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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력배틀물 보이스피싱-127화 (127/156)

〈 127화 〉 퍼시발 스미스 (3)

* * *

기회는 한 번 뿐이다.

가능한 빠르게 데런을 제압하고서, 다시 책상 뒤에 엄폐를 할 필요가 있었다.

처형집행자를 사용한다. 그리고 데런을 죽인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철컥.

자리에서 일어난 내 총구가 곧바로 데런의 머리를 겨누었다.

“…….”

오차가 없는 조준.

이대로 권총을 격발하더라도 빗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고 손가락에 걸친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오러].”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이미 내 손은 존재하지 않았다.

툭. 잘려나간 손목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비어있는 왼팔의 모습만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손이 잘렸다. 그것도 납득할 수 없는 속도로.

권총이 들려있지 않은 왼팔을 보자 허탈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아…….”

“놀랐어?”

“아아악……!”

절단면이 뜨겁다.

강한 격통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어깨를 찔렸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다.

아프다.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에서 핏물이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그 마법을 안쓰는구나.”

“으윽…….”

“죽을만한 공격에만 발동하는건가? 치명적인 상처가 아니면 효과가 안듣거나.”

“흐, 으으…….”

밀려오는 통증탓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기회는 날아갔다. 그리고 정신은 혼란스럽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데런의 검이 기울어지며 다른 각도를 노렸다.

어깨. 데런이 노리고 있는 곳은 내 어깨였다.

“뭐, 몇차례 더 해보면 알게되겠지. [오러].”

푸슉.

뻗어나온 오러가 손목이 잘려나간 왼쪽 팔을 꿰뚫었다.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지나친 고통에 사고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커허억—.”

거칠게 터져나온 숨결.

그 속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데런을 노려보았다.

이겨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이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오러].”

“끄윽…….”

다시 한차례.

녀석의 오러가 나를 꿰뚫고 사라졌다.

이번에는 복부다.

치명적인 장기가 있을만한 부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만히 놔둔다면, 출혈로 인해 죽을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오러].”

무력하다.

검이 움직이고, 다시 한차례 고통이 이어졌다.

죽이고 싶다. 눈앞의 적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런데도 나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검을 휘두르는 검귀도.

검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용병들도.

지금은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데런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계속해서 비명을 내지르는 인생이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보인다.

평소의 자신도 나약했다.

그럼에도 싸워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는 혼자였으니까.

“끄아아악…!”

시넬이 죽었다. 그리고 검성이 죽었다.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 뿐이다.

완전히 잘려나가 너덜너덜해진 한쪽 팔.

처형집행자가 장전된 채로 바닥을 구르는 권총.

이 공간에 더 이상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다.

무능력한 자신만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채 남아, 6서클의 대마법사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그만 포기해. 죽으면 편하잖아.”

나약하다. 그리고 무력하다.

손이 있다. 다리가 있다. 그리고 마법이 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했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마법은 텔레파시 하나뿐이다.

이 마법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작해야 나를 향한 적들의 분노를 듣는 것밖에 없다.

­ “빨리 죽어라, 쓰레기!”

­ “저 녀석 때문에 동료가 얼마나 죽었지?”

­ “대단한 사람이라더니, 죽을 때가 되니 초라한 건 다를 바가 없구만.”

­ “팀장! 빨리 녀석을 죽여버려!”

진득한 살의.

날것 그대로의 적의에 홀로 몸을 맡기는 것은 처음이다.

이 장소의 모두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누구 하나 예외는 없이, 나를 향한 분노를 내보이고 있을 뿐이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나 혼자 모든 것을 떠맡게되는 상황이 오게 될줄은 몰랐다.

지금의 나에게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아무것도 방법이 없다.

선택지라고 주어진 것은 지금을 순응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뿐이다.

사용가능한 리저렉션은 전부 써버린지 오래다.

남아있는 마력으로는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포기해라. 그리고 죽음을 맞이해라.

주변의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었다.

답답하다. 꽉 막혀있는 상황에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흐으… 흐하하하……!”

“미쳐버린거야? 꼴사나운 모습이네.”

“그으, 래…….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야.”

진득하다. 역겹다. 그리고 절망스럽다.

이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남아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은 패배한 것이다.

엑스트라로 살아오며 도약할 날을 꿈꾸던, 이 짧은 이야기가 이제는 종막을 고해야만 했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칠 생각도 없다.

나는 이곳에 있어야만 했다.

“머릿속에서라도 도피해볼 계획이야? 생각보다도 더 추해보이잖아.”

“그럼 뭘… 원하지? 목숨구걸이라도 하는걸, 원하고 있나.”

“…….”

“원한다면 해주지, 그래. 제발 살려주십쇼. 대단하신 검귀님.”

“아직도 자신의 죄를 모르는건가.”

“죄? 아주… 잘못했지. 내가, 내가 욕심이 너무 많았지.”

텔레파시가 활성화된 귓가에 다시 한차례 마음의 목소리가 쏟아져내렸다.

저마다의 살의어린 목소리가 나를 저주했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누군가는 장난기에 젖어 내 죽음을 빌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쓰러진 동료들을 엮어가며 내 최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 “죽어! 빨리 죽어!”

­ “미친 자식, 빨리 죽여버려!”

­ “팀장은 저 녀석을 안죽이고 뭐하는거야?”

­ “보면 볼수록 버러지 같군. 어서 네 동료들의 곁으로 가라고.”

악의. 증오. 분노. 경멸.

그 모든 감정들을 받아들이며,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텔레파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 과정에는 아무런 여과가 없으며, 나는 상대의 악의를 그대로 받아야만 한다.

이만한 악의를 받아본 경험이 있던가.

없다. 내 일생을 통틀어서, 이런 규모의 감정과 직면해본 경험은 없다.

숨이 막힐 것만 같다.

자신을 유지하던 경계선이 흐려지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며, 모든 것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곳은 어디인가.

자신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그 어떤 것들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내 안에서 뒤섞이고 있는 것은 무수한 감정의 파도였다.

죽어. 살려줘. 죽어. 살려줘.

죽어. 살려줘. 죽어. 살려줘. 죽어. 죽고싶지 않아.

죽어. 살려줘. 죽어. 살려줘. 죽어. 살려줘. 죽어. 살려줘. 죽어. 살려줘.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나는, 아직————

죽어.

저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툭.

무엇인가 완전히 끊어진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사람이라 부르는 틀일수도 있고, 자신을 막아서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틈새를 타고, 이질적인 무언가가 자신의 안에 뒤섞여왔다.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경계가 흐릿해진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나는 자신이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개인이다. 나는 집단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퍼시발 스미스.

퍼시발.

그리고 퍼시발 스미스.

“……암흑상인, 무슨 짓을 벌이는거지?”

달라진 공기에 데런이 검을 겨누었다.

언제라도 심장을 노릴 수 있는 자세였다.

하지만 이제와서 의미는 없는 행위였다.

우리는 직감할 수 있다.

저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 “나는 암흑상인이 아니야.”

“……뭐라고?”

­ “나는 그런 나약한 새끼가 아니라고.”

데런이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 이런 기분을 원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이름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 이름을 동경한다.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된 날부터, 쭉 이상적인 모습의 자신을 쫓고 있었다.

어느쪽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 “내가 누군지 알고 싶은거냐?”

“……쯧, 됐어. 이제 그만 죽어라.”

검귀가 죽음을 선고하며 검을 움직였다.

죽음이라. 그래, 죽음이다.

이 자리의 모두가 죽음을 원하고 있다.

단 한 사람의 죽음만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단 한 사람.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었다.

‘나’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을 들어올리며, 새롭게 막을 내릴 처형식을 준비했다.

­ “그렇게 바란다면.”

“…….”

­ “전부 죽어주지.”

모순된 의미로 뒤섞여있는 선언.

그와 동시에 짙은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미증유의 마법이 사무실 전체를 장악했다.

경악의 시선속에서 나는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상의 경계가 무너진다.

개인의 사상은 완전히 의미를 상실했다.

질서의 굴레가 깨져나간다.

혼돈속에서 모두의 자아가 뒤섞여나간다.

그것은 사상이고, 사념이며, 또한 사명이었다.

여기에 있는 것은 나다.

나는 개인이며, 집단이고, 군체다.

그런 나의 이름은,

윌리엄. 마이클. 캐넌. 리클라. 톰. 웨니언.

그리고, 데런 벨츠.

“[오러]……!”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 “[스펠 오버로드 : 텔레파시].”

사념과 사념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말은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된다.

누군가의 생각은 다른 누군가의 목적이 된다.

개체와 개체사이에 자아의 경계는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며, 모두가 같은 의지를 가진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그것이 이 자리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규칙이었다.

이 거대한 원칙에서 벗어나는 자는, 사념의 파도속에서 살아있을 자격이 없었다.

­ “죽여!”

­ “빨리 죽여버려!”

“누가 죽어야 하지?”

­ “저 녀석……!”

무너진 경계속에서 모두가 바라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눈앞의 ‘녀석’을 죽이는 것.

그 대상은 결코 우리가 아니다.

이 위대한 섭리를 거절하고 있는,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다들, 무슨…….”

이상을 느낀 검귀가 오러를 끌어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나가고, 검귀마저 위대한 의지에 잡아먹혔다.

모두는 하나. 그리고 하나는 모두를 위해서.

바라는 의지는 전부 하나다.

그리고 그것을 대행하는 자도 오로지 하나뿐이다.

“죽어라.”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들고, 멍하니 서있는 검귀에게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권총을 그에게 겨누었다.

나는 군체. 모두가 바라는 것은 하나.

눈앞의 적을 말살하는 것.

쥐고 있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쏘아져나간 탄환이 검귀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끄으… 끄아아아악……!”

처형집행자는 죽음을 담고 있는 탄환이다.

죽음이 그를 덮쳤다.

탄환에 맞은 부분부터 서서히 부패해갔다.

살점은 썩어 문드러지고, 근육은 비쩍 말라붙었다.

무너져가는 육체가 그의 종말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를 완전히 죽이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조금 더 빨리. 그를 없애야만 한다.

“죽어.”

­ “죽어!”

주변에 있던 용병들이 데런을 향해 달려들었다.

팔을 깨물고, 뼈를 깎는다.

그들의 움직임이 집단의 의사를 대변했다.

저마다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을 바라고, 각자의 방식으로 데런을 괴롭혔다.

데런의 팔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나갔다.

데런의 다리가 부패하며 비뚤어졌다.

죽음을 앞둔 상황속에서 데런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끄아아아아악……!”

“흐하하하하하——!”

“아아아아악……!

비명. 비명소리가 울려퍼진다.

죽음을 모르고, 아픔을 모르며, 항상 남들보다 우위에 서있던 인간의 비명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 스스로의 죽음을 부르짖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불가역적인 신체손상에 대한 공포.

그 모든 감정이 집단 전체에 퍼져나갔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겁을 집어먹은 것은 데런이었다.

그는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아… 아악…….”

“…….”

이질적인 것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같아야만 한다.

정의와 자비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대신해 공포와 분노만이 이 자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질서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혼돈의 장이 펼쳐져 버린 것이다.

­ “그것은 너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다.”

그렇게 광기의 축제가 무르익어가는 도중.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내려꽂혔다.

신비의 대행자.

그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 “이 시간부로 시험은 중단되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암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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