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퍼시발 스미스 (2)
* * *
동료하나 없이 오직 나 혼자만이 남아있는 사무실.
그곳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수많은 용병들이 몸을 일으켰다.
철컥. 무수한 총구가 동시에 나를 겨누었다.
사무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검귀의 살벌한 눈빛이 나를 노려보았다.
“……뭘 노리고 있지?”
데런과는 이미 마탑에서 한차례 마주쳤던 전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엮일만한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변장을 하고 찾아갔던 것이었다.
어지간해서는 검귀가 나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데런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넌지시 운을 띄워보면, 데런은 손가락으로 검신을 톡톡 두드리며 답했다.
“노리다니. 이건 그냥 빚을 갚는 것 뿐이야.”
“빚이라고?”
“우리 사이에는 마탑에서 진 빚이 있잖아.”
“…….”
데런에게서 대답을 들은 나는 그제서야 데런이 찾아온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데런은 내가 마탑에서 마주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챘는지는 모른다.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그곳에서 시넬이 데런의 앞을 막아섰던 일이 원인일 것이다.
세컨더리 비트는 아마도 시넬의 흔적을 쫓아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알고 있더라도 막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시넬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테니까 말이다.
“죽은 동료랑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나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나도 당황하는 모습이 안보이잖아. 안그래?”
내가 데런의 예상보다도 훨씬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모양이다.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무게감이 달라진다.
지금의 자신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은 경계해야만 했다.
가능한 데런에게 정보가 넘어갈만한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부하는 부하에 불과할 뿐이다.”
“하하, 그렇구나. 너라면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데런의 시선을 분산시키며 보이지 않게 휴대전화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건 상대는 헤리오였다.
내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다.
통화는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헤리오라면 귀에 흘러들어오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외부로부터의 구원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마탑에서의 일로 나를 죽이러 온건가?”
“그거말고 뭐가 더 있어? 너희에게 죽은 동료들의 복수도 하고, 세컨더리 비트의 명예를 실추시킨 대가도 받아내야지.”
“나를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지? 오히려 손해밖에 없을텐데.”
세컨더리 비트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곳은 도시 중심구역의 한복판이다.
외곽지구들만큼 치안이 망가진 곳이 아니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치안대를 부를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치안대에 출동하게 되는 경우, 아무리 세컨더리 비트라고 해도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데런은 이미 두명이나 사람을 죽인 상황이다.
치안대가 이곳에 출동하는 즉시, 치안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무슨 손해?”
“이런 짓을 벌이면, 분명 치안대가 움직일거다.”
“하, 잘도 그런 말을 하네. 위대한 지성을 죽여놓고 처벌을 안받은 인간들도 있는데 말이야.”
데런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넬이 풀려난 것은 충분히 수상하게 보이는 일이었다.
우리와 치안대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 도시에서 세컨더리 비트의 영향력은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아무런 연줄이 없을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게 이런 일까지 막아줄 수 있느냐면, 아무래도 그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치안대와 거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안될 것 같아? 본인은 되는데 말이야.”
“쉬운 일은 아니겠지. 적어도 이런 일까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거다.”
“괜찮아. 죽은자는 말이 없으니까. 잘 우겨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벌써부터 데런과의 대화가 끝나서는 안된다.
헤리오가 찾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필요하다면 전투를 이어나가는 것 역시 고려해야만 하는 부분이었다.
내 시선이 한차례 사무실의 배치를 훑고 지나갔다.
너무 빤히 주변을 들여다보는 것도 곤란했다.
시야에 담는 것은 한순간이다.
나머지 계산은 전부 머릿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했다.
“잠깐. 거래를 하자.”
“허튼 수작 부리지마.”
누가 들어도 무리수라고 생각할만한 말이다.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데런이 반사적으로 일갈했다.
그 역시 내 말이 헛소리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검성과 시넬을 남겨둔 채로는 더더욱 물러설 수 없었다.
“내가 가진 돈을 전부 건네주지. 100만 크레딧이다.”
“100만 크레딧? 그런 돈 필요없어.”
“100만 크레딧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어차피 널 죽이고 가져가면 되는데, 뭐 그런 짓까지 해서 받아.”
당연한 지론이었다.
한가지 맹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돈은 대부분 헤러넌츠 은행에 있다.”
“그래? 그러면 필요없어.”
“그렇다면 다른 제안을 하지.”
“헛소리는 그만두고, 그냥 얌전히 …….”
이어지는 대화속에서 데런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한숨을 내쉰 데런의 시선이 돌아가는 순간.
나는 마력을 움직여 무음영역을 전개했다.
움직이는 기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었다.
오늘 하루동안 리저렉션을 두차례나 사용했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는 무음영역을 잠시 펼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후우——.”
소리가 사라진 침묵의 공간.
이곳에서는 나 혼자만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정적속에서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근처에 있는 책상에 몸을 숨겨 엄폐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용병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이변을 알리기 위해 입을 열어보지만, 근처에 의사가 전해질 리는 만무했다.
나는 곧장 책상의 뒤로 미끄러지며, 책상을 엄폐물 삼아 몸을 숨겼다.
완전히 몸을 숨긴 내가 마법을 거두어들이자, 책상 너머에서 데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뭘 하나 했더니, 마지막 발악을 할 생각이었구나.”
철컥.
내가 있는 위치를 향해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나 역시 주머니에 있는 권총을 꺼내들었다.
권총안에는 계승자에게 받은 ‘처형집행자’ 한 발이 장전되어있었다.
이 탄에 명중한다면 제아무리 검귀라고 해도 멀쩡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명중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붙어있지만 말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여기서 얌전히 죽어주기는 억울해서 말이야.”
들어있는 탄환은 한 발.
정확하게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의미는 없다.
그리고 이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두 번 다시 데런을 쓰러뜨릴만한 기회는 없다.
검귀는 6서클의 대마법사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편이었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강하다고 평가하는 인물들 중 하나다.
그 전투력은 결코 우습게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헤리오가 도착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갑옷을 가지고 있는 헤리오가 온다고 해도, 데런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를 부른 것은 어디까지나 탈출의 가능성을 만들기 위함에 불과했다.
“이거야 원. 별게 다 억울한 모양이야.”
“……그리고 동료의 원수도 갚아야만 하겠지.”
“동료의 원수? 그건 확실히 중요한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혹시 그거 알고 있어?”
말을 하던 데런이 잠시 뜸을 들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그의 다음 말을 경계하면서 권총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데런은 들고 있던 검을 기울여 내가 있는 방향으로 겨누었다.
“그 자리, 아까 네 동료도 똑같이 있었어. [오러].”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힘껏 몸을 기울였다.
푸욱——!
날카로운 통증이 어깨죽지에서 전해져온다.
고개를 돌려 책상을 바라보면, 푸른 빛의 오러가 책상을 뚫고 파고든 모습이었다.
데런의 마법이 책상을 관통해 공격해온 것이다.
“큭…….”
“아쉽네. 한번에 죽이려고 했는데.”
아프다. 오러에 꿰뚫린 어깨가 고통을 호소했다.
피가 흘러나오는 어깨를 손으로 부여잡고서, 데런의 오러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책상을 파고들었던 오러는 순식간에 빛의 입자로 변해 사라졌다.
검귀의 오러는 모든 것을 베어가른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는 데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용병들의 총격 역시 경계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데런의 손에 내가 죽는다.
어떻게해서든 데런 하나만큼은 지금 처리해야만 했다.
“…….”
데런에게 공격당한 오른쪽 어깨가 잘 움직이지 않는다.
조준과 사격은 왼손으로 하는 편이 빠를 것 같았다.
나는 쥐고 있던 권총에 힘을 불어넣었다.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데런을 겨누기 위한 방향을 계산한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가능한 빠르게 데런을 제압하고서, 다시 책상 뒤에 엄폐를 할 필요가 있었다.
처형집행자를 사용한다. 그리고 데런을 죽인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철컥.
자리에서 일어난 내 총구가 곧바로 데런의 머리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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