.
레닐을 가능한 어셔에게서 떼어두는 것은 내가 할 일이었다.
“단순히 감시만 하도록. 수상한 동향이 있으면 보고하는 것으로 좋다. 결코 그에게 접근하지 마라.”
“알겠다. 지시대로 하지.”
“대마법사를 상대로 전투를 벌여서 좋을 것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에게 다가가지 않는 편이 좋을거다.”
집행자들에게 지시할 내용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넘버 세븐의 어깨를 짧게 두드려준 후, 아지트의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용건만 마치고 빠져나가려는 내 모습에 헤리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벌써 돌아가려는 생각인가?”
“굳이 오래있을 필요는 없겠지. 네가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겠다.”
사적인 자리라면 더 긴 대화를 나누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정체를 숨기고 만나는 입장이다.
정겹게 안부인사를 나누기에는 너무 먼 위치까지 오고 말았던 것이다.
헤리오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나는 곧장 아지트를 빠져나왔다.
문을 닫는 너머로 아쉬워하는 검성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 * * * * *
“결국은 아쉽게 끝나버렸네.”
아지트를 빠져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찾아 걸어가고 있으면, 내 뒤를 따라오던 검성이 맥이 빠진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비밀조직에 대한 로망이 생각보다 컸던 것일까.
아지트를 나온 이래로 검성은 계속해서 축 늘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요람은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군.”
“집행자들의 요람? 어딘가에서 진짜 비밀기지다, 하는 느낌이 나서 좋았어.”
“그런가.”
“안에 있던 사람들도 진지한 분위기였고 말이야.”
집행자가 된 계기를 살펴보면 맥이 빠지겠지만, 각자 도시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도시가 위기에 빠진 것도, 우리가 결사를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도.
어느쪽도 거짓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자신의 역할에 심취한 것은 넘버 세븐인 필립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언제부터 비밀 조직에 있었던거야?”
“이번 요람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 활동은 그 전부터 있던거야?”
“그런 셈이 되겠군.”
검성의 로망을 깨고싶지 않았기에, 나는 최대한 그럴듯한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하나씩 다지고 들어가보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 자신을 하나의 집행자로 놓고서 보자면, 도시에 온 순간부터 활동을 시작한 셈이 되니까 말이다.
요람이 최근에 생긴 것 역시 사실이었다.
양심의 가책따위는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다.
“퍼시발은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바로 앞에서 금칠해줄 필요는 없다.”
“그러고보니 암흑상인이라는 이름도 엄청 유명하고 말이야.”
“……그렇게 유명한가?”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암흑상인이라고 불리는, 대단한 정보상인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이야.”
암흑상인의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퍼져나갔나.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암흑상인이니, 대단한 정보상인이니,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우스운 이야기였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꺼냈던 것도 미스터 트릴로를 설득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반사적으로 꺼냈던 변명이 여기까지 커져버린 것을 보고있으면, 새삼스럽게 소문의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정체가 너무 많이 알려져서 곤란하군.”
“신비주의가 사라질까봐 걱정인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내가 아무나는 아니잖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아니야.”
“……?”
절름발이 브루노의 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내 주위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 그녀였다.
특별하다는 말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좀 있지 않나 싶었다.
물론 그녀가 벌이는 기행을 놓고서 이야기하자면 나로서도 할말은 없는 수준이었다.
검을 차고서 검성을 자칭하는 용병의 소문은 업계에서도 이미 유명한 편이니까 말이다.
검성의 말을 들은 내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검성이 의미심장한 시선을 나에게 보내며 말했다.
“왜 반응을 안해줘?”
“……아주 든든하군. ”
“역시, 퍼시발도 잘 알고 있구나.”
“검성의 이름은 이 도시 전역에 유명한 편이지. 나는 그 대단한 검성을 부하로 데리고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헤헤…….”
부담스러울 정도로 만족스러워하는 검성이었다.
허.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반응을 보일줄이야.
평소부터 칭찬을 좀 자주 해줄걸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옛날부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고 하지 않던가.
칭찬 한마디로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퍼시발, 저기 봐.”
그렇게 검성과 함께 길을 걷고 있으면, 검성이 갑자기 발길을 멈춰세웠다.
발걸음을 멈춘 검성의 모습에 나 역시 자리에 멈춰섰다.
어째서 그녀가 멈춰섰는가.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
검성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은행이 하나 있었다.
도시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헤러넌츠 은행의 지부였다.
그리고 그런 은행의 창문 너머에서는 검은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은행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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