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21화 (121/156)

〈 121화 〉 미궁 (5)

* * *

집행자— 넘버 세븐.

스스로 어둠의 계약자라고도 칭하는 필립은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뿌옇게 낀 검은 안개들 사이로 필립 혼자만이 멀쩡하게 서있었다.

어째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던가.

기억을 더듬어가다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집행자들의 요람’에서 있던 일이었다.

“흐음.”

분명 오랜만에 만난 전령과의 재회에 좋아했던 기억이 있었다.

전령의 뒤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선배 하나가 뒤따라왔다.

처음으로 보는 넘버 파이브와의 만남이었다.

전령은 필립을 포함한 이들에게 한가지 임무를 내린 채로 요람을 빠져나갔다.

제임스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내라.

도시에 숨어 움직이는 근위대장의 추적을 명령받은 것이었다.

필립은 전령의 정보력에 감탄하면서 혼자서 곧장 행동에 나섰다.

그게 자그마치 1시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러나 필립은 제임스를 찾아 이동하던 발걸음을 멈춰세울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 검은 연기가 흩뿌려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퍼진 연기는 한치 앞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연기가 가지고 있는 효과는 시야를 가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필립의 근처를 거닐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목을 붙잡은 채로 쓰러진 것이다.

검은 안개의 효과에 대해 필립이 의구심을 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설마 독가스의 일종인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필립의 차이는 하나뿐이다.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방독면 하나.

그것이 검은 안개의 공격속에서 필립을 보호해주는 것이었다.

검은 안개를 들이마신 사람들은 전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착용한 방독면이 아니었다면, 필립 역시 그들과 같은 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끄으으윽…….”

“독가스인건 확실해 보이네.”

필립의 눈이 자신의 옆에서 발버둥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허리춤에 무기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냥 길을 지나가던 평범한 회사원처럼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런 이유 없이 곤란에 처해있다.

정의를 추종하는 집행자인 필립으로서는 넘어갈 수 없는 광경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바라보던 필립이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에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벗어넣었다.

“[버닝 핸즈].”

화르륵——!

필립의 손을 중심으로 조그마한 불길이 피어올랐다.

버닝 핸즈. 손에 맞닿은 것을 태워버리는 화염계통의 마법이었다.

아직 2서클밖에 되지 않아 화력은 미미하지만, 손에 닿은 것들을 확실히 태울 수준은 되었다.

필립은 불길이 피어오르는 팔을 휘두르면서 주변에 있는 연기를 몰아내려고 노력했다.

화륵. 불규칙적으로 솟아오르는 불꽃이 그의 손길에 닿은 검은 안개를 불태웠다.

“……생각보다 효과가 미미하잖아.”

필립의 근처에 있던 안개의 일부가 사라졌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검은 안개의 양은 그것보다도 훨씬 많은 편이었다.

이정도로 태워서야 남자의 주변에서 안개를 완전히 몰아낼 수 없었다.

필립은 다시 한차례 손을 들어올렸다.

이전보다 더 많은 마력이 그의 손끝에 모였고, 필립은 그렇게 모은 마력을 허공에 투사했다.

“[버닝 핸즈]!”

화르르르르—!

이전보다 커다랗게 피어난 불꽃이 맞닿은 연기들을 전부 태워나갔다.

불꽃의 크기가 커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안개를 전부 태우기에는 작은 편이었다.

“…….”

피잇. 불길에 타오르던 손아귀가 어느새 잠잠해졌다.

필립은 망연자실한 눈으로 스스로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약하다. 그리고 무능하다.

집행자라는 커다란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전히 나약했다.

필립의 머릿속에 이전에 보았던 넘버 에이트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의 동료인 넘버 에이트는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과 마주쳤던 대마법사를 상대로 교전을 벌였고, 심지어는 그녀를 완전히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넘버 에이트는 집행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떠한가.

가지고 있는 마법은 쥐꼬리만한 불꽃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이래서야 집행자라는 이름이 부끄러워질 따름이다.

그는 불꽃을 뿜어내던 손바닥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실패는 무능력한 자들의 상징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은 실패하고 말 것이다.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한 채로, 집행자라는 이름의 가치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전령은 실망할 것이고, 넘버 식스는 경멸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될 수는 없어.”

필립은 움켜쥔 주먹을 자신의 심장에 대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목소리가 있다.

그는 자신과 계약해 강력한 힘을 주었다.

그는 자신에게 집행자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어느쪽이든 이대로 멈춰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봐, 파트너. 듣고 있어?”

­ “…….”

마음속에서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없다.

자신에게 실망한 것은 아닐까.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계약을 하고 나서, 아직까지 제대로 된 성과를 올린 적은 없다.

그럼에도 필립은 자신의 안에 있는 목소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알아. 나에게 실망했겠지. 집행자들은 하나같이 강하고 멋지고, 제대로 된 사람들 뿐이니까.”

­ “…….”

“나도 알고 있어. 그래도 나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배워나간 것들이 있어.”

지금의 자신은 약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었다.

지금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뜨겁고 커다랗게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손아귀에 쥔 불꽃이 맥없이 사그라든다.

눈앞의 가녀린 생명 역시 덧없이 사그라진다.

무엇을 위해 힘을 갈망했는가.

그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그래도 눈앞에 있는 사람만큼은 구해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더 강한 힘을 줬으면 좋겠어.”

불꽃이 필요하다.

아니, 불길이 필요하다.

선명하고 강한 불길이 필요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태울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불길을 원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계약이었다.

자신은 가장 깊은 어둠과 계약한 사람이다.

더욱 많은 것들을 지불한다면, 더욱 강한 힘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아니지. 힘을 내놔.”

­ “…….”

“이걸로는 부족해. 세상에는 이렇게나 괴물들이 많이 있잖아.”

­ “…….”

“제물을 원해? 내 영혼, 내 수명.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아.”

지금 이 시간에도 바닥을 뒹구는 이들이 있다.

필립이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마다, 고통에 신음하다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뜨거운 불꽃이 필요했다.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에서 타오르는 열정과도 같이, 거세게 피어오르는 불의 기둥이 필요했다.

쿵. 필립의 주먹이 강하게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잠들어있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억지로 깨워서라도 대답을 들을 심산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이 빌어먹을 검은 연기를 전부 태울 불꽃을 내놔!”

쿵. 쿵. 쿵. 쿵.

심장의 고동에 맞춰 필립의 주먹이 가슴팍을 두드리면, 그의 귓가에 강한 이명이 울려퍼졌다.

그것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 “어리석은 자여. 마법이란 무엇인가.”

“파트너. 목소리가 바뀌었구나.”

­ “……?”

“마법이란 뭐냐고? 좋아. 얼마든지 대답해주지.”

목소리가 바뀌었다.

하지만 신경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소리의 형태가 아니다.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자신은 선택받았다. 그리고 이 도시를 구원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필립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본심 그대로를 밖으로 내뱉었다.

“내 마법은 불꽃이다. 세상 모든 어둠과 악인들을 불태울, 멸악의 불꽃이다———.”

필립의 주변에 선명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바람의 형상을 닮은 것처럼도 보였고, 때로는 구름의 형상을 닮은 것처럼도 보였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었다.

필립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불꽃이었다.

바람은 불꽃이다. 구름도 불꽃이다.

집행자— 넘버 세븐의 손아귀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전부 타올라야 하는 불꽃이었다.

­ “그것이 너의 마법인가?”

“그래. 이것이 나의 마법이다.”

­ “거짓된 마법사여. 너는 시험을 통과했다.”

“시험? 나를 시험하지 마라. 닥치고 힘을 내놔.”

­ “……너의 마법은 이전보다 한걸음 더 진리에 가까워졌다.”

필립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음 속의 목소리가 더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새로운 계약은 이것으로 끝인 것이다.

필립은 쥐고 있던 주먹을 허공에 뻗었다.

손을 활짝 펼쳐 내밀고서는, 손끝에 강대한 마력을 끌어모았다.

바라는 것은 불꽃이다.

모든 악을 멸하는 강렬한 불꽃이다.

“[버닝 핸즈]——.”

필립의 손끝이 번쩍였다.

한차례 빛이 일었다. 그 직후 폭음이 터졌다.

필립이 내지른 손바닥의 너머로부터, 강렬한 화염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퍼버버버벙!

불꽃의 거인이 주변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 강인한 손바닥과 맞닿아있던 안개는 전부 연소되어 사라졌다.

“[버닝 핸즈].”

그럼에도 필립은 다시 손바닥을 내질렀다.

불꽃이 일었다. 화염에 휩쓸린 연기가 사라졌다.

필립은 다시, 손바닥을 들었다.

다시. 그리고 또 다시.

손이 뻗어나가는 곳에 폭염이 피어올랐다.

손길이 스치고 지나간 곳에, 자유로이 숨을 내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버닝 핸즈]!”

필립은 몇번이고 마법을 사용했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 안개를 불태우기 위해서.

필립의 손바닥이 번뜩이는 아래에서,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 하나가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옆에는 사진이 끼워진 치안대 수첩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설마… 장, 의사인가.”

“[버닝, 핸즈]……!”

“생각보다도… 대단한 사람이었군.”

감탄이 섞인 한마디가 울려퍼졌다.

집행자 넘버 세븐, 장의사.

세상이 그의 불꽃에 이름을 붙인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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