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미궁 (1)
* * *
세컨더리 비트.
그들은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민간군사기업이다.
도시에서 손에 꼽는 전력인 세컨더리 비트 안에서도, 1팀은 엘리트 용병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부대였다.
그런 1팀의 인원이 3할 가까이 집결해있는 5구역의 어느 가건물.
세컨더리 비트의 훈련장으로도 사용되는 그 공간에서, 단상위에 선 마이클이 용병들을 내려다보았다.
마이클의 눈에 비치는 용병들은 하나같이 철저하게 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봐, 마이클. 내가 듣고 온 이야기 정말이야?”
단상의 아래에 서있던 용병들 중 하나가 마이클을 보며 물었다.
마이클보다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 역시 제법 오랫동안 세컨더리 비트에 몸을 담고 있는 용병이었다.
용병에게 있어 오랫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실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그의 치열했던 삶을 증명해 주듯이, 용병의 눈에는 커다란 칼자국 하나가 그어져있었다.
용병의 물음에 마이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너희들이 기다리던 시간이 온거야.”
“드디어 그 범인을 찾아내다니, 마탑에서 죽은 데니스의 원한을 풀어주겠군!”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지는 말고. 상대도 제법 이름이 있는 거물이니까 말이야.”
상대의 이름을 떠올린 마이클이 큼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
최근들어 암흑가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값비싼 정보만 취급하며, 아무나 거래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정보상인이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직접적인 전투능력 역시 제법 출중한 편이라는 듯하다.
물론 신변을 지켜줄만한 호위들 역시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설마 내가 정보상인 따위에게 죽겠나?”
“그래? 천리안의 리만한테도 그렇게 말해보던가.”
“리만도 내 앞에서는 별거 아니지. 호위만 없으면 말이야.”
“말은 잘해. 호위만 없으면 못죽이는게 어딨어? 그 대단한 귀족들도 머리통에 구멍뚫리면 다 뒤질텐데.”
“하하하……!”
우스꽝스러운 손짓을 곁들여 이야기하는 마이클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용병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질문을 던졌던 용병 역시 우렁찬 웃음소리를 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환기된 모습이었다.
어깨에 소총을 기대어 맨 마이클이 용병들과 농담을 나누고 있으면, 가건물의 한구석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농담을 나누던 마이클은 익숙한 걸음소리에 대화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건물의 입구에서 검을 맨 데런이 다가오고 있었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마이클. 준비는 대강 끝났나?”
“물론이죠. 다들 팀장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터벅. 터벅.
묵직한 걸음소리를 내며 다가온 데런이 설치되어있는 단상을 밟고 올라섰다.
데런이 다가오자 용병들의 웃음소리도 일거에 사라졌다.
제멋대로 굴기로 유명한 용병들이라고는 하지만, 데런의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만큼 입이 가벼운 인물은 없었다.
상대는 눈빛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대마법사였다.
검을 든 데런을 향해 용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였다.
“인원부터 확인하자, 마이클.”
단상에 선 데런이 마이클을 보며 지시했다.
끄덕. 고개를 움직인 마이클이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갔다.
그리고는 주변을 거닐며 인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1조. 인원 보고.”
“총원 8명. 결원 0명. 이상 없음.”
“2조는 어떻게 됐지?”
“총원 7명. 현재원 6명. 결원은 1명이다.”
“3조.”
“…….”
데런의 시선이 인원을 확인하는 마이클의 주변을 훑었다.
이번 일은 대놓고 움직일 수 없는 사안인만큼, 가능한 빠르게 모은 인원들이었다.
급하게 준비한 것 치고는 상당한 숫자가 모였다.
이런 숫자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암흑상인의 사무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컨더리 비트의 최고전력인 데런 자신이 참가하는 작전이었다.
특이한 변수가 없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작전타겟을 제거하는게 당연했다.
“팀장님. 얼추 다 모인 것 같습니다.”
“수고했어.”
어느새 인원점검을 마친 마이클이 데런에게로 되돌아왔다.
데런은 마이클을 향해 뒤로 빠지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용병들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수많은 용병들의 이목이 다시 한 번 그에게 집중되었다.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있는 순간이다.
앞에 모인 용병들에게 무언가 한마디 일러둘 필요가 있다고 느낀 데런이었다.
“다들 컨디션은 괜찮아?”
“물론이죠, 팀장!”
“한 열댓명은 쏴죽일 수 있을 것 같군.”
“팔팔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
돌아오는 대답들처럼 육안으로 보기에는 다들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는 모습이었다.
작전을 수행하는데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데런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마탑에서 벌어졌던 전투는 기억하고 있을거야. 그곳에서는 제법 많은 녀석들이 죽었지.”
“죽은 녀석들은 가족들한테 두둑하게 챙겨줬어. 그런다고 걔들이 살아돌아오는건 아니겠지만.”
“가끔씩은 걔들이랑 마시던 맥주가 그립기도 해. 돈받고서 사람 잡는게 우리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우리 용병들에게는 최소한의 규칙이 있잖아. 안그래?”
데런의 날카로운 시선이 용병들을 훑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이 자리의 모두가 불문율 하나를 떠올렸다.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용병들에게 전해져오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규칙.
금은 금으로, 강철은 강철로 갚는다.
그 단순한 진리를 상기시킨 용병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무기를 내질렀다.
“금에는 금으로. 강철에는 강철로. 이거 모르는 머저리는 여기에 없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데런의 발언에 용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시대와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용병들에게 전해져오는 단순한 진리였다.
“물론 이게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여기의 모두가 알고있지.”
“이거 하나도 못지켜서야, 멋도 없고 자존심도 안살잖아.”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그걸 지키러 갈거다.”
“물론 그에 합당하는 보상도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말을 마친 데런이 허공에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하나씩 순차적으로 손가락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전부 펼친 데런은 그것을 용병들에게 흔들었다.
데런의 손가락에 내재된 뜻을 알아차린 용병들이 환호했다.
“단위가 뭔지 알아?”
“1천?”
“1천 누구야? 내가 그렇게 속이 작은 것 같아?”
“그럼 천만?”
“5천만 크레딧? 그건 너무 나갔고. 그만큼이나 주면 회사가 아예 도산하겠어.”
“그럼 뭡니까, 팀장님?”
데런이 내걸 현상금을 무척이나 고대하는 용병들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원하던 반응이었다.
고개를 높이 치켜든 용병들을 향해 손바닥을 흔들던 데런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가건물 전체에 울리도록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50만. 오늘 타깃의 목에 50만 크레딧을 건다.”
“50만 크레딧……!”
“50만 크레딧이면 어지간한 특급들보다 높잖아!”
50만 크레딧. 어마어마한 액수를 들은 용병들이 환호했다.
기본적인 수당이 높은 용병업계에서도 10만 단위의 크레딧은 쉽게 만질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벌어들인 돈을 쉽게 쓰는 용병들에게는 더더욱 거리감이 있는 숫자였다.
오늘만 기회가 오는 복권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이 액수를 듣고도 오줌 마렵다고 도망갈 겁쟁이가 있나?”
“에이, 팀장님. 그런 멍청이가 여기 어딨습니까?”
“겁많은 놈들은 신입이던 시절에 죄다 죽었죠.”
“저희를 뭘로 보고서! 하하하!”
노련한 용병이 던진 농담에 모두가 반색했다.
타겟 하나에 50만 크레딧.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해도, 기회를 마다할만한 용병은 여기에 없었다.
애초부터 세컨더리 비트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용병들이었다.
동료의 복수. 그리고 화끈한 포상금.
어느쪽이든지 포기할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야지. 그래야 우리 팀원들이지.”
사기가 오른 팀원들의 모습에 데런이 들어올렸던 손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다들 싸울 준비는 이미 되어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적의 근거지로 찾아가, 외출하고 있을 암흑상인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데런의 손이 허리춤에 매여있는 자신의 검을 쓰다듬고 있으면, 근처에 있던 용병 하나가 데런을 향해 외쳤다.
“그래서 팀장님, 오늘 잡을 녀석의 이름은 뭡니까?”
“암흑상인. 암흑상인 퍼시발 스미스.”
마탑이 있던 3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정보상인.
그의 이름을 떠올린 데런이 단상에서 뛰어내렸다.
적의 정체도 모른 채로 이를 갈던 시간은 이미 끝났다.
이제부터는 사냥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오늘 암흑상인을 잡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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