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25화 (125/156)

〈 125화 〉 퍼시발 스미스 (1)

* * *

사건 자체는 축성가 니콜라스의 죽음으로 어느정도 일단락 되었다.

주변을 잠식하고 있던 검은 안개들은 패러노트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다만 니콜라스가 죽었음에도 사방에 빼곡히 들어선 돌벽들만은 사리지지 않아, 도시의 혼란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니콜라스 토벌에 나섰던 우리 일행은, 검성의 마력이 어느정도 회복되고 나서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치안대가 집행자에 대해 어느정도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어셔는 사건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어놓지 않았다.

“하나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갔지?”

­ “일이 끝났으니 돌려보냈다.”

필립의 경우에는 텔레파시를 이용해 따로 퇴각을 지시했다.

상당히 어리버리한 면이 있는 필립이다.

괜히 치안대에 붙잡혀서 정보라도 술술 불었다가는 골치아파질 우려가 있었다.

안그래도 한층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의 치안대가 아니던가.

문제가 생길만한 일은 가능한 피하는게 좋았다.

“일이 끝났다고? 임무가 따로 있다고 했을텐데.”

­ “오늘 일은 이걸로 충분하다. 굳이 더 판을 키울 이유는 없겠지.”

“약삭빠른 녀석이군.”

레닐 바이츠의 추격 역시 일단은 보류해두었다.

대규모의 소요사태가 일어난 바로 직후다.

레닐도 가능한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찾는다고 쉽게 찾아질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후순위로 미뤄두어도 괜찮을 일이다.

­ “전공을 세운 사람한테 너무하는군.”

“수상한 짓을 하고다니는 녀석들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

­ “수상한 일을 하는거야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애초에 치안대도 아니지 않나. ‘인간도살자’ 어셔 헤이즈.”

“……옛날 이야기다.”

옛날 이야기라. 맞는 말이기는 했다.

목줄을 차고 있는 지금 당장은 그런 일을 벌일만한 여유가 없을테니까 말이다.

중범죄자들을 체포대신 사살하는 것도, 목걸이에 부여된 형량제한이 넘지 않는 선에서 벌이는 일이다.

허가받지 않은 임의행동은 그에 해당하는 형량을 추가로 부여한다.

200년의 형기가 전부 채워지는 순간, 목걸이는 어셔의 목숨을 거두어갈 것이다.

네이가 어셔의 돌발적인 행동들을 자주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 “옛날 이야기로만 남았으면 좋겠군.”

“…….”

­ “그렇지 않으면 골치아픈 사람들이 많을테니까 말이야.”

어셔를 벼랑끝으로 모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전쟁도시는 그런 이야기였다.

비정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아쉬움을 남기는 이야기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파멸로 향하는 어셔 헤이즈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물론, 지금은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은 아니다.

이미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나에 의해 바뀌었다.

이 이야기의 끝에 어떤 결말이 찾아올지는, 나조차도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너희는 대체… 뭐가 목적이지?”

어셔의 차가운 눈빛이 내 가면을 바라보았다.

어둡다. 그리고 고독하다.

언제나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의 눈은, 오랫동안 마주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 “거창한 목적은 없다.”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는군.”

­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명확하게 하도록 하지.”

나는 지금까지의 어떤 대답들보다도 더 정직한 답변을 돌려주기로 했다.

내가 싸움에 나서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움직이는 이유.

처음에는 분명 생존이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목표가 바뀌었다.

이것은 이제 나 하나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 “너희에게 해피엔딩을 약속하겠다.”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나는 어셔에게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용건은 전부 끝났다.

더 있어봤자 치안대의 시선을 받을 뿐이다.

맥을 못추고 가만히 서있던 검성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뒤따라오는 검성을 향해 이야기했다.

­ “넘버 파이브. 쫓아오는 녀석들은 날려버려라.”

“그래도 괜찮은거야?”

­ “안괜찮을게 뭐있겠나. 어차피 쫓아오는 순간부터 적인데.”

터벅. 터벅.

기운 빠진 발걸음 소리가 석양이 지는 길거리에 울려퍼졌다.

의도하지 않게 피곤한 하루였다.

* * * * * *

“…….”

3구역, 사무실의 입구.

패러노트와의 지독한 전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사무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온 나는 위화감을 느끼고 자리에 멈춰섰다.

무엇이 이상한지는 명확하게 짚어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거슬리는 느낌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야?”

뒤따라오던 검성이 마찬가지로 자리에 멈춰섰다.

무슨 이유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그냥 문득 위화감을 느꼈을 뿐이었으니까.

단지 그뿐이었다.

흔히 직감이라고 부르는 감각이 있지 않던가.

나는 그런 감을 느끼는 순간이 남들보다 많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뭐야, 그게.”

하지만 몸이 피곤하기 때문인지, 오늘만큼은 자신의 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피곤에 젖은 몸은 평소보다 예민한 상태였다.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 정작 무엇이 이상한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럴바에야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가서 쉬는게 이득이었다.

마침 시넬의 얼굴이 보고 싶은 참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위화감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들어가지. 그냥 기분탓이다.”

“저녁은 뭐 먹는게 좋을까나.”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검성과 저녁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무실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끼이익.

살짝 힘을 줘서 문을 잡아당기면, 문이 열리며 사무실 안쪽의 풍경이 드러났다.

“적당히 시켜먹는걸로 충분하겠지.”

“……있잖아, 퍼시발.”

“…….”

“빨리 도망쳐.”

문을 열어젖히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그토록 자신이 위화감을 느끼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째서 자신이 안에 발을 내딛여야 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단검에 찔린 채로 벽에 기대어있는 시넬의 모습이었다.

“……시넬.”

고통에 젖어 눈을 감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숨을 쉬지 않는다.

조금의 움직임조차 찾아볼 수 없다.

죽었다. 그것도 사무실에 침입한 누군가에 의해서.

위화감의 이유를 알게 되었더라도, 나는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시넬을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 말이다.

“퍼시발!”

다행히 나에게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마법이 있었다.

그것으로 시넬을 살려낸다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잠겨 상황을 계산하던 찰나.

검성이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생각에 잠긴 나를 깨우기 위한 목소리는 아니다.

그것은 나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였다.

“……[오러].”

검성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낯익으면서도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러. 짧게 흘러나온 마법의 주문.

그 말과 함께 뻗어나온 섬광이 가슴을 꿰뚫었다.

푸욱——!

섬뜩한 파륙음과 함께 가슴팍에 통증이 번져나왔다.

나는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겨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

단말마조차 내뱉을 수 없는 짧은 순간.

푸른 빛의 기운이 순식간에 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간 것이었다.

오러에 꿰뚫린 가슴팍에선 피가 거세게 터져나오고 있었다.

심장을 당했다. 처치하지 않으면 절명할 것이다.

상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일까.

내 가슴을 꿰뚫고 있던 오러는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커헉——!”

상처를 자각한 폐부에서 핏물이 터져나왔다.

아프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가만히 있는다면 분명 죽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치유하지 않으면 이대로 끝나버린다.

나는 검에 꿰뚫린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다가, 반사적으로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었다.

짧은 휘광이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직후, 완전히 치유된 몸이 이성을 되찾았다.

“한번에 죽을거라 생각했는데. 방어 마법이라도 가지고 있던 모양이야.”

“하아, 하…….”

정신을 차린 내가 눈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검을 들고 있는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검귀, 데런 벨츠.

세컨더리 비트의 제 1 팀장이면서, 도시에 얼마 존재하지 않는 대마법사중 하나였다.

데런은 손에 쥔 검을 흔들면서 살갑게 웃었다.

“그런데 네 동료는 이미 죽어버렸네.”

데런의 시선을 따라 앞에 있는 검성을 바라보았다.

검성 역시 가슴팍을 붙잡은 채 바닥에 움츠려있는 모습이었다.

고통에 젖어 몸부림을 칠만도 하건만, 바닥에 쓰러진 검성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죽었다.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는 해도, 지금의 검성은 죽어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검성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유엘…….”

“그래서, 내가 왜 여기있는지는 알고 있어?”

동료하나 없이 오직 나 혼자만이 남아있는 사무실.

그곳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수많은 용병들이 몸을 일으켰다.

철컥. 무수한 총구가 동시에 나를 겨누었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검귀의 살벌한 눈빛이 나를 노려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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