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퍼시발 스미스 (4)
* * *
정신을 차린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어둠이었다.
어둠.
짙은 어둠.
그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대하다. 그리고 기괴하다.
눈동자는 그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위압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6서클의 대마법사들이 내보이던 프레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위압적이다.
존재 자체가 대마법사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너는 이질적인 존재다.”
나를 응시하던 눈동자가 입을 열었다.
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말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말도 안되는 두가지의 의미가 공존할 수 있다.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왜 여기에…….”
“시험이 중단되었다.”
“시험?”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신비의 대행자는 그에 대해 시험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남은 기억은 검귀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험이라.
무슨 시험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짐작이 가는 것이라면은 역시, 내가 다음의 시험을 치를 자격이 생겼냐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커다란 눈동자를 올려다보면, 눈동자가 한차례 눈을 깜박였다.
“여섯번째 시험. 너는 그것을 위한 자격을 취득하고 있었다.”
“취득했었다는 말을 봐서는, 지금은 아니라는 것 같은데.”
“그래. 지금은 아니다. 시험은 중단되었다.”
시험이 중단되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을 치른 기억따위는 없다.
원래 신비의 대행자와 마주한 기억은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런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
최근의 나는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도, 그제도.
나는 다음 단계를 위한 시험을 준비한 기억이 없다.
“무슨 시험이었지? 아무래도 나는 거기에 대한 기억같은게…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말이야.”
신비의 대행자에 의해 나는 1단계 난이도가 보정된 시험을 치르게 된다.
즉, 6서클에서 7서클로 넘어가는 수준의 난이도를 체감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섯 번째 시험은 완성된 자신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다.”
“완성된 자신?”
“어느 날의 미래에, 네가 다다를 수 있는 마지막 모습. 그 자신을 쓰러뜨리는 것이 시험의 내용이다.”
시험의 내용을 듣자마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완성된 자신과 싸우라고?
6서클이나 7서클에 해당하는 자신과 싸우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지금의 수준으로 싸우는 건가.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최소한의 보정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 조건 없이, 지금 이 몸 그대로 쓰러뜨리라는 건가?”
“조건은 동등하지 않다. 그걸 극복하는 것이 시험의 내용이다.”
말도 안되는 시험이다.
그런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아니, 가능한 이도 얼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계승자만 하더라도 편법으로 7서클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그 시험을 넘어선 사람은 있나?”
“지금은 단 두 사람만이 남아있다.”
“단 두 사람? 누구지?”
신비의 대행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곧바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텔레파시의 영향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전보다 강해진 텔레파시가 상대의 의식을 읽어들였다.
“브루노 리트리어. 그리고 아이레 프로스트.”
절름발이 브루노.
듣자마자 바로 납득이 되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내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내 예상이 맞다면 도시에 있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아마 도시 바깥에 있는 인물이겠지.
“심히 불쾌하군.”
“의도한 일은 아니야.”
“알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일 역시 의도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일?”
“시험은 중단되었다. 시험의 내용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었으며, 나는 가장 오래된 계약에 따라 시험 전체를 파기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눈동자가 이번에는 대놓고 불쾌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모종의 수단으로 시험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해결한 것은 내가 아닐 것이다.
애시당초 부정적인 방법따위는 하나도 알고 있지 못했다.
시험의 내용을 들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시험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네 안에 있던 다른 녀석이 강제로 참가했다.”
“다른 녀석? 무슨 소리야?”
“원본이라고 해야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 마법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하는게 맞겠지.”
원본. 혹은 진정한 주인.
짐작갈만한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퍼시발 스미스.
전쟁도시의 엑스트라 중 하나이자, 내가 오기 전까지 이 몸을 통제하고 있던 인물.
분명 사라졌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라리 자신이 이 몸을 더 가치있게 써주는게 나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그는 내 안에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대신 참가했다고?”
그리고 그가 나를 대신해 시험에 참가했다고 한다.
남아있는 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서클을 올리기 위한 시련에까지 대신 참가하다니.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내용에, 슬슬 머릿속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니, 잠깐. 완성된 자신과 싸운다면서. 그 녀석이 대신 나가면 대체 누구와 싸우는거지?”
“그는 7서클의 [리저렉션]을 상대로 오로지 자신의 [텔레파시]만을 가지고 맞서싸웠다.”
“……?”
완성된 자신.
나를 기준으로 형성된 시험에 원래의 퍼시발이 뛰어들었다.
그리고 리저렉션을 가진 대마법사와 텔레파시로 맞서싸웠다.
생각해보면 아까보다 한층 더 괴랄해진 내용이다.
리저렉션과 텔레파시 양쪽 모두 전투에 사용할만한 능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들고서 두 사람의 싸움이 벌어졌다.
대체 둘 사이에선 어떤 싸움이 벌어진 것일까.
나로서는 도저히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둘은 맨몸으로 치고받았다.”
“아…….”
듣자하니 UFC가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것도 이 탄탄한 몸뚱이를 만들어낸 퍼시발 스미스와 말이다.
나도 싸움이라면 제법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지만, 이런 몸을 만들어낼 자신은 없었다.
더군다나 리저렉션과 텔레파시의 싸움이라면 어느쪽이 유리할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허가받지 않은 존재가 시험에서 승리했다.”
결국 졌구나.
7서클의 리저렉션을 가지고서 말이다.
물론 말이 쉬워보이는 것이지, 몇차례고 부활하는 상대를 계속 쓰러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 치열한 싸움 끝에 미래의 내가 얻어터졌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시험이 중단되었다고 한거군. 그 다음은 어떻게 됐지?”
“그는 시험이 끝난 직후,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내려 마법을 남용하던 네 머릿속에 섞여들어갔다.”
“내 머릿속에…….”
“육체를 완전히 장악당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지. 한동안 그 상태가 이어졌을 뿐이다.”
원래의 퍼시발 스미스가 나와 뒤섞였다.
그리고 검귀와의 싸움을 벌였다.
허가받지 않은 시험에서 승리해, 불완전한 6서클의 능력을 손에 넣고서 말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죽었을테니까.
문제가 될만한 것은 그 다음의 상황이었다.
“그럼 지금의 몸은? 지금도 녀석이 장악하고 있는건가?”
나는 신비의 대행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커져버린 목소리가 주변 공간에 울려퍼졌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만약 내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내려 원래의 퍼시발 스미스가 장악했다면.
나로서는 돌아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된다.
시넬. 그리고 검성.
어느쪽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는 소멸되었다.”
“뭐라고……?”
“네 망가진 정신도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전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마법 덕분이겠지.”
“리저렉션을 말하는건가?”
다행히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안타깝게도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직 육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자신인 모양이다.
하기야, 정신이 망가졌으면 이런 식으로 대화가 가능할 이유가 없다.
“생명을 주관하는 마법은 단순하지 않다. 특히 영혼까지 간섭하는 마법은 더더욱 드물지.”
“…….”
“네 죽음을 감지한 마법이 육체와 영혼의 상태를 스스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복원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은 살아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과 같은 우연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신비의 대행자가 다시 한차례 불쾌감을 표현했다.
거대한 감정의 파도가 공간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다시 경고하지.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해결된 시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겠지.”
“가장 오래된 계약에 따라, 나는 너에게 주어진 권한을 일부분 회수하겠다.”
6서클의 마법이라.
가지고 있으면 좋을거라 생각하지만, 쉽게 주어질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에게는 7서클 수준의 난이도가 요구되는 사항이 아니던가.
누구나 쉽게 7서클이 될 수 있다면, 이 도시에는 절름발이같은 사람들만 넘쳐났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
그리고 수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텔레파시의 감각이 이전보다 민감해진 것이다.
신비의 대행자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그가 모르고 있는 동안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편이 좋았다.
그런 내 기대에 부흥하기라도 한 것일까.
신비의 대행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슬슬 깨어날 시간이 된 모양이군.”
쩌적. 쩌저적——.
파열음과 함께 주변의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와 신비의 대행자를 감싸고 있던 공간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신비의 대행자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꿈속에서 뿐이다.
내가 들어와 있던 꿈이 깨져나가고 있다.
슬슬 육체가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바깥 상황은 어떻게 됐지?”
바깥에 있는 것은 데런 벨츠 뿐만이 아니다.
그 주변에는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용병들이 무더기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벗어나더라도 싸움을 다시 벌여야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는 친절하게 굴던 신비의 대행자도, 이번만큼은 만족할만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 이상은 네 스스로 알아보는 편이 좋을거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신비의 대행자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어둠속에 아무리 외쳐보아도, 더 이상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