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미궁 (3)
* * *
“있잖아, 퍼시발…….”
“…….”
“이제… 우리 어떻게 하지?”
사방에 솟아오른 돌벽들을 본 검성이 말했다.
웅장하게 늘어서있는 벽은 이 주변에 거대한 미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치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공간이다.
지형을 파악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딘가에 벽이 뚫려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패러노트 일행을 붙잡는 것도, 그들에게서 벗어나 방독면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언가 효율적인 탐색수단을 찾아야만 했다.
“유엘.”
“응.”
“아무래도 공중에서 관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가능할 것 같나?”
“으음… 잠깐정도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검성의 마법은 기동성 측면에서 상당히 우수한 마법이었다.
지상으로 낙하할 때의 충격을 줄여주거나, 몸을 일시적으로 부유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아마 지상에서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것 역시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중에서 탐색한다면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나는 검성의 마법을 믿고서 정찰을 한 번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너무 길게 체공할 필요까지는 없다. 일단은… 여기 있는 벽부터 넘어가보도록 하지.”
“알았어. 한 번 시도해볼게.”
고개를 끄덕인 검성을 중심으로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바람을 모아 일거에 쏘아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옆에서 바람을 움직이는 검성을 보고있자니, 문득 스피넬과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스피넬을 쫓아 하늘을 날았던 당시에는, 분명 그녀와 손을 붙잡아야만 가능했다.
“같이 떠오르려면 가까이 붙어야하나?”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그렇군.”
“네가 굳이 붙겠다고 한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면, 나서서 방해하진 않겠다.”
“……알았어.”
살짝 기운빠진 목소리로 수긍한 검성이 손을 휘저었다.
후우우우웅——.
강한 풍압과 함께 나와 검성의 몸이 떠올랐다.
다리가 지면을 완전히 벗어나 허공을 딛고 있었다.
스피넬이 레비테이션을 사용해 집어던지던 때처럼 위화감을 느낄만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검성의 마법에 의해 공중으로 떠오르는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었다.
천천히 계단을 쌓아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물론 올라가는 속도가 느린만큼, 움직임 자체는 스피넬보다 안정적이었다.
십수초가 지나 우리의 몸이 검은 안개 밖으로 빠져나왔을 즈음, 나와 검성은 참혹한 지상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범위가 넓어보이는데.”
“그러네.”
이 일대 전부가 검은 안개로 뒤덮혀 있다.
패러노트의 검은 안개는 예상보다도 넓은 범위에 걸쳐 분포해있었다.
그리고 그런 검은 안개가 퍼져있는 공간 사이마다, 거대한 돌벽들이 불규칙하게 세워져있는 모습이 보였다.
돌벽의 높이도 그렇게 균일하지만은 않았던 탓에, 이곳의 구조를 완전히 익히기는 어려워보였다.
“나가는 길을 찾아내기는 어렵겠어.”
“그리고 저기에도 또 뭐가 있는데?”
게다가 하늘에 떠있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떠오른 위치에서 얼마 앞.
저공비행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헬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비행중인 헬기에는 치안대를 나타내는 문양이 큼지막하게 칠해져 있었다.
“저 헬기는 치안대 소속인가?”
“……퍼시발. 나 슬슬 힘이 빠질 것 같아.”
“조금만 더 뒤쪽으로. 바로 앞에 있던 벽을 넘어갈거다.”
“어… 일단은 노력해볼게.”
고개를 끄덕인 검성이 앞쪽으로 바람을 쏘아냈다.
우리의 몸이 느긋하게 공중에서 움직이는 동안, 치안대의 헬기는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어떻게 보아도 우리에게 우호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짐작가는 이유는 몇가지 있었다.
혹시라도 패러노트 일행으로 오해했다던가.
그게 아니라면 집행자에 대한 정보가 치안대에 어느정도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다만 내가 이 만남에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가능한 치안대와도 접촉을 피하는 편이 좋겠다는 것이다.
“이제 더는 안돼……. 내려갈게.”
“수고했다, 유엘.”
우렁찬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헬기가 방향을 돌렸다.
한계에 봉착한 검성 역시 곧바로 착륙을 준비했다.
우리의 몸이 지상을 향해 서서히 하강하면, 방향을 바꾼 헬기가 이쪽으로 총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수많은 탄환들이 우리를 향해 빗발쳤다.
결국 치안대의 헬기가 작정하고 우리를 노려왔던 것이다.
대부분은 검성의 바람에 의해 궤적이 틀어졌으며, 그마저도 지상에 도착한 이후에는 돌벽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그 많은 공격을 전부 흘려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상에 착륙하기 위해 움직이던 사이, 검성의 어깨죽지에 탄환이 하나 틀어박힌 것이었다.
“으읏…….”
지상에 도착한 검성은 총에 맞은 어깨를 붙잡고서 인상을 썼다.
가면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강하게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참기 힘든 고통일텐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신음을 집어삼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통증속에서 정신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인지, 주변에 휘몰아치던 바람이 서서히 옅어져가고 있었다.
“유엘. 괜찮나?”
“읏. 나, 나는 아직…….”
“조금만 버텨라.”
당장 죽음에 이를만한 부상은 아니다.
거동에 상당한 지장이 생길 수는 있어도, 응급조치를 한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부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당장 리저렉션을 사용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보통이라면 행동불능이 될때까지 리저렉션을 아껴두었겠지만, 지금은 사방이 독연으로 가득차있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검성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그녀의 마법도 무너진다.
패러노트의 독연을 여과없이 흡입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바로 마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무슨, 소리야……?”
“마법을 쓸거다.”
“마법?”
총알을 맞은 어깨부위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맞닿은 손을 통해 뜨거운 피가 묻어난다.
상처에 닿은 고통때문인지, 검성이 일순간 어깨를 움찔거렸다.
“읏.”
“금방 끝난다.”
“아, 알았어.”
손끝에 마력을 모으고 리저렉션 마법을 준비한다.
이미 몇번이고 사용해봤던 마법이다.
텔레파시를 발동할 때처럼 소리없이 빠르게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검성의 상처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마력을 움직였다.
손에 마력의 흐름이 얽혀나가며 짧은 빛이 반짝였다.
‘[리저렉션].’
한차례 마력광이 강하게 휘몰아치고, 그 직후에 빛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마법을 사용한 대상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일까.
이전에 쓰던 마법처럼 화려한 흔적이 남지는 않았다.
다만 피가 흐르던 검성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어있었고, 어깨에 박혀있던 총알 역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진 채였다.
후우. 치료된 상처를 보던 검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괜찮아졌어. 고마워.”
“지금 바로 움직일거다. 준비해라.”
“방금 전에는 뭘 한거야?”
“간단한 치유마법이다.”
“아… 치유마법을 가지고 있었구나.”
검성의 의문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는 그 이상 캐묻는 일 없이, 벽에 기대어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동안 보아왔던 모습이 있기 때문일까.
검이 없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허전하게 느껴진다.
나는 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서, 곧장 다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성의 마력은 무한하지 않다.
그녀의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해야만 했다.
“…….”
이전에야 어셔가 있어서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어셔가 없는 상황이다.
주인공의 낯짝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올줄이야.
주변에서 대단하다는 소리를 몇번이고 듣고다니면서도, 막상 혼자서는 이런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
상성의 문제도 존재하겠지만, 자신에게 화력이 부재한 것도 커다란 문제다.
검귀처럼 오러라도 있었다면 저 벽을 두부처럼 자르면서 지나갔을텐데 말이다.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겠군.”
“다른 방법?”
“그래. 사람을 집어넣으면 안되는 것도 되지 않겠나.”
이대로 상황이 고착되면 위험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집행자들의 요람에는 아직 사람이 많이 남아있을 터다.
화력이 부족하면 외부에서 불러들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내가 전화를 연결하려던 순간.
나는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서 다시 전화를 집어넣었다.
“선객이 있었나.”
귓가에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거기에는 방독면을 쓴 한쌍의 남녀가 있었다.
허리춤에 권총을 찬 여자가 하나.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서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가 하나.
방독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지만, 상대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치안대의 인원들인가.”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 놀랍군.”
호랑이도 제말하면 찾아온다더니.
결국 어셔 헤이즈와 맞닥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