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타협 (1)
* * *
세컨더리 비트. 사장실.
창문 너머로 환히 빛나는 도시의 야경이 들어오는 가운데, 창가에 선 잭 벨츠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경을 바라보는 그의 안색은 어두운 채였다.
“하…….”
세컨더리 비트는 도시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민간군사기업이다.
그리고 잭 벨츠는 그런 세컨더리 비트를 이끄는 사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직책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철컥.
사장실에 홀로 남은 잭의 머리에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지는 총구가 드리워져 있었다.
“죽을 때가 되니 아쉬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죽을 각오야 이미 진작에 했지.”
“그런데 뭐가 문제지?”
문제라면 많이 있다.
잭의 주변에 늘어진 수많은 시체들.
무용지물이 된 채로 부서져 늘어져있는 세컨더리 비트의 보안장치들.
마지막으로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의 정체까지.
무엇 하나 거슬리지 않는게 없었다.
“하필이면 데런이 없을 때 기어들어오다니.”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오는 일은 없었겠지.”
“그래. 그게 문제라고. 이 빌어먹을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 말이야.”
세컨더리 비트의 최대 전력은 바로 잭의 동생인 데런 벨츠였다.
회사를 지금의 명성위에 올려놓은 것도, 아직까지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전부 데런과 그가 이끄는 제 1 팀의 무력 덕분이었다.
6서클의 대마법사라는 것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상대는 데런이 없는 동안에 세컨더리 비트의 습격을 감행했다.
이 자리에 없는 것은 데런뿐만이 아니다.
1팀 전체가 작전을 이유로 부재중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건물의 보안을 담당하던 보안팀의 태반이 전투불능상태가 되었다.
이 자리에 찾아온 남자 단 하나때문에 말이다.
“검귀가 있었으면 이겼을 것 같나?”
“당연히 이겼을거다. 난 그 녀석이 지거나 밀리는 걸 본적이 없어.”
“자신감이 넘치는군.”
“확신하는게 당연하겠지. 절름발이 브루노라도 살아오지 않는 한, 데런이 지는 일은 없을테니까.”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잭이 허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곧 이 남자의 손에 죽을 상황이 아니던가.
이제와서 그가 거짓말을 꺼낼 이유도 없다.
잭 벨츠는 진심으로 검귀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데런이 그의 동생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잭 자신이 지금까지 수도 없이 데런의 강함을 목도해왔을 뿐이다.
마탑에서의 일 역시, 결국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대마법사 여럿을 상대로 혼자 버텨내었다.
잭이 아는 검귀는 괴물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었다.
“둘 다 틀렸군.”
피식.
그런 잭의 말을 들은 남자가 가볍게 웃었다.
남자의 말을 들은 잭의 얼굴이 굳었다.
남자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이런식으로 나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뭐?”
“하나. 절름발이 브루노는 살아있다.”
절름발이 브루노.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던 최악의 범죄자.
그런 브루노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잭이 경악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당시 브루노의 토벌에는 치안대의 전력 대부분이 동원되었다.
그러고도 치안대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브루노의 토벌과정에서 발생한 피해금액만 하더라도 수억 크레딧에 달하는 액수다.
미스릴 탄환조차 몇발이고 소모되었다.
그런 대규모 토벌작전을 벌이고서도 브루노가 살아있다고 한다면, 그건 이미 인간의 범주로 잡을 수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이건 내가 치안대 내부자료를 통해 확인한 정보니 정확하다.”
“절름발이 브루노가 살아있다고?”
“그래. 절름발이는 살아있다.”
“리만 그 멍청한 자식. 아는게 하나도 없었잖아.”
천리안의 리만을 욕하는 잭의 모습에, 남자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커졌다.
잭은 유리창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몇번을 봐도 재수없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둘. 네 동생이 오더라도 내가 이긴다.”
“마지막은 뭐, 자기 자랑이었냐?”
“자랑이라니. 사실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당신이 그 잘난 근위대 소속인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타앙!
묵직한 총성과 함께 잭의 몸이 기울었다.
——철퍼덕.
잭의 시선이 바닥을 나뒹구는 자신의 몸뚱아리로 향했다.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바닥에 고이기 시작한 핏물과 함께, 서서히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이상의 헛소리는 지옥에 가서 해라.”
“빌어먹을… 새끼…….”
잭의 눈이 자신을 쏜 상대를 쫓았다.
갈색머리의 남자가 손에 쥔 권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 있었다.
잭을 쏜 남자의 이름은 레닐 바이츠.
제국에서 파견된 제국황실근위대 소속이면서, 제 4 근위대를 이끄는 근위대장이기도 했다.
“다음 생에는 좀 더 충성스러운 신민으로 태어나도록.”
“……엿이나 먹어.”
후우. 잭의 마지막 숨결이 바닥에 퍼져나갔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잭은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없는 세컨더리 비트가 무너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의 뒤를 이을 사람은 데런 벨츠 하나뿐이다.
데런 벨츠는 비즈니스에 소질이 없었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시야속에서, 잭 벨츠는 동생의 안녕을 기원했다.
* * * * * *
깜빡. 깜빡.
어둠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눈동자를 움직였다.
흐릿했던 의식이 점차 선명해져갔다.
의식을 되찾은 내가 가장 처음 목격한 것은 어둠이었다.
불이 꺼져있는 어둠.
코를 찌르는 짙은 피비린내.
마지막으로 주변에 잔뜩 늘어져있는 사람의 시체.
“……쿨럭!”
피. 그리고 시체.
보기만 해도 구토가 올라오는 풍경이다.
속이 뒤집히는 역겨움을 억지로 참아내고서, 나는 서서히 주변의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검귀, 데런 벨츠.
그는 흉측한 몰골이 되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심하게 망가져있는 모습이다.
그가 검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손에 들고 있는 검 한자루 이외에는 없었다.
“…….”
데런의 주변에는 용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져있었다.
데런이 데려왔던 용병들이었다.
단순히 의식을 잃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숨을 쉬지 않는다.
확실하게 숨이 끊어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주위의 용병들이 데런에게 달려드는 장면이었다.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 왜 죽었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그리고 그들의 너머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차고있던 마스크를 귀에 걸어놓은 채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
그의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집행자 넘버 식스. 헤리오였다.
내가 급하게 구원을 요청했던 헤리오가 이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헤리오의 앞에는 검성과 시넬이 가지런히 눕혀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정신을 놓아버린 용병들이 보이더군. 적인 것 같아서 전부 처리했다.”
“전부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다. 어차피 적이었으니, 상관없어.”
스펠 오버로드의 영향을 받았던 용병들이 쉽게 회복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사무실에 도착한 헤리오가 용병들을 전부 정리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런 이야기였다.
어차피 죽여야만 하는 적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컨더리 비트?”
세컨더리 비트의 이름을 들은 헤리오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이트테일 기사단에 몸을 담고 있던 헤리오다.
세컨더리 비트에 대한 내용은 어지간해서 나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 세컨더리 비트의 용병들이 사무실에 쳐들어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겠지.
“일전에 데런 벨츠와 마찰이 있었다.”
“……그랬나.”
“아마도 저기에 있는게 검귀겠지.”
나는 바닥을 뒹구는 데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데런 벨츠. 그 이름을 들은 헤리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석연치 않은 이야기를 들어버린 표정이었다.
헤리오는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졌다.
남아있던 담뱃불이 헤리오의 신발에 짓밟혔다.
“그렇군. 데런 벨츠가 죽은거군.”
“친한 사이었나?”
“사람들은 나와 데런을 비교하고는 했지. 결국에는 내가 그보다 오래 살아남게 됐지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의식을 잃은 사이에 리저렉션이 한차례 발동했던 것일까.
망가져있던 육체는 원래대로 돌아온 채였다.
의식이 없어도 쓸 수 있는 마법이라니.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으면 리저렉션이 자동으로 발동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잠시 머릿속에 들었다.
하지만 직접 실천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다.
짐작은 짐작으로 놔두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터벅. 터벅.
발걸음을 옮겨 쓰러진 동료들을 향해 다가갔다.
검성과 시넬이 눈을 감은 채로 누워있었다.
검귀의 오러에 당했다고는 해도, 용병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깔끔한 상태였다.
“마력이… 약간 모자라는군.”
“빨리 처리하는 편이 좋을거다. 치안대가 오기 전에 끝내야만 할테니까.”
“치안대가 오고 있다고?”
“이미 주변에서 신고가 들어간 상태다. 운반할 필요가 있다면 따로 이야기해라. 치안대와 마주하기 전에 이곳을 떠야만 한다.”
치안대에 신고가 들어간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만한 소란이 일어났는데, 지금까지 신고 하나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니까.
치안대를 상대로 리저렉션을 보일 수도 없으니, 가능한 빨리 처리하자는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곳을 떠나자는 내용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나는 헤리오를 바라보며 그에게 되물었다.
“잠깐만… 지금 이곳을 떠나자고 한건가?”
“네 부하들의 죽음이 관측당했다.”
“…….”
“혼자서 다닐 생각이 아니라면, 더는 그 이름으로 활동하기는 힘들거다.”
* * *