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미궁 (6)
* * *
“…….”
3구역. 암흑상인의 사무실.
그곳에서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시넬은 인기척을 느끼고 단검을 빼어들었다.
스륵. 그녀의 손에 쥐어진 단검이 허공에서 한바퀴 회전했다.
그녀가 갑자기 움직임을 취한 이유.
그것은 밖에서 다가오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문밖에서부터 커다란 기척이 느껴지고 있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손님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찾아오는 이들은 불청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무수히 많은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손님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였다.
“아무래도 손님은 아닌 것 같네요.”
이곳에는 지금 암흑상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만한 숫자가 찾아왔다는 것은, 사전에 약속을 잡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언가를 의뢰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시넬은 벽장을 열고 그곳에 몸을 숨겼다.
끼이익. 조그맣게 열린 벽장의 틈새로 다가오는 인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입해라!”
사무실에 찾아온 것은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남자들의 인파였다.
정규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통일감이 부족한 개성적인 복장들이다.
벽장속에 숨은 그녀가 추측하기에, 상대는 잘 훈련된 용병집단처럼 보였다.
이런 규모의 용병을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용병과 소비자를 중개해주는 크로스 네트워크.
비정기 토벌대를 운영하는 나이트테일 기사단.
마지막으로 수송의뢰나 대규모 분쟁사태에 주로 투입되는 세컨더리 비트.
당장 도시에서는 이 셋이 전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안에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직 생활감이 남아있어. 경계하면서 샅샅히 뒤져보는 편이 좋을거야.”
“알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용병들은 사무실의 깊은 곳까지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넬은 그제서야 비로소 이들을 이끄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스포츠컷의 남자.
그녀가 마탑에 찾아갔던 당시, 한차례 전투를 벌였던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설마…….’
시넬은 상대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컨더리 비트의 검귀, 데런 벨츠.
수많은 용병들을 이끌고 있는 세컨더리 비트의 제 1 팀장이었다.
그런 그가 많은 용병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짐작이 가는 이유는 하나.
암흑상인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였다.
“일단은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만 수색해봐.”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까?”
“혹시라도 잠깐 밖에 외출한거라면, 여기에 숨어서 기다리는 편이 나을거 아냐.”
“알겠습니다. 다들 알아들었냐!”
지시를 내린 검귀는 곧장 소파 위에 자리를 잡았다.
검귀의 눈이 조용하게 사무실을 한바퀴 훑었다.
시넬은 그 모습을 보며 단검을 강하게 쥐었다.
마탑에서 시넬은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검귀의 앞을 막아섰다.
그가 그때의 일로 아직까지 이를 갈고 있다면, 이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었다.
“야.”
“네, 팀장님.”
주위를 둘러보던 검귀의 시선이 그녀가 숨어있는 벽장 앞에서 멈춰섰다.
혹시나 자신의 위치를 들켜버린 것일까.
꿀꺽. 시넬은 침을 삼키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장갑을 끼고 있는 손에 땀이 차는 기분이 들었다.
시넬이 있는 벽장을 바라보던 검귀가, 옆에 있던 용병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 저 벽장, 수상한 느낌이 들지 않아?”
“수상한 느낌이요?”
“그래. 계속해서 이상한 시선이 느껴지거든.”
“숨어있기 좋은 공간처럼 보이는군요. 제가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철컥. 검귀의 명령을 들은 용병이 권총을 겨누며 벽장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용병의 모습에 시넬이 몸을 기울였다.
숨어있는 위치는 이미 들켰다.
검귀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능한 빠르게 밖으로 뛰쳐나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만 했다.
“[헤이스트].”
시넬의 몸을 휘감은 마력이 그녀의 시간감각을 뒤바꿔놓았다.
두근—. 두근—. 두근——.
울려퍼지던 심장의 고동이 서서히 느려져간다.
귓가에 들려오던 수많은 소리들 역시 서서히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현저하게 느려진 시간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정상적인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열어보겠…….”
용병의 손이 벽장의 손잡이를 붙잡기 위해 다가온다.
시넬은 움직이는 용병의 손바닥을 보며, 빠져나가야 하는 타이밍을 계산했다.
셋. 둘. 그리고 하나.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무섭게 시넬이 단검을 밀어넣었다.
푸욱!
닫혀있던 벽장의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문을 열던 용병의 목에 단검이 파고들었다.
“커허억……!”
“숨어있던 적이다! 쏴라!”
단검에 찔린 남자는 즉시 절명했다.
쓰러진 남자의 몸을 붙잡은 시넬의 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철컥.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는 무수한 총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든 사선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해야만 하고, 그럴 수 없는 것은 막아내야만 했다.
“…….”
“빨리 쏴!”
탕! 타앙!
불을 뿜는 총구들의 모습을 보며, 시넬이 단검에 찔린 시체를 들고 달려나갔다.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탄환의 일부가 가로막혔다.
탄환에 직격하는 일이 없도록, 단검을 맞고 쓰러진 용병의 몸을 방패막이로 사용한 것이다.
시넬의 정면에 있던 용병 하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공격을 피할만한 틈새는 없다.
반드시 돌파해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뭐, 뭐, 뭐야! 무슨 속도가……!”
“에드워드! 빨리 물러나라!”
몸을 가리고 있는 방패의 너머에서, 시넬이 들고 있던 단검을 고쳐잡았다.
용병에게 있어서는 사각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단검이 움직이는 방향을 눈치챌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하나——, 둘.
숨을 들이마쉰 시넬이 단검을 휘둘렀다.
푸욱!
재빠르게 휘둘러진 단검이 길을 가로막던 또 다른 용병의 숨을 끊었다.
“끄으으윽…….”
풀썩. 가슴팍을 꿰뚫린 용병이 자리에 쓰러졌다.
이것으로 두 명째. 용병을 쓰러뜨린 시넬이 책상의 뒤편으로 미끄러졌다.
몸을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엄폐물이 필요했다.
근처에 있는 장애물이라고는 고작해야 캣타워와 책상 뿐이었다.
그렇다고 캣타워 뒤에 숨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사실상 선택지는 책상 하나 뿐이었다.
“후우, 하…….”
책상 뒤에 숨은 시넬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움직인 것은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소모하는 체력은 그보다도 훨씬 많았다.
그녀의 마법은 시간에 대한 대가를 공평하게 지불받는다.
격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한다면, 거기에 따른 소모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시넬이 책상에 달라붙어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소파에 얌전히 앉아있던 데런이 몸을 일으켰다.
“팀장님, 직접 나서지 않으셔도…….”
“어디까지 나를 망신시키려고.”
“……죄송합니다.”
데런의 눈초리에 옆에 있던 마이클이 입을 다물었다.
눈깜짝할 사이 베테랑 용병 두명이 당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뭐라고 변명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툭. 데런은 허리춤에 있던 검을 붙잡았다.
움직이는 검귀를 향해 주변에 있던 모든 용병들의 이목이 향했다.
“분명 한차례 마주했던 기억이 있었지.”
“…….”
“그것도 마탑에서 말이야.”
마찰음이 울리며 데런의 검이 뽑혀나왔다.
검귀의 악명을 모르는 인물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검의 귀신.
데런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화약의 시대. 데런은 총기 대신 검을 쥐었다.
그는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난 천재였다.
“그때는 큰 신세를 졌어.”
“……그랬나요.”
“물론이야. 덕분에 그 녀석을 죽이지 못하고 놓쳐버렸잖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전장에서 날뛰는 그의 모습은 공포의 화신 그 자체였다.
쏘아내는 탄환은 그의 몸에 닿지 않는다.
움직이는 칼날은 반드시 적의 몸에 적중한다.
데런의 손에 의해 도륙난 적의 숫자가 세자리를 넘어선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상처를 입은 검귀를 본 인물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장님은 죽게 놔두지 않아요.”
“그럼, 그래야겠지. 거기서 어떻게 구해낸건데.”
검을 든 데런이 웃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지금의 대화도 가벼운 여흥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람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다.
더군다나 치안대가 없는 지금이라면, 거리낄만한 요소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나서지마.”
“알겠습니다, 팀장님.”
“이제 슬슬 확인해볼까. 암흑상인의 부하는 어떤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야.”
말을 마친 데런이 앞으로 크게 한걸음을 내딛었다.
느려진 시간속에서 발소리를 들은 시넬이 쥐고 있던 단검을 고쳐들었다.
움직이는 속도 자체는 헤이스트를 사용한 시넬쪽이 우위에 있다.
상대에게 틈을 주지만 않는다면, 압도할 가능성이 조금은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거리를 재던 시넬이 움직이려고 하던 찰나.
“———[오러].”
“……!”
단검을 쥐고 있던 시넬의 어깨가 꿰뚫렸다.
오러. 데런의 검에서 뻗어나간 미증유의 기운이 책상을 뚫고 시넬을 공격한 것이다.
푸욱!
어깨를 꿰뚫은 일격에 시넬의 얼굴이 굳었다.
반면에 검을 쥔 데런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