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미궁 (4)
* * *
방독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지만, 상대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치안대의 인원들인가.”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 놀랍군.”
호랑이도 제말하면 찾아온다더니.
결국 어셔 헤이즈와 맞닥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를 마주한 어셔의 반응은 이전과 달랐다.
나와 검성은 지금 변장을 하고 있는 채였다.
암흑상인으로서 이곳에 있는게 아니라, 집행자의 일원으로서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검은 안개를 잡기 위해 찾아온 모양이군.”
“원래 목표는 그랬었지. 하지만, 너희도 충분히 수상해보이는 모습이군.”
“우리가 수상해보이나?”
“그래.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얼굴을 숨기고 있는거지?”
이상하리만치 감이 날카로운 녀석이다.
더군다나 방금 전에는 치안대의 헬기로부터 한차례 공격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어셔를 상대할 때는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마력의 흐름을 읽는 것도 그렇지만, 주변 인물에 대한 눈치도 빠른 편이었다.
내가 지금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다지 떳떳한 위치가 아니라는 것.
어느쪽이든 어셔가 이미 파악하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이럴때에는 정공법으로 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상대가 너라면 굳이 정체를 숨길 생각은 없다. 나는 집행자의 넘버 투—— ‘전령’이다.”
“집행자… 최근들어 시체를 태우고 다니던 녀석들인가.”
“집행자에 대한 소문이라도 들은 모양이군.”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벌이는거지?”
갑작스럽게 취조의 장이 되어버렸다.
저쪽이야 원래 범인을 쫓는게 일이고, 우리야 사람들을 피해 움직이는게 일이다.
이렇게 둘이 마주하게 되어버린 이상, 어떻게든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집행자 자체가 결과적으로 어셔 헤이즈를 지원하기 위한 단체였다.
어셔 본인과 척을 져서 좋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집행자가 존재하는 이유라. 어셔 헤이즈, 너는 이 도시의 진실을 알 준비가 되어있나?”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도시의 진실이라고?”
“이 도시는 네가 아는 이상으로 어둡고 복잡한 곳이다. 또한 제국의 가장 깊은 어둠을 품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
“궤변을 늘어놓는군. 이 도시가 더럽다는 것쯤이야 지나가는 어린아이도 알텐데.”
“아직은 자격이 없는 것 같군.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지.”
이야기를 들은 어셔가 곧장 소매를 걷어붙였다.
코트와 셔츠의 소매가 걷히며 어셔의 맨손이 밖으로 드러났다.
근거리에서 블링크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걷어올린 손을 앞으로 뻗은 채로 말했다.
“누구 맘대로 이야기를 끝내려는거냐.”
“시간이 없을텐데. 그 방독면으로 무한정 버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
“물론 우리쪽의 마법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검은 안개를 잡는데 도움을 주지.”
주변에 늘어선 돌벽과 독연은 우리에게 시간제한을 강제하는 요소였다.
이러한 연기가 초래하는 문제는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끌수록 주변의 인명피해가 늘어날 것이다.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릴 셈이 아니라면, 어셔와 네이의 입장에서도 빨리 끝내는 편이 이득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네이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네. 어셔. 여기서는 협조하기로 하자.”
“저들을 어떻게 믿고 움직일 생각이지?”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처리하면 되잖아.”
“편리한 사고방식이군.”
네이의 이야기를 들은 어셔가 혀를 찼다.
어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어셔정도면 믿을만한 호위라고 할 수 있었다.
치안대 역시 그걸 알고있기에 어셔를 특별관리대상에 올려둔 것이었다.
네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고려할만한 선택지였다.
“지금 감시관의 명령에 거역하는거야?”
“……마음대로 해라.”
어셔는 걷었던 소매를 원래대로 되돌려두었다.
네이 역시 아무런 불만 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협업문제는 이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물론 암흑상인의 입장으로 만났더라면 조금 더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충분히 빠르게 타협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녀석을 찾을 생각이지?”
“검은 안개를 찾으려면 그에 합당한 방식을 취해야겠지. 일단은 그 전에 하나 묻도록 하지.”
“궁금한게 있는 모양이군.”
“이만한 인원을 이동시킬 수단이 있나?”
백화점 습격 사건 당시, 어셔는 나와 둘이서 블링크를 사용해 이동하는 수단을 취했다.
밀착한 대상 하나를 이동시킬 수 있는 블링크의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있는 인원들을 전부 데리고 이동해야만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고립되는 순간, 검은 안개에 잡아먹히는 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더군다나 가시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공간이다.
사각에서의 습격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수단이라. 속도가 느리기야 하겠지만, 통로를 만드는 방법이라면 있다.”
“어떤 방법이지?”
“마법으로 벽을 베어내는 방법.”
마법으로 벽을 베어낸다라.
절름발이 브루노가 잠시 생각났지만, 아무래도 그와 어셔의 마법은 다른 편이다.
어떤 방법으로 벽을 베어낸다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 * * * *
돌과 안개의 미궁에 갇힌지 어느덧 20분째.
우리는 누구 하나도 낙오시키지 않은 채, 계속해서 돌벽을 돌파하고 있었다.
어셔의 말대로 벽을 잘라내어 이동하는 것은 실제로도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어째서 백화점에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역시 알 수 있었다.
첫째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냥 두 사람이 블링크를 사용해 넘어가는 것보다, 어셔가 벽을 잘라내며 이동하는 편이 더 오래 걸렸다.
그리고 둘째는, 벽을 잘라내는 것이 생각보다 굉장히 번거롭다는 점이었다.
어셔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기피할 만한 요소가 많았던 것이다.
“다시 벽이 나왔군.”
“제거하도록 하지.”
안개로 가득 찬 공간을 움직이던 중, 새로운 벽을 마주한 어셔가 벽에 가까이 다가갔다.
가장 먼저 양팔을 펼쳐 잘라낼 벽의 너비를 대략적으로 짐작한다.
가능한 넓은 범위를 잘라내어 편하게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는 잘라낼 벽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어 완전히 고정시켰다.
이 작업은 벽과 함께 이동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 반복되었다.
“[블링크].”
마지막으로 벽을 고정한 어셔가 마법을 사용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벽을 붙잡은 어셔는 벽과 함께 몇발자국 뒤로 이동하고, 그렇게 붙잡았던 벽은 거대한 파편이 되어버린다.
벽의 일부와 함께 이동했으니, 어셔가 달라붙어있던 자리가 멀쩡할 리는 없다.
블링크 마법에 의해 사람이 지나갈만한 규모의 틈새가 새로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쿵—. 붙잡고 있던 벽의 일부를 내려놓은 어셔가 손바닥을 털었다.
어셔가 짧게 손을 터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 자그마한 흙먼지가 휘날렸다.
“공간이 생겼군. 이동하도록 하지.”
“알았어.”
어셔가 움직이면서 생겨난 벽의 통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아갔다.
네이와 검성 역시 곧장 나를 따라 벽의 너머로 걸어들어왔다.
벽의 너머에는 이전보다 탁 트인 공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지나온 통로들만큼 돌벽이 많이 세워져있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벽의 너머에 들어선 어셔가 차들이 멈춰서있는 주변을 바라보며 물었다.
“거기, 전령이라는 이름이었나? 잘 기억이 안나는군.”
“그렇게 부르면 된다. 혹시 할 말이 있나?”
“검은 안개를 향해 이동하겠다고 들었는데. 지금 이 방향이 확실한지 의문이 드는군.”
“조금 남았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겠지만, 아까보다 확실히 거리는 가까워졌다.”
뭔가 했더니 패러노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전에 역할을 미리 분담했던 만큼, 패러노트의 추격은 내가 맡기로 했다.
물론 그 원리는 텔레파시에 의한 상대적인 방향의 추정이었다.
5서클이 되면서 텔레파시의 범위가 구역 일부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텔레파시로 읽어낸 패러노트의 표층심리를 토대로 현재 위치를 짐작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하지만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패러노트가 있는 방향이 전부였다.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야 전체가 안개에 잠식당한 상황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식을 믿는게 최선이었다.
“나라고 해서 무한히 벽을 뚫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짐작은 하고 있다. 고려해두도록 하지.”
“가능한 빠르게 길을 찾는 편이 좋을거다.”
어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조용해진 도로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란스럽던 거리의 사람들은 사방에 퍼진 검은 안개에 의해 침묵한지 오래였다.
“…….”
“지나치게 조용하군.”
차량 안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해서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패러노트의 검은 안개는 화려하고 조용하게 도시의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적막한 도시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으면, 이내 이질적인 요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자리에 멈춰섰다.
“저건…….”
이곳으로부터 수십미터정도 떨어진 위치.
그곳에서 선명한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