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미궁 (8)
* * *
고통에 젖은 비명속에서 니콜라스의 시선이 우리쪽으로 향했다.
짧은 순간. 허공에서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 직후 니콜라스가 이쪽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곧장 출력을 높여 텔레파시를 전했다.
“입구가 막히기 전에 달려라!”
“[스톤 월]!”
전력으로 내달린 우리가 재빠르게 골목의 입구까지 도착한 순간.
밟고 있던 지면이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벽을 만드는 니콜라스의 마법, 스톤 월.
마법의 영향을 받은 지면이 요동치며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변을 직감한 필립과 어셔는 곧장 아래로 뛰어내렸다.
순식간에 4층 높이까지 올라가버린 돌벽의 위에 남아있는 것은 나와 네이뿐이었다.
“어, 어라…….”
“거기서 저격이라도 해라.”
“……권총으로?”
“알아서 하도록.”
오히려 돌벽위에 있는 편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니콜라스에게 당장 이 위를 노릴만한 여유는 없을 것이다.
간단한 답변을 남긴 나는 곧장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물론 그대로 떨어지면 위험하기에, 지상에 있는 검성을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응해라. 떨어지면 죽을거다.”
“너무 무모한 협박인데.”
“유능한 부하가 잘 살려야겠지.”
후우우웅—.
짧게 몰아친 바람이 낙하속도를 줄였다.
아래를 향해 붙던 가속도가 사라지면서, 나는 무사히 바닥에 내려앉을 수 있었다.
탁. 지면에 두다리가 닿기 무섭게 주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방독면을 쓴 니콜라스를 향해 달려드는 어셔와 검성의 모습이 보였다.
“[버닝 핸즈]!”
물론 필립 역시 가만히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니콜라스를 무시한 채, 곧장 패러노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넘버 세븐의 손에서 강력한 불꽃이 터져나왔다.
불길의 손아귀는 패러노트를 향해 뻗어나가며, 경로에 있는 검은 안개를 모두 불태웠다.
통증에 신음하던 패러노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달려나갔다.
“끄으윽! 정신이 나갔군! 여기서 불장난을 하고 있다니!”
“정신이 나간 놈에게 듣고싶지는 않다!”
패러노트는 품에서 단검 한자루를 꺼내들었다.
단검을 뽑은 패러노트의 주위로 검은 안개가 빠르게 확산했다.
이전부터 옅어지고 있던 검은 안개지만, 유독 패러노트의 주변에서만큼은 짙은 안개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확산한 검은 안개가 패러노트의 모습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필립은 패러노트를 향해 불꽃을 쏘면서 그를 지속적으로 견제했다.
“[버닝 핸즈]……!”
“넘버 세븐. 그쪽은 너에게 맡기겠다.”
“알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전령.”
내가 패러노트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도, 니콜라스는 주변을 지켜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쿠구구궁.
짧은 진동과 함께 사방에서 돌벽이 솟아올랐다.
범위안에 있는 우리들을 서로 갈라놓을 심산인 모양이었다.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돌벽속에서, 나는 검성을 향해 가까이 달려갔다.
어셔야 가만히 놔두더라도 알아서 잘 이동할 인간이다.
기동력이 부족한 내 입장에서는 검성에게 달라붙는 것이 최선이었다.
“……거리를 벌릴 심산인가. [블링크].”
솟아오르는 돌벽의 너머에 있던 어셔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모든 마법중에 가장 기동성이 좋은 마법이다.
어셔에게 있어서 이런 장애물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내쪽이었다.
나는 눈앞을 가로막은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검성에게 다음 행동을 주문했다.
“벽을 넘어갈거다. 안정성 따위는 신경쓰지 마라.”
“조심해. 조금 난폭할테니까.”
“그런 각오야 얼마든지 하고 있다.”
검성의 경고에 나는 피식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난폭해봐야 스피넬보다 난폭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바닥에서 기류가 솟아오르며 몸이 허공에 튕겨져나갔다.
파앙—!
공기가 터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솟아오른 벽 너머의 풍경이 한눈에 시야에 들어왔다.
“난폭하다고 했잖아?”
“……살려는 주겠지.”
“여기서 우리 고용주님을 죽일 수는 없지만 말이야.”
검성의 손아귀가 내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로부터 몇초 후.
힘을 잃어버린 몸이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는 니콜라스와 싸우는 어셔의 모습이 보였다.
검성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니콜라스와 겹치도록 낙하지점을 조정했다.
“[블링크].”
블링크를 사용한 어셔의 몸이 니콜라스의 등 뒤로 이동한다.
모르는 채로 당한다면 치명적인 공격이다.
이미 한차례 어셔와 싸운 전적이 있었기 때문일까.
니콜라스는 곧장 어셔의 공격에 반응한 채, 손에 끼워진 갈고리를 어셔에게 휘둘렀다.
어셔는 재빨리 몸을 뒤로 기울여 갈고리를 피했다.
“……마법.”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우리가 니콜라스에게 공격을 때려박았다.
지상으로 낙하한 검성이 니콜라스에게 가까이 달라붙자, 그녀의 주변에 있던 바람이 휘몰아쳤다.
후우웅——.
검성의 근처에 있던 니콜라스가 순식간에 뒤로 튕겨져나갔다.
뒤로 밀려난 니콜라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돌벽과 강하게 충돌했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힌 니콜라스가 신음을 흘렸다.
“크흐… 으윽…….”
니콜라스를 밀어낸 바람의 여파일까.
지상으로 추락하던 우리의 충격 역시 대부분 상쇄되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어셔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곧장 니콜라스를 향해 전이하며 손을 뻗었다.
“[블링크].”
자리에서 사라진 어셔가 니콜라스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니콜라스의 뒤는 벽으로 막혀있는 상황.
아까처럼 자리에서 몸을 빼려고 시도해도 그럴만한 공간이 없을 터였다.
어셔의 손이 니콜라스의 목을 움켜쥐려는 찰나.
니콜라스가 갈고리를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이 자식이… [스톤 월]!”
쿠구구궁.
벽면에서 돌기둥이 튀어나오며 어셔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벽면 위에 새롭게 벽을 세웠다.
니콜라스가 만들어낸 돌기둥들은 지면과 수평방향으로 뻗어나왔다.
그의 마법이 사용가능한 곳은 수직범위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니콜라스의 기습에 당황한 것일까.
어셔는 다시 한차례 블링크를 사용했다.
“[블링크].”
블링크를 사용한 어셔의 몸이 공중으로 이동했다.
그는 뻗어나온 돌기둥의 위에 안착해 니콜라스의 움직임을 추격했다.
물론 니콜라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다시 한차례 돌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톤 월]……!”
이번에는 니콜라스가 밟고 있던 발판이 솟아올랐다.
상공으로 빠르게 치솟는 발판을 바라보던 어셔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동중인 지형에 블링크를 사용하는 것은 리스크가 제법 크다.
어셔의 입장에서는 손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쪽에는 나름대로의 전문가가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넘버 파이브. 다시 네 차례다.”
“——마법.”
검성류라는 기술명을 못부르니까, 이제 대놓고 아무말이나 하는 검성이었다.
검성의 손아귀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둔탁한 바람의 칼날이 니콜라스에게 직격했다.
투웅—!
검성의 공격에 맞은 니콜라스가 뒤로 밀려났다.
그는 당황한 눈으로 지면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커허억……!”
“피하지 못할거다. 아래쪽으로 쏴라.”
“이대로 당해줄 것 같냐! [스톤—]……!”
낙하하기 전에 다시 돌기둥을 움직이려는 것일까.
니콜라스가 허공을 향해 갈고리를 내밀었다.
갈고리를 이용해 허공에 멈출 심산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셔가 움직였다.
“[블링크].”
상공을 향한 짧은 블링크.
돌기둥을 발판으로 삼은 어셔가 니콜라스의 머리를 붙잡았다.
콰악. 강하게 붙잡힌 니콜라스의 목에서 기이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어셔의 손아귀에 붙잡힌 이상, 이후의 결말이야 뻔한 일이었다.
“끄으윽…….”
“[블링크].”
지이잉.
짧은 이명과 함께 이동한 어셔가 우리의 앞에 멈춰섰다.
그의 손아귀에는 니콜라스의 머리가 들려있었다.
결국 어셔의 손에 니콜라스가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어셔는 잠시동안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혀를 차며 머리를 집어던졌다.
어셔의 손을 벗어난 니콜라스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니콜라스를 던진 어셔는 손바닥을 털면서 나에게 물었다.
“다른 한쪽은 어떻게 됐지?”
니콜라스쪽은 토벌에 성공했다.
이제 가장 중요한 패러노트쪽을 확인할 차례였다.
아직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원에 나서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고개를 돌려 필립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필립이 있는 돌벽을 내가 바라보는 순간.
내 귓가에 패러노트의 심상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머저리같은 녀석들! 다음번에 두고보자!”
아무리봐도 토벌에 성공한 것처럼 생각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도망가는 사람의 조롱에 가까웠다.
패러노트의 토벌에 실패했다.
전투력과 별개로 중요도 자체는 패러노트 쪽이 더 중요했다.
지금 당장 합류해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작전에 실패한 모양이군. 빠르게 합류하는 편이 좋을거다.”
나는 니콜라스를 쓰러뜨리고 자리에 주저앉아있는 검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검성은 눈을 마주치고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부정의 대답이었다.
“있잖아, 퍼… 넘버 투.”
“문제라도 있나?”
“나 슬슬 한계야. 마력이 없어.”
“……어쩔 수 없군.”
검은 안개의 영향권에 들어서 있는 동안, 검성은 지속적으로 마법을 사용해왔다.
검성의 마법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안개를 들이마시고 위험에 처해있을 것이다.
검성의 마력이 바닥을 보였다고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전투를 벌이는 동안에 마력이 남아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검성이 안된다면 남아있는 것은 한사람 뿐이다.
나는 옆에 있던 어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도 슬슬 한계다.”
“…….”
“네가 가는 편이 낫겠군.”
어셔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무안한 태도로 어셔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내가 가진 마법을 모른다.
그렇기에 꺼낼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이곳에서 전투능력이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굳이 상대에게 나서서 정보를 넘겨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 역시 그냥 이 자리에 남아있는 것을 선택했다.
“나도 슬슬 한계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