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미궁 (2)
* * *
7구역. 무너진 헤러넌츠 은행의 건물 앞.
그곳에서 우리는 큼직한 주머니를 들고 있는 패러노트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었다.
주머니 속의 내용물은 아마도 은행에 있던 현금일 것이다.
그가 은행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털지 않고 빠져나온게 아니라면 말이다.
“어떻게 하지? 도망갈 것 같은데.”
“놔두는 편이 좋다. 지금 자극해서 얻을만한게 없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쫓아가는게 낫지 않아?”
이곳을 벗어나려는 패러노트 일행의 모습에, 옆에 있던 검성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저들과 맞서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패러노트의 검은 안개는 상당히 넓은 범위까지 커버가 가능하다.
그들이 작정하고 몸을 숨기려고 한다면, 방독면이 없는 우리는 시간제한에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
가능하다면 충분한 인원과 장비를 갖추고서 패러노트의 토벌에 나설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다른 집행자들을 부르고서 움직이는게…….”
“검은 안개! 여기에 있었나!”
패러노트의 추격을 권유하는 검성을 내가 설득하려는 순간.
그들이 있던 건물의 바로 아래에서, 패러노트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커다란 소총을 들고 있는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그는 패러노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고 있던 소총을 패러노트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오늘 너를 쳐죽이고 현상금을 가져가겠다!”
“너는 또 뭐야?”
“나를 몰라? 나는 크로스 네트워크의 미친 들개, 호크님이시다!”
자신을 호크라고 소개한 남자는 곧장 패러노트를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탕! 타앙!
묵직한 총성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호크의 총구가 연달아 불을 뿜었지만, 아쉽게도 패러노트에게 적중하는 탄환은 없었다.
호크와 패러노트 사이에 제법 거리가 있던 탓이었다.
패러노트를 노리고 사격을 개시한 호크의 모습에, 오히려 옆에 있던 검성이 놀라서 반응했다.
“호, 호크가 왜 여기 있어?”
“아는 사람인가?”
“호크는… 현상금에 정신이 나간 사람이야. 상대가 누구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서, 일단 총부터 쏘고 보는 경향이 있어.”
검성 역시 크로스 네트워크에 몸을 담고 있던 용병이다.
동종업계에 있던 사람을 아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한가지 있다면, 저 호크라는 사람이 그만큼 실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이미 작품 내에서 그의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군다나 전투를 벌이는 움직임 역시 크게 믿음직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돈에 미쳐있는 부류인가. 그런 성격으로 용케 지금까지 살아남았군.”
“그래도 운은 좋은 사람이거든. 인망도 좀 있는 모양이고.”
“운과는 반대로 명중률은 안좋은 모양이지?”
나는 계속해서 사격을 이어가는 호크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호크가 쏘아내고 있는 총알은 단 하나도 패러노트에게 적중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이후에 쏘아내는 탄환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엄폐물에 의해 완전히 막혀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옥상에서 불쑥 솟아오른 벽 하나.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기 무섭게, 패러노트의 옆에 있던 남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설마…….”
이 도시에서 저런 속도로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축성가 니콜라스.
스톤 월을 사용하던 4서클의 마법사.
안대를 차고 있는 남자의 정체는 축성가가 분명했다.
인상이 너무나도 달라진 탓에 한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깨닫고보니 니콜라스와도 닮은 점이 많이 있었다.
갈고리를 끼우고 있는 그의 왼손 역시 백화점에서 벌였던 전투중에 잘려나간 흔적이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최악의 상황이군. 가장 상성이 좋은 둘이 붙어먹었으니.”
쯧. 반사적으로 혀를 차는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왔다.
광범위한 영역에 이동의 제약을 만들어내는 축성가 니콜라스.
그리고 마찬가지로 광범위한 영역에 대량의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검은 안개.
이 둘이 함께하고 있는 이상,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패러노트를 토벌하는게 불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최고의 상성처럼 보이는 조합이었다.
“대기하던 녀석들도 빨리 튀어나와!”
내가 패러노트와 니콜라스의 전력을 분석하는 사이, 패러노트와 대치하고 있던 호크가 숨어있던 지원병력을 불러들였다.
그에 무장을 하고 있던 용병들이 일제히 튀어나오며 옥상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소란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더군다나 조금 있으면 신고를 받은 치안대도 이곳에 도착할 터.
치안대까지 전투에 개입하기 시작한다면 틀림없이 난전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토록 꺼리던 최악의 상황이 가시권에 보이기 시작했다.
“유엘. 마법을 사용한다면 공중에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잠깐 체공하는 정도야 괜찮겠지만, 아무래도 오래는 못버텨.”
공중에 떠서 도주하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불가능해보였다.
저들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이곳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휘말려들면 골치가 아플 것 같군. 가급적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게 좋을거다.”
“여길 벗어나자고?”
“일단은 저쪽으로 움직이도록 하지.”
내 우려를 뒷받침하려는 듯이, 패러노트가 연달아 튀어나오는 용병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바로 옆에서는 니콜라스가 돌기둥을 세우며 이마를 짚고 있었다.
자신을 노리고 연달아 사격하는 용병들에게 패러노트가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돈에 미쳐버린 용병놈들! 겨우 은행 하나 털었다고 선량한 시민을 공격해?”
“어떤 선량한 시민이 은행을 터냐! 세상 사람들은 이미 그걸 강도라고 부르기로 정했다!”
“너희가 뭘 알아! 얌전히 독이나 쳐먹으라지!”
휘익. 패러노트의 입에서 휘파람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검은 안개가 터져나와 삽시간에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패러노트가 자신의 마법인 ‘포이즌 포그’를 발동한 것이다.
안개는 빠른 속도로 확산하며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잠식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유엘! 주기적으로 바람을 만들어내라!”
“바람은 갑자기 왜!”
“서두르지 않으면 중독되고 말거다!”
패러노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안개는 닿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효과를 동반한다.
그리고 그 효과를 정하는 것은 오로지 패러노트의 몫이었다.
피부를 부식시키는 산성독만 아니면 숨을 참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시에 불과했다.
주변이 전부 검은 안개로 들어차있는데, 언제까지고 숨을 참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가능하면 검은 안개에 닿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알았어! 시도해볼게!”
순식간에 퍼져나간 검은 안개가 주변의 시야를 잠식했다.
확산하는 안개속에서 나는 검성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안개속에서는 시야가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혹시라도 검성과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내가 검성의 손을 강하게 움켜쥔 이후, 주변에 시원한 바람이 한차례 몰아쳤다.
후우우우웅——.
주변을 순환하는 거센 기류속에서, 우리를 중심으로 원형의 경계선이 만들어졌다.
“이건 설마…….”
“일단 해보기는 했는데, 어떤 것 같아?”
“상상했던 것 이상이군. 최고다, 유엘.”
“헤헤…….”
혹시나 싶어 검성에게 부탁했던 것이, 생각보다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패러노트의 안개는 우리에게서 일정 간격만큼 떨어진 채,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검성의 마법이 다가오는 안개들을 계속해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상상 이상의 성능에 만족하며 검성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제 방독면이 있는 곳까지만 이동한다면…….”
“[스톤 월]——!”
하지만 우리에 대한 방해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검성이 만들어낸 결계에 만족한 내가 방독면을 수급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니콜라스의 목소리가 사방에 크게 울려퍼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밟고 있던 지면이 크게 요동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쿠구구구궁!
대지가 진동하며 주변에서 두터운 돌벽이 솟아올랐다.
돌벽은 방향을 가릴 것 없이 사방에서 솟아올랐으며, 하나같이 사람의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높이였다.
울창한 숲과도 같이 늘어선 돌벽들의 향연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만히 있자니 검은 안개가 우리를 압박해오고, 이동하자니 두터운 돌벽들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상상속에서만 담아두고 있던 최악의 조합이 눈앞에 기어이 펼쳐지고 만 것이다.
도시 한복판에 지옥의 미궁이 펼쳐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